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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지시줄다리기? 소원성취의 다른 이름!
줄틀.
아랫 사진처럼 여럿이서 굴려줘야 줄틀에 걸친 세가닥의 중줄이 꼬여 큰줄이 됩니다.
1. 500년 전에 시작된 기지시줄다리기
엊그제인 3월 10일은 기지시줄다리기에 쓰일 큰줄을 제작하는 날이었습니다. 올해 기지시줄다리기는 오는 4월 6~9일 열립니다. 당진에 온 이후로 줄곧 참가하다가 최근 몇 년간은 여의치 못했습니다. 올해는 당진시 문화관광해설사로서 참가해야할 ‘의무’가 생겨 동료들과 함께 큰줄 제작에 조그마한 힘을 보탰습니다. 현장에서 한동안 보지 못한 얼굴들을 여럿 대했습니다. 어디 갔다 왔느냐, 아직 당진에 사느냐, 뭐 했느냐, 서운하다 등등 인사를 받았습니다. 뭐 딱히 할 말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넘길 수도 없어, 줄 굴려야 한다며 군색한 변명을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오랜만에 줄을 굴려 보니 자세가 영 어색했습니다.
기지시줄다리기? 기지시줄다리기는 국가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됐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습니다. 기지시줄다리박물관(gijisijuldaligi.dangjin.go.kr)과 ‘기지시줄다리기(www.gijisi.com)’에 들어가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암줄과 수줄 각 100m, 지름 1m, 무게 각각 20t으로 줄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점은 언급하고 싶습니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줄을 제작하는데도 한 달 이상이 소요되고 줄을 다릴 때도 몇 천 명이 참가해야 가능합니다. 줄다리는 당일 풍경은 대단합니다.
기지시줄다리기 유래와 역사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500년 전통’이라고 말합니다. ‘옛날’ 기지시리(機池市里) 일대에 액운이 겹쳐 사람이 다치고, 대낮에도 호랑이가 출몰하고, 한나루 인근 5개면이 바다에 가라앉고, 민심이 흉흉해졌다고 합니다. 한나루는 지금의 당진시 송악면 한진리 일대를 말합니다. 윤년 드는 해에 인근 온 마을 주민들이 극진한 정성으로 당제를 지내고 줄을 다려야 모든 재난을 몰아내고 예방하며 태평하게 잘 살 수 있다 해서 줄다리기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그 ‘옛날’의 근거를 찾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토정 이지함(1517-1578) 선생이 아산현감으로 있을 때 한진에 변고가 있을 것이니 대피하라고 했으나 한진 사람들은 듣지 않았다고 야사로 전합니다. 토정 선생은 1576년 아산현감 때 걸인청(乞人廳)을 지었다는 부분은 정사입니다. 이른 근거로 계산해보니 2017-1576=441년입니다. 그래서 위에 언급한 야사와 정사를 합쳐 대략 500년 역사로 말하는 것은 아닐까 추정해볼 뿐입니다.
베트남 줄다리기.
줄다리기 유래를 추정해볼 수 있는 넝쿨나무 줄기. 베트남.
2. 어떤 줄다리기라도 인류무형문화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에는 굵은 칡넝쿨 같은, 아니 열대지방의 넝쿨식물을 둥그렇게 말아서 걸어놓은 전시물이 있습니다. 기지시줄다리기는 지난 2015년 12월 2일 유네스코 제10차 무형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영산줄다리기와 삼척기줄다리기, 남해선구줄끗기, 감내게줄당기기, 의령큰줄땡기기와 함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의 줄다리기도요.
기지시줄다리기의 규모 등을 감안해 당진시는 당초 단독 등재를 희망했고 그렇게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줄다리기는 규모와 방법과는 무관하게 인류의 놀이와 제식이란 인무형문화란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네스코는 위에 언급한 줄다리기 모두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것을 권유했고 또 결과도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저는 유네스코의 판단이 옳다고 봅니다.
저는 이 전시물 앞에 서면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해봅니다. 아주 옛날, 수렵인들이 이웃 집단과 협동하면 더 큰 이익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게 됐을 무렵입니다. 사냥을 나갈 때가 됐습니다. 마침 이 집단이나 저 집단이나 사냥꾼이 부족했습니다. 서로 다른 집단과 전쟁에서 전몰자가 많았거나, 역병이 번져 희생자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고민하다가 집단의 우두머리가 “오래 전에도 이런 경우에는 이웃 집단과 함께 사냥을 같이 나갔다. 나쁜 일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웃 집단과 협동사냥을 타진하러 간 사자가 돌아와 그 집단도 같은 의견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두 집단이 함께 사냥을 나갔습니다.
협동작업으로 커다란 멧돼지를 잡는 성과를 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분배에 이견이 생겼습니다. 자기 집단의 분배방식을 주장하면 다른 집단이 반대하고, 결정적인 타격을 한 사람이 분배하는 방식을 적용하려하나 그 결정적 타격자가 불분명합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먹을거리를 애타게 찾는 어린이와 노인들의 모습이 가물거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멧돼지가 빨리 처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묘안을 내게 됩니다.
바로 넝쿨을 잘라 줄다리기를 하는 것입니다. 줄다리기는 중간이 없습니다. 승자와 패자가 반드시 결정됩니다. 전과물은 이기는 쪽이 분배방식을 정하는 것이지요. 합의하고 줄다리기를 했고, 아래 집단이 이겼고, 그들의 방식대로 멧돼지는 분배됐습니다. 줄다리기에서 진 웃 집단은 다음을 대비해 줄다리기를 연습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긴 집단도 다음에 또 이기기 위해 마찬가지로 연습을 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사냥 나갈 때 줄다리기를 한 번 하고 나갈 수도 있었겠습니다. 이렇게, 아니면 또 다른 요인으로 줄다리기가 시작됐고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 요소와 그에 따른 의미가 붙여졌겠지요. 이럴 확률이 높건 낮건 가능하다고 봅니다. 물론 제 시시콜콜한 추측이지만 말입니다.
3. 국태민안, 시화연풍이라는 안전장치
수렵인이나 다음의 농경정착인이나 먹을거리는 그야말로 생명입니다. 먹을거리를 확보하려면,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 경험을 근거로, 줄다리기와 관련된 나름대로 규칙을 정했을 것입니다. 아주 옛날에 적용된 규칙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규칙을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기지시줄다리기와 관련된 금기와 줄에 담겨 있을 (것으로 희망하는) 효험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금기사항입니다.
* 당주는 부정한 짓을 하면 안 된다.
* 당주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 당주는 100일 동안 부부간 합방을 해서는 안 된다.
* 줄다리기 전에 여성이 줄을 넘으면 줄이 끊어진다.
* 줄에 바늘을 꽂으면 줄이 끊어진다.
부정한 짓은 시대와 마을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기지시줄다리기에서 부정한 짓은 구체적으로 개고기를 먹는 것과 ‘부부간’ 합방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개고기? 지금은 개가 애완견이나 반려동물로 ‘승격’됐고, 서양의 시각이 반영돼 개고기에 대한 혐오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회현상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개고기는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식품 중에 하나였을 것입니다. 어떤 의식을 치르기 전에는 정성을 다할 것이고, 정성을 다한다는 범주에 입이 가장 즐거운 일 즉 개고기 먹는 일도 포함시켰을 것입니다. 남녀 간의 합방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거기다 합법적인 ‘부부간’ 합방도 금지시켰습니다.
의식 전에 즐거운 일을 하면 의식 후 바라는 ‘좋은 일’이 훨씬 줄 것이란 염려도 있었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도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대개는 곤경에 처한 모습을 보이는 등 도움을 주는 이가 자신을 불쌍하게 봐서 동정심을 발휘하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자신은 즐길 것 다 즐기면서 도움을 달라고 하면 일은 망치게 됩니다. 물론 노래를 부르면서 의식을 치러야 할 때도 있겠지만 그 가사나 가락은 엄숙하고, 간절해야 할 것입니다. 즐겁다면, 그 노래를 듣고 도움을 줄 존재가 굳이 도와주지 않겠지요.
‘여성이 줄을 넘으면 줄이 끊어진다.’는 여성비하가 일반적인 사회풍조였을 때라고 간단하게 언급하겠습니다. 바늘로 찌른다? 지름이 1m나 되는 줄을 바늘로 찌른다고 줄이 끊어질 리야 없겠습니다. 그러나 바늘이 상징하는 의미를 알면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짚을 사용해서 사람모양을 만들어 ‘제웅’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 제웅은 타인을 저주하는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즉 저주할 사람의 심장부분에 해당하는 제웅의 부분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입니다. 절름발이가 돼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관절부분을 찌르는 식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로 바늘로 줄을 찔러서는 안 된다고 했을 것입니다.
다음은 희망사항입니다.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나름의 고민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자식 특히 아들이 없거나, 자신이 병을 앓는다면 그 고민과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기구는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 줄을 다린 후 줄 머리 부분을 끊어다 달여 먹으면 불임여성이 잉태한다.
* 아들 낳기를 원하는 여성은 수줄 머리 부분을 달여 먹으면 효험이 있다.
* 딸을 낳기를 원하는 여성은 암줄의 머리 부분을 달여 먹으면 효험이 있다.
* 암줄과 수줄이 연결된 부분을 잘라다 달여 먹으면 득남한다.
* 요통 신경통이 있는 사람은 몸통부분을 달여 먹으면 말끔히 낫는다.
* 자기가 다린 줄을 끊어다 자기 집 지붕 위에 얹으면 집안에 재앙이 없어진다.
옛날 아들이 없어 애태우면서 효험이 있다는 처방은 다해봤지만 원하던 바를 이루지 못한 중년 부인이 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줄다리기에 참여했고 수줄 머리 부분을 잘라다 달여 먹었더니 아들을 생산했습니다. 아들을 낳을 때가 돼서 그리됐는지, 진짜 (증명할 방법은 없으나) 다린 물에 어떤 성분이 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소문이 번졌습니다. 같은 처지의 많은 부인들이 줄다리기에 참여했습니다. 그중 몇몇은 아들 또는 딸을 낳았을 것이고 또 이 자식을 생산한 ‘실제’가 소문으로 번져 ‘효험’으로까지 자리매김하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병마에서 벗어난다든지, 집안에 우환이 생기지 않는 것도 같은 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줄을 다리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
* 줄다리기를 하면 전염병(돌림병)이 없어진다.
* 다린 줄을 거름(퇴비)으로 쓰면 농사가 잘 된다.
* 줄을 잘라 출어할 때 가지고 가면 풍어가 든다.
위 말들은 효험을 기대하는 범주에 속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줄다리기 제작부터 줄다리기까지 전 과정에 마을 사람들이 참여할 것을 권하는, 참여해야 하는 당위성을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기지시줄다리기는 줄의 규모부터가 엄청납니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인력이 동원돼야 가능합니다. 마을에서는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집 둘째아들이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서 줄다리기에 빠집니다. 그런 이들이 늘어날수록 줄다리기는 힘들어집니다. 전통시대에는 그런 이들은 마을 장로가 한 번 혼내는 것으로 해결됩니다. 정 말을 듣지 않으면 ‘멍석말이’로 따끔한 맛을 보여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전통방식이 사라지면서 사정이 달라집니다. 강제할 방법을 찾기가 여의치 않은 것입니다. 해서 위와 같은 말을 만들어 스스로 참여를 유도한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줄다리기에 가면 이미 만들어진 큰줄을 행사장으로 이동시키려면, 행사장에서 줄을 당기려면 무척 힘이 듭니다. 한 사람이라도 줄을 잡아 당겨주면 그만큼 힘이 덜 들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런데 과장해서 행사장의 20%는 모두 ‘사진작가’ 행세를 합니다. 그럴듯한 카메라를 든 사람도 있고, 카메라가 없으면 핸드폰이라도 행사를 찍습니다. 올해 와서 큰줄을 당겨보면 이런 분들이 좀 미워질 것입니다. 경험해보시기 바랍니다.
* 수상이 이기면 온 나라가 평안하고(國泰民安) 수하가 이기면 풍년(時和年豊)이 들어 온 국민이 배불리 먹고 잘 산다.
* 물위가 이기면 재앙이 없고 물아래가 이기면 풍년이 든다.
저는 위의 말이 기지시줄다리기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수상과 수하는 옛날 기지시에서 줄다리기가 시작됐을 때 마을의 하천을 중심으로 하천 위쪽은 수상, 아래쪽은 수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줄다리기는 승패가 나게 마련입니다. 어쨌거나 지면 기분이 언짢습니다. 여기에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 국태민안과 시화연풍입니다. 어느 쪽이 이겨도 앞으로 다가올, 희망하는 모습은 모두 좋은 것입니다. 국태민안하면 농사에 힘써 시화연풍이 될 테고, 시화연풍이면 당연히 국태민안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4. 기지시줄다리기? 소원성취의 다른 이름!
저는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기지시줄다리기는 매년 계속되고 있고, 당진시는 물론 전국에서도 기지시줄을 당기러 많은 이들이 찾습니다. 참가자들이 줄을 당기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현장에 가보면 여전히 줄을 잘라 정성스럽게 챙기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많습니다. 또 외국인들, 특히 줄다리기 후 줄을 잘라 허리에 감은 외국인들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 외국인들도 줄의 효험을 전해 들었을까요.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요즘은 학생들의 대학 입학, 청년들의 취업과 결혼, 취업한 이들의 정규직화, 이들의 진급과 정년까지의 보장 등이 불안합니다. 이런 것들이 걱정되면 기지시줄다리기 참여를 권합니다. 그리고 매년 참여하기를 거듭 권합니다. 혹시 압니까. 기지시줄다리기를 하고 과학적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불임상태가 해결됐다는데 말입니다. 아들도 봤다고 하지 않습니까.
기지시줄다리기에 참가하면 그 어렵다던 입학과 취업, 정규직화, 진급, 정년까지 근무 등이 원하는 대로 이뤄질지 모르잖습니까. 이런 것 모두 미신이라고 칩시다. 그런데 줄을 당기다보면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친구도 만나고 새로 사귀고, 하루가 즐겁습니다. 기지시줄다리기에 쓰일 줄은 규모가 워낙 커서 곁줄과 젖줄을 답니다. 한 곁줄을 잡고 줄다리기를 한 사람들끼리 인터넷으로 소통을 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를 ‘인터넷 계’라고 부릅니다.
아참, 잊었네요. 당진에도 줄다리기를 하고 눈이 맞아 곧 결혼할 청춘을 제가 압니다. 혹시 압니까. 옛날 탑돌이 가서 눈 맞았다는 청춘이야기 들어 보셨지요? 눈에 확 뜨일 ‘내 님’도 기지시줄다리기에 나와 ‘당신’을 기다릴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