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무등산 충장사 #
춘산곡(春山曲)
춘산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다 붓난다
저 뫼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
이 몸의 내 업슨 불이 나니
끌 물 없서 하노라
- 1596년 8월 옥중작(장군의 억울한 심정을 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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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3충신 중 한 분이신 충장공 김덕령(忠壯公 金德齡, 1568∼1596년) 장군의 충절을 기리는 충장사를 가을이 익어가는 휴일, 가족과 함께 사우(祠宇) 및 묘역(墓域)을 찾았습니다.
가을의 끝자락 무등산 산장 올라가는 길, 산수동 오거리에서 전망대를 지나 4수원지, 충장사로 가는 길목마다 아름답게 물든 단풍이 길손을 반기며 휘날리고 있습니다. 충장사에 도착하니 입구에 노랑 은행잎이 우리를 반기는데, 충장사는 울긋불긋 오색 물결이 오히려 그의 억울함을 말하는 듯합니다.
김덕령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5000여 명을 모집하여 출정하여 1595(선조 28년)년 고성지방에 상륙하려는 왜군을 격퇴하였으며 이후 장문포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수륙 연합전에 참가한 것을 비롯하여 진해 고성지방을 방어하였습니다.
또한 곽재우 의병장과 여러 차례 왜군을 무찌르니 장군의 위명은 날로 높아졌고, 1596(선조 29년)년 이몽학의 반란을 토벌하려다 그와 내통한 충청도 순찰사 종사관의 무고로 투옥되어 옥사하였습니다. 1661(현종 2년)년 장군의 억울함이 신원되어 관직이 복귀되었고, 1788년(정조 12년) 장군의 충효를 기리고자 사당을 건립하여 배향하고 충장공의 시호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장군이 태어난 마을 석지촌을 충효리로 바꾸도록 하고 표리비를 내려 이를 널리 알리도록 하였습니다.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충장사의 가을! 무등산의 청아한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며 가을 정취에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는, 광주의 역사 기행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