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처럼 흘러가는 삶, 뗏목을 타고 떠나는 여행
인생은 유수와 같다고 한다. 유수(流水)는 흐르는 물이다. 어쩌면 이 말은 참 어려운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흐르는 물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돌이 길을 막으면 피해 가고, 호수가 있으면 고여있다가 넘쳐야 한다. 폭포가 있으면 뚝 떨어져야 하고, 협곡처럼 좁은 곳이 있으면 유속이 빨라지고, 강폭이 넓으면 천천히 흐른다. 이런 현상을 일러 인생은 유수와 같다고 한다. 남과 부딪히지 않고 사는 삶이다.
그런데 인제 사람들은 그런 유수 같은 삶에 뗏목을 띄웠다. 뗏목을 띄워서 사람들의 삶처럼 뗏목이 흘러가게 했다. 인제가 가진 자연환경을 잘 활용한 처사이다. 그러나 그런 뗏목은 인제 사람들의 유수 같은 여행 이전에 애환을 실어 날랐다. 떼돈이란 말이 생긴 유래다. 뗏목을 띄워 한강으로 흘러 마포나루에 이르면 흥정을 하고 돈을 받았다. 그 값이 농촌에서 일 년 내내 농사짓는 돈보다 많았으니, 떼돈은 목숨을 걸고 갈만했다. 농사꾼이 황장목을 베어 물결 위에 뗏목을 띄우는 원인이었다. 참 절실했다.
하지만, 그 떼돈은 떼꾼의 몫만은 아니었다. 가는 곳마다 있는 주막의 썩쟁이도 떼돈을 밝히고, 주모는 눈을 까뒤집고 떼돈을 탐냈다. 밥 먹어야 하고, 잠자야 하고, 나무 베서 날라야 하고, 실어야 하는 여러 과정이 있었다. 그래도 목숨 걸고 마포나루까지 가면 목돈이 생기니, 그 험한 유수를 따라갔다. 험한 여울이 참 많았다.
참 지루하면서도 위험 넘치는 일정이었다. 뗏목 위에는 취사도구도 있고,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움막도 갖추었다. 그러나 물 위에서 자는 잠이 어찌 안방 잠처럼 편안할까. 몇 번이고 잉어와 메기의 밥이 되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떠날 때도 용왕님께 무사고를 빌었고, 가면서도 몇 번이고 용왕님을 찾았다. 깜깜한 밤이면 뗏목을 뭍에 대고 쉬어야 했다. 물귀신의 장난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날을 뗏목 위에서 지내면서 물길을 따라 흘러갔다.
어떨 때는 몹시 지루했다. 강 복판에서 물길 따라서 가는 한양 여행이었다. 힘들어도 여행이니, 어찌 소리 한 자락 없겠는가. 산촌 인제에서 제일 번화가 한양으로 가는 여행이다. 그 당시 강원도에서는 유일하게 <강원도 아리랑>과 <정선아리랑>이 최고의 유행가였다. 소리 못해도 누가 보는 이 없으니, 드문드문 엿들었던 소리를 뿜어냈다. 전문 소리꾼이 아니었으니, 당연히 어설펐다. 그래도 가사는 알고 있으니 누군들 소리꾼이 아닐까. 아무도 듣는이 없는 공연이었다. 용왕님 듣고, 메기도 들었겠다. 아무리 불러도 손뼉 치는 소리 하나 없는 까닭이다. 그 소리가 지금 전해 <인제 뗏목아리랑>이 되었다. 이제 전문 민요가수가 부르는 소리이다. 이 소리가 2024년 강원도 민속예술축제에서 최우수상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정말 대단한 쾌거이다. 참 잘했다. 아마도 서울 거간꾼들은 <뗏목 아리랑>이 들리기를 학수고대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 황장목이 물길을 따라 서울에 도착했으니, 거간꾼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강원도 황장목은 조상의 널[관(棺)]재목으로 최고 인기를 끌었다. 유교가 최고 조에 이르렀을 때니, 조상이 죽어 무덤에 묻힐 때 최고의 나무로 널을 만들어 보내주고 싶었다. 21세기에 사는 나도 그러할진대 말해 무엇하랴. 또 강원도에서 보내는 황장목은 대궐을 짓고 고관대작의 집을 지을 때 쓰였다. 그 나무의 재질도 좋으려니와 무늬가 참 예뻤다. 붉은 색깔을 띠는 황장목을 대체할 나무는 어디에도 없었다. 마포나루에 나무 거간꾼이 줄을 이었던 원인이다.
인제는 뭐니 해도 산이 많고 좋은 나무가 많다. 이를 활용한 다양한 산업이 발달했다. 목기가 발달했던 사연이기도 하다. 뗏목은 물길만 허용되면 언제나 띄웠으니, 그 민속의 원형이 이번에 좋은 결실을 얻은 이유이다. 이 쾌거가 2025년 전국 대회에서 최고상을 받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인제 뗏목 아리랑 글을 쓰다 보니 뗏목 타고 떠나는 여행이 남의 일이 아니었다. 우리네 삶의 단면이다. 누군들 흐르는 물처럼 살고 싶지 않으며, 누군들 떼돈 한번 벌어보고 싶지 않겠는가. 흐르는 물 위에 뗏목 띄워 놓고 막걸리 한잔하고 가슴 속에 담긴 소리 한 자락 하고 싶지 않겠는가. 새소리 물소리 장단 삼고 물속에 잉어 메기 청중 삼아 길게 아리랑 가락을 뿜어내고 싶지 않겠는가.
요즘 우리네 삶을 역행하며 잘난 체 억지 부리는 못된 인간들이 있어 더욱 그러하다. 어찌 2024년에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짓밟으려는 인간들이 이렇게 판을 친단 말인가. 누천년 사람 중심으로 살아온 세상이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과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의 뿌리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정말 개탄스럽다. 빨리 이 땅에 민주주의가 널리 토착화되어 다시는 계엄과 같은 반민족 반국가 행위와 국민을 총칼로 위협하며 내란을 일으키는 통치자가 없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오늘도 유유히 흐르는 한강 위에 띄운 뗏목에 서서 아리랑 한 자락 뿜어 봤으면 좋겠다.(202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