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사랑 / 정선례
밭농사는 4월 중순 숙성된 퇴비포대를 일정한 간격으로 큰 밭에 갖다 놓는 것부터 시작된다. 퇴비를 골고루 뿌린 후 트랙터 로터리 작업에 겨울 묵은 풀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단단한 흙덩이가 보슬보슬 가루가 되었다. 고운 모래 사장인 듯 발자국이 푹푹 들어간다. 나는 트랙터 뒤에서 땅에서 올라온 돌멩이를 주워 요소 포대에 담아 여러 번 왔다 갔다 내다 버렸다.
농작물은 계절마다 심는 시기 및 수확 시기가 다르다. 이 땅에 우리 식구 1년 먹을 야채와 양념거리가 심어진다. 밭 한쪽에는 구정 지나고서 심은 감자가 벌써 싹이 돋았다. 봄에는 자주 비가 내려서 날 좋은 날 미리 멀칭을 씌우고 지주대를 세워놔야 고추, 가지. 토마토, 땅콩, 봄배추, 밤 호박 모종을 제 시기에 심을 수 있다. 농촌 아낙으로 35년을 하루 같이 농사일을 했지만 아직도 일이 힘에 부친다.
6월 초 후드득 봄비가 반갑다. 어제 장에서 대파 모종 두 다발을 사 와서 수돗가 그늘에 두고 물을 끼얹어놨다. 그걸 본 남편이 줄잡아서 이랑의 골을 깊게 타놔서 수월하게 심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두둑 가운데를 호미로 길게 골을 냈다. 한쪽 면에 모종을 반듯하게 세운 후 1차 복토를 해주었다. 대부분 식물이 그렇지만 대파는 특히나 햇볕을 좋아하므로 그늘이 지는 곳은 피하여 심는다. 파 종류는 다른 모종과 달리 웬만해서는 시들지 않고 살아나는 특징이 있어 곧바로 물을 주지 않아도 바로 시들어 버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모종을 심은 후 비를 흠뻑 맞으면 뿌리가 빨리 내려 성장 속도가 빠르다.
무뚝뚝하기는 해도 손끝 매운 남편의 도움으로 밭 긴 사래, 세 이랑을 심어놓으니 든든하다. 심은 직후 바로 풀 나지 않는 제초제 '알라'를 골고루 뿌리면 한동안은 잡풀이 나지 않지만 자가 소비할 목적으로 적은 면적에 심었기에 약을 뿌리지 않았다. 복토 할때마다 삐죽삐죽 올라오는 풀을 호미로 긁어주었건만 장마가 지난 뒤에 가보니 풀속에 작물이 힘을 못 쓰는게 보인다. 풀이 클수록 일의 진척이 더디다. 아침 저녁 서늘한때를 맞춰 풀을 매다가는 작물이 풀속에 보이지 않을 것 같다. 흰 달미가 길게 나오도록 풀을 맬 때마다 줄기가 갈라지는 부분까지 흙을 덮었다. 통통하게 자란 대파를 김장할 무렵 수확하여 주변에 나눌 생각 하니 벌써 뿌듯하다.
일년내내 솎아서 음식에 넣고 김장에도 양껏 넣는다. 나머지는 밭에 그대로 둬도 월동하는 채소라서 눈발에도 사그라지지 않아 한겨울 지나 이른봄까지 탕이나 국에 요긴하게 쓰인다. 뿌리, 줄기, 잎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고 열을 가하면 매운맛이 단맛으로 변한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아궁이 잔불에 구워주면 우리 형제들은 넓고 따뜻한 부뚜막에 앉아 호호 불며 받아먹었다.
대파의 성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보다 다양하다. 꾸준하게 많이 섭취하면 큐텐과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풍부해서 불면과 우울증 및 혈압 조절에도 효과가 있단다. 노화를 늦추게 하고 알리신 성분은 염증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잔기침과 가래 제거에도 효능이 있고 체내 콜레스테롤 흡수를 억제한다고 하니 고기 먹을 때 듬뿍 싸서 먹으면 성인병 예방에 도움 되겠다. 특히 항암치료 중에 면역력을 올려 암세포를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는 놀라운 연구도 발표되었다.
대파김치도 별미로 맛있다. 조립법이 다른 김치에 비해 간단하다. 1. 지저분한 껍질을 한 겹 벗겨내서 뿌리를 자른 후 씻어 5cm 길이로 자른다. 2. 흰 대가 두꺼울 경우 측면을 한 번 더 자른다. 3. 양념장 만든다, 액젓, 고춧가루, 매실액에 생강, 사과는 갈아서 넣는다. 4. 양념장에 썰어놓은 대파를 살살 버무려 실온에 하루 익힌 후 냉장 보관하면서 고기 먹을 때 곁들여 먹거나 입맛 없을 때 깨소금 뿌려 상에 올리면 밥도둑이다.
내 요리의 완성은 대파 넣기다. 양이 많아 오래 두고 먹을 때는 씻어서 햇볕에 물기를 잘 말려 지퍼백에 넣어 야채실에 두면 쉽게 상하지 않는다. 더 오래 두고 쓸 때는 어슷하게 썰어 냉동실에 보관하면 대파가 생산되지 않는 겨울이나 이른 봄에도 약방의 감초처럼 각종 요리에 요긴하게 넣으면 음식의 풍미를 더한다.
가을 무렵부터 우리 지역 오일장에는 갓 잡아 올린 살아있는 꽃게가 시장에 많이 나온다. 한 망 사 와서 크기별로 양념게장, 간장게장 담그고 그중 가장 실한 놈은 꽃게 된장국을 끓인다. 무, 풋고추, 대파 뿌리째 듬뿍 넣고 끓여내면 원만한 감기는 뚝 떨어진다. 식구들이 특히 좋아해서 자주 하는 요리다. 살아있는 게와 냉동 게의 맛 차이가 크다. 우리 지역은 따뜻해서 김장을 12월 중순경 늦으막에 한다. 배추가 서리를 맞아야 맛이 제대로 든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김장하기 전에 동치미부터 항아리에 담아 그때까지 먹는다. 이때도 절인 동치미 켜켜이 대파와 생강, 끝물 고추, 청각, 사과, 배를 넣어 익히면 개운한 맛의 국물을 즐길 수 있다.
중국으로부터 들여와 우리나라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재배했다고 추측한다. 중국인들이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식습관에서도 심혈관계 질환 발병이 적은 이유는 양파와 대파를 즐겨 먹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파는 단단하고 흰색 줄기 부분인 연백무가 길어야 상품 가치가 높다. 연백무에는 비타민C가 사과보다 5배가 많고 푸른 잎줄기에는 칼슘이 풍부해 관절 건강에도 도움 되고 체질 개선도 해준다니 그 효능이 놀랍다.
첫댓글 올 겨울에 대파김치 담궈봐야겠네요. 선생님 알려준 방법으로요.
밭에서 갓 뽑아온 대파로 음식의 풍미를 더하니 얼마나 맛있을까요?
농촌에서 살기는 힘들지만 그런 맛이 또 행복을 주겠지요?
영양가 높은 제철 음식 많이 드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유익한 정보 고맙습니다!
요즘은 저도 음식의 마지막에 넣은 대파 먹는 맛을 알았어요. 예전에는 국물맛 내는데만 필요한 지 알고 버리는 게 많았는데 아삭하고 달큰하고 너무 맛있더라고요. 이 맛을 그동안 왜 몰랐죠?
저도 대파를 좋아해요. 대파 김치도 맛있을 것 같아요.
저도 요리의 완성은 대파 넣는 겁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