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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13장. 부도符都의 건설
임검씨가 돌아와 부도 건설할 땅을 고르니 바로 동북쪽의 자석이 가리키는 방향이었다.
이는 2와 6이 교감하는 핵을 품은 지역이며 4와 8이 상생하여 열매 맺는 땅이었다.
밝은 산 맑은 물이 만리에 연이어 펼쳐있고 바다와 육지는 두루 잇닿아 물갈래가 열 방향으로 흘러드니 바로 9와 1이 끝나고 시작되는 하느님의 터전이었다.
인삼과 잣과 일곱 색깔의 옥돌이 금강의 심장부에 뿌리내려 전 지역에 가득하였다.
이는 1과 3과 5와 7의 자삭磁朔의 정기가 모여들어 물질을 이루며 길함을 쫒는 까닭이었다.
이에 태백산 머리의 밝은 땅에 천부단天符壇을 쌓고 사방에는 보단堡壇을 세웠다.
보단과 보단 사이에는 각각 세 겹의 물길을 통하니 그 사이가 천리요 물길의 좌우에는 각각 수관을 설치하였다.
이는 모두 마고본성麻姑本城을 본 뜬 것이었다.
또 그 아래에는 도시를 구획하여 만들고 삼해三海의 주변에는 빙 둘러 못이 들어섰다.
네 나루와 네 포구는 천리간격으로 잇달아 동東과 서西로 빙 둘러 늘어섰다.
또한 나루와 포구 사이에는 6부六部를 설치하여 모든 족속들이 거처하며 살게 하였다.
부도가 완성되니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밝게 빛났다. 족히 사해를 아우르고 모든 족속들을 살리는 혈맥이 되었다.
[원문]
壬儉氏 歸而擇符都建設之地 卽東北之磁方也 此二六交感懷核之域 四八相生結果之地 明 임검씨 귀이택부도건설지지 즉동북지자방야 차이륙교감회핵지역 사팔상생결과지지 명
山麗水 連亘萬里 海陸通涉 派達十方 卽九一終始 不咸之基也 三根靈草 五葉瑞實 七色寶 산려수 연환만리 해륙통섭 파달십방 즉구일종시 불함지기야 삼근영초 오엽서실 칠색보
玉 托根於金剛之臟 遍滿於全域 此一三五七磁朔之精 會方成物而 順吉者也 乃築天符壇於 옥 탁근어금강지장 편만어전역 차일삼오칠자삭지정 회방성물이 순길자야 내축천부단어
太白明地之頭 設堡壇於四方 堡壇之間 各通三條道溝 其間千里也 道溝左右 各設守關 此 태백명지지두 설보단어사방 보단지간 각통삼조도구 기간천리야 도구좌우 각설수관 차
取法於麻姑之本城 劃都坊於下部之体 圜涵澤於三海之周 四津四浦 連隔千里 環列於東西 취법어마고지본성 획도방어하부지체 환함택어삼해지주 사진사포 연격천리 환열어동서
津浦之間 又設六部 此爲諸族之率居也 符都旣成 雄麗光明 足爲四海之總和 諸族之生脉 진포지간 우설육부 차위제족지솔거야 부도이성 웅려광명 족위사해지총화 제족지생맥
[해설]
1. 부도符都 부도는 천부도天符都의 줄임말이다. 즉‘천부를 받들어 모신 도읍지’라는 뜻으로 단군임검의 수도 아사달을 말한다. 제12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단군임검은 100여 년 동안 사해를 순행하면서 각 족속들에게 천부의 이치를 전하고, 마고성의 회복을 위하여 이상향인 부도 건설을 약속하였다. 순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부도건설에 착수하였는데 그 부도의 위치가 어디일까?
지금까지 단군임검이 수도로 삼은 아사달에 대하여 백두산 또는 평양이나 만주벌판 어디쯤으로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다. 우리의 상고사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아사달의 위치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사달의 위치를 제대로 전하는 기록이 없었으며 우리의 상고사는 지금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그러나 부도지는 참으로 명쾌하면서도 아름답게 부도의 위치와 규모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아사달의 위치가 밝혀지면 짙은 안개가 걷히고 한민족의 장엄했던 상고사가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 본문의 내용에 따라 부도의 위치를 찾아보자.
1) 동북 자방磁方의 땅 임검씨가 돌아와 부도 건설할 땅을 고르니, 바로 동북쪽의 자석이 가리키는 방향이었다. 즉 부도는 동북쪽의 자석이 가리키는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방향은 어디를 기준으로 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중국 대륙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 동북방향은 산서성ㆍ하북성과 요령성ㆍ길림성ㆍ흑룡강성 등의 만주벌판 및 한반도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2) 명산려수明山麗水 연환만리連亘萬里 “밝은 산 맑은 물이 만리에 연이어 펼쳐있다”는 뜻이다. 동북 방향에서“밝은 산 맑은 물이 만리에 연이어 펼쳐져 있는 곳”은 흑룡강성 북쪽에서 드넓은 만주벌판을 감싸 안고 힘차게 뻗어 내리는 대흥안령산맥과 소흥안령산맥을 들 수 있다.
대흥안령산맥은 흑룡강성 북쪽에서 만주벌판을 왼쪽에서 감싸 안으면서 북경까지 뻗어내려 잠시 멈춰 선 후 다시 태행산맥으로 이어져 하북성과 산서성의 경계를 이루며 황하강까지 이어지는 산맥이다. 그 아름다움은 가히 밝은 산 맑은 물이 만리에 뻗어 있다고 표현 할 수밖에 없다. 소흥안령산맥은 흑룡강성 북쪽에서 대흥안령산맥과 이별한 후 드넓은 만주벌판을 오른쪽에서 감싸 안으면서 흑룡강을 뛰어넘어 백두산맥과 연결되고 한반도를 관통하는 태백산맥으로 이어진다. 가히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대흥안령산맥과 상벽을 이룬다.
두 산맥에서 각각 태백산을 찾을 수 있는데 첫째, 대흥안령산맥과 태행산맥이 만나는 중국 북경 근처의 태백산과 둘째, 소흥안령을 거쳐 백두산맥에 우둑 솟은 민족의 영산 태백산(백두산의 옛 이름)과 태백산맥의 주봉인 강원도 태백산이다.
3) 해륙통섭海陸通涉 파달십방派達十方 이어서 부도의 위치가“바다와 육지는 두루 잇닿아 물갈래가 열 방향으로 흘러드는 곳”이라고 하였다. 동북방향에서 이러한 곳은 발해만 밖에 없다. 지도를 펼치고 발해만을 바라보면 바다와 육지가 두루 잇닿아 있고, 양자강ㆍ회수ㆍ황하ㆍ영정하ㆍ난하ㆍ요하ㆍ압록강ㆍ대동강ㆍ한강ㆍ금강ㆍ영산강 등 수많은 강물들이 사방팔방에서 흘러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명산려수 연환만리 해륙통섭 파달십방”참으로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게 부도의 위치를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북방향에서“밝은 산 맑은 물이 만리에 연이어 펼쳐있고, 바다와 육지가 두루 잇닿아 물갈래가 열 방향으로 흘러드는 곳”의 조건에 가장 부합되는 태백산은 바로 발해만에 인접한 북경 근처의 태백산이 가장 유력하다.
4) 보단지간 각통삼조도구 기간천리야 태백산 정상에 천부단을 쌓고 사방에 보단堡壇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보단과 보단 사이를 세 겹의 물길로 서로 통하게 하였는데, 보단과 보단 사이의 거리가 천리라고 하였다. 부도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을 수 있는 결정적인 내용이다. 동서남북의 보단이 4,000여리의 물길로 서로 통하게 하려면 그러한 특수한 지형이 되어야 가능하며, 그 물길은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비슷하게 유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세 곳의 태백산 중 북경 근처의 태백산이 유일하게 이 조건을 충족한다. 위의 지도를 살펴보면 남양하ㆍ영정하ㆍ호타하ㆍ자아하 등이 천리의 길이로 다이아몬드 형을 이루며 태백산을 둘러싸고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위에서 왼쪽 위로 흐르는 강이 남양하이며, 오른쪽 아래로 흐르는 강이 영정하다. 아래쪽에서 왼편에 흐르는 강이 호타하이며, 오른쪽 위로 흐르는 강이 자아하다. 한반도의 백두산이나 태백산은 도저히 이런 조건을 충족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부도지에서 전하는 부도는 위의 지도에서 다이아몬드로 표시한 내부가 확실하다고 본다. 즉 동쪽은 천진天津, 서쪽은 영무寧武, 남쪽은 석가장石家庄, 북쪽은 장가구張家口를 잇는 지역이다. 원으로 표시한 산이 태백산이며, 직선이 교차하는 중심이 대웅산大雄山이다. 옛 지도의 대웅산이 최근 지도에서 마이산馬耳山으로 나타나는데 마리산(머리산)의 한자표기로 생각된다.
5) 옛 문헌에 의한 부도의 위치 고증 위의 부도 위치를 다른 문헌을 통하여 고증해 본다.
가. 산해경의 조선천독朝鮮天毒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서적으로 산해경山海經이 있다. 그 산해경의 해내경海內經 첫머리에 고조선에 관한 글이 나온다.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 朝鮮天毒 其人水居 偎人愛之’ (동해지내 북해지우 유국명왈 조선천독 기인수거 외인애지)
‘동해의 안쪽과 북해의 주변에 나라가 있으니 조선이라 한다. 조선은 천독天毒이다. 그 사람들은 물가에 살고 사람을 존중하며 사랑한다.‘
위 글을 보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중국의 동해 안쪽과 북해(발해만 북쪽)의 주변에 있다고 하였다. 위에서 부도의 중심으로 언급한 지역과 정확하게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위 글에 대하여 중국 진나라 시대의 학자인 곽박(郭璞, 276~324)은 “천독天毒이라는 말은 천축국天竺國이다” 고 하였으며, “부도浮屠가 이 나라(조선)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부도浮屠란 원래 부다(붓다=부처), 불교를 뜻하는 말이다.
부도지는 인간의 타락이 ‘다른 생명을 강제로 먹는 것’으로 비롯하였으므로, 본래의 하늘 성품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을 강제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또 부도의 핵심사상이라 할 수 있는 천부경은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가 이 우주를 창조하며 또 우주는 그 하나로 되돌아간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는 불교의 핵심정신인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과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다(色卽是空 空卽是色)’는 사상과 아주 흡사하다. 또 부도의 남쪽 보단이 위치한 곳에 석가장石家庄이란 큰 도시가 있다. 이는 석가족이 천부단의 남쪽 보단을 다스리던 부족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조선이 원래 천축국이었으나 기원전 1122년경 기자가 부도를 침범한 후 고조선이 쇠퇴하자 석가족은 인도쪽으로 이동하여 또 다른 천축국을 세운 것이다.
나. <사기> 조선열전의 습수濕水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朝鮮列傳 제55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張晏曰 朝鮮有濕水洌水汕水 三水合爲洌水 疑樂浪朝鮮取名於此也” 장안왈 조선유습수열수산수 삼수합위열수 의낙랑조선취명어차야
“장안이 말하기를 조선에는 습수, 열수, 산수가 있는데 세 물이 합쳐서 열수가 되었다. 낙랑과 조선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따온 이름인 듯하다"
우적도禹迹圖에 나타난 습수의 위치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우적도(禹迹圖 1136년작, 다음카페 향고도/중국고지도) 탁본을 보자. 위에서 부도의 위치로 추정한 곳이 우적도의 습수濕水와 호지虖池에서 발원한 호타하滹陀河가 감싸는 지역과 일치한다. 습수는 현재의 남양하와 영정하이며, 호지에서 발원한 강이 현재의 호타하와 자아하다. 장안이 조선에 습수가 흐른다는 말과 부도의 위치가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또 지도를 보면 웅雄을 중심으로 강물이 세 겹으로 감싸고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부도지에서 세 겹의 물길을 둘렀다는 내용과도 일치한다.
다. 기자의 후예 선우국 제27장에서 은나라가 망한 후 기자箕子가 부도로 도망 오는 내용이 있다. 기자가 부도를 점령한 후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그 땅에는 기자의 후예들이 선우국鮮于國을 세웠다. 선우국은 후일 중산국中山國으로 바뀌며 주변의 위나라ㆍ조나라ㆍ연나라ㆍ제나라 등과 파란만장한 흥망성쇠의 역사를 이었다. <회남자>에 의하면 “선우鮮于는 그 선조가 자성인데(其先子姓), 기자는 조선에 봉하고(以箕子封朝鮮), 기자의 둘째 아들은 우(于, 平山으로 추정)에 봉했다. 여기서 자손들은 조선의 선鮮과 봉지 우于를 따서 선우鮮于씨라 했다.”고 하였다. 춘추말 전국초에 선우국는 중산국으로 바뀐다. 1974년 11월에 하북성 평산平山 삼급현三汲縣에서 수리공사가 한창이던 중 놀라운 발굴이 이뤄졌다. 춘추전국시대 신비의 나라였던 중산국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이곳에서 중산국의 전성기에 해당되는 중산왕 착錯의 무덤을 비롯하여, 3기의 왕릉이 확인됐다. 정(鼎·예기로 쓰인 솥)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중산국이 조나라와 연나라 등 강대국들을 물리쳤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부도지 제27장 해설)
중산국의 유적이 발굴된 평산平山은 호타하虖陀河 북쪽으로 부도로 추정한 지역에 포함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중산국 유적발굴은 기자가 부도로 도망 왔다는 부도지의 내용과 더불어 위에서 고증한 부도의 위치가 정확함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해주는 것이다.
라. 단군세기의 단檀과 웅雄 단군세기 첫머리에 “옛 기록에 이르기를 왕검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며 어머니는 웅씨雄氏 왕녀이다. 신묘년 5월 2일 인시에 단수檀樹밑에서 태어났다. 사람이 신령스럽고 덕이 있어 멀고 가까운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복종하였다. 나이 14살 되던 갑진년에 웅씨왕이 그가 신성하다는 말을 듣고 비왕裨王으로 삼고 큰 읍의 국사를 대신 맡아보게 하였다. 무진년 당요唐堯때 단국檀國으로부터 아사달의 단목 있는 곳에 이르러 온 나라 사람들이 하느님의 아들로 모셨다. 이에 구환九桓이 하나가 되고 그의 신령스러운 교화가 멀리에 이르렀다. 이에 단군왕검이라 한다. 비왕 자리에 있은지 24년, 임금이 된지 93년, 나이는 130살이다”(고동영 저 환단고기 39쪽)는 구절이 있다. 위 우적도에서도 단檀 과 웅雄의 지명이 나타나고 있다. 단은 북경근처이며 웅은 바로 부도의 중심부다. 그러므로 단군임검이 북경근처의 단국으로부터 부도의 중심인 웅으로 옮겨 왔음을 알 수 있다.
마. 삼국유사 진한조辰韓條 제27장에 부도에서 피난한 사람들이 진한 즉 신라를 건설한다. <삼국유사> 진한조辰韓條에는 신라 말기의 대학자인 최치원(857~?)의 말을 빌어 신라인들이 탁수涿水 쪽에서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부도지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종합하면 부도에 탁수가 흐른다는 것이다. 위 우적도에서 역수 바로 위의 지명이 탁록涿鹿인데 치우천왕과 황제와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 탁록대전으로 유명한 곳이다. 탁록에서 흐르는 물이 탁수다. 그리고 위 우적도에서 신新이라는 나라가 부도 근처에 이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옆에 울주蔚州가 있듯이 부도에서도 신新과 가까운 곳에 울蔚이라는 지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대청광여도(大淸廣輿圖 1785년, 향고도/중국고지도)에 부도의 중심인 웅雄이 경도慶都로 표시되고 있는 점도 우리나라의 경주와 많은 연관성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바. 역수易水의 의미 부도의 중심부를 감싸고 흐르는 강이 역수다. 역易은 역曆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대에서 역曆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22장에서 “대저 역曆이라는 것은 인생의 깨달음의 바탕이니, 그 수數가 자신에게 있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역이 바르면 하늘의 이치와 인간의 일이 부합하여 복이 되는 것이요. 역이 바르지 못하면 천수天數에 어그러져 화가 되는 것이니 이는 복은 이치가 있는데 있고, 이치는 바른 깨달음에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역의 바르고 바르지 못함이 인간세상의 화와 복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하는 구절이 있다.
또 중국의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서경>을 보면 중국의 요임금이 첫 번째로 한 일이“희와 화에게 명하여 광대한 하늘을 공경히 따라서 해와 달과 별의 상을 관찰하여 책력으로 만들어 공경히 사람들에게 때를 주라”하였다. (우서 제1편 요전 3장) 즉 고대에는 천문을 살피고 역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때를 알게 하고 그 때를 따라 농사짓고 생활하도록 하는 것이 황제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동시에 황제가 아니면 함부로 역을 만들 수도 없었다. 부도지는 19장에서 22장에 걸쳐 중국의 요임금이 단군임검의 부도의 역을 따르지 않고 새롭게 역을 만듦으로써 한민족과 화하족의 처절한 전쟁과 분열이 일어났음을 전하고 있다.
이처럼 역(易)이라는 의미는 중요하며 부도의 중심을 역수가 흐른다는 것은 부도가 바로 역曆을 만들어 내는 세상의 중심지임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부도를 감싸고 흐르는 강물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 천진天津으로 이곳이‘하늘나라의 나루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2. 구일종시불함지기九一終始不咸之基 불함不咸은 몽골어 부르한의 한자표기며, 부르한은 몽골어로 하느님이라는 뜻이다.(위클리경향 특별기획‘불함-홍류 하느님과 유화 성모신앙’) 또 동북방은 주역에서 간방艮方으로 '종만물시만물終萬物始萬物’하는 곳 즉 만물이 끝나고 만물이 시작되는 곳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발해만 유역은‘구일종시九一終始 불함지기不咸之基’로 9가 끝나고 1이 시작되는 하느님의 터전이라는 뜻이다.
발해만을 보면 수많은 강줄기들이 사방팔방에서 흘러들어 끝나니 9(수가 많음을 의미함)가 끝나는 것이요. 그 9가 끝나면서 발해라는 큰 바다인 1이 시작되는 것이다. 드넓은 바다에서 바닷물이 수증기로 구름이 되어 자유자재로 세상을 떠다니다가 단비로 내리고, 빗물들이 모여모여 수많은 강물을 이루어 수 천리 수 만리 대지를 굽이굽이 적시며 또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발해만은 바로 끊임없이 돌고 도는 진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단군임검이 발해만 일대를 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홍익인간ㆍ이화세계의 터전으로 정한 뜻을 알 수 있다.
3. 삼근영초ㆍ오엽서실ㆍ 칠색보옥 삼근영초는 인삼, 오엽서실은 잣, 칠색보옥은 옥돌을 말한다
4. 천부단天符壇 제1장에서‘마고성이 천부를 받들어 모시고 선천하늘을 계승하였다’고 선언하였다. 천부는 하늘의 권능을 계승하는 신물神物이며, 천부단은 천부를 받들어 모신 단으로 천문을 관측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이다.
5. 보단堡壇 천부를 모신 천부단을 중심으로 사방에 보단을 설치하여 천부단을 방어하는 역할과 천문을 관측하고 동서남북 사방의 교화를 담당하였다.
1) 천부단의 방어 제28장에서 육부촌장들이 박혁거세를 열세 살에 거서간居西干으로 추대하는 구절이 나온다.“거居는 거据며, 간干은 방防이며 장長이니 즉 서방에 할거하여 방어하는 우두머리라는 뜻이다.”하였다. 그러므로 보단의 간干이 방어를 맡은 우두머리를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2) 천문의 관측 본문에서 말하듯이 부도는 마고본성을 본 뜬 것이다. 부도지는 율려律呂가 이 우주를 창조하는데, 부도지 제1장에서 보면 마고성의 사방에서 4명의 천인天人들이 악기를 쌓아놓고 음률을 다스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천부단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에 보단을 설치하고 천문을 관측하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극성, 북두칠성, 28성수星宿와 해와 달 그리고 수성ㆍ금성ㆍ화성ㆍ목성ㆍ토성 등의 운행 그 자체가 바로 율려인 것이다. 천문의 관측은 고대인들의 생활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부도의 중심인 천부단에서 천문을 관측할 뿐만 아니라 천리 정도 떨어진 동서남북 사방에서도 천문을 관측하여 정확한 역曆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서경>에도 요임금ㆍ순임금이 동서남북 사방에 관리를 파견하여 천문을 관측하고 때에 따라 하늘에 제사지내도록 하는 기록이 나온다.(요전 4~7장) 요임금과 순임금은 모두 단군임검과 동시대의 인물들이다.
3) 동서남북 각 지방의 교화를 담당 제17장에서 요堯가“일찍이 제시祭市의 모임에 왕래하였으며 서보西堡의 우두머리에게서 도를 들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서쪽 보의 우두머리가 서쪽지방에 살던 요에게 도道를 가르쳐 주었다는 것으로 보단에서 교화를 담당한 것을 알 수 있다.
6. 삼조도구三條道溝 부도의 중심을 감싸고 흐르는 세 겹의 강물(해자 또는 도랑)을 말한다. 위에서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 제55에서 장안長安이 말한 “조선에는 습수, 열수, 산수가 있다”는 구절과 위의 지도 우적도를 참조하면, 부도를 제일 바깥쪽에서 감싸고 흐르는 강물을 습수라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세 겹의 강물은 부도의 방어, 홍수예방, 통신수단, 교통수단 등으로 이용되었다.
7. 수관守關 부도를 지키는 관문을 말한다. 부도를 감싸는 강물이 지나는 양쪽에는 험준한 산들이 버티고 있어 관문을 설치하면 부도를 아주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8. 삼해三海 발해만과 황해 일대를 말한다.
9. 마고지본성麻姑之本城 부도는 마고본성을 본떠서 만들었다. 이 구절을 통하여 우리는 마고본성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마고본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파미르고원에서 사방에 천리의 물길을 낼 수 있는 지형은 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0. 획도방어하부지체劃都坊於下部之体 부도의 중심인 천부단을 중심으로 사방에 보단을 세우고 그 주위를 4,000여리의 물길로 감싸고, 그 물길의 바깥에 도시를 구획하여 만들었다. 지도를 살펴보면 물길의 밖으로 동북쪽에 북경시, 동남쪽에 덕주시, 서북쪽에 대동시, 서남쪽에 태원시 등 예로부터 이름난 도시들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1. 사진사포四津四浦 발해만과 황해 주위로 네 개의 나루와 네 개의 포구를 천리간격으로 설치하여 수상교역의 중심지로 삼았다. 여덟 개의 나루와 포구가 8,000여리에 걸쳐 장관을 이루니, 8,000여리는 대략 양자강에서 발해만을 빙 돌아서 한반도 남단에 이르는 거리다.
“삼해(三海)의 주변에는 빙 둘러 못이 들어섰다.”는 구절은 제15장에 보면 발해만과 황해 주변에 8개의 못을 만들었으며, 그 못에 사진사포四津四浦를 설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해시海市를 연 곳이 바로 팔택인 동시에 사진사포이기 때문이다. 아래 지도에서 사진사포의 위치는 천진天津을 기준으로 대략 천리간격의 거리와 큰 강물이 흐르며, 큰 못이 있는 곳을 배열해 본 것이다. 붉은색 네모는 부도의 위치를 나타내며 중국 섬서성 장안에 표시한 붉은 점은 제15장에 나오는 조시朝市의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부도와 발해만 주변의 사진사포와 장안의 조시가 바로 단군조선의 핵심지역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상고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12. 육부六部 나루와 포구 사이에는 각각 6부를 설치하여 모든 족속들이 자치부락을 만들어 살게 하였다. 각 족속들이 그 자치부락을 통하여 부도 및 족속들 간 교류를 원활하게 함으로써 홍익인간ㆍ이화세계의 큰 이상을 실현할 부도의 기틀을 다진 것이다. 6부로 나눈 것은 천부경에서 천지인天地人이 각각 음양으로 나뉘면 6이 되고 이 6에서 만물이 만들어 지는 것을 형상화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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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답은 선군정치임..
힘이 있어야 대들지 못함..
포장지 하나씩 듣을때마다의
신묘함도 보여줘야죠?
쌀국이 쑈하는건 그거임
그리고 정벌이 아닌
옛처럼 와야지 맞는거임..
바리바리 싸서주는 그런 멍청이 처럼
알아서 기는 그런 나라임.
협박이 아닌 보호해달라는 그런나라.
<부도지>는 신라시대의 충신 박제상이 엮은 책으로 우리나라에서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입니다. <부도지>보다 700여년 뒤에 엮어진 고려시대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유교와 불교 그리고 사대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왜곡돤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부도지>는 당시 대륙전체를 다스렸던 주인으로서의 기상이 그대로 살아있는 책입니다.
지금까지 <부도지> 해설서가 몇권 나왔으나 모두 김은수 번역본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은수 번역본은 <부도지>의 핵심이랄 수 도 있는 부도의 위치를 잘못해석함으로써 <부도지>가 전하는 엄청난 역사적 사실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서 제가 <사서삼경> <사기> <삼국사기> <삼국유사> <환단고기> 등을 참고하여 새롭게 해설하였습니다.
이 글은 다음카페 '행언련'에 연재한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쓴 것입니다. 단군임검의 수도 아사달을 알면 우리의 상고사는 모든 것이 저절로 풀려질 것입니다. 위에서 비정한 부도로 기원전 1122년 경 은나라의 기자가 망명하여 정권츨 탈취하고 춘추전국시대에 선우국과 중산국으로 이어지고 또 기원전 197년 경 위만이 망명하여 정권을 탈취하여 위만 조선을 세우고 또 기원전 108년 경 한무제에 의하여 한사군이 설치되고, 그리고 고구려에 의하여 다시금 부도지역이 수복되는 일련의 역사가 우리 상고사 해석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 잘못된 정보입니다.. 백두산을 현 만주 백두산으로 보는거는 역사왜곡입니다..진짜백두산은 삼위태백은 알타이산입니다..
<부도지>에 의하면 인류 최초의 시작은 파미르 고원에서 시작되었으며, 황궁씨 시대에 신강성 천산산맥으로 이주하였고, 환인시대에 청해성의 기련산(천산으로도 불림, 삼위산과 가까이 있음) 또는 알타이산으로 이동하고, 환웅시대에 섬서성 장안부근의 태백산에 도읍하고 치우천황시절에 산동성 태산으로 옮기며 단군임검 시대에 위 부도지역을 중심으로 세상을 다스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삼위태백은 삼위산과 태백산 사이를 말하는 것으로 환웅천황시절의 중심지입니다.
현 백두산을 태백산 백산 장백산입니다.. 역사 조작을 통해서 잘못된정보입니다..우리역사 강역을 타클라막한 신강성으로 봐야됩니다..
흠 또 있지요.
앞으로의 지역개편에
주소개편?
앞으로는 박지성가 1번집 2번집임..
님이 알던 지명이 살아질거입니다..
지명개명에 문제점이 많다고 봅니다. 가령 제가 살던 동네가 옛부터 '큰 인물이 살았던 터'라고 하여 "인걸터人傑터"라는 뜻으로 "인걸티"라고 불리었습니다. 그런데 일제가 개명하면서 진흙밭이라는 뜻으로 "이전리泥田里"로 바
꾸어 버렸지요. 20여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인걸티"로 불리었는데 요즈음은 "진밭"으로 불립니다. 한 마을의 역사가 사라져 버린 것이지요.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지명복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단군임검의 수도인 아사달의 위치는 우리 상고사를 풀 수 있는 핵심인데 의외로 토론 댓글이 별로 없군요. 활발한 토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존 <부도지> 해설서들의 문제점을 검토해보면
1. 단군임검의 수도 아사달(부도)의 위치를 중국 섬서성 장안의 태백산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검토 1. 부도지에서는 분명히 아사달(부도)의 위치가 동북방향이라고 하였는데 장안이 어떻게 동북방향인가?
검토 2. 천부단을 중심으로 사방에 보단을 세우고 보단간에 천리의 물길로 각각 통하게 하였는데 장안의 태백산 주변에 어떻게 이런 물길을 만들 수 있는가?
검토 3, 기자가 부도의 서쪽에서 도망오는데 부도가 장안이면 은나라 사람인 기자가 왜 장안서쪽에서 도망오는가?
검토 4. 부도의 특산물이 인삼과 잣과 옥돌인데 이 모두는 발해만과 황해일대에서 나는 것으로 장안과는 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