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을 보내는 마지막 토요일 아침이다. 봄바람이 아직 제 기운을 차리지 못했는지 쌀쌀하다. 변화의 초입이 달구어지다가도 늘 구태에 막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목포역이다. 광주송정, 순천, 광양을 거쳐 부산 부전역까지 무궁화열차 388㎞를 타는 날이다. 9시 30분에 출발하여 오후 4시 3분 도착 예정이니, 393분이 걸리는 대 장정이다. 누가 시킨 일은 아니다. 얼마나 불편한지에 대한 체험과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목포에서 광주송정까지 호남선 고속철도 68㎞, 광주송정에서 순천 경전선 117㎞ 전철, 목포에서 보성 남해안철도 83㎞ 신선 전철을 2023년까지 동시에 개통하여, 목포와 광주에서 부산까지 2시간대 경제권이 되게 하는 염원을 만방에 알리자는 거다.
호남선은 경부선과 비교되는 차별의 상징이었지만 경전선도 만만치 않다. 1930년에 이미 광주송정에서 경남 밀양 삼랑진까지 동서를 잇는 290㎞를 개통하였지만 지금껏 달라진 게 없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래서 느림보 열차라는 별명이 붙었다. 칠팔십 년대에 한번쯤은 광주에서 밤 완행열차를 타고 새벽녘 부산에서 해운대 백사장을 걸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옛 향수가 그리운 이에겐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변화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호남선과 경부선은 고속철도, 전라선은 전철, 아직 선도 긋지 않는 광주~대구간도 달빛고속철도라 하는데, 경전선은 구십 여년이 다 되도록 그대로다. 무슨 이유가 있었으리라. 너무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김영록 지사가 직접 도민, 청년, 학생, 사회단체, 언론인 대표 등과 함께 탑승 체험을 나선 것이다. 전남 22개역을 포함한 총 44개역을 1~2분 씩 정차하는 거북이걸음을 하게 된다.
목포역 앞은 〈퓨전장구〉의 난타공연이 한창이다. ‘남도를 선으로?’ 플래카드도 응원을 한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출발인사를 한 후, 열차에 오른다. 객실을 돌며 현장의 소리를 만난다. 목포, 무안, 나주의 역마다 지역을 대표하는 도민, 시장군수, 도의원, 시군의원께서 대 환영을 해 주신다. 그 이유가 있을 거다. 유사 이래 이런 일은 처음 일거라는 말들이 대신한다. 지금껏 숨겨온 소망을 다 쏟아내고 있다는 뜻이다. 흔들흔들 몸 풀기 댄스에 이어 우리 경전선도 이제는 빨리 달리고 싶다는 토크콘서트가 이어진다. 광주송정역이다. 김삼오 광산구청장이 직접 나오셨다. 상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서광주, 효천을 지나 화순이다. 마중 인파가 백 명은 넘을 정도로 역을 가득 매웠다. 열차 안에서는 목포시립합창단의 희망의 나라가, 밖에서는 사물놀이가 능주, 이양까지 계속 된다. 명물 기정떡도 올라 온다. 보성으로 넘어가면서 관광패널 토론을 시작한다. 비단 녹차 꽃이 브로치가 되었다. 청 보리밭이 차장 밖으로 펼쳐진다. ‘어서 오시오! 득량역’ 간판이 70년대 그대로다. 벌교역에도 한 상을 차렸다. 순천으로 향하는 길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김밥 점심이다. ‘준아! 같이 먹자.’며 한입 한입에 광양역이다. 섬진강의 상류 진상면을 넘는다. 경남 하동 땅이다.
즉석 생일상이 차려진다. 전남도의회 이용재 의장님이 주인공이다. 이어서 경전선 전철화 필요성 토론이 시작된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를 보여 준다. 도립국악단원이 가야금과 거문고를 켠다. 열차 안에서는 처음이란다. 진주에서 광양시 일행이 내린다. 우리 가락 노래가 이어진다. 달덩이 같이 살아라는 가시버시, 어서 가자는 배 뛰워라가 바람이 불면 바람을 타고 아니면 노를 젓자한다. ‘얼시구 절시구’ 추임새도 좋다. 버스커 차례다. 이제 그만 일어나라 한다. 잘 나가던 앰프가 갑자기 토라진다. 소리를 크게 질러야 하는 가수의 목이 아프다. 행복한 기타가 박수를 함께 한다. 창원중앙역이다. 호남향우회에서 환영을 나오셨다. 이렇게 정신없는 일정이 다 지나고 부전역에 도착했다. 오거돈 부산시장과 재부산호남향우회에서 십 여분 전부터 기다리고 계셨다. 열차가 일정을 다 소화하느라 30여분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4시 37분이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기차!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부산시장의 환영 말씀에, '목포에서 부산까지 꼭 두시간대 전철을 만들겠습니다.' 도지사께서 감사의 답을 하신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만남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다.
몸은 지처도 행복한 하루였다. 역마다 내리고, 사진 찍고, 다시 타는 인연을 다 하다 보니, 계획된 프로그램을 미처 못 하기도 했지만 현장의 소리는 더 들을 수 있었다. ‘목포에서 부산까지 현재 하루 한편은 너무 하지 않느냐, 두 세편은 되어야지. 전철은 꼭 화순을 지나가야. 사진을 취합하여 작은 앨범을 만들었으면. 부전역 생긴 이래 이런 인파는 처음이다, 자주 오셨으면 좋겠다.’ 지금껏 이루지 못했다면, 이제부터 하면 된다. 더 좋게, 더 편리하게, 더 안전하게.. 실패는 성공을 엿보는 안개와도 같다는 말이 실감난다. 친구야! 남도가자. 부산도 가보자는 말이 쉬 나오게 하는 시작만 남았다.
새 아침에, 부산에서 인연이, 메시지가 되어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산에서 30여년이 넘도록 살면서 늘 고향생각은 하고 있지만 고향의 대표님들을 환영하러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이렇게 각별하게 해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가슴이 뭉클 했습니다. 언제나 내 고향이 호남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장의 불평등, 알 수 없는 질시의 눈초리를 곳곳에서 감수해야 했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 순간이었습니다.
누가 호남이라는 그늘 아래로 모이라고 강요한다거나 억지로 모이자고 떼를 쓰지 않아도, 길 가던 나그네가 소나기가 내리면 처마 밑으로 피하듯 그렇게 옹기종기 모인 연합체가 호남향우회입니다. 모진 비바람에 살아남은 야생초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83만이라는 대한민국 3대 불가사의 중 한 단체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언제 어디서나 호남이라는 목소리만 울려와도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일상이 몸에 배어 있을 정도로 생활화가 되었습니다.
그날 부전역 행사나 서면 마당집에서 만찬은 더욱 가슴에 남는 뜻깊은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재부산호남향우회 주관 행사에 부산시장이 참석하는 사례는 많았습니다만 부산시 간부들까지 자리한 것은 아마도 처음이 아닌가 합니다. 이번 행사를 실행에 옮기기까지 많은 노고가 스며든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부디 우리 고향의 숙원사업인 이번 행사가 변죽만 울리는 1회성 정치적 목적으로 잠들어 버리는, 먼 훗날 아~ 그때 시작은 거창했었지 하는 추억으로 변질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뿐입니다. 아무튼 그동안의 노고와 전남 인들의 꿈과 희망이 반드시 실행되는, 미래세대의 영원한 주춧돌이 되어주는, 행복과 사랑을 싣고 달리는, 포근한 고향 열차로 재 탄생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오랜 정이 묻어 있는 것 처럼, 그렇게 가슴이 뭉클한 삶의 좋은 이정표로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성환 올림
- 재부산호남향우회 사무부회장을 맡고 계시는 분입니다. 과거 보성 조성면에서 (임상원 전 부군수님과) 함께 근무하셨다 합니다. 맏사위가 기획재정부 이진민 서기관, 따님이 김서정 사무관이라 하십니다. T. 010-5738-7499
정현인 씨 말대로 멋진 중계 방송을 듣는 기분입니다. 기차가 달리는 것처럼 글도 경쾌하게 잘 읽힙니다.
문장 몇 개 살펴봅시다. "얼마나 불편한지에 대한 체험과 현장의 목소를 담아"(비문) "옛 향수가 그리운 이에겐"('향수'의 뜻을 찾아보세요) "너무했다는 생각이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를 보여준다" "역마다 내리고, 사진 찍고, 다시 타는 인연을 다 하다 보니,"
첫댓글 현장이 생생이 중계되고
글에 운율이 있어 멋집니다.
정현인 씨 말대로 멋진 중계 방송을 듣는 기분입니다. 기차가 달리는 것처럼 글도 경쾌하게 잘 읽힙니다.
문장 몇 개 살펴봅시다. "얼마나 불편한지에 대한 체험과 현장의 목소를 담아"(비문) "옛 향수가 그리운 이에겐"('향수'의 뜻을 찾아보세요) "너무했다는 생각이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를 보여준다" "역마다 내리고, 사진 찍고, 다시 타는 인연을 다 하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