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의 선한 사마리아인
‘서울 도심의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제목을 잡고 글을 시작합니다. 며칠 전 인터넷에 실린 두 장의 사진과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두 눈가에 작은 이슬이 맺히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따뜻한 글이었습니다. 사진을 보니 함박 눈이 내립니다. 중년의 신사가 자신의 외투를 벗어 노년의 남자분에게 외투를 입혀주며, 무엇인가 손에 쥐여 주는 두 장의 사진입니다. 그리고 한 기자가 사진의 얽힌 내용을 글로 썼습니다.
‘소낙눈이 쏟아진 18일 오전, 거센 눈발이 그치기 전 사진 취재를 하기 위해 서둘러 서울역 앞 광장으로 향했다. 바쁜 출근길 시민들도 지각이라도 할세라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이내 멀리 광장 한켠 흡연구역 앞 두 남자가 뭔가를 주고받는 모습이 사진기자의 카메라 앵글 속으로 들어온다. 깔끔한 차림의 한 남자가 자신이 입고 있던 긴 방한 점퍼를 벗어 노숙인에게 입혀주고 있었다. 그러고는 이내 주머니 속 장갑과 5만원 짜리 지폐 한 장을 노숙인에게 건넨다.
‘무슨 일일까?’ 상황이 끝난 듯해, 얼른 뛰어가 노숙인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선생님이 잠바랑 장갑이랑 돈도 다 주신 거예요?” “네, 너무 추워 커피 한잔 사달라고 부탁했는데….”
주위를 둘러보자 점퍼를 건넨 남자는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미끌미끌 눈길 위로 뒤쫓아갔지만 그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노숙인에게 다시 상황을 물어보려 돌아 봤지만 그도 어디론가 없어진 뒤였다. 5분 아니 3분도 안 되는 짧은 찰나, 마치 단편영화 한편을 본 듯했다. ‘그 남자는 왜 자신의 점퍼와 장갑을 그 노숙인에게 선뜻 내주었을까?’ 강한 바람과 함께 세차게 내리던 소낙눈은 점점 그쳐갔다.’ (출처/한겨레 백소아 기자)
글을 읽은 후 이 글을 쓴 기자의 마음만큼이나 중년의 신사가 궁금해 집니다. 이렇듯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임에도 혼자서 실천해 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불현듯 성경의 이야기 한편이 떠 올려집니다. 어떤 율법학자가 영생의 관한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할 때 예수님이 율법학자에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나게 됩니다. 강도들은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은 채로 버려두고 갔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이 사람을 보고는 지나갑니다. 잠시 후 레위인도 이 사람을 보고는 그냥 지나 갑니다. 이번에는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그 길을 지나다 이를 보고 불쌍히 여깁니다. 그래서 그를 자기의 짐승에 태우고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그를 정성껏 보살펴 줍니다. 다음 날 은화 두 개를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말합니다. “이 사람을 잘 보살펴 주시오. 만일 돈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겠소.”
예수님은 이야기를 마친 후 율법학자에게 묻습니다.
“너는 세 사람들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라고 생각하느냐?”
이 질문은 비단 율법학자에게 만이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게도 같은 질문입니다. 사마리아인처럼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진정 사진 속 중년의 신사가 강도 만난 자를 돕던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생각이 마음에 크게 와 닿습니다. 예수님의 목소리도 함께입니다.
“너도 그렇게 하라!”
섬김이 박희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