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니멀리즘과 영혼의 무게
오월 중순, 나들이 하기에 적당히 화사한
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윌셔와 6가 길 사이에 있는 LA박물관이다. 예전 같으면 편리한 유료주차장을 사용했을 텐데 만만찮은
주차료가 신경 쓰여 박물관 뒷길 6가에 차를 세웠다. 족히
열 블락은 걸을 만큼 먼 거리였다. 주차료를 아끼려다 박물관 관람에 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겠다는 생각은
잠시. 햇살은 부드러웠고 그 부드러움과 걸맞은 바람이 불어와 기분이 상쾌해졌다. 바람을 만난 꽃잎 여럿이 함께 날리며 내 시야를 가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보라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그러고 보니,
길가 도로변에 자카란다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가로수가 장관이다. ‘아직도 자카란다꽃이
이렇게나 예쁘게?’ 금세 마음은 작은 꽃잎 되어 가볍게 날아오른다. 필시
오늘 만나게 될 그림들로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추상표현과 미니멀리즘 화가인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1912-2004)의
특별전시회가 열린 건물로 향했다. 전시실에는1950년 후반부터 2004년도 그림들이 년도 별로 여러 방에 전시되어 있었다. 자기의
그림을 “그냥 바다를 보는 듯 봐라”라고 한 그녀의 말을
되새기며, 실제 바다를 바라보듯 그림 앞에 섰다. 생이 끝나는
시점이 가까워 질수록 점점 더 단순화한 구도와 밝아지는 색채, 뿐만 아니라 삶을 경외하는 그림의 제목(I Love the Whole World, Gratitude, Homage to Life)들로 세상을 사랑했던
화가의 내면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녀 특유의 화법인, 그림의
대들보 같은 가느다란 연필 선들이 캠퍼스 위의 물감을 뚫고 나와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그림을
보기 전에 이미 만난 그녀의 사고와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림 사이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의 선율이 흐른다. 그림과
음악과 나는 마치 오래 된 친구처럼 어우러진다. 그때 같이 그림을 감상하던 딸이 “엄마는 아그네스의 그림을 보며 무얼 느껴?” 묻는다. 순간, 조금도 망설임 없이 “따뜻함, 그림이 따뜻해!”라고 하자 “응”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탓일까? 근래에 들어 인생을 좀 더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시집을 읽을 때에도 최소의 언어로 지은 오규원의 <두두> 같은 시집을 즐겨 읽는다. 될수록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고 매일 먹는 음식도 지나친 양념을 줄이고 간단한 조리법으로 요리를 한다. 그러나 정작 내가 단순, 최소화 시키고 싶은 것은 나의 생각과 마음이다. 생각해 보면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물건은 언제든 한 순간 버리면 되지만,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내면의 공간을 단순, 최소, 정화 시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치우고 버려도 어느새 또 다른 상념이나 사념들로 꽉 차버린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분명 주인은 나인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다.
그러든 차에 만난 그녀의 그림은, 바닷가
모래사장의 모래알 보다 작은 나 자신의 존재를 각성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이 그림 저 그림 사이로 오가며‘기필코 삶을 단순하게 더 가볍게…’라고 작심 하는데, 서양미술사 책에서 본 지슬베르의 오튕 대성당 정문 위의 팀파눔 조각 <최후의
심판>이 떠올랐다. 그 조각의 한 부분에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울에 달아 ‘저울이 천사
쪽으로 기울면 천당에 가고, 악마 쪽으로 기울면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영혼을 구원해 준다며 면죄부를 팔던 중세시대의 작품인 만큼 그 아이러니에 웃음이 나오지만 때때로
그 작품이 주는 메시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문득 ‘내 영혼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로 생각이 비약된다. 최후의 심판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한복판에서 내 영혼을 저울에 달아본다면, 때에 따라 천국으로 기울기도 하고 지옥에
떨어지기도 할 것이다. 쉽지 않은 인생 길에 가끔씩 내 영혼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자문해 보는 것도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평소 박물관 관람을 즐기는 편이지만, 이번처럼
단순히 그림을 보러 전시회에 갔다가 내 영혼의 무게까지 저울질 해 보기는 처음 겪는 경험이다. 이 또한
나이 탓인가?
그림 감상을 마치고 기념품 가게에 들렸다. 아그네스의
화집과 그녀 생시의 모습과 육성이 담긴 다큐멘트리DVD를 들고 계산대 앞에 서니 70불이 넘는다. 살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 단호하게 계산을 했다. 내 남은 삶을 위한 투자인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 나는 분명히 안다. 잡다한 인생사로 마음이 뒤죽박죽 엉겨 붙을 때 나는 이 화집을 열어 볼 것이며, 세속을 초월하는 듯한 그녀의 그림은 바로 내 영혼의 저울이 될 것임을.
박물관을 떠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까지 다시 걷는다. 하늘을 본다.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는 태양이 연출하는 노을이, 마틴의 그림 같고 어머니의 품 같다. 그 품에서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자카란다 꽃잎이 더없이 편안해 보인다. 아침나절에 이 길을 걸으며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던 예감이
빗나가지 않았음을 느낀다. 마음이 따뜻함으로 충만하다.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 속에 결코 떼어버릴 수 없는 이끼 같은 고통과 슬픔의 기억조차도 보랏빛 꽃잎으로 승화되어 날린다. ‘영혼이
가벼운가?’ 찰나에 스치는 천국을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