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는 지금 미·중이라는 거대한 힘의 파도 사이에 서 있다. 한쪽으로 기울면 안보가 흔들리고, 다른 쪽을 놓치면 경제가 흔들린다. 그래서 외교당국은 한 걸음 한 걸음이 곧 전략이 되는 긴장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그 시험대였다. 형식적 의전보다 중요한 것은 회담 이후 발표된 내용과 그 안에 담긴 한국의 외교적 좌표였다.
APEC 무대에서 미국은 기술과 안보 중심의 질서를 강조했다. 반면 중국은 자유무역과 다자협력을 앞세우며 미국식 견제를 우회하려 했다. 이러한 틀 속에서 한국은 어느 한편으로도 완전히 설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균형자 외교’로는 부족하다. 각국이 자국 우선의 전략을 강화하는 시대에, 한국은 조율자가 아니라 규범과 협력의 설계자(Designer) 로서 존재해야 한다.
이번 APEC에서 한국이 제시한 ‘열린 지역주의’는 그 방향성을 보여준다. 개방적 협력과 포용적 성장, 기술과 인류의 조화라는 메시지는 세계 질서의 분열 속에서도 한국이 추구해야 할 가치다. 특히 한국은 민주주의, 기술력, 경제 네트워크를 모두 갖춘 중견국으로서 동아시아와 서구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역할이 실현될 때 한국 외교는 생존을 넘어 주도적 기여로 평가받을 것이다.
이제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신뢰 기반의 다자협력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둘째, 외교적 이벤트에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 협력의 틀—예컨대 공급망 안정, 디지털 무역, 기후 협력 등—로 연결해야 한다. 셋째, 외교 현장의 메시지를 국민과 산업계가 체감할 수 있는 정책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외교가 국민적 신뢰를 얻는다.
결국 한국 외교의 미래는 균형의 기술이 아니라 설계의 능력에 달려 있다. 열린 지역주의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다. 미·중 경쟁의 파고 속에서도 한국이 중심을 잃지 않고, 아시아태평양의 새로운 질서를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로 우뚝 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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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행복코치 김동영 · 칼럼니스트 · 시민교육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