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만필(月汀漫筆)
윤근수(尹根壽) 저
昔年余承敬差官之命。奉使嶺南。題僧軸云。鄕心迢遞白雲端 南國秋風道路難。馬上逢僧還一笑。滿山蒼翠要人看。南溟甚賞之云。
○ 옛날에 내가 경차관(敬差官)으로 영남(嶺南)에 내려갔을 때다. 중에게 준 시축에,
고향생각 아득해 흰구름 바라보니 / 鄕心迢遞白雲端
남국의 가을 바람 나그네길 어렵구나 / 南國秋風道路難
말 위에서 중 만나 도리어 한 번 웃으니 / 馬上逢僧還一笑
산에 가득한 푸른 숲은 날 좀 보소 하는구나 / 滿山蒼翠要人看
하였더니, 남명(南溟)은 이를 매우 칭찬하였다 한다,
退溪未釋褐時往還京路。嘗歷驪江之泛槎亭。以謁慕齋。退溪集中有自見慕齋。始知正人君子之道。呂州山僧。持詩軸而往謁退溪於嶺南。中有慕齋企齋二老絶句。退溪次韵其絶曰。二老仙遊知幾年。僧來見我臘梅天。自嗟疇昔登門客。淚洒遺篇雪滿顚。柳而見爲應敎時。將往議李判書潤慶謚。歷拜蘇齋。謂柳曰。判書是有名宰相。且南征時有功且多淸德。須以美謚謚之。柳曰諾。乃以懿肅翼莊懿度。備望報于政府。朴思菴時爲首相。合坐勘啓時。謂先生行狀未盡其實。欲發而不敢。此論極當。與右相林塘。同辭以告云。
○ 퇴계는 벼슬하기 전에 서울을 오가는 길에 여강(驪江)의 범사정(泛槎亭)에 들러서 모재를 뵌 일이 있었다. 《퇴계집》 속에,
“모재를 뵈온 뒤부터 비로소 정인 군자(正人君子)의 도를 알았다.”
는 말이 있다. 여주의 산승(山僧)이 시축을 가지고 영남으로 퇴계를 찾아가 뵈었는데, 시축 속에 모재ㆍ기재(企齋) 두 노선생(老先生)의 절구가 있었다. 퇴계는 그 절구에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두 노인 서거한 지 몇 해나 지났던고 / 二老仙遊知幾年
매화 피는 섣달에 중이 와서 나를 찾네 / 僧來見我臘梅天
예전에 찾아갔던 이 사람은 / 自嗟疇昔登門客
남긴 시에 눈물 뿌리며 백발을 슬퍼한다오 / 淚洒遺篇雪滿顚
유이현(柳而見 유성룡(柳成龍)의 자)이 응교로 있을 적에 판서 이윤경(李潤慶)의 시호를 의논하기 위하여 가는 길에 좌의정 소재(蘇齋)에게 들러 뵈었다. 소재는 유이현에게 이르기를,
“판서는 유명한 재상이며, 또 남정(南征) 때 공로가 있었고, 또 청덕(淸德)이 많으니, 모름지기 좋은 시호로 정해야 할 것이다.”
라고 하니, 유이현은,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곧 의숙(懿肅)ㆍ익장(翼莊)ㆍ의도(懿度)로 망단(望單)을 갖추어 의정부에 보고하였다. 그 때 박사암(朴思菴 박순의 호)은 수상이었는데, 합석하여 계(啓)를 감정(勘定)할 때 시호가 그의 실정을 다 그려내지 못하였다 하여 고치라고 도로 내려 보냈다. 소 정승은 말하기를,
“이 논이 극히 합당하다.”
하고, 우상 임당(林塘 정유길(鄭惟吉)의 호)과 함께 같은 말로 고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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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집(月汀集) 윤근수(尹根壽)생년1537년(중종 32)몰년1616년(광해군 8)자자고(子固)호월정(月汀)본관해평(海平)봉호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시호문정(文貞)특기사항이황(李滉)의 문인
月汀集 別集 卷四 / 漫錄
103. 退溪未釋褐時,往還京洛,嘗歷驪江之泛槎亭謁慕齋。《退溪集》中有云:“自見慕齋,始知正人君子之道。” 驪州山僧持詩軸,往謁退溪於嶺南,中有慕齋、企齋二老絶句。退溪次韻曰:“二老仙遊知幾年,僧來見我臘梅天。自嗟疇昔登門客,淚灑遺篇雪滿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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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집 제2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 스님에게 주다〔贈山人〕
고향 생각은 아스라이 흰 구름 끝에 맴도는데 / 鄕心迢遞白雲端
남국에 추풍 불어 갈 길이 어려워라 / 南國秋風道路難
말 위에서 스님 만나 한바탕 웃고 나니 / 馬上逢僧還一笑
온 산에 푸른 숲이 눈길을 잡아끄네 / 滿山蒼翠要人看
[주-D001] 스님에게 주다 : 이 시는 윤근수가 영남에 경차관(敬差官)으로 내려갔을 때 지은 작품이다. 《月汀集 別集 卷4 漫錄》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김영봉 (역)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