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일 수요일
얼어붙은 여자
ㅡ아니 에르노
김미순
아니 에르노의 『얼어붙은 여자』는 어린 소녀가 성인 여성, ‘얼어붙은 여자’가 되기까지 한 여성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소녀에서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아이의 엄마가 되는 과정은 문화와 교육으로 만들어진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비합리적인 차이를 발견하고 확인하는 시간에 불과하다.
화자는 작은 식료품 상회를 하는 엄마와 카페를 운영하는 아버지가 자연스럽게 집안일과 바깥일을 공유하는 집에서 자란다. 부모의 영향으로 남성과 여성에게 정해진 역할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낸다. 오히려 부모는 아이에게 여성스러움을 강요하지 않고, 책을 읽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그러나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를 벗어나면서 화자의 눈에 비친 세상은 성별에 따라 역할이 정해져 있으며, 남녀 간의 차이로 가득 차 있다.
보수적인 가톨릭 사립학교의 교육은 편협한 여성의 윤리와 역할, 그리고 모성애를 강조하지만, 사춘기인 화자는 소상공인의 자식으로 학업 성취를 통해 자신만의 확고한 위치를 만들어감과 동시에 성(性)을 발견하고 남성에 대한 동경을 키워간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 성에 대한 욕망 그리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근심은 청소년기 화자를 지배한다.
결혼에 대한 환멸, 그리고 결혼 이후 불확실한 삶에 대한 불안으로 망설이지만, 전통적으로 규정된 결혼 제도 속으로 들어간다. 젊은 대학생 부부의 삶은 남성과 여성에게 규정된 역할의 차이를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여행과 사랑보다 더 멋진 것은 없다고 믿던 자유롭던 소녀는 그렇게 얼어붙어간다.
을 아니 에르노는 『얼어붙은 여자』를 집필하면서, 남편과 헤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자유를 다시 찾고 이혼을 하기 위해 『얼어붙은 여자』를 썼다고 밝힌 바 있다. 작가는 『얼어붙은 여자』를 당시 남편에게 헌사했으며, 소설 출간 몇 해 후 이혼했다.
출간 40주년을 맞아 한국어로 번역된 『얼어붙은 여자』를 위해 아니 에르노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남녀의 불평등한 역할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해왔다. 소설의 시대적인 배경에서 6-70년이 흐른 오늘날에는 남학생들만큼 여학생들도 대학에 다니고, 여성들도 대부분 직업을 갖고 있으며, 피임을 통한 여성이 어머니가 되는 순간을 선택할 자유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커플로 살아가는 여성과 남성 사이에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단지, 소년과 소녀가 함께 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전통이란 것이 깨어나서 자신의 모델을 강요한다. 말하자면 한 성에 대해 다른 성의 지배와 불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커플이 되기 전에 일 분담, 아이 돌보기, 상호 자유의 문제에 합의해둘 필요가 있다. 커플이 된 후에는 대체로 너무 늦다. 왜냐하면, 함께 살아가는 이 모험을 조금은 덜 위험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나도 모르게 보수적인 성(性)역할에 젖어 있었다는 것이다. 대학을 나오고 결혼을 하고 직업을 가지고 자식을 키우면서 그야말로 슈퍼우먼으로 살아야 되는 것이 인생의 완성이라 여겼다. 새벽에 일어나서부터 저녁에 잘 때까지 긴장해서 일하고 먹거리를 준비하고 치우고 잠자리를 챙겨야 했다. 주말이라고 식구들 기분을 맞춰주어야 하는 힘든 세월을 견디어내야 했다.
내가 해방되는 시간은 성당에 가는 것과 책을 읽는 일, 글 쓰는 시간이다. 지금도 식구들 앞에서 자주 웃어야 하고 잘 먹어야 하고 잘 입어야 한다.병원에 꼬박꼬박 다녀야 한다. 내가 나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려면 새벽이 되어야 한다. 다 잘 때 운동도 하고 음악도 들으면서 책 읽고 글 쓰는 황홀한 시간을 즐긴다. 아참, 커피 내리는 시간도 매우 큰 즐거움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전화해 주는 언니, 병원에서 수 떠는 간호사와 물리치료사가 위로를 주고, 매일 내 글을 읽어주는 제자, 친구, 지인들이 내게 둘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베란다와 거실, 서재에서 파릇파릇 잘 크고 있는 화초들이 엄청 소중한 재산이다.
그리고 내가 읽을 만한 책을 듬뿍 사준 식구, 절판된 책을 검색하여 중고 책방에서 구해주는 식구가 있어 참 행복하다. 내 인생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준 아니 에르노의 [얼어붙은 여자] 에 또한 번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