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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 일시 : 2021. 10. 3(일)
◇ 산행 장소 : 대구 팔공산 왕건길
◇ 산행 코스 : 신숭겸장군유적지 - 1~8코스 - 안심역
◇ 거리 및 시간 : 36.5km, 12시간 21분 (사진촬영 및 알바, 휴식시간 포함)
☆ 내비 장소 : 신숭겸장군유적지 (대구광역시 동구 신숭겸길 17)
☆ 팔공산 왕건길
팔공산 왕건길은 2010년 국토해양부 누리길 조성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추진된 탐방로로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동수전투(棟藪戰鬪) 설화를 배경으로 한 친환경 탐방로이다. 총 연장 35km, 8개 테마길로 이루어진 역사와 문화, 그리고 스토리가 있는 탐방로로 2012년 5월 8일에 개통되었다.
☆ 팔공산 왕건길 코스
제1길 용호상박길(신숭겸유적지~열재 : 4.3km)
제2길 열린하늘길(열재~부남교 : 4.5km)
제3길 묵연체험길(부남교~물넘재 : 5.4km)
제4길 문화예술길(물넘재~백안삼거리 :3.3km)
제5길 고진감래길(백안삼거리~평광종점 : 5.2km)
제6길 호연지기길(평광종점~매여종점 : 5.0km)
제7길 가팔환초길(매여종점~초례봉 : 3.3km)
제8길 구사일생길(초례봉~동곡지 : 4.0km)
▲ 왕건길 답사는 사전에 지명 등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 리본과 나무로 된 화살표가 길잡이가 되어주지만 이정표가 나오면 사전지식이 없으면 햇갈릴 수 있다.
▲ 팔공상 왕건길 전체코스
▲ 대구 지묘동에 있는 신숭겸장군 유적지에서 팔공산 왕건길을 시작한다.
☆ 신숭겸장군 유적지
신숭경장군 유적지는 고려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 장군이 순절한 곳으로 신숭겸 장군은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위기에 빠지자 왕건을 가장하여 후백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는데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겨 이곳에 순절단과 지묘사(미리사)를 세워 명복을 빌게하고 토지를 내려 이곳을 지키게 하였다고 한다.
▲ 신숭겸 장군 유적지 입구에 왕산, 파군재, 나팔고개 등에 대한 스토리와 왕건길 종합 안내도를 세워놓았다.
▲ 팔공산 왕건길 1코스는 신숭겸장군 유적지 담장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 원모재(遠慕齋)
원모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모집하여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이곳에서 은둔생활을 한 경주 최씨 한천공파 파조인 한천 최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 네이버
▲ 1코스 가는 길에 처음 나오는 조망처. 왼쪽 동봉에서부터 비로봉 서봉 그리고 팔공산 톱날능선
▲ 팔공산 정상에서 갓바위쪽으로 이어진 능선이 아침햇살과 함께 깨어나고 있다.
▲ 환성산 방행
☆ 열재(十嶺)
이고개는 신라시대 영천에서 능성재 – 미대동-열재-기성동-여릿재를 거쳐 군위로 이어진 교통의 요충지로, 당시에는 열사람이 다닐 수 있을 만큼 넓었다고 하여 열재(十嶺)로 불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옛날에는 산세가 험악하고 산적들이 많아 열명 이상이 모여서 이 고개를 넘었다는 얘기도 있으며 1942년 서촌초등학교가 생기기 전에 중대동 일대의 어린이들은 열재를 넘어 공산초등학교에 다녔다. - 안내 간판
▲ 이름이 거창한 하늘다리. 임도 위를 지나가는 육교
▲ 거저산 오름길에 상수리가 엄청 많이 떨어져 있다.
▲ 거저산. 왕건길은 몇개의 500m급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한다.
▲ 봉우리는 밋밋하고 아무런 특징이 없으나 약간의 조망이 터지며 팔공산 정상부분이 보인다.
▲ 2코스 진행중 나오는 이정표와 산불감시초소
☆ 유홍초
개화기간이 길게 보이지만 이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하루살이 꽃으로
꽃이 떨어지면 옆에 대기하던 꽃이 피어서 오래 피는 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 네이버
▲ 3코스 시작점 부남교
☆ 묵연길
묵연길은 달성서씨 구계(구계) 서침(서침)의 재실 중심재(중심재)에서 수행하던 박정석 거사가 2년 반에 걸쳐서 삽과 곡갱이로 만든 행선(행선) 길이다. 1시간 남짓한 거리이지만 묵연(묵연)이란 이름처럼 그저 말을 줄이고 솔바람 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면 된다. - 안내 간판
▲ 송이채취구역이라고 입산금지 프랑과 줄을쳐 놓아서 아무 생각없이 진행하다가 첫번째 알바를 한 구간이다.
▲ 이여송 고개. 왕건길은 이쪽을 지나가지 않는데 송이채취구역 출입금지 프랑을 보고 여기 이여송 고개를 지나 한참 가서야 알바한 것을 알고 돌아섰다.
☆ 이여송 고개
이여송은 명나라 말기 장수이며 임진왜란 때 파견된 명나라 장군의 한사람으로 요동 철령의 출생이다. 본관은 원래 경북 성주였으며 명나라로 귀화한 조선인 출신의 명나라 요동총병관 이성랑의 아들이다.
이곳이 이여송고개로 불리는 2가지 유래가 전해진다.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이 명나라 군을 이끌고 이곳을 지나가기 위해 돌을 쌓았다는 설과
팔공산에서 내려오는 좋은 기운으로 위인이 태어날 수 있다고 여긴 이여송이 팔공산의 기운을 끊어 산골짜기를 만들었고, 이후 마을 사람들이 다시 기운(맥)을 잇기 위해 돌을 쌓았다는 설이다. – 안내 간판
▲ 발바닥 바위 또는 통시바위
▲ 당겨보니 나무가지 사이로 팔공산 정상이 훤히 보인다.
▲ 동화사 자비원
▲ 팔공산 정상에서 염불봉으로 이어진 능선
▲ 콩밭
▲ 강낭콩
▲ 4코스 종점이자 5코스 시작점인 백안3거리
▲ 지형이 돼지코 모양인지 설명이 없어 이해를 못했다.
▲ 신형 변기
▲ 5코스 가는 길에 평광지가 나오는데 이 방죽은 물을 농업용수로도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
▲ 5코스 종점 및 6코스 시작점
☆ 와룡정(臥龍亭)
조선 후기의 정자로 단양 우씨(丹陽 禹氏)의 선조인 용재공(龍齋公) 우영재를 봉향하기 위해 건립되었는데 동네 어귀 냇가에 와룡지처(臥龍之處)가 있다고 하여 와룡정이라 하고 후대 서당으로 활용했다. - 안내 간판
▲ 담장에 노랗게 익어가는 탱자가 어릴적 추억을 불러온다.
▲ 첨백당과 광복소나무
☆ 첨백당(瞻栢堂)
첨백당은 우효종의 효행과 우명식의 충성심을 기리며, 당양우씨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건물이다. 1984년 문화재자료 제13호로 지정되었다.
▲ 사과나무 고목. 여기에 최고령 사과나무가 있다는데 확인은 못했다.
▲ 요령봉에 오르니 처음으로 시계가 열린다.
▲ 요령봉
▲ 칠곡 가산에서 한티재, 팔공산으로 이어진 하늘금
▲ 한티재에서 톱날능선을 지나 팔공산 정상까지 하늘금
▲ 7코스 종점이자 8코스 시작점인 초례봉
☆ 초례산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견훤)에게 패한 후 “다음 전투에서는 꼭 이기게 해달라”며 이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하여 초례산이라 이름지었다.
또한 옛날에 이씨라는 초부(樵夫)가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선녀와 만나 가례(嘉禮)를 이루고 초례를 치렀다고 해서 초례산이란 이름이 생겼다고도 전해진다. - 안내 간판
▲ 팔공산 주능선
▲ 저 앞 능선이 혁신도시로 내려가는 마지막 능선이다.
▲ 내려가다 돌아본 초례봉
▲ 동곡지 너머로 혁신도시 건물들이 보인다.
☆ 황경림(黃慶霖) 나무
면와 황경림(1561~1625)은 경산 하양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와 싸워 지역을 방어하는 등 공을 세웠고 전쟁이 끝난 후 이곳 동내동으로 들어와 후학을 가르쳤다. 수령이 400년 정도 된 이 느티나무는 황경림이 심은 나무라 전해지고 있으며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황경림 나무’라 이름하고 보호수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 안내 간판
▲ 대구 팔공산 왕건길 8코스 종점까지 35km를 12시간에 걸쳐 완주했다.
☆ 팔공산 왕건길 코스
제1길 용호상박길(신숭겸유적지~열재 : 4.3km)
서기 927년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동수전투장을 스토리텔링해 조성한 길로 신숭겸장군유적지를 비롯해 만디체육시설, 탐방센터(종합안내), 왕건전망대(스크린), 경주최씨 원모재, 대구자연염색박물관, 대곡지(창포)·당집,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 등의 문화유적과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또 중대동 일대에는 촌두부와 칼국수, 오리고기 등 다양한 먹을거리가 존재한다.
신숭겸장군 유적지 우측 담장을 따라 왕건길 1구간인 용호상박길이 시작되는데 왕건과 견훤이 동수전투에서 싸우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구간 용호상박길은 평탄한 임도를 따라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며 대구 올레길 2코스(한실골 가는 길)와 겹치는 구간이기도 하다.
제2길 열린하늘길(열재~부남교 : 4.5km)
10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 험한 고개를 넘는다는 얘기를 토대로 이름 붙여진 이 길은 능선을 따라 걸으면 팔공산의 주능선은 물론 거저산 및 하늘마루에 다다르면 대구 시가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아울러 하늘다리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사진촬영을 통해 추억을 남기기에도 그만이다.
제3길 묵연체험길(부남교~물넘재 : 5.4km)
비탈진 이 길을 걷다 보면 자아성찰과 함께 팔공산의 정기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상중심마을 묵연센터에서는 명상과 참선체험이 가능하고, S자형으로 된 묵연길에서는 자아성찰을 해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 정적인 도보여행을 하기에 좋다.
또 도학동 일대에서 촌두부와 산나물, 팔공산 송이를 맛볼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제4길 문화예술길(물넘재~백안삼거리 : 3.3km)
.왕건길 코스 중 가장 짧은 시간에 걸을 수 있는 길로 과거 길과 동화사 옛길을 걸으며 옛 선조들이 걸었던 길을 음미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방짜유기박물관에서 전통문화유산을 관람할 수 있고, 돌 그리고 공원 및 시인의 길에서 정서 순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비교적 음식점이 몰려있는 백안동 일대에서 순두부와 청국장, 산채비빔밥 등의 맛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점도 매력이다.
제5길 고진감래길(백안삼거리~평광종점 : 5.2km)
말 그대로 처음 걸을 때에는 거친 숨을 들이쉬지만 주능선인 환성산 방향 길을 오르면 달콤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또 평광지의 연꽃과 창포를 감상할 수 있고, 천연기념물 1호인 도동측백나무숲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도동·평광동 일원에서 닭백숙과 칼국수를 맛보는 것도 괜찮다.
제6길 호연지기길(평광종점~매여종점 : 5.0km)
길을 걷다 요령봉(492m)에 올라서면 호연지기와 함께 주변경관을 보며 감탄하게 된다. 첨백당과 평광 사과나무 길, 병아라 알까기 바위, 어지럼증 바위 등의 볼거리가 존재한다.
특히 사과 꽃의 향연과 자연의 물소리가 조화를 이뤄 찾는 이들에게 또 다른 세계를 안내하고, 요령봉에서는 호연지기를 기르는 절정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아울러 매여동 일원에 옻닭과 미나리, 된장 등을 이용한 요리들을 선보이는 음식점을 찾는 재미도 그만이다.
제7길 가팔환초길(매여종점~초례봉 : 3.3km)
태조 왕건이 하늘에 제를 올린 곳으로 가산산성, 팔공산, 환성산, 초례산이 한 눈에 들어와 장관을 이룬다. 이 때문에 각 명칭의 앞 글자를 따와 가팔환초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길에서는 매여쉼터와 바람개비길, 진달래꽃길, 산림욕장길, 남근바위, 경북대학교 학술림 등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사방댐과 숲속도서관에서는 휴식과 만남의 시간을 갖기에 제격이다.
제8길 구사일생길(초례봉~동곡지 : 4.0km)
왕건이 적의 추격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곳에 도피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는 구사일생길은 초례봉을 배경으로 한 포토존을 비롯해 승방재, 연꽃과 창포를 감상할 수 있는 동곡지, 안심습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또 반야월 연근단지와 신서혁신도시가 인접해 있어 동구지역 미래 발전상을 살펴보기에 충분하다.
☆ <참고> 동수전투
<참고>동수전투(棟藪戰鬪)는 후삼국 시대인 927년 신라 공산(公山, 현 팔공산) 동수(棟藪, 현 대구 지묘동)에서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치른 전투로 견훤이 왕건군을 기습 공격해 대승을 거두었고 이곳에서 신숭겸 등 8명의 장수가 전사해 지명이 공산에서 팔공산으로 바뀌었다는 설화도 있고 반야월, 안심 등 대구의 대표 지명들이 이 전투에서 생겼다.
후삼국 시대 당시 고려와 후백제는 처음에는 별다른 충돌 없이 평화롭게 지냈으나 926년 9월에 후백제 왕 견훤이 고려 근품성을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후로 고려와 후백제는 수차례에 걸쳐 충돌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라는 대체로 고려를 지지하였는데, 이는 견훤이 신라의 무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모반을 일으켜 스스로 나라를 일으킨 역적이라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견훤은 늘 신라에 불만을 품고 지냈다.
927년 8월, 견훤은 마침내 신라를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신라 근암성(현재 문경시)과 고울부(현재 영천시)를 공격해 함락시키고 수도 금성(현재 경주)으로 진군했다. 위기를 느낀 신라 경애왕은 고려 왕 왕건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왕건은 신라를 돕기 위하여 9월 초에 시중 공선에게 1만 명의 군사를 맡겨 원군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고려군이 미처 신라에 도착하기도 전에 후백제군이 경주를 점령하여 친 고려적인 행동을 자주 하였던 경애왕을 자결하게 하였으며 경순왕을 새 왕으로 세웠다. 또한 왕제 효렴과 재신 영경 등을 포로로 사로잡았으며, 보물들을 약탈한 후에 귀환길에 올랐다. 이 소식을 접한 왕건은 크게 분노하여 친히 5000명의 정예 기병을 이끌고 퇴각하는 후백제군을 격파하기 위해 출전했다.
왕건은 발빠른 기병대를 이끌고 후백제군보다 한 발 앞서 대구 공산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퇴각하는 후백제군이 접근하는 순간 공격을 단행할 계략을 세웠다. 그러나 견훤이 이 계략을 미리 알아채고는 이를 역으로 이용하여 공산으로 향하던 고려군을 기습 공격하였다. 고려군은 곧 후백제군의 공격에 밀려나 포위당하였고, 왕건은 일생 일대의 위기에 처했다.
이때 고려의 개국 공신 중 하나였던 신숭겸이 왕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왕의 갑옷을 입고 백마에 올라 군사들을 지휘하였다. 이에 후백제군은 신숭겸을 왕건으로 착각하여 화살을 쏘아 신숭겸을 죽이고 그 수급을 취하였다. 또 다른 고려의 장수 김낙도 왕건을 자신의 말에 태우고 가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이어 전의갑과 전이갑 형제도 싸우던 중에 전사했다. 왕건은 간신히 탈출하여 목숨을 건졌으나, 신숭겸과 김낙을 포함하여 8명의 장수를 잃었으며 5000명의 군사 중 4930여명이 전사하고 불과 70명 정도의 병사들만이 살아 돌아오는 참패를 당하였다.
첫댓글 대구 팔공산 왕건길 8코스 36.5km를
하루에 다녀오셨네요.
대단하십니다 ~^^
역사와 문화 유지적지를 돌아보면서
천천히 1박 2일 코스로 다녀오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힘든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응원과 칭찬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구 팔공산 왕건길 8코스를 종주하셨네요
대단한 체력이십니다. 존경스럽구요 다녀오고싶어요
감사드립니다
팔공산 왕건길.
이름 보다는 못하네요.
몇 개 구간으로 나눠서 놀망쉬망 하면 좋을 듯 싶습니다.
좋은 날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