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중동 성당
간략설명 이존창이 순교한 공주 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성당
도로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성당길 6
대전교구 소속 본당으로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 31번지에 소재한다. 1881년부터 충청도 지방 사목을 전담했던 두세(C-E. Doucet, 丁加彌, 1853-1917년) 가밀로 신부에 의해 1887-1888년에 공주읍내에 설립된 공주 공소에서 출발하여 1897년 5월 8일 성모 성탄을 주보로 설립된 공주(公州) 본당이 그 전신이다.
현 공주 중동 본당의 전신인 공주 본당은 합덕 성당(현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읍 합덕리 소재)과 공세리 성당(현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소재)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1897년 4월 1일 초대 주임으로 파리 외방전교회의 기낭(P. Guinand, 陳晋安, 1872-1944년) 베드로 신부가 임명되었고, 관할 구역은 지금의 공주시 · 천안시 · 부여군 · 논산시 · 서천군 · 충청북도 남쪽 지역 등으로 아주 넓었다.
공주 본당 설립 당시 공주읍내에는 천주교와 관련된 근거지가 전혀 없었고, 신자수도 20명 내외에 불과했다. 그래서 기낭 신부는 임시로 공세리 성당 공소였던 유구의 요골 공소(현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명곡리)에 거처하면서 관찰사가 주재하는 공주읍내 중심지인 국고개 언덕 위에 현재의 부지를 매입하여 1897년 6월 28일 이전하였다.
기낭 신부는 이곳에 교당을 세우고 교리를 전파하여 공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 성당인 공주 본당의 초석을 놓았다. 1901년 4월 27일 금사리 성당(현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금사리)을 분할하고, 1906년 5월 20일에는 현 청주교구 옥천 성당(현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을 분할 · 설정했다.
그러나 공주 지방의 천주교 선교 역사는 이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1784년 이승훈(李承薰) 베드로에 의해 중국 북경으로부터 가져다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당시 권일신(權日新)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 의해 천안사람 이존창(李存昌) 루도비코에게 전파되었고, ‘내포의 사도’가 된 이존창은 공주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중 1801년 신유박해 때 공주읍 성교(城橋) 들머리 우측에 있는 황새바위에서 순교하였다. 또한 1866년 병인박해를 거치면서 성 손자선 토마스가 순교하는 등 공주 감영에서 치명한 순교자는 이름이 밝혀진 신자만 해도 248명에 이른다.
현 성당 건물은 1921년 주임으로 부임한 최종철(崔鍾哲, 1890-1945년) 마르코 신부가 서울의 약현 성당을 모델로 직접 설계하여 1934년 공사를 시작해 1936년에 고딕식 종탑을 갖춘 라틴 십자형 새 성당과 사제관 · 수녀원 등을 완공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5월 12일 축성식을 가졌는데, 현재는 본당과 사제관(현 교육관)만 남아있다.
1968년 12월 28일 유구 성당을 분가하고, 1982년 9월 7일 공주 교동(校洞) 성당을 분리하면서 공주 중동 성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4년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지내면서 공주에서 치명한 순교자들을 현양하기 위해 이듬해 처형지인 황새바위에 순교탑과 경당을 세웠다. 1997년 본당 설립 100주년과 성당 건립 60주년을 기념하여 성당 건물에 대한 대대적인 복원공사를 시행하여 가능한 한 원형에 가깝게 수리하였다. 또한 “중동본당 100년사”를 출간하고 12월 6일에는 10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였다. 1999년 1월 26일에는 공주 교동 성당과 함께 공주 신관동 성당을 분리 · 신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