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어메이징 메리’(Gifted)를 보고
‘봐야지, 봐야지’하고 벼르고 벼르던 ‘어메이징 메리’를 봤다. 보통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을 한다고 하는데 실망할 뻔 하다 결국 이 영화에게도 눈에 달린 수돗물을 켜고 말았다. (요즘 영화를 보면 소녀 수준의 빈도로 울고 있어서 큰일이다.) ‘어메이징 메리’라는 제목은 영어로 되어있어 원래 영화의 제목 같지만 원제는 영재를 나타내는‘gifted(재능이 있는)’라는 형용사이다. 외국에서는 ‘gifted’라는 제목으로 개봉 했고 한국에서만 ‘어메이징 메리’라는 이름으로 개봉해 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멸시를 받기도 했지만 나는 한국판 제목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선물이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 원제가 더 가슴속에 박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 포스터(위)와 국내 포스터(아래)>
일단 영화가 시작되면 빨간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눈에 띈다. 7살 밖에 안 된 꼬마 숙녀가 “예쁘네.”라는 삼촌의 말에 “디즈니 캐릭터 같아 보여 싫어.”라고 말하고는 고개를 흔들며 유치하다고 느낄 때 나오는 어른들의 표정을 흉내 낸다. 어쩌면 ‘난 수학영재 역할이라 모든 게 다 시시해 보여야 해요.’ 라든지 ‘나 연기 참 잘하죠?’ 같은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도 있지만 그 자신감마저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아이 엠 샘’의 다코타 패닝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메리 역을 맡은 ‘맥케나 그레이스’는 이미 42편의 영화와 TV시리즈에 출연한 아역들 중에서는 중견 연기자이다.
<'메리' 역의 맥케나 그레이스>
그녀는 실제 나이가 11살이라는 것이 믿기 힘들도록 이 영화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준다. 삼촌과 해변에서 뛰어 놀며 그 또래들이 가진 천진난만함을 보이는가 싶더니 위스콘신 대학교에 가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연로그e와 무한대 기호가 섞인 미, 적분 공식을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칠판에 막힘없이 풀어내며 어느 학자들보다도 진지한 포스를 뿜어낸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이 메리 역에 도전했지만 왜 그녀가 만장일치로 이 역할에 뽑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는 연기만큼이나 생각하는 것도 남달랐는데 영화의 메시지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 인터뷰를 여기에 옮겨본다.
“가족이 완벽한지 아닌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엄마만 있을 수도 있고, 아빠하고만 살 수도 있고, 엄마와 아빠가 두 명씩일 수도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고 있거나 메리처럼 삼촌하고 살 수도 있다. 사람들은 엄마와 아빠, 크고 멋진 집, 돈이 많아야 완벽한 가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누군가와 살고 있다면 그게 바로 완벽한 가족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삼촌 프랭크는 메리를 일반적인 아이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어딘가 어설퍼 보이고 순박하지만 메리에 대한 양육 및 교육에 대한 의지는 확고한 프랭크 역을 ‘크리스 에반스’가 연기 했다는 것을 영화를 다보고 나서 알았는데 그만큼 ‘프랭크’일 때의 그는 다른 사람 같았다. 수염의 유무도 그를 못 알아보게 한 큰 역할을 했지만 정말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연기변신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어쩐지 뒤태의 잔 근육들이 예사롭지 않더니 지구를 지키는 몸은 어디가지 않나보다.
<동일 인물이라기에는 갭(gap)이 너무 크다>
그 외 감초역할로 흑인 인권영화에 자주 등장하시는 옥타비아 스펜서나 프랭크와 반대편에 서서 영화의 긴장감을 올려준 할머니 역의 린제이 던칸의 연기력도 훌륭하지만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외눈박이 고양이 ‘프레드’이다.
프레드는 길거리에서 발견한 유기묘로 한쪽 눈을 잃은 상태로 영화에 등장하는데 눈이 하나만 있는 고양이가 그렇게 귀여운지 이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다. 사실 프레드는 실제로 작가가 유기 동물 입양 센터에서 입양해 기르고 있는 반려묘(이름도 동일)를 모티브로 했는데 영화 속 프레드와 같이 눈이 한쪽만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실제 프레드가 아닌 배역 고양이로 ‘키티’라 불리는 고양이다. 키티는 프레드 역을 맡아 열연했으며 외눈박이 외형은 영상 디지털 기술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외눈박이지만 실제로는 건강한 두 눈을 가지고 있다니 영화 속의 모습도 무척 귀엽지만 두 눈이 있는 실물도 보고 싶긴 하다.
<'프레드' 역을 맡은 고양이 '키티'>
<작가가 기르는 실제 반려묘 '프레드'>
영화의 내용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삼촌의 주장으로 메리가 일반학교를 가면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남들과는 다른 수학적 천재성이 수업 중에 발견되면서 영재학교를 보내려는 학교 측과 계속 일반학교를 보내려는 삼촌의 갈등이 일어난다. 처음에 너무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작위적 전개와 메리문제로 상담을 하다 캡틴 아메리카에게 사랑에 빠지는 어정쩡한 수학선생님 때문에 영화에 집중을 못했는데 할머니의 등장으로 다시 긴장감을 찾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메리를 수학자로 키우기 위해 데려가려 하고 삼촌은 반대한다. 결국 싸움은 미국영화답게 법정까지 가게 되는데... 까지가 스포 방지를 위한 인터넷 상의 줄거리이다. 나머지는 역시 직접 영화를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여기까지 적는다.
내가 이 영화에서 주목하고 싶은 점은 2가지인데 먼저 슬픈 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란 속담이 있듯 영재는 평범한 가정에서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메리의 부모님을 살펴보면 아빠는 올해의 지도자 회의에서 강연을 할 정도로 유명한 교수이고 엄마는 수학의 세계 7대 난제를 풀고 있는 수학자이다. 할머니는 어릴 때 캠브리지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한 연구원이었고 심지어 배를 수리하며 공부와 거리가 멀게 생긴 삼촌 프랭크조차도 예전에 보스턴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이러한 사실은 교육을 통해 신분상승을 꿈꾸는 것은 허망한 것이며 공부를 잘 하는 것은 노력이 아니라 유전자가 결정하는 것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통 우리들은 이러한 현실을 부정하는데 서양인들은 이런 불편한 진실을 잘도 인정하는 것 같다.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학원에 학생들을 보내는 부모님의 심정은 학원 선생님인 나같은 사람한테야 고맙지만 어떻게 보면 가정을 불행하게 만드는 시발점일 수도 있다. 오히려 무능력함의 빠른 인정은 또 다른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슬픈 현실이지만 여기서 그들에게 배울 점도 몇 가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삼촌이 메리에게 교육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여태까지 메리가 살아 있고 어디 있는지 알면서도 만나려고 하지 않은 아빠 때문에 메리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하고 슬퍼한다. 그런 메리를 위해 삼촌은 그녀를 산부인과 병원에 데리고 가서 기다리라고 한다. 한 5시간 정도를 기다리니 잔잔한 음악이 깔리면서 산모의 남편이 수술실에서 나와 가족들에게 ‘아들이야’라고 외치는 모습을 본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얼싸 안으며 기뻐하고 메리와 삼촌은 그 모습을 지켜본다.
그러고는 삼촌이 한마디 하는데
“저게 정확히 네가 태어났을 때의 모습이란다.” 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메리가 이게 행복한 일이냐고 묻자 삼촌은 네가 태어난 것은 행복한 일이라고 대답한다. 그러고는 메리도 달려가 그 가족들과 기뻐하며 장면이 끝난다. 이 장면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여운이 많이 남았었다.
사실 세상에서 교육하기 가장 힘든 것이 ‘느낌’이다.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며 각자 가지는 것도 제각각이라 가르친 다기 보다 전달한다는 쪽이 더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전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대부분 잘 모르며 심지어 그 ‘느낌’이 중요한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사실 이 ‘느낌’은 ‘영감(impression)’으로 발전하고 큰 나무가 가지를 뻗는 것처럼 여러 가지를 창조할 수 있는 재료가 된다.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교육은 할머니가 고용한 석, 박사들이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아이의 탄생을 기뻐하는 가족(위)과 그들을 지켜보는 삼촌과 메리(아래)>
마지막으로 영화 말미에 삼촌이 언급한 한 철학자의 말을 빌려 감상문을 마무리 하려 한다. 교육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첫댓글 리뷰 엄청 멋지네요~ 영화평 전문 블로그 운영해도 되겠어요. 저도 이 영화봤는데 숨겨진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산부인과 장면 정말좋았어용~
진솔함에 리뷰와 더해져 설득력있는 글이 되었네요~~~ 영화가 보고싶어지네요~~~!!!!
리뷰로도 영화의 감성을 느낄수있어 너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