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새한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부지깽이
김미경
싸늘히 식은 부지깽이가 도망가던 등 뒤 마당에 그대로 내동댕이쳐졌다.
“가시나가 허구한 날 책만 들다보고 그라쌋노. 엄마 좀 거들면 손가락이라도 뿌라지나.” 뒤따라 날라 온 엄마의 잔소리는 피할 새도 없이 등짝에 바로 내리꽂혔다. 갑자기 날라 온 부지깽이를 용케 피하긴 했지만, 바깥 추위만큼 놀랐던 기억은 아직도 서늘하다.
그 당시에는 겨울 날씨가 꽤나 매웠다. 밤새 창가에는 고드름이 아이스크림처럼 주렁주렁 매달렸다. 꽁꽁 언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너나없이 방 아랫목에 깔린 이불 속을 먼저 헤집어댔다. 아랫목에는 수건에 똘똘 싸여 푹 파묻힌 밥이 어김없이 식솔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을 집어넣었을 때 온몸으로 스며드는 구들장의 온기는 그 날의 고단함을 녹여주는 위로와도 같았다.
뜨뜻한 온돌방을 지켜주던 아궁이 앞에는 부지깽이가 파수꾼처럼 세워져있었다. 기다란 쇠로 된 막대기다. 아궁이에서 타고 있는 장작의 위치를 바꿔주거나, 불이 활활 잘 타도록 잉걸불을 들추면서 공기를 집어넣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게다가 다 타버린 재는 아궁이 속 남김없이 싹싹 끌어내주는 청소까지 도맡아주었다. 부지깽이의 불 속 깊은 뒤척임은 온 집안의 구들장을 골고루 데웠고, 아궁이 앞에 잠시 엉덩이 붙인 어머니들에게는 포근한 휴식마저도 주었다.
옛날 자식들을 엄히 다스림에 있어 회초리가 아버지들의 ‘매채’였다면 어머니들에겐 부엌의 부지깽이가 그것이었다. 더하여 손에 물마를 새 없었던 어머니들에게 부지깽이는 허허롭던 손에 쉽게 잡혀주던 친구와도 같았다. 아마도 타는 속 대신 애꿎은 아궁이를 뒤적거리면서 궂은 살림을 같이 토닥거렸을지도 모르겠다.
근대 아궁이에서는 장작 대신 연탄으로 주인공이 바뀌었다. 변해버린 부엌의 역사 속에서도 부지깽이는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다. 연탄아궁이도 연탄재를 끌어내 줘야만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부엌의 새로운 동반자인 연탄집게가 부지깽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바뀐 역할을 수행해 주었다. 부지깽이의 어깨가 사뭇 넓어졌다. 꺼지는 불을 되살려도 주고, 꽉 막힌 구들장 밑까지 시원하게 뚫어주는 숨은 일꾼이 따로 없었다.
속 시원히 뚫린 아궁이에서 열기를 다 뿜어낸 연탄은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다. 한 줌 재로 남은 연탄을 쑥 들어 올릴 때의 허탈감은 다 타버린 생의 무게만큼 초라하다. 남은 재마저 부지깽이로 퍼 올리면, 마치 막 화장을 끝낸 유골처럼 숙연하기마저 하다. 탄다는 것이, 희생한다는 것이 그러한 것인 듯.
연탄불이 하얗도록 타고나면, 다 타버린 밑 연탄을 버리고 위의 연탄을 다시 밑불로 놓아준다. 그 다음 까만 새 연탄을 남아 있는 밑불 위에 구멍 맞춰 끼워놓는다. 구들장을 따뜻하게 데우는 임무를 다한 연탄을 부지깽이는 그냥 보내주지 않는다. 골목 어귀 얼어붙은 길 위에다 멋지게 내팽개쳐준다. 끝으로 밟아서 골고루 부셔버리면, 흙에서 온 연탄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풍장을 치른다. 그 마지막 가는 길까지가 오로지 희생이다.
엄마는 아버지와 같이 가게 일을 돌보느라 부지깽이가 곤두서듯 사셨다. 가게일과 집안일로 늘 발을 동동거리셨다. 추운 겨울날에는 얼다 못해 쩍쩍 갈라진 발뒤꿈치에서 피고름이 흘렀다. 양말이라야 나일론 양말이 다였던 시절이었다. 가게에 딸린 단칸방은 방문턱이 어른 키의 반만치나 턱없이 높았다. 손님이 가게에 얼비치기라도 하면, 어린 내가 방에서 떨어질까 봐 등짝에 얼른 끌어 업고 손님을 맞았다고 했다.
콧구멍만 하던 단칸방에서 겨우 양옥집으로 이사를 했다. 엄마의 허리띠는 그만큼 더 단단히 조여져 있었다. 방이 한 칸이라도 늘어난 대신 살펴야할 아궁이도 그만큼 는 셈이었다. 궁핍한 살림은 허리 한 번 펼 새도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식솔들 끼니거리를 차려야했다. 부지깽이가 날라 올만도 했다. 연탄 갈 시간에 맞춰 살펴보라던 아궁이를 책을 읽다 깜빡한 것이다. 연탄불이 하얗게 식어버렸다.
한겨울 차가운 구들장을 다시 덥히려면 반 시간여를 아궁이문을 열어두고 지펴야만 했다. 밥을 할 수 있는 수단도 연탄불이 전부였다. 엄마의 입술도 추위와 배고픔으로 연탄재처럼 하얬다. 그 당시엔 번개탄이 꺼진 연탄불을 피우는 불쏘시개였다. 매캐한 번개탄을 피워대며 연탄불을 다시 지피는 엄마의 속까지 하얗게 다 탔을 성 싶었다.
엄마의 잔소리는 불을 피우는 내내 속사포로 날라 왔다. 맏딸이다 보니 사소한 집안일을 도와야만했다. 책만 들었다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나였기에, 그런 나의 모습이 엄마에게는 불만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잔소리만큼 나도 만만찮았다. 또박또박 말대꾸하다보면 부지깽이가 날라 오듯 엄마의 큰소리가 쑥 나온 입을 틀어막았다. 엄마와 같이 있노라면 늘 타닥타닥 타는 잔불 같은 싸움이 잦았다.
꺼져가던 불씨도 알불로 키우던 엄마가 지금은 밑 불 다 꺼져가는 하얀 연탄재가 되려한다. 얼마 전 큰 수술을 받았다. 퇴원하는 엄마를 부축할 때의 무게감은 다 탄 연탄을 쑥 들어 올린 것처럼 서글펐다. 부지깽이를 내던지던 엄마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까맣던 머리도 어느새 생기 하나 없이 푸석하기만 하다.
엄마의 잔소리도 이젠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없다. 다행히 아직 밑불은 살아 있다. 큰 전이 없이 수술도 잘 되었다. 꺼지려는 밑불을 위해서는 아궁이문을 활짝 열어줘야만 할 때다.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꺼지는 불을 되살리듯, 이번에는 자식들이 부지깽이가 되어야할 차례다.
부모님의 사랑이 마치 연탄불 사랑 같다. 구들장을 온종일 데워주면서 뭉근하게 오래가는 연탄불, 가족들이 돌아올 때까지 뜨끈뜨끈한 밥주발을 품에 꼭 안고 기다려주는 그런 식지 않는 사랑이다. 따뜻한 온기를 퍼주고 또 퍼주고도, 마지막 순간까지 다 베풀고 나서야 자신은 하얗게 식어가는 것이 마치 부모님의 사랑과 꼭 닮았다.
아침, 저녁으로 벌써 찬바람이 등허리를 감싼다. 이제 아궁이는 아파트 보일러 스위치 속에서 가물거리는 옛말이 되었지만, 아궁이를 살피던 부모님의 사랑은 아직도 뜨끈뜨끈하다. 그 사랑이 뭉근한 연탄불처럼 오래 가도록 아궁이를 살피듯 간간이 살펴드려야 할 것 같다. 등 뒤로 날라 오던 부지깽이 잔소리도 오래 오래 들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