일토장정86-1 (2023. 09. 01) 화천군
16.1km (서해 : 845.6km, 남해 : 817.7km, 동해 677.1km 누리 190.1km 합계 : 2,530.5km)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 풍산리)
9월의 첫날 장정을 시작한다. 너무 더운 8월은 장정이 없었으니
45일 만에 다시 시작된 장정이다.
장정을 떠나기 전 몇 차례 화천군청에 문의 전화를 했다.
평화의 댐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화천군의 가장 북쪽 풍산리로 가서 한묵령을 넘어
화천으로 내려가는 평화의 길 23코스의 개통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23코스로 가게 되면 해산터널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장정의 안전이 확실히 보장된다.
하지만 23코스 중간에는 민간인 통제구역이 있고
아직 군부대와 협조가 안 돼서 미개통 상태이다.
물론 DMZ평화누리길도 개통을 한 것은 아니다.
계속된 통화에도 대답은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것이 없습니다.”였다.
장정을 더 늦출 수도 없는 상황이고 최상의 길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다
아주 쉽게 비수구미 계곡을 찾을 수 있었다.
이미 상당히 이름이 난 트레킹 코스였다.
단 평화의 댐에서 비수구미 민박 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장정을 시작했다.
세계평화의 종 공원에서 캠핑장을 지나 북한강을 따라 내려가다
비수구미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두 명은 해산터널 쪽으로
또 두 명은 북한강을 따라 비수구미 계곡으로 방향을 잡아서 걸어간다.
누가 맞았는지 누구 틀렸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각자 편을 나눠 돌진을 한다.
처음부터 불협화음이 울린다.
지원조가 틀림을 바로 잡고 해산터널 방향으로 간 둘을 데려오고 다시 화음을 조율한다.
하지만 조금 더 진행을 하니
큼지막한 통행금지 통행제한 표시판이 버티고 “더 이상 못가”를 외친다.
지원조가 먼저 확인을 했어야 하는데 움직임이 좀 늦었다.
모두 모여 결정을 보아야 할 시간이 됐다.
금지표시판 뒤로 사람들은 다니고 있지만
지도에는 길이 분명있지만
굳게 바리게이트로 막아 놓은 길을 가야 하는 것인지
다시 길을 돌려 해산터널 방향으로 굽이굽이 좁은 찻길로 가야 할지?
결론은 바리게이트를 넘어 가기로 했다.
“이건 차량통행을 막은 것이지 사람의 통행을 막은 것은 아니다”라는 자조를 하며.
길은 조용하고 한산했다.
화천댐에 막혀있는 북한강는 멈춘 듯 흐르고 있고
초입에는 극성스런 낚시꾼의 장비가 널려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 갈수록 인적도 없고
곧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위험한 절벽과
이제는 흐르지도 않아 파로호로 이름이 불러야 할 북한강 사이로 조심조심 걸어 들어간다.
“위험하다, 이 길의 선택은 무모했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만
더 이상 장정을 돌리지도 못하고 앞 만 보고 걸음을 재촉한다.
그렇게 약 1km 정도 지나가니 조금 안심이 되는 모양이 보인다.
곧 비수구미 민박에 도착 할 것 같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
지도에서도 길이 없던 그 곳에 도착하니 콘크리트로 포장된 도로는
호수 안으로 내려 가버리고 용궁으로 가는 길밖에는 없었다.
평생 도로를 바라보고 살았지만 이런 도로는 처음이다.
추측하건대 호수에 물이 빠지면 생기는 그런 길인 것 같다.
잠시 당황하며 길을 찾아보니 산 위로 비수구미 민박 화살표가 보이고
숲속 안쪽으로 나무 계단이 보인다.
수풀을 해치고 들어가니 나무 갑판으로 사람과 자전거를 끌고 갈 수 있는
동화 속 신비한 마을로 들어가는 것 같은 작은 길이 나온다.
방향만 잡고 그 길을 따라 계속 들어가니 나무다리가 나오고
다리 밑 주변의 물빛이 신비스러운 색을 띠고 있다.
다리 건너 이름도 신비한 비수구미가 나왔다.
비수구미 마을이 한자로 秘水九美라고 한다.
“신비한 물 그리고 아홉 개의 아름다움”이란 뜻을 가진 마을이다.
조선 초기에 왕궁을 짓기 위한 소나무를 베어내지 못하게 표시한
벌목금지 표시판 非㪽古未禁山 東標 (비소고미금산 동표)가
인근 바위 새겨져 있어서 그 “비소고미”가 “비수구미”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화천댐을 막으며 졸지에 물과 산에 갇혀버린 곳이다.
다리를 건널 때 확실히 秘水는 보았고 이제 九美를 보기 위해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계곡으로 들어서서 바로
첫 번째 美를 본다.
숲새로 비쳐 들어온 햇빛이 돌 위를 흐르는 맑은 물을 보석처럼 반짝이게 한다.
두 번째 美는 계곡을 오를수록 작은 돌은 큰 바위로 바뀌는데
그 큰 검정 바위 위에 낀 파란 이끼와 흐르는 물의 포말이다.
세 번째 美는 비가 온 후여서 인지 수량이 많아서
작은 계곡들이 생기고 큰 계곡으로 모여지며 내는 경쾌한 물소리다.
네 번째 美는 바로 이 길이다.
포장도 되어있지 않고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경사가 심한 것도 아니고 약한 것도 아닌 이 길.
다섯 번째 美는 이 길과 계곡이 왼쪽으로 만나고
언제는 바른쪽으로 만나며 사랑하며 같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덕분인지 지루하지 않고 힘들지도 않다.
여섯 번째 美는 반칙이긴 하지만 마침 다래랑 머루랑 맛있게 익어가서
그 맛을 살짝 볼 수 있던 것이다.
정말 조금 땅에 떨어진 것을 소중히 불어먹었다.
일곱 번째 美는 숲속 가득 풍겨오는 약초 냄새 같은 묘한 냄새이다.
젊고 싱싱한 향기는 아니지만
오랜 숲에서 풍기는 호흡이 편안해지는 그런 향기이다.
여덟 번째 美는 해산터널로 올라와서 만나는
음식점의 인심 가득한 맛이다.
늦은 점심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또 먹어도 맛있는 함지박 산채비빔밥과 막걸리다.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는 빨간 모자를 쓰고
우리를 마중 나왔던 친구와 함께 즐거웠던(?) 친구들과 동생
그리고 나까지 함께하고 있는 우리 모두이다.
(조금은 억지스럽게 짜 맞추는 듯하지만....)
계절이 바뀌면 또 어떤 九美가 있을지?
우리는 아래서 올라갔지만 위에서 내려온다면 또 어떤 九美가 있을지?
비수구미의 九美는 오감 만족이었다.
점심 후 잠시 특수임무를 맡은 친구 둘이 해산터널을 통과하여 잠시 지나 오늘의 장정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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