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소재 분과 · 안중호
코로나-19(COVID-19)로 인해 세계는 지난 4년간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고통을 겪었다. 잘 알려졌듯이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값싸고 효과적인 방법은 손발이나 오염의 우려가 있는 물체를 비눗물로 닦는 간단한 행동이다. 많은 사람이 비눗물의 이 같은 효과가 바이러스를 씻어 흘려보내기 때문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비눗물과 같은 계면활성제는 바이러스를 감싸고 있는 외피막을 와해시키는 강력한 작용을 한다.
왜 그럴까?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 존재인 바이러스의 막 성분은 생물의 세포막과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세포막, 미토콘드리막, 핵막 등, 생물의 세포에 있는 막들의 구조나 막을 구성하는 기본원리는 같다. 즉, 물과 기름 성분, 그리고 계면활성제가 일정 비율로 섞여 형성된 구조가 막(membrane)이다. 비눗물에서 보듯이 계면활성제는 친수성(親水性)을 띤 머리 부분과 소수성(疏水性)의 꼬리로 구성된 복합구조의 분자이다. 세포막의 경우 인지질(燐脂質)이 그 같은 분자이다. 인지질 분자는 머리 부분이 친수성의 인산기와 글리세롤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 소수성의 지방산이 꼬리처럼 붙어있는 구조이다. (그림 1) 이들이 세포 안팎의 기름성분 및 수용액들과 섞이면서 형성된 구조가 다름 아닌 세포 속의 막들이다. 한마디로 서로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에 계면활성제가 첨가되면서 섞임과 분리의 중간 형태인 각종 막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막은 생명의 기원을 규명하는 연구에서 중요한 구조이다. 무엇보다도 생명과 비생명을 구분 짓는 경계가 다름 아닌 세포막이다. 즉, 세포막의 안쪽은 생명이요, 밖은 비생명인 주변 환경이나 물질이다. 생명현상이란 세포 안의 상태를 끊임없이 변하는 주변환경과 무관하게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세포막을 통해 물질과 에너지를 교환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생명의 탄생과정에서 세포막, 생명 유지에 필요한 효소 등의 성분인 단백질, 혹은 이들의 합성 정보가 보관된 핵산(RNA, DNA) 중 무엇이 먼저 생겼는지는 뜨거운 주제이다. 마치 닭과 계란 중 무엇이 먼저냐는 논쟁과 유사하다. 어떤 경우이건 초기 지구에서 풍부하게 존재했던 무기물들이 무수한 화학반응을 일으킨 결과 생명의 분자들이 출현했음은 거의 분명하다. 세포막, 단백질, 핵산이 그들이다. 그리고 이 분야의 연구에서 지난 십수 년 사이 큰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생명체에서 막이 형성되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의 원리를 재료나 소재 합성에 이용할 수는 없을까? 많은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물(수용액)과 기름(지질), 계면활성제의 종류는 매우 많다. 이들을 적정 비율로 섞으면 다양한 형태의 미셀(micelle, 마이셀), 역미셀(reverse micells, 역마이셀), 층상구조, 양파껍질 구조, 이중 혹은 삼중막 등 다양한 형태가 나온다. 다시 말해 수용액, 기름 성분, 그리고 계면활성제를 원료로 하는 3원 상태도의 종류 및 조성에 따라 다양한 미세구조의 구현이 가능하다. (그림 2)
이 원리를 이용해 현재까지 연구된 가장 단순한 구조는 구형의 나노분말이나 양자점(quantum dot) 등이다. 그중 역미셀을 이용한 방법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 3) 역미셀이란 에멀젼과 반대로 미세한 물방울들이 기름 속에 균일하게 분산된 상태(water-in-oil)를 말한다. 분산된 물방울(혹은 수용액 방울)의 크기는 원료물질의 조성을 변화시켜 마이크로 혹은 나노미터 수준으로 제어할 수 있다. 이 같은 구조는 계면활성제 분자들의 친수성 머리가 물방울 쪽을 향하기 때문에 형성된다.
구형(球形)의 나노분말을 합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용액의 성분이 각기 다른 두 종류의 역미셀을 만든다. 하나는 합성하려는 금속(혹은 그 산화물)의 이온이 용해된 수용액의 역미셀이다. 다른 하나는 해당 금속의 환원제가 용해된 수용액의 역미셀이다. 이 두 종류의 역미셀을 섞어 교반하면 미세한 수용액 방울들이 합쳐지면서 해당 금속의 환원반응이 일어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이렇게 환원반응을 마친 두 역미셀의 수용액을 원심분리기로 추출하고 건조하여 최종적으로 미세 금속(혹은 금속 산화물) 입자를 얻는다. 합성된 분말은 수용액을 사용하므로 통상적으로 산화되어 있다. 따라서 목적하는 분말이 산화물이 아니라면 환원 분위기에서 후처리를 거친다. 은, 금 등의 귀금속 분말은 환원 처리가 불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역미셀을 세 종류 이상 사용하여 산화 방지 피복층을 가진 복합구조의 나노분말을 합성하기도 한다. (그림 4)
현재까지 역미셀을 이용한 나노분말 합성 연구는 가장 단순한 형태인 구형에 머무르고 있다. 또, 소재도 은, 금, 백금 등의 귀금속이나 금속산화물에 한정되고 있다. 그러나 향후 역미셀이 아닌 미셀을 이용하는 방법이라든지, 아니면 물-기름-계면활성제의 종류 및 그들의 3원 상태도 조성 변화 등을 통해 무기물/유기물 복합재의 다양한 나노 구조 구현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해 본다.
생명체는 최소 35억 년 이상의 진화를 통해 구조나 기능 면에서 오늘날 최적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조개껍질이나 새의 깃털의 구조가 대표적인 예이다. 신소재의 합성 기술에서 생체모방(biomimetic) 기술이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그 때문이다. 바이러스나 생물이 막을 형성하는 물과 기름과 계면활성제의 조합 원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면 기존의 생체모방 기술보다 훨씬 작은 세포 규모 이하 나노 수준에서 다양한 소재를 합성할 가능성이 있다.
필자소개
UC Louvain 박사
(현) 안동대학교 명예교수
서울과학포럼 대표
(전) 한국분말야금학회 회장
(전) 안동대학교 공과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