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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랑 시집
『85B』
979-11-7155-010-4 / 118쪽 / 130*210 / 2023-11-03 / 12,000원
■ 책 소개 (유튜브 영상 바로 보기)
2020년 계간《문장》으로 등단한 서정랑 시인의 첫 시집 『85B』.
가혹한 우리 생의 가운데, 희미해진 사랑의 얼굴을 시의 촉수로 세심하게 더듬고 온기로 어루만지는 시편을 담은, 개성 있는 시집이다. 시간, 기억, 상처와 함께, 그 너머에 숨어 있는 “사랑의 마음”을 탐색하는 65편의 시편이 1부 ‘퍼져 오르는 둥근 외침’, 2부 ‘순서 없이 피고 지는’, 3부 ‘그냥 흔들려 주면 될걸’, 3부에 나누어져 실렸다.
■ 저자 소개
서정랑 시인
경북 안동 출생
계간 《문장》 신인상(2020년)
한국문인협회, 문장인문학회, 여백문학회 회원
시공간 동인
구미문화예술공모전 대상 수상(2003년)
■ 목차
시인의 말
1 퍼져 오르는 둥근 외침들
사과나무 女子 / 매생이 요리하기 / 오동나무 공장 / 냉장고에 대한 단상 / 완행열차를 잘못 탔던 것이다 / 봄밤의 외출 / 아귀를 위하여 / 울창했던 숲이 겨울 들자 / 봄은 발끝에서 온다 / 구지우체국이 읽은 시 / 두고 온 나이테 / 오르막 식당 / 내가 칸나였을 때 / 드립커피 내리기 / 어느 별로 갔을까 / 빗나간 칭찬 / 몸을 반추하다 / 철없는 장미 / 봄은 사쿠라였나 / 물결 멈추다 / 언제 봤던가
2 순서 없이 피고 지는
사랑채가 울었다 / 기억이 졸고 있다 / 진눈깨비 / 꿈의 전당포 / 김태형 김종수 이야기 / 개와친선 / 오리오빠 / 어떤 가출 / 이유 있는 한 줄 / 코스모스 모텔 / 그 수요장날 / 엘리베이터 / 시월의 마당 / 돌을 찾아서 / 반짝이는 굴레 / 카카오톡 / 단물 빠는 여자 / 나드리찐빵 가게 / 재래식 변소에서 조간신문 읽기 / 연꽃 1 / 연꽃 2 / 칼국수
3 그냥 흔들려 주면 될걸
섬 / 앉은 꽃 / 녹색 커튼이 있는 방 / 그냥 흔들려 주면 될걸 / 누가 보도블록을 벌려 놓았을까 / 응급실 / 85B / 곱창 골목에서 / 사각지대 / 근태 수첩 / 은행나무 속내 / 엉겅퀴란 이름으로 / 너에게 부탁해 / 오늘 내린 비 / 침대도 늙어가는가 / 인연 / 나비바위 / 목련의 말 / 임플란트 / 얼굴반찬 / 간절기 / 환영
| 해설 | 사랑, 가혹한 시간을 이겨내는 힘|손진은
■ 출판사 서평
시인은 ‘나’와 ‘가족’ ‘이웃’의 삶, 우리가 몸담은 일상의 서사를 “객관적 상관물이나 상징을 통해 새롭게 의미화시켜 드러내려는”(손진은 시인, 문학평론가) 시 창작의 경향을 보이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인 “사랑”의 방향을 다시금 돌이켜보고 환기하는 시편들을 『85B』에 담았다.
“미세먼지 뿌연 갓길 모퉁이/ 자목련 봉오리 내미는 아침마다// 어쩐다, 한 철 다시 피워보고 싶어/ 부푸는 이 마음을?// 자색 브래지어 갖춰 입고 달려가는데/ 수줍게 감싼 B컵 레이스 안쪽/ 가슴이 막. 흔들린다// 도도하게 피어났던 내 첫사랑/ 최루탄 가스 맵던 85학번의 눈물/ 시크한 나의 혈액은 B, 문학개론 학점도 B/ 덜 자란 키만큼 사랑만큼/ 자줏빛 매달다 손 들어/ 답례하지도 못하고 고개 숙인 봄// 목련 가지 틈새마다 어른거리는/ 그때 그 그림자,/ 잎보다 먼저 핀 꽃봉오리/ 바람의 장난질에 툭/ 놓아버리고 싶진 않다// 유턴하여 가는 길/ 햇살 따라 풀어진. 당신이 안아줄/ 젖꽃판 같은 그 시간이/ 눈앞에서 수줍게 손을 흔든다”(표제작「85B」 전문)
시인은 자신의 지난 시절과 우리 모두의 삶에 존재하던 어떤 기억과 지금의 현실을 정직하고 탄탄하게 묘사할 줄 아는, 내공 깊은 시인이다. 기쁨, 슬픔, 아픔, 이별, 죽음 등 삶의 면면과 체험, 서사를 생생하게, 때로는 서정적으로 그려내었다.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감각적이고 신선한 표현 또한 빼어난 시인의 개성이다.
“떠돌다 달콤해지고 만 상처의 육즙/ 오랫동안 가지에 두고 결박하더니/ 땅속 머리 박고, 공중에 훠이훠이/ 팔다리 뻗어 짜디짠 바닷물에 푹 젖었다”(「사과나무女子」)
“매생이, … 잡히지 않는 빨랫비누처럼 물컹거리는 매생이,… 온몸에 녹아든 잿물 냄새와 피부 발진 돋은 작은 손, 끓인 매생잇국 겁 없이 삼켰다가 입속은 다 헐어버리고”(「매생이 요리하기」)
“빈소에는 향이 피어오르고 수염은 길어져만 갔다// … // 저고리를 적시는 소리 없는 눈물/ 하얀 수염 끄트머리까지 흘러내려/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고 있는 증조할배는/ 사랑방에 꼼짝 않고 주저앉았다”(「사랑채가 울었다」)
“…넓어진 이발소 뜨락. 아이들 소리 떠다니던 동안 그 동굴에서 우화한 그네들이 집게발로 웃음을 낚아챘다 꽃종이 창문도 달그락달그락 웃었다 시리게 높아서 낮아진 허공이 앉은뱅이 꽃그늘 위에 바짝 당겨 앉았다”(「앉은 꽃」)
“시인의 시들 외피를 한 겹씩 벗겨나가면 그 가장 내밀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 그녀의 눈을 밝게 해주는 것은 가족이고 추억이며 죄 없는 사물이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시에서 자신을 빼내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다.”(손진은 시인)라는 평대로 시인의 시에는 “사랑”이 시의 기저마다 깔려 있다. 애틋한 그 얼굴이 선연하게 드러난다. 알아차리기- “맞다, 아무래도/ 수박 한 덩이 값으로 놓고 온 지폐 몇 장/ 그건 내 몸의 굴곡 사이에 감긴 나이에게 서비스한 거!”(「두고 온 나이테」), 함께하기- “지금, 내게 와 준 당신/ 미뤄둔 말들 파편 튀듯 별로 흩어지고/ 등신 얼굴, 최고의 성찬 아닌가요”(「얼굴반찬」), 바라봐 주기- “눈가 입가 졸음은 다가와도/ 늦은 밤 돌아온 딸 들여다보는 엄마는/ 보고 싶던 잘 익은 딸을/ 주르르 젓가락 사이로 가락지게 흔든다”(「칼국수」), 감사하기- “말랑해진 바위 그대를 만나/ 핏줄 안쪽까지 편안해졌다”(「나비바위」), 내려놓기- “구더기가 구불구불 써놓은 삶의 지침서를 조간신문에서 읽고서야 도회로 돌아오는 길이 홀가분하였다”(「재래식 변소에서 조간신문 읽기」), 긍정하기- “몰래 감추고 평생 갈 것들인 들꽃/ 해마다 오월이 오면 말없이 피는 그들처럼/ 그냥 흔들려 주면 될걸”(「그냥 흔들려 주면 될걸」), 이 모두가 “사랑”의 얼굴이라는 것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우리 삶을 구원해줄 사랑, “가혹하고 지루한 형벌 같은 생을 이길 힘, 불꽃이 될 사랑”의 얼굴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시집 『85B』이다.
“쓰림도 허함도 아닌 빈 위장에/ 곰탕 국물 뜨끈하게 채우고 싶다// 한 마리 곰이 웅크린 동굴/ 내 속 뜨뜻하게 데워지면/ 웅녀처럼 그대 푸근하게 안아줄까// 밤새워 다 태운 애간장 빗줄기/ 짭짤해진 국물 들어올/ 촉촉한 길은 열어두기로 한다”( 「오늘 내린 비」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