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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원문글과 사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십시요.ㅠㅠ
https://blog.naver.com/ktusjye/221386613820
차를 운전해 자유로를 내달으면
오가는 길 한강 너머 곧게 뻗은 통신탑이 서있는,
오똑한 산이 한참을 따라온다.
서쪽방향 여정이 있어 넘나드는 길,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는 산이 있다.
그 세월이 십 수년 되었으니
아쉬움은 일상이 되고, 일상은 무심이 되었다.
인천 계양구와 경계를 하고있는
부천 서북쪽 끄트머리로 여정이 잡혔다.
대개 전철을 선호하는데
교통편을 검색하니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시간도, 거리도 훨씬 효율적이다.
버스를 이용하면 도로별 시간대에 따라
소요시간이 천차만별,
게다가 앉을 자리까지 없으면 여간한 낭패가 아니다.
특성상 첫째날은 새벽같이 집을 나서니
오히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 시간이 남는다.
둘쨋날, 정상적으로 집을 나서면
여간한 낭패를 당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벼르던 산행을 결심한다.
5시 50분 경 집을 나서는데
시월도 말에 다다르니 그제사 여명이 밝아온다.
마두역에서 3000번 시외 노선버스로 환승하여
안산초등학교에서 하차하여 임학공원에서 출발할 예정이다.
초행길이라 버스 도착정보 방송에 귀를 기울인다.
"이번 정차할 곳은 임학사거리,
다음은 안산초등학교, 구 계산고등학굡니다."
버스는 열심히 달린다.
정차를 하고 승객이 너댓 명 내리고
이내 출발한다.
"이번 정차할 곳은 계산역..."
어... 뭔가 이상하다.
운전기사에게 다가가 확인하니
내려야 할 곳도 모르냐고 오히려 짜증을 낸다.
버스 정차역 안내는 기사가 별도로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지역을 통과하면 안내가 나간다는 것이다.
적반하장, 나도 언성을 높인다.
그럼 초행인 사람은 버스를 타면 안되는가?
안내방송이 나왔는지
여기에 탄 다른 승객들한테 물어봐라.
결국 사과는 받지못하고
중간에 차를 세워 내려서는 기분이 씁쓸하다.
칠백여 미터를 걸어 임학공원 앞에 도착한다.
아직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있고
산책이나 운동나온 인근 주민들은 느긋한 걸음을 옮긴다.
스마트폰 등산로는 아랫길로 연결되지만
나는 왼쪽 계단을 올라간다.
도심 근린 공원답게
잘 정비된 길이 산허리를 돌아간다.
인천종주길 이정표가
산뜻한 색깔로 가야할 방향을 표시하고있다.
산길은 능선을 이리저리 돌아간다.
인천둘레길 이정표도 방향을 일러준다.
나무계단 끝에 쉼터, 정자가 보인다.
계단 끝, 오른쪽으로 구릉이 자리잡고있다.
먼동이 터온다.
말을 타고 등장하는 주인공 뒤로
뒤덮이는 흙먼지를 연상케한다.
계양산 정상, 부드러운 산세를 거역하는
창끝같은 중계탑이 정복자같은 위엄을 뿜는다.
계양산으로 오르기 전,
구릉 끝 언덕에 보이는 봉우리를 찾아갈 작정으로
오른쪽 계양산성탐방로를 따라간다.
동쪽으로 면한 언덕 위,
카메라에 일출을 담는 사람이 보인다.
먼동을 등지고 남긴 실루엣이
그런대로 봐줄만한 작품이 된다.
구릉 뒤 언덕아래 탐방로를 따라
스마트폰에서 표시하는 고성산을 찾아간다.
고성산이 지근에 있슴을 표시하고 있다.
현 위치에서 조금 더 진행하다
왼쪽으로 꺽어지면 고성산 정상이다.
여기서 꺽어지면 된다.
우거진 수풀이
구릉끝에 보이던 곳이 아닌듯 하다.
아무런 표식도, 특징도 없는 봉우리를
굳이 왜 찾아왔나 싶다.
하지만 명색이 이름을 가진 산이라
기록을 담는다.
고개를 내민 태양이 거느린 햇살,
부채꼴로 퍼지더니 호위무사처럼 타원형을 이룬다.
이정표를 보고 계양산을 찾아간다.
다음 번 뒤돌아볼 때 쯤,
레드카펫을 밟으며 화려한 등장을 마친 태양이
외로운 유영길에 접어들었으리라.
그 전, 마지막으로 장관을 감상한다.
계양산으로 향하는 능선 바로 아래
팔각정자, 계성정(桂城亭)이 서있다.
아마도 이름처럼
계양산성을 기념하는 정자가 아닐까?
서, 남 방향으로는 틔였지만
야트막한 언덕이 뒷면을 가리고있어
썩 좋은 조망을 보이지 않는다.
계양산성은 계양산의 주봉에 축조된 것이 아니고
주봉의 동측에 있는 봉우리를 에워싸는 형상으로 축조되었다.
조선시대 발간된 고문서 기록에 의하면
“부평 계양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성으로서,
석축 둘레가 1,937척이나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지리적 위치를 감안하면 백제에 의해 축조되었고,
이후 고구려와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면서
증축하여 거점으로 활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3부터 2009년까지
4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특히 3차 발굴조사 결과
집수정 유구에서 목간들이 출토되었다.
이후 2009년 4차 발굴조사에서
북문지, 배수시설, 건물지, 내벽보축 등 총 26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 계양산성>
가을빛으로 갈아입는 산색,
동트는 아침 햇살이 부린 마법에 실제보다 붉다.
들판 지면에 깔린 안개가 의외로 짙다.
마치 서해바다 섬 사이
해무에 가리워진 바다처럼 경이롭다.
멀리 북한산이
야트막한 야산처럼 낮게 깔려있다.
능선을 따라 아래로 내려간다.
이렇게 사진에 담아 놓으니
아쉬운대로 단풍을 느낄수 있다.
여기 저기 사진으로, 영상으로 보는 단풍이
성숙한 여인의 성장((盛粧)이라면
붐비는 시장통에서 만나는 여인의 수수함이 느껴진다.
산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잇는 고개 하느재다.
이제부터는 정상까지 대부분 계단으로 이어진다.
지정된 등산로, 계단 양쪽으로
원형 가시철조망을 둘러쳐 놓았다.
계단이 부담스럽거나 단조로운 등산객이
워낙 샛길로 많이 빠지다보니
이를 막기위한 고육책이었을 것이다.
'도심의 숲은 대기오염, 수질오염 등 각종 공해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귀중한 자산입니다.
이 지역은 계양산 식생보호를 위한 보호구역으로
등산로가 아니오니 우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능선 마지막 평지를 지나
다시 계단을 오른다.
바다와 대지를 떠난 해가
외롭게, 힘겹게 하늘로 박차오른다.
계단은 계속 이어진다.
하느재에서 600번째 계단에 올라선다.
아직도 바닥에 깔린 안개가 걷히지 않았다.
계양정과 통신 중계탑이
눈앞에서 또렷한 형상을 드러낸다,
정상에 닿는 마지막 계단길이다.
십 수년 마음에 두었으나
시나브로 잊혀졌던 계양산 정상에 오른다.
팔각정자, 계양정이다.
해발 395m 계양산 정상이다.
인천을 대표하는 진산이자 주산이다.
계양산이라는 이름은 지명변천에 따라
고려 수주 때에는 수주악, 안남도호부 때에는 안남산이라 하였으나
계양도호부 때 계양산(桂陽山)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아남산(阿南山), 경명산(景明山)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계수나무(桂)와 회양목(陽)이 자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한다.
근현대기, 산림자원의 남벌로 황폐해진 것을
조림하면서 리기다소나무와 아카시아등을 식재하여
이름과 달리 계수나무와 회양목은 없다.
성공적인 조림사업으로
참나무와 자작나무, 전나무 등으로 수종이 바뀌고 있다.
<출처 : 위키백과>
앞쪽, 굽이도는 물길이 경인운하,
경인아라뱃길이다.
그 뒤 큰 물줄기가 한강이다.
한강너머 일산이 보인다.
영종도를 잇는 영종대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건너 섬들은 해무가 삼켜버렸다.
방송중계탑 위,
시리도록 파란하늘은 멋진 조망을 준비하고 있는데
토해낼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부족하다.
열 명 내외의 사람들이 여운을 즐기고 있다.
그 중 젊어보이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사진 몇 장을 남긴다.
정해진 경로없는 하산을 준비한다.
정상에서 시간이나 거리 등
상황을 봐 하산길을 정할 예정이었으므로
잠시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방송중계탑 지나 헬기장이 보인다.
산등성이 왼쪽으로 가다
이정표를 보고 다음 방향을 잡기로한다.
방송중계탑을 둘러싼 철조망 옆 길을 따라간다.
올라온 등산로에 비하면
소로가 마음을 푸근하게한다.
위에서 보이던 헬기장에 도착,
영종대교방향을 보니 섬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계양문화회관으로 내려서는
칠백여미터 거리가 짧다.
계양산 산림욕장 1.2킬로미터, 이정표를 따라간다.
피고개산 방향으로 산봉우리가 이어진다.
잠깐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간다.
인천 계양구와 서구 사이 경계점에
이정표가 서있다.
뒷산 오솔길을 거닐듯
넓지않은 등산로가 크게 가파르지 않다.
하산길 중간 열리는 공간으로 원경을 본다.
서해방향 영종도는 여전히 가려있고
강화도 마니산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계양산 정상을 왼쪽에 두고 내려간다.
방향을 바꿔 정상부를 담고싶은데
좀처럼 전망이 나오질 않는다.
갈색으로 변해가는 참나무 잎 사이,
계양정이 잠깐 모습을 보여준다.
뭉툭한 바위에 온통 돌을 얹어놓았다.
몇 기는 돌탑을 이루고 있고,
바위 틈새에 기대어 쌓거나
쓰러져 바닥에 뒹굴거나 몸통에 매달려있다.
바위 사면, 거의 직벽에
기이한 모양으로 쌓은 돌탑이 보인다.
경사진 비탈을 내려간다.
계양산 기슭을 도는
넓직한 인천종주길과 합류한다.
특이한 모양의 노란색 철 구조물,
방향을 가르키는 듯도 하고.
그 의미나 쓰임새를 헤아리기가 쉽지않다.
자료를 찾다보니
큰 둥근원에 안내판이 붙어있기도 하다.
내려선 길 왼쪽,
계양산림욕장 방향을 향해간다.
높은 나무가 없는 곳,
들이치는 햇살이 무척 맑고 따스로운
한창 가을속으로 지쳐든 아침이다.
거센 빗발이 한바탕 기세를 부리면
계곡으로 모여든 물이 흘러들어 잠시나마 물길을 이룰터이다.
계양산림욕장으로 넘어가는 나무다리다.
산림욕장에 들어서니
계양구 계양산장미원이 자리잡고있다.
가을이 깊었는데 장미가 있을까, 싶은데
의외로 다양한 종 장미가 색색의 꽃을 피웠다.
가을장미 개화시기가 9월말에서 10월말이라니
꽃구경도 막바지에 다다른 셈이다.
장미동산 비탈아래 길건너 시비가 서있다.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가
이곳 계양도호부 부사로 재직할때
빗속에서 농사짓는 농부를 바라보다 지은 시를
서기 직함의 부하에게 지어주었다는 시다.
나라가 잘되고 못됨
민력에 달렸고
만민의 살고 죽음
벼 싹에 매였네
가을날 옥같은 곡식
일천창고에 쌓이리니
딸흘리는 농민들
오늘의 공을 기록하게나
산림욕장 도로를 따라
날머니, 계양문화회관 이정표를 따라간다.
길 가에 평상이 놓여있다.
왼편 등산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갈림길,
맞은편은 군부대철조망에 가로막혔다.
철조망을 따라 날머리를 찾아간다.
철조망이 돌아가는 곳 전면에
특별한 시설은 없는데 또 철조망에 막힌다.
오른쪽 등산로로 들어선다.
통로 가운데 목책을 쳐
좌우측 통행을 유도하고있다.
바다를 연관하게되는 인천둘레길,
방향 이정표 닻이 양쪽을 가르키고 있다.
날머리로 나선다.
계양문화회관 건물 뒷모습이다.
스마트폰 지도앱 길찾기로 교통편을 검색한다.
계산초등학교 앞 경명대로 건너편,
기아자동차 계향대리점 앞 신동양아파트 정류장에서
302번 노선버스에 올라탄다.
버스가 들어서고 앞문이 열린다.
습관처럼 문에 올라 교통카드를 찍는데
승객들이 주섬주섬 앞문으로 내린다.
뒤로 물러서 자리를 비켜주며
버스를 둘러보니 뒷문이 없다.
해발 394미터,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서해 인근에서 시작되니 오롯이 오르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답게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고,
가린것 없는 정상 사방 조망도 좋다.
봄 진달래가 군락을 이뤄 장관을 이룬다니
때맞춰 다시 한 번 찾을 계획을 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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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파르라니님은 신천지에 사시니
많이 성취감으로 행복하시겠습니다
사계절이 뚜렸한 우리나라 산들을 정복하실 계획 이제는 응원할께요^^
늙어서 관절염될까봐 걱정했는데
파르라니님 뜻이 그러시다면 듣기좋은 꽃놀이도 한두번이지
이제 걱정 안할께요...ㅎㅎㅎ
거의 날아다니시는 수준이십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