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월침침야삼경 양인심사양인지)
“달빛이 침침한 한밤중에,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안다.”
눈썹달이 침침하게 내리비치고 있는 야밤중에 등불을 비춰 든 선비 차림의 젊은이가 쓰개치마를 둘러 쓴 여인과 담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다.
여인은 밤이 늦어서야 나타난 사나이가 야속하다는 듯 여간 새침을 떨지 않으니 답답한 남자는 무엇으로나 달래보려는 듯 품속을 더듬어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서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야 두 사람이 어찌 각각 모를 리가 있겠는가.
만난 일이 반가워서 벌이는 실랑이일 뿐이다.
♡♡♡♡♡♡♡♡♡♡
이초시는 20대초반에 초시에 합격했지만 그 후로 10년이 넘게 매년 과거를 볼 때마다 미역국이다.
호리호리한 몸에 키는 멀대같이 커 걸음걸이는 건들건들거리고 작은 눈에 광대뼈가 튀어나와 30대 초반이지만 50대 중노인처럼 보인다.
눈코 뜰새없는 농사철에도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사랑방에서 책을 베개 삼아 낮잠만 잔다.
몇뙈기 논밭에서 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허리가 휘어져라 일하는 건 마누라다.
무던한 마누라는 그것까지는 참을 수 있는데 남편이란 작자가 툭하면 자기는 뼈대 있는 가문이고 마누라는 상것이라 업신여기며 다그치는 데는 우물에 빠져 죽고 싶은 생각뿐이다.
꼴에 남자라고 대엿새마다 밤이면 살금살금 안방으로 기어들어와 마누라가 달아오르기도 전에 토끼처럼 깝죽거리다가 제 풀에 떨어진다.
밤일이 그 모양이니 아이도 없다.
어느 날 밤~
밤은 깊어 삼경일제 도둑이 들어왔다.
이초시는 이불 속에 머리를 처박고 엉덩이는 추켜세운 채 사시나무 떨듯이 와들와들 떨고 있다.
도둑의 입에서 술 냄새가 확 풍겼다.
“나는 오늘 밤 죽기로 작정한 몸이다.
내 말을 거역하면 함께 저승으로 갈 것이야.”
도둑의 목소리는 우렁차 안방이 쩌렁쩌렁 울렸다.
이초시 마누라가 힐끗 쳐다봤더니 허우대가 장대하고 세모시 도포가 도둑 복장이 아니다.
“술 익는 냄새가 나는구나.
술상을 차려 오렷다.”
이초시 마누라가 술독에 박아 둔 용수에서 청주를 뜨고 소반에 간단한 술상을 차려 왔다.
벌컥벌컥 술을 마시던 도둑이
“여자가 따라야 술맛이 나지”
하자 이초시 마누라는 다가가 술을 따랐다.
“이게 무슨 냄새냐.”
도둑이 코를 막아 마누라가 돌아보니 이초시가 설설 오줌을 싸고 있었다.
도둑은 이초시 두손을 뒤로 묶어 부엌에 처박았다.
마누라가 방바닥의 오줌을 닦아내자 술판이 다시 벌어졌다.
호롱불에 비친 도둑은 콧날이 오똑 서고 눈이 부리부리한 호남이다.
호리병 세개를 비운 도둑이 이초시 마누라 허리를 당겼다.
이초시 마누라 입에서 악 소리가 나왔다.
이날 이때까지 이초시한테서 느껴 보지 못한 큼지막한 것이 묵직하게 들어와 지그시 눌렀던 것이다.
이초시 마누라는 생전 처음 황홀경에 빠져 뜨거운 입김을 뿜으며 도둑의 목을 꽉 껴안았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뇌성벽력이 천지를 뒤엎었다.
짜르르한 순간이 지나고 바위 같은 도둑이 이초시 마누라 배 위에서 나둥그러지더니 금세 코를 골았다.
동창이 희뿌옇게 밝아올 때 도둑이 눈을 뜨자 사지가 단단히 묶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쳐다보니 이초시 마누라가 옆에 앉아 내려다보며
“날이 새면 관가에 넘길 거요.”
그녀의 눈물방울이 도둑의 얼굴에 떨어졌다.
“관가에 넘기지 말고 나를 죽여 주시오.
아니어도 지난 밤에 죽으려던 참이었오.”
이초시 마누라가 물었다.
“왜 죽으려는지 사연이나 들어 봅시다.”
“무과에 일곱번이나 떨어져 살맛을 잃었소.”
“못난 사람!”
새벽안개 속으로 두사람은 어디론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