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기쁨(눅15:25-32)
세번째 탕자의 비유에서는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는 아버지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뻐서 잔치를 여는데 그 잔치를 싫어하는 큰 아들이 등장한다.
내용이 탕자에서 시작해서 잔치를 싫어하는 큰 아들로 전환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대체 주님은 왜 탕자의 비유의 말씀에서 큰 아들을 등장시킨 것일까?
이 해답을 누가복음 15:1,2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누가복음 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누가복음 15: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님이 세가지 비유의 말씀을 전하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나 유대사회에서 비방과 천대받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왔다. 그러자 예수님은 기쁘게 그들을 영접하였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함께 했다는 것은 잔치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온 것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님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여는 것에 대해서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다. 그들은 모두 율법학자이며 종교 지도자들이다.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전을 섬겼던 사람들이다. 오늘날로 말한다면 교회 목사직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잃어버린자들이 주님께 돌아온 것을 보고 가장 기뻐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그들은 세리와 죄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온 것을 싫어하였다. 싫어할 정도가 아니라 세리와 죄인들이 주님과 식사하는 것을 보고 험담하고 불평까지 하였다. 그래서 세리와 죄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온 것을 싫어하고 불평하는 바리세인과 서기관을 보면서 예수님은 세가지 비유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세리와 죄인들은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드라크마, 잃어버린 둘째아들을 상징하는 것이며 잃은 영혼이 돌아와도 기뻐하지 않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탕자의 비유에서 마지막에 등장한 맏아들로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탕자의 비유에서 주인공은 둘째아들이 아니라 마지막에 등장하는 맏아들인 것이다.
이 세가지 비유를 통해서 주님은 탕자가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도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비유를 보라 양을 잃어버렸는 데 어디에서 잃어버렸나 우리 밖 들에서 잃어버렸다. 두 번째 비유에서 다라크마 동전을 잃어버렸는 데 어디에서 잃어버렸나 집안에서 잃어버렸다. 이 두 비유를 통해서 주님은 우리 밖 즉 교회밖에만 잃은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집안 즉 교회안에도 잃어버린 자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비유가 세 번째 비유인 탕자의 비유에서 실현된다. 둘째 아들은 집 밖으로 나가서 잃어버린 아들이고 맏아들은 집 안에 머물러 있지만 역시 잃어버린 아들이라는 것이다. 왜 맏아들이 잃어버린 아들인가 아버지의 마음,아버지의 기쁨을 잃은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동생이 집으로 돌아왔으면 아버지처럼 기뻐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맏아들 모습속에서 기쁨을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동생을 위하여 잔치를 여는 아버지에 대해서 불평이 가득하다.
오늘날 탕자는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유속의 맏아들처럼 교회안에도 있다. 그들은 아버지의 마음과 기쁨을 잃은 사람들이다. 모양은 종교적인 모습이 갖추어져 있다. 그래서 종교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종교적으로 교회를 섬기며 열심을 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마음과 기쁨없이 종교적으로 열심만 내는 것이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기에 습관적으로 예배하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섬기는 것이지 주님의 마음과 기쁨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잃어버린 영혼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잃은 영혼이 교회로 찾아 왔는 데도 불구하고 기쁨이 없다. 교회안에는 이런 무리들이 존재한다. 자신의 종교생활..신앙생활에만 관심이 있지 잃은 영혼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그래서 잃어버린 영혼을 찾지도 기다리지 않는다. 잃어버린 영혼이 주께로 돌아와도 별로 기쁨이 없다. 바로 비유속의 맏아들처럼 아버지의 마음을 잃은 교회안에 탕자인 것이다.
오늘날 주님은 교회밖에서 탕자처럼 방황하는 잃은 영혼을 볼 때 가슴아파 하시지만 잃은 영혼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돌아온 영혼에 대해서 기쁨이 없는 성도를 보면서 더 가슴아파 하신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의 기쁨을 잃은 성도이기 때문이다. 여러분들 마음속에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의 기쁨이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안의 탕자..맏아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을 사랑하듯 교회를 사랑하고 예수님을 섬기듯 교회를 섬기며 헌신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듯 잃어버린 영혼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의 기쁨을 회복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우리모두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기쁨을 회복하자 그럴 때 주님은 잃은버린 영혼을 보내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