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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녀가 살아갈 세상
보릿길 (박 정 애)
산악회에서 봉화군에 있는 춘양 수목원에 갔다. 청정 지역답게 산 전체가 잘 가꾸어져 있었고, 낯선 식물들이 모여있는 세계에서 보기드문 희귀종인 식물이라는 팻말을 보면서 초가을 수목원의 아름다운 모습과 신비함에 한참 빠져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외국 원조품이 시골학교에까지 보급되었다. 미제 우유를 타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고 미제 연필, 예쁜 필통, 공책, 색연필 등을 하나씩 나누어 주면 정말 좋아했 50년대 초의 생생한 기억은 우리가 겪은 아픈 옛날 일이다. 국민소득 50달러를 겨우 넘겼던 시절, 산마다 벌겋던 민둥산들이 이렇게 잘 가꾸어져 관광지로 개발되어 여행객들이 즐길 수 있는 잘 사는 나라의 국민이 되었다. 세계 최대 빈국으로 살면서 원조를 받던 나라가 당대의 원조할 수 있는 나라로 발전하여 세계로부터 주목받는 나라가 됐다는 것은 당시를 살아왔던 우리로선 자부심이 크다.
선진국, 후진국 몇 개국 여행을 가보았지만, 어디를 가도 옛날 유적지 외는 신기한 것이 별로 없었다. 우리나라 주위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문명의 혜택들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도 비슷하게 누리며 살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더구나 화장실 문화는 내가 가본 곳 어디에도 우리나라보다 잘 된 곳이 별로 없었다. 수목원에서 돌아오다 안동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갔다가 화장실 세면대마다 핸드 드라이기가 설치되어 있어 손을 씻은 자리에서 손을 말리고 나왔다.
그런데 맘속으로 이렇게 과한 호사를 누리도 되나 싶을 정도로 걱정도 되었다. 가계 빚 1,400조 원 기업 빚이 1,000조 원 나라 빚이 1,000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고 매스컴은 떠들어 댄다. 젊은이들은 직장을 못 구해 청년실업지표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명절 모임에 젊은이들을 보고 취직했나? 결혼은 언제 할 거냐라고 묻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고 한다. 취준생들의 희망 초임도 많이 낮아졌다고 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집값도 결혼을 포기하는 이유 중에 하나라고 하니 40을 넘은 미혼 자식을 둔 부모들은 가슴이 탄다고 한다. 소비도 미덕이라고 하지만 쓰레기 장에 가면 쓸 수 있는 멀쩡한 물건들이 딱지를 붙여 버려져 있다. 아까운 맘에 들고 들어와 농장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물건이 제법 된다. 어렵게 살아온 우리 세대들은 미래세대가 걱정된다. 사글세로 시작해서 자식들이 살 작은 집을 마련해 줄 정도로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설쳐댔던 날들이다. 그 세월을 힘든 줄 모르고 봉급이 오르며 쪼개가며 살면서 적금 넣는 재미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심히 살았던 보람이 현실로 다가와 부모세대들의 교육열과 우리 세대들의 근면성이 단기간에 부자나라로 만들었다는 긍지로 살면서 미래세대는 더욱 탄탄할 줄만 알았다.
내 자식은 나처럼 어려운 삶을 살지 말고 윤택한 삶을 살기로 바랐던 잘 못된 교육이 젊은이들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좀 힘들더라도 자식만은 일류학교 좋은 일자리를 잡아 떳떳이 살아가기를 바랐던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들의 자식에 대한 기대였다.
손녀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나의 손을 잡고 “할머니 나는 할머니가 너무 좋아요.”라고 하기에 속으로 어릴 때 책을 읽어주었고 놀이터에서 놀아주었고 맛있는 음식을 해줘서 고맙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대답은 예상 이외였다. 대단지 아파트 앞을 지나면서 길거리에서 좌판에 채소, 과일을 놓고 파는 나와 비슷한 연배에 할머니들을 보고 할아버지 농사짓는 것을 저 할머니들처럼 길거리에서 팔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손녀는 어떤 일이 좋은가를 가늠하고 있다. 아이에게 내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잠깐 망설여졌다. 저렇게 팔면 사가는 사람들은 값이 싸고 싱싱한 채소를 먹을 수 있어 좋고 할머니는 팔아서 필요한 용돈도 쓰고 손녀들 한테 맛있는 거 사 줄 수도 있다고 하니 막무가내다. 저렇게 팔아서 맛있는 거 사주지 않아도 좋다고 할머니는 팔지 마란다. 그럼 맞은편 마트에 진열된 저 채소 가게 주인은? 그것은 좋다고 한다. 손녀는 어떤 일이 좋고 거름을 나름대로 판단하고는 제 할머니만큼은 학교를 오가는 길목에서 팔지 않는 게 친구들 앞에 자존감이란다.
이 아이가 커서 원하는 일자리가 얼마만큼 열려있을까? 지금도 구인난, 구직난에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우리 세대가 하던 힘든 일자리는 외국인 노동자가 대신 하고 있다. 그들보다는 좋은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고급인력 취준생들이 날마다 수치가 올라간다고 한다. 길거리에 나가면 모두가 부자인 것 같은데 모두가 힘들다고 한다. 그 증거가 가계부채가 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좀 늦은 감이지만 투기형 가계부채 대책을 줄이려고 하는데는 찬성하고 싶은데 생계형 가계 부채도 함께 늘고 있다고 하니 걱정이다.
힘든 세월을 이겨온 우리 세대, 동료 남편이 70이 넘었지만, 일자리를 찾아다니신다. 인력시장에 나가 마지막으로 뽑혀 간 곳이 한창 바쁜 농촌이라고 했다. 대추를 털고 왔다고 한다. 70 노인이 하루 일당 10만 원 받아 왔다고 한다. 힘은 들었지만 70 노인에겐 큰돈이다. 힘들다고 모두가 싫어하는 일이 노인에게 돌아왔다. 어디에서라도 돈을 벌고 싶어 하는 70대, 살아오면서 쭉 해 오던 일, 거부감 없이 받아드려셨다. 3D업종은 꺼리는 젊은이들 앞으로 더 차별화될 일자리, 내 손녀는 어떤 곳에서 일하게 될까? 괜한 걱정을 할머니가 해본다.
어디에서라도 열심히 일해 빚 없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혼자 해본다. 지자체의 경쟁적으로 지어진 공공건물, 시골 고향에 이중삼중 뚫어져 있는 넓은 도로는 평일에 거의 차가 다니지 않는 텅 빈 도로다. 너무 호사스러운 화장실, 이 모두가 일자리 창출에 효과도 있을지는 몰라도 국가의 빚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맘은 무겁다.
내 손녀들이 꿈꾸는 세상은 물론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리라 믿지만 그래도 절약 정신 성실 근면함을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심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들은 힘들게 살아온 부모세대를 보고 자랐다. 한세대가 흘러 한 둘의 자식에 대한 가치관은 부모의 경쟁심에서 우러나온다고 한다. 초등학생들이 방학 때면 엄마와 영어학습을 위해 외국에 나갔다 오는 것이 아이들끼리 보편적인 화잿거리란다. 한 다리 건넌 자식들이다. 고리타분한 노인의 훈계는 잔소리고 간섭이라 들릴 것이다. 입 닫는 시어미가 좋고 지갑 여는 할머니를 좋아한다는 게 요즈음 세시풍습이란다. 교육은 보면서 배운다고 한다. 자식의 거울은 부모임을 아들 내외도 잘 알고 있어 현명하게 교육을 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전체적인 흐름이 무언가 잘 못 흘러간다는 게 나름대로 나의 생각이다.
늦은 오후 폰이 울린다. 손녀가 느닺없이 친구를 데리고 할머니 집에 오고 있단다. 오늘도 자고 갈 작정이라면서 맛있는 거 해주세요? 라는 요구가 밉지 않는 할머니 바보는 갑자기 바빠 진다.
농장 가족들의 반란
보릿길(박 정 애)
가을 추수기를 맞아 한창 바빠야 할 10월, 일 년 내내 남편이 애착을 두고 가꾼 농작물들이 남편의 수술과 연이어 나의 입원으로 인해 남의 손을 빌린다 해도 추수기가 더뎌졌다.
남편이 먼저 수술을 해 남편의 만류로 자주 들에 나가보지 않았던 나는 성당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들이 오늘 들에서 들깨를 쪘다, 오늘은 팥을 땄다. 감을 땄다고 하면 모두가 우리 밭에 있는 작물들이라 걱정이 되었다. 5일 만에 퇴원한 남편은 퇴원하는 날 바로 차를 들로 돌렸다.
다행히 큰 수술이 아니라 병원에서도 가만히 누워있지 않고 병원 실내로 돌아다닐 수는 있었다. 식사도 평소대로 할 수 있었기에 차를 모는 대는 무리가 없었다. 탈장 수술이라 무겁고 힘든 일 만큼은 2주 동안 들지도 말고 하지도 말라고 하였다.
농사짓는 일 자체가 무겁고 힘든 일들이었다. 남편이 일을 못 하니 토요일, 일요일, 두 아들을 불렀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지만 아들들 역시 들에서 일을 해보질 않아 아버지 눈에는 서툴지만 일을 하겠다고 쫓아오는 마음을 남편은 흐뭇해했다. 처음으로 들에서 온 가족이 힘을 합해 일했다. 점심은 식당에 전화를 걸어 지번을 대니 볶은 밥, 잡채 밥, 입맛대로 들판에 갖다 주었다. 나무 그늘에서 땀을 훔치면서 먹는 그 맛이 옛날 여러 일꾼이 모심기할 때 엄마와 함께 새참을 이고 가서 들에서 먹던 그 기분이다. 들녘에서 일한 후 먹는 밥맛은 소풍 가서 먹는 밥과는 또 다른 맛으로 다가온다. 일하고 나서 땀 흘린 대가의 밥이 보람되고 맛이 있었다. 잠깐 거드는 일이지만 아이들이 아버지의 수고로움을 실감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감을 따고 날랐다. “아버지 이건 소일이 아니고 노동입니다. 일감을 좀 줄이십시오.” 건강하신 것만 해도 우리가 든든하고 감사하게 여깁니다. 일을 직접 해본 아들들은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의사 선생님이 당분간 일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남편은 눈에 보이는 일들을 이내 시작하려고 하니 나는 맘이 조여진다. 아들들이 따 놓은 감을 상자에 넣어 놓을 자리에 옮겨놓고 들깨를 두드리고 남의 손을 빌려 급한 것부터 일을 줄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밭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안 하던 일을 한 내가 몸살과 방광염이 겹쳐 입원했다. 남편이 천천히 해도 된다며 병원에 누운 나를 달랜다. 둘이서 며칠을 들에 나가지 않았더니 농작물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모자를 눌러쓰고 밭고랑에 가서 팥을 따기로 했다. 따기도 전 발갛게 익은 팥들이 간간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제때 돌보지 않았던 미안함에 익은 팥 꼬투리를 잡아 당겨 따려고 하는데 늦게 나타난 주인에게 항변이라도 해대듯 끄집어내는데 확 토악질해버린다. 보석 같은 팥알을 하나하나 주우면서 말 못 하는 식물들도 제때 돌보아주지 않으면 이를 진대 하물면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을 방치해 두면 어찌 옆길로 새지 않고 토악질을 하지 않겠나 직장생활로 알뜰하게 보살펴주지 못했던 아이들 생각이 났다. 가여운 생각에 팥을 달래 가면서 고이고이 땄다.
이번에는 감이 난리다. 보기도 좋고 먹기 좋은 대봉감은 아이들이 와서 거의 땄는데 고종 시 감은 많이 열어 감이 크지도 않고 볼품도 없어 그중에 큰 것은 골라 곶감을 깎기도 하고 못난 것은 감 말랭이를 할 작정으로 감 따기를 미루고 급한 콩을 찌고 팥을 따고 땅콩을 캐느라 감 따는 시기를 놓쳤다. 그 새 경산에 서리가 두 세 번 왔다. 감은 부분적으로 물러 골고루 익은 홍시도 땡감도 아닌 반 물렁이가 되어 곶감과 감 말랭이를 만들려고 하던 감은 나눠 먹기도 민망할 정도로 볼품없는 불량품으로 변했다.
서리를 맞은 작물들의 잎과 줄기는 끓는 물을 쏟아부어 놓은 듯 고구마 줄기, 호박 줄기, 여주 줄기가 맥없이 사그라졌다. 한쪽 구석에 심어 놓은 여주는 줄기와 잎이 무성하도록 미쳐 발견하지 못해 내가 찾았을 때는 이불로 덮었던 잎들이 서리로 인해 사그라지니 알몸을 드러낸다. 물렁 물렁해진 몸통을 가누지 못해 입을 쩍 벌리고 빨간 씨앗을 혓바닥에 얹어 놓고는 아예 땅에 누워 죽은 척 시위를 한다. 못 살펴준 여주는 제 값을 못해 거름으로 분류됐다. 처음 심어본 작물이라 남편도 나도 어떻게 채취하고 어떻게 먹는 방법을 몰라 관심을 두지 않았더니 서러움에 지쳐 흐느꼈던 눈물의 상흔만 남기고 주인 곁을 떠났다.
늦게나마 정리가 되어가는 가을 들녘은 빈 공간이 되어 황량한 느낌마저 준다. 가족을 떠나보낸 밭고랑들, 허기진 빈 배를 뒤집어 보이듯 흙덩이와 잔챙이 돌멩이 만이 가족인양 서로 기대고 부비며 빈집을 지키고 있다.
먼저 가을걷이를 끝낸 이웃 밭에는 허연 비닐로된 큰 뭉치가 곳곳에 서있다. 땅이 영양분을 작물에게 빼앗겨 가을걷이 후 영양실조가 된 흙에게 영양을 공급해 줄 퇴비라고 한다. 자연의 이치는 동식물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튼튼한 후손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겨울동안에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어야 된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해온지를 나는 몰랐다. 뼈만 앙상히 남은 우리 밭 흙에도 거름을 사 넣자는 말에, 갑자기 농사 일을 너무 알려고 나대는 아내가 싫은지 남편은 입을 꾹 다물고 대답이 없다.
애연가의 수난
박정애(보릿길)
새벽 이른 시간 미사를 가기위해 지하 주차장으로 큰길로 가지 않고 맞은편에 있는 쪽문을 열어 둘레길로 가려고 쪽문을 확 열자 나는 깜짝 놀랐고 젊은 아빠도 등달아 깜짝 놀라 일어선다.
2월 말 새벽 6시는 아직도 어둑하다. 나는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하고 쪽문을 확 열었고 젊은 아빠는 이른 새벽시간에 누구도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쪽문 바로 곁 잔디에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다 얼른 감추고 일어선다. 새벽 공기는 차다. 나는 한겨울 옷차림으로 성당 갈 준비를 하고 나섰다. 그런데 젊은 아빠는 잠옷 위에 점프를 걸치고 맨발에 스리퍼를 신고 방금 나와 담배를 태우는 듯한 모습이다.
지금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수난시대다. 웬만한 장소는 금연구역이다. 직장, 길거리, 식당, 연회장, 편안하게 스트레스와 함께 담배연기를 후 하고 내뿜을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젊은 아빠도 가족 등쌀에 담배 필 곳을 찾아 싸늘한 아침 공기를 감수하면서까지 한 대를 혼자 즐기고 있는데 예상치 않게 훼방꾼을 맞았다. 아련한 마음과 미안한 맘이 가슴으로 가득하다.
나는 담배연기와는 익숙한 생활을 하고 살아왔다. 술은 친가 시가 양가 모두 즐겨 드시지 않지만 담배만은 양가에서 모두 태웠다. 시댁에서 가정사의 특별한 일을 의논할 때는 며느리들을 재외 한 아들 오형제와 어머님의 의견이 주축이 되어 끝나는 것이 통과의례였다. 그 의논이 마무리되려면 어떨 때는 약 두어 시간 큰 방에서 문을 닫고 진행이 되었다. 연기가 자욱한 큰 방문이 열리면 회의는 끝났다. 커다란 청동 놋 화루를 가운데 두고 의견을 나누면서 피우신 담배는 큰 놋 재떨이에 꽁초가 수북하다.
시부모님의 유전인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남편은 지금도 거의 하루 두 갑 가까이 피우는 애연가다. 젊은 시절에도 그런 남편이 방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나는 전혀 불편하지를 않았다. 직장 역시 담배공장이다. 현장 사무실은 아침 티타임이나 회의시간은 그대로 굴뚝이다. 공짜 담배이기에 아깝잖게 피우는 담배는 회의시간 내내 피워대니 목이 따가워도 담배탓을 못한다. 담배로 먹고살기에 그만한 불편은 감수해야 했다.
두 아들 역시 아버지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아 담배를 태운다. 엄마에게 별로 간섭을 받지 않다가 결혼을 하니 아내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님을 나는 안다. 방안에서 피워대는 남편 아빠가 미운털이다. 베란다에 내쫓는 데는 부부싸움 횟수에 1위를 차지했다고 시어미께 하소연한다.
남편은 나에게 내쫓긴 게 아니라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는다. 역대합실에서 길거리에서 무심코 피우다 벌금을 두어번 물었다고 한다. 모임장소 어디에서도 편안하게 한 대 태울 장소를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담뱃갑 인상으로 인해 하루 9,000원은 용돈의 거의 반을 차지하니 스스로 금연을 시도하려고 애쓴다. 몇 년 동안 새해 목표 1위가 금연이다. 아내에게 공고를 한터라 하루 이틀을 견디는 데도 힘들어한다. 잠도 오지 않는다니 입이 심심하니 간식을 내놓으라는 둥, 괜한 생짜증을 부려본다. 사흘쯤 지나면 새벽에 현관문을 살짝 열고 나가는 소리가 잠결에 들린다. 맹세에 대한 자존심이 남편을 문밖으로 내몬다. 오일쯤 지나면 다시 베란다로 남편은 본래 장소로 회귀한다. 벌써 몇 년째다. 나는 남편에게 금연을 하라고 닦달하지 않는다. 혼자 스스로 금연을 결심하다 스스로 포기했다. 금연 스트레스가 그만큼 힘들어함을 곁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흡연 광고도 소름이 끼치도록 공포로 몰아넣는다. 폐암으로 죽음의 문턱에 서서 금연을 호소하는 이주일 씨의 모습, 설암으로 말을 잃은 50대의 남성, 경각심을 일으킬 만큼 설득력을 보여 주는 광고지만 담배 소비는 줄지 않는다. 담뱃값 80% 인상으로 잠깐 주춤했던 담배 소비는 또 제자리로 돌아갔다. 불안, 실직, 불경기로 인한 국민적 스트레스로 담배 소비는 늘어간다고 한다. 국민건강을 지키겠다고 올린 담뱃값은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나라 세금만 한아름 올려준 셈이다.
옛날과 다른 요즈음 젊은 남자들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런대로 순종하고 살았던 우리 세대와는 또 다르다. 우리 젊었을 적 남편들은 밖에서 난 화를 엉뚱하게 집에서 풀 때도 있지만 받아 주었다. 외출시 남편은 앞에서 빈손으로 걸어가고 나는 아이를 업고 기저귀가방을 들고 뒤따라갔다. 그것이 당시에는 나 말고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길거리서나 백화점에서 아빠들이 띠를 메어 아이를 안고 다니고 아내들은 뒤따라가는 풍경을 자주 본다. 가사노동 분담을 내 세우니 남편들이 가사 노동도 많이 도와주는 편이다. 예외 없이 영감도 시대를 따른다. 둘이 살면서 별로 바쁘지도 않는데 외출하다오면 어느 날은 청소가 말끔히 되어있고 어느 날은 빨랫줄에 빨래가 가지런히 늘여있다. 여성전성시대가 도래했다고 남편은 불평하지만 나는 늙음이 슬프지만 않다.
새벽 공기가 찬 잔디 위에 앉아 혼자 끽연에 매료를 느끼는 저 젊은이, 집안보다 편하진 않을건데 내쫓겨서라도 한 대 피우고 싶은 저 맛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 내몰리는 남편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젊은이들, 그 속에 내 아들도 포함되어 있다. 해로움만 열거하지만 집중력을 모으는대는 담배 한모금이 필요할때도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담배연기와 후우 하고 날려보내고 싶은 내 아들을 포함한 젊은이들, 그래도 베란다에서 담배 피는 것을 허용해 주는 내 며느리들이 저 젊은이 아내 보다는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추워 보이는 옷 차림이 아침 내내 머리 속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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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