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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위하여
이 홍사
도대체 인간은 무엇을 기다리며 살까?
포클레인 기사, 주 성식씨는 조종석에 앉아 레버를 잡은 손을 놀리며 그런 생각을 하고 고개를 갸웃한다. 난데없이 그런 생각이 왜 들었을까.
극단적인 대답인지 모르지만 결국 죽는 날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아닐까? 주 기사는 또 고개를 갸웃한다. 이 대답을 기다려 던진 자문이 아닌데 궁극적인 대답이 나오고 말았다. 인생은 결국 기다림의 연속과 반복인데 그 기다림이 죽음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바쁘니까, 인간이 왜 사는지, 그 따위 급하지 않은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하자. 주 기사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주 기사는 지금 죽음이 아니라 트럭을 기다리고 있다.
최 기사가 대형트럭을 끌고 올 때가 되었다.
오늘은 사과나무 둥치를 실어 제천의 화력발전소로 보내게 되어 있다. 그곳은 아무 나무나 가리지 않고 다 받는다. 톤당 얼마를 쳐서 어떤 나무나 수종을 가리지 않고 가격이 일정하다. 대형트럭에 실어 계량증명업소에서 무게를 달아서 보내면 나무 값이 통장으로 들어온다. 무게로 환산하기에 나무가 마르기 전에 보내야 되는데 일이 바빠서 조금 늦었다.
겨우내 오지 않던 눈이 경칩이 지난 엊그제 제법 많이 와서 트럭이 밭에 수월하게 들어올 수 있을지 걱정이다. 눈은 다 녹았지만 땅이 아직 마르지 않아 질퍽거린다. 나무를 한 차 가득 싣고 못 빠져나가면 그런 낭패가 없다.
나무 둥치를 한쪽으로 밀쳐놓고 차가 들어올 수 있도록 젖은 흙을 걷어내고 길을 닦는다. 화물차가 들어오기 전에 또 회전집게로 교체를 해야 한다.
포클레인 문을 닫고 앉았지만 사과나무 둥치에서 진동하는 유황냄새가 조종석을 파고든다.
베어놓은 사과나무 둥치는 몇 십 년간 뿌린 유황이 찌들어 껍질이 누렇다. 이 유황냄새 때문에 가정에서는 사과나무를 장작으로 이용하지 않는다. 껍질을 벗겨도 냄새가 나무속까지 배어 불을 피우면 여전하다. 옹이가 많고 제 멋대로 구부려져 제재를 하더라도 목재로 쓸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유황성분 때문에 톱밥으로도 이용할 수가 없어 태우는 방법뿐이다.
과수원 주인 신곡리 이장, 권 재학씨로부터 사과나무를 정리하자는 제의를 받은 건 지난 가을이었다. 수령이 이십 년이 넘으면 사과나무가 과수로서는 고목이다. 이장은 삼 년 전에 과수 사이사이에 개량종 묘목을 심어두고 그 묘목이 제법 자라 사과가 한두 개씩 달리자 손이 많이 가고 수확이 현저히 떨어진 고목은 없애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이다.
나무장사는 아니지만 주 기사로서는 늘 하는 일이라 급할 것도 심각하게 고민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과수원에 목을 매고 있는 이장으로서는 중대한 사안이라 사흘이 멀다 하고 전화가 와서 시간을 내서 현장을 답사했었다.
이장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경제적 부담이 적은 방법을 찾고 있는 말이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포클레인으로 그대로 작살을 내서 한 곳으로 끌어다가 밭을 파고 묻는 방법이지만 고목 사이에 묘목이 자리를 잡은 관계로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밭을 둘러보고 제천으로 보내자고 했다.
화력발전소에서 나무를 받는다는 걸 주 기사는 알고 있었다. 그걸 설명하자 그런 방법도 있느냐면서 이장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나무의 무게를 달아서 포클레인 작업비와 화물차 운송비만 나온다면 그보다 큰 다행이 없겠지만 주 기사 예상으로는 절반도 못 미친다. 그렇더라도 보내고 모자라는 비용은 이장이 부담을 하겠다고 해서 나무를 싣기 좋게 화물차 적재함 폭으로 자르라고 했다. 주 기사 말대로 겨울에 엔진이 달린 톱으로 인부를 사서 잘랐으니 인력으로는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둥치가 크다.
잔가지는 겨우내 이장이 틈틈이 노는 손으로 다 정리를 했고 이천 평이 넘는 밭에 과수 둥치만 여기저기 늘려있었다. 그걸 지난 설 아래 포클레인에 회전집게를 달고 차가 들어오기 좋은 곳에 하나씩 둘 씩 물어다가 모았는데 주 기사가 시간이 나면 화물차가 안 되고 화물차가 된다고 연락이 온 날이면 주 기사가 다른 일이 잡혀 차일피일 미루었다.
이 동네 이장을 이십 년이 넘게 한 권 이장에게 밉상을 보이면 이 동네의 일은 물 건너간다. 이장의 소개로 이 신곡리의 일을 주 기사가 독차지했다. 동네 진입로 확장공사부터 시작해서 단골이 된 지가 십 년이 넘어 포클레인 주 기사라고 하면 내 일처럼 성심껏 해주는 베테랑이라고 동네주민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일이 바빠 다른 포클레인을 보내준다고 하면 손사래를 치고 일을 며칠 미루더라도 주 기사가 오기를 기다려주는 동네다.
최대한 이장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려면 나무가 더 마르기 전에 실어 보내야 되는데 이상하게 일이 꼬여 늦었다. 차만 쉽게 들어온다면 한 나절이면 끝을 내서 보낼 일인데 땅이 젖어 걱정이다.
젖은 흙을 걷어내고 있으니 보고 있던 이장이 담배를 문 채로 발로 밟아 본다. 주 기사도 내려서 이장과 같이 새로 닦은 곳을 밟아보았다. 걷어낸다고 걷어냈지만 조금 질다.
-주 기사! 이거 불안한데, 화물차를 아예 취소시키고 땅이 마르면 다시 날을 잡는 게 어때?
-차는 지금쯤 오고 있을 터인데, 이거 불안하네요. 적게 온 눈비가 아닌 모양이네요. 나무가 더 마르면 무게가 줄어요.
-이 까짓 거, 몇 둥치 없다고 생각하면 되지. 이제는 농기계가 돌아다닐 수 있으니 바쁜 거 없어. 느긋하게 생각해.
이장은 말을 시원시원하게 했다. 속이 답답한 건 이장일 터인데 항상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주는 인품을 지닌 사람이다. 주 기사는 그 점이 늘 고맙다.
이장과 땅을 밟아보고 있는데 화물차 엔진소리가 들리더니 언덕배기에 화물차가 대가리를 드러냈다. 양쪽에 산으로 막힌 골짜기라 엔진소리가 더 크게 들렸고 좁은 농로에서 보니 화물차가 더 커보였다. 두 대가 연이어 올라오고 있었다.
-아따! 차가 어지간히 크게 보이네. 저게 몇 톤 차여?
-이십오 톤 대형화물입니다.
-저렇게 큰 차를 어디서 돌리나?
-마을회관 앞에 가면 돌릴 수 있을 겁니다.
마을회관 앞도 그리 넓지는 않지만 대형화물이라 앞바퀴가 둘, 뒤축이 셋이라 맨 앞바퀴나 맨 뒷바퀴가 논이 있는 허공까지 침범을 해도 주행에는 지장이 없기에 가능할 것이다.
차가 언덕배기를 완전히 올라와서 최 기사가 운전석 차창을 열었다. 주 기사는 올라가서 돌려오라고 손짓을 했다. 최 기사는 옛날에 덤프트럭을 할 적부터 알고 있는 사이다. 덤프트럭을 하다가 누구의 유혹을 받았는지 레미콘을 사가지고 콘크리트회사에 지입을 넣어 몇 년 하더니 그것도 재미가 시원찮았는지 지금은 대형화물을 사서 뛰고 있다.
-주 사장! 어디 가서 돌려?
최 기사가 차창 밖을 내다보고 소리쳤다.
-마을회관까지 그대로 올라가.
최 기사가 닦아놓은 곳을 보더니 의심쩍은 듯이 고개를 갸웃하고 내리지 않고 그대로 올라갔다. 뒤차도 따라서 올라갔다. 운전으로 뼈가 굵은, 베테랑 최 기사가 고개를 갸웃했으니 걱정이 앞선다.
주 기사가 젖은 흙을 다 걷어내고 회전집게로 바꾸는데 최 기사가 차를 돌려서 내려왔다. 두 대 다 내려온 게 아니고 한 대는 그 곳에 세워두고 한 대만 내려왔다.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상황을 보고는 알아서하는 사람이다. 도로가 좁아서 두 대가 내려오면 길이 막힌다. 쭉 올라가서 고개를 넘으면 군위 읍내로 빠지는 길이다. 농로는 좁아도 읍내로 빠져나가는 지름길이라 차가 수시로 다니니 길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 기사가 핸들을 감아서 맞은 편 남의 밭으로 대가리를 밀어 넣었다가 후진을 했다. 처음에는 잘 들어오더니 차가 완전히 밭에 들어서자 뒷바퀴가 헛도는 것이었다. 이런! 최 기사는 다시 차를 앞으로 조금 전진 시켰다가 속도를 높여 후진을 했다. 겨우 몇 발짝 더 들어와서 또 헛바퀴가 돌았다. 최기사가 차에서 내려왔다.
-주 사장! 안되겠는데? 빈차도 이런데 짐을 실으면 완전히 내려앉을 거야.
-눈비가 많이 온 모양이네?
-저 위 쪽으로는 아직 안 녹고 이 만큼 쌓여있어. 어제 홍천을 갔다가 왔는데 장난이 아니야. 다음에 날을 잡지?
-나야 괜찮지만 최 기사가 오늘 공쳐서 어쩌나?
주 기사가 최 기사 걱정을 했지만 최 기사는 괜찮단다. 농협 도정공장에 왕겨 실으러 가면 된단다. 오늘 하자는 거 내일로 미뤄두고 왔다고 했다. 뒤차는 어쩌느냐고 걱정을 하자 두 대가 실어야할 짐이라면서 괜찮단다.
다행이다.
그런 말들을 하고 빨리 가야한다면서 차를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두 번하더니 탄력을 붙여 밭을 빠져나갔다. 그리곤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농로를 빠져나갔다. 차가 빠져나가니 바퀴에 끼어있던 흙이 농로의 시멘트 포장도로에 우두둑 떨어졌다. 최 기사가 전화를 했는지 마을회관에 있던 차도 금세 내려와 최 기사가 흘려놓은 흙을 갈아 뭉개고 농로를 빠져나갔다. 주 기사는 회전집게를 다시 풀고 걷었던 흙을 원상 복구해야 한다. 그대로 두었다가 다시 눈비가 오면 웅덩이가 될 것이다.
원상 복구를 하고 있는데 이장이 밭둑에 서서 휴대폰을 귀에 대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다. 빨리 하고 오늘은 포클레인 손을 좀 봐야 할 것이다. 주 기사가 끌고 다니는 포클레인은 두 대다. 지금 운전하고 있는 소형과 휠 타입의 중형이 한 대 더 있다. 기사를 따로 들이지 않고 혼자서 현장 여건에 따라서 이것을 끌고 나갔다가 저것을 끌고 나갔다가 한다.
주 기사가 빠른 손놀림으로 원상복구를 거의 끝낼 때쯤 흰색 소형승용차 한 대가 언덕길을 올라와서 농로 가장자리 붙어 서는 것이었다. 웬 차지? 흰색 소형승용차에서 아가씨 하나가 보자기를 들고 내렸다. 얼른 보아도 다방아가씨다. 이장이 커피를 시킨 모양이다. 일은 안 되고 그냥 보내기 미안해서 시킨 모양인데 달갑잖다.
시대가 바뀌었다.
오일장이 없어진 지 오래됐고 면소재지가 쇠락해 다방으로 찾아가는 손님은 없다. 들판에서 전부가 시켜서 먹는다. 커피뿐만이 아니라 새참의 메뉴가 바뀌었다. 휴대폰이 보급되고부터 새참으로 자장면이 인기다. 들판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자장면과 커피를 시켜 먹는다. 면소재지의 다방으로 찾아가는 손님은 가뭄에 콩 나듯하다. 거의가 배달인데 전부 들에서 시킨다. 어느 우사나 들판에서 시켜도 귀신같이 찾아온다.
밭둑에 보자기를 푼 아가씨가 이장과 뭐라고 하더니 주 기사를 부른다.
-잘 생긴 오빠! 커피 한 잔 하고 해요.
그 소리가 포클레인 엔진소리에 묻혀버린다. 주 기사는 무슨 말인지 알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자 오라고 손짓을 하더니 입고 있던 짧은 스커트를 살짝 들어 허벅지를 보여주며 몸을 꼰다.
별짓 다 하는군.
그러자 이장이 또 손짓을 한다.
주 기사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내려온다. 밭둑으로 다가가니 아가씨가 커피가 든 잔을 내민다. 얼굴은 화장으로 떡칠을 했지만 나잇살을 감출 수가 없는 다방아가씨로서는 퇴물에 가깝다. 혹시 마담이 직접 온 것인가?
-마담인교?
-아니라예, 아가씨입니더.
경상도 사투리를 흉내 내지만 억양이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본토가 어딘지 아리송하다.
한 모금 마시자 늙은 아가씨가 말을 건다.
-잘생긴 오빠! 커피 맛있죠? 들에서 마시는 커피가 최고래요.
주 기사는 영양가 없는 소리로 심드렁한 대꾸를 한다.
-커피보다 네가 맛있게 생겼다.
-들에서 보니까 더 맛있게 생겼죠? 오빠도 참 찰지고 맛있게 생겼다.
-너? 어느 입인지 모르겠지만 입맛은 살아있구나. 그만두자. 요즘 말 잘못하면 미투에 걸린다.
-영업용은 괜찮아요.
-너 영업용이냐?
-커피만 마시려고 들에서 다방커피를 시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음탕하고 진한 농담이나 하면서 눈요기라도 하려고 부르는 거지. 그렇잖아요? 이장님,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이장을 걸고넘어진다,
-나는 농담할 줄 몰라. 젊은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고. 둘이 커피마시고 있어 내 집에 잠깐 잤다가 올게.
커피를 다 마신 이장은 주머니의 지갑을 꺼내 지폐 한 장을 아가씨에게 건네고 오토바이에 올라앉는다.
-고향이 어디냐?
-이 동네예요.
-농담 말고.
-서귀포.
-성은 박 씨지? 박 씨처럼 생겼는데?
넘겨짚어 묻는다. 그래야 바른 대답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다.
-아니, 선다방 별양.
-허허 우주에서 바로 내려온 별 씨의 시조구먼.
믿지 않는다. 제 고향과 나이를 제대로 알려주는 다방아가씨가 조선에는 없다. 그러나 이장이 사라지자 서먹해서 물어본 말이다. 서귀포라고 했으니 강원도 어디쯤 되는 모양이다.
-잘생긴 오빠 참 맛있게 생겼다. 이거 찰고구마지?
장난삼아 주 기사의 사타구니를 살짝 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찰고구마? 별소리를 다 듣는다. 네가 더 찰지고 맛있게 생겼다.
주 기사가 마신 커피 잔을 받아서 보자기에 싸면서 아가씨는 말했다.
-맛있게 생긴 오빠! 오는 2월 30일에 서귀포 역전에서 만나요. 한번 줄게요. 호호호.
듣고 보니 2월30일도 없을뿐더러 서귀포에는 역이 없다. 저렇게 쭈글쭈글한 나이가 되도록 다방을 전전하며 많이 써먹는 말일 것이다.
-너 여우 띠냐?
-그래요 백야시 띠랍니다. 호호호. 그날 꼭 와요, 화끈하게 한번 줄게요.
그 말을 끝으로 보따리를 챙겨서 소형 승용차를 돌려서 농로를 빠져나갔다.
-제 입으로 저렇게 나불댔으니 미투에는 걸리지 않겠군.
미투(me too) 풀이하면 ‘나도 그렇다’는 신조어인데 성추행 피해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유행처럼 쓰이고 있다. 나도 그렇게 당했어. 나도 그랬어. 인터넷의 댓글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글들이다. 이제는 얼굴을 쳐다만 보아도 상대가 성적으로 수치심을 느끼면 성추행이 되는 세상이다. 성추행이 주관적이 아니고 지극히 객관적으로 바뀌었다.
조심해야지.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주 기사는 담배를 한 대 물고 다시 포클레인에 올라앉는다. 서둘러 마쳐야 한다. 다음으로 미룰 걸 괜한 짓을 해서 허드레 일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헌데 인간은 무엇을 기다리며 살까?
이런 또 그 질문이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회의적인 자문을 할까?
혹시, 2월 30일을 기다리며 사는 게 아닐까?
에라, 모르겠다. 일이나 마치고 생각하자. 주 기사는 무의식적으로 레버를 놀린다. 무의식적이지만 일은 줄고 있다.
화끈하게 한번 줄게요. 화끈하게.......
그 말이 귀에서 풀어지고 있었다. 화끈하게 주는 것은 어떻게 주는 것일까? 헛소리지만 달콤하고 매혹적이다. 주 기사는 엇길로 나가는 상상을 다독인다.
복구 작업이 거의 끝나갈 때쯤 이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왔다. 오토바이 뒤에 실린 박스가 아무래도 사과이지 싶다. 허드레 일로 공을 쳤으니 커피 한잔으로 때우고 그냥 보내기가 미안했던 모양이다.
평탄작업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운송차량에 장비와 회전집게를 싣고 떠날 채비를 하자 이장이 오토바이 뒤에 실린 사과상자를 조수석에 실어주었다. 주 기사는 뭔지 알면서도 묻는다.
-아이고 또 뭡니까?
-사과여, 애들 갖다 줘, 사과가 좀 골아서 상품이 되기는 틀렸어. 나눠 먹어야지. 그런데 언제쯤 다시 날을 잡을 거여?
-날씨를 보고 중간에 제가 한 번 들르던지 하지요. 땅을 한번 밟아보고.......
-그랴. 늦어도 상관없으니까. 안전한 날을 잡자구. 괜히 왔다갔다 공치지 말고.
인사를 하고 운송차량을 끌고 농로를 나섰다.
어디부터 가야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어정쩡한 날 장비 두 대의 손을 보아야 되는데 부품가게부터 들러야할지 용접을 하러 정비공장에 가야할지 모르겠다. 일단은 집 옆에 공터를 이용한 차고지로 가서 작은 장비는 세워두고 휠 타입 포클레인을 끌고 정비공장에 먼저 가는 게 나을 것이다. 거기에서 다른 장비들이 밀려있으면 곤란하니까, 그것부터 손보는 게 우선이다. 오일이나 소모품 교환은 주 기사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하는 것이니까 다른 날 짬을 이용해서 해도 무방하다.
사십 분이 넘게 걸려 시내 변두리에 있는 집 앞에 도착하자 주 기사 아내인 손 말순 여사가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 밍키를 운동시키려는지 개를 끌고 나와 차고지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오늘 일을 일찍 마쳤어요?
차에서 내리자 손 말순 여사가 물었다. 강아지는 얼굴을 아는지 주 기사를 보고 꼬리를 흔들며 짖어댔다.
-아니, 공쳤어.
-새벽밥을 먹고 나가더니 공쳤어요?
-이런 날도 있지, 뭐, 이거나 애들 갖다 줘.
조수석에 실린 사과상자를 내려서 손 말순 여사에게 안겨주었다.
-자기는 먹지도 않는 사과를 왜 사요?
-산 게 아니야. 나 빨리 정비공장에 가야 돼.
사과상자를 아내에게 안기고 주 기사는 공터에 서 있는 큰 포클레인으로 올라가 시동을 걸었다. 오랜만에 시동을 거는 거였다. 최근에는 작은 장비 일이 밀려서 작은 장비를 끌고 나갔었다. 포클레인이란 작업 여건에 따라서 작은 장비가 필요할 때도 있고 휠 타입의 중형 장비가 필요할 때도 있다. 하여 업으로 삼으려면 두 대 정도는 구색으로 갖추어 놓아야 한다.
주 기사는 사과를 먹지 않는다. 아니, 못 먹는 것이다.
사과를 먹으면 부작용이 일어나는 체질은 결코 아니다. 정신적으로 피폐감과 더불어 자괴감이 오기 때문이다.
주 기사 집에 사과나무를 심은 건 그가 중학을 다닐 때였다.
그 전에는 뽕밭이었는데 주위의 한두 집이 사과나무를 심자 뽕 농사를 더 이상 지을 수가 없었다. 사과나무에서 치는 농약 냄새가 뽕밭에 날아들어 누에가 뽕잎을 먹지 않는 것이었다. 누에는 농약냄새에 참으로 민감했다.
누에농사는 일 년에 두 번을 할 수가 있었다. 봄 뽕은 가지를 낫으로 쪄서 먹이고 가을 뽕은 잎을 따서 먹였다. 시골의 수입원치고는 괜찮은 농사였는데 옆의 밭에서 날아든 농약냄새 때문에 수입원이 절반에 못 미치자 아버지는 고심하다가 뽕나무를 다 캐내고 그 큰 밭에 사과나무를 심었었다. 당시에 유행하던 개량종이라는 부사였다.
누에농사를 지을 적에는 일손이 딸려 주 기사도 새벽에 일어나 뽕을 따다가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갔는데 사과나무를 심으니 새벽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그러나 아버지께선 근심의 골이 깊어졌다. 일 년에 두 번 나오던 수입원이 당장 없어졌다. 사과나무가 자라서 수입을 낼 때까지 사오 년간 투자만 해야 되니 그 동안의 살림을 걱정하셨다. 하여 사과나무 묘목 사이에 땅콩도 심어보고 강냉이도 심어보았지만 누에농사만큼 수익을 내지 못했다.
당시에 사과 과수원을 가지면 부잣집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사오 년 수입이 없이 투자만 하고 다른 농사로 견딜 수 있는 집이었으니 그런 소리를 들었던 모양이다.
주 기사네 뽕밭은 마을의 들판 중간에 있는 장방형의 가장 큰 밭이어서 동네사람들은 그 밭을 두고 ‘큰밭’ 이라고 불렀다. 사천 평이 넘는 그 밭에 반은 뽕나무였다. 누에농사도 잠실까지 갖추고 동네에서 제일 많이 지었다. 누에고치를 공판하고 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당시의 백 원짜리 지폐를 큰 보자기에 싸서 묵직하게 들고 오셨다. 그 때만 하더라도 통장으로 계좌이체 시키는 시스템이 없었던 모양이다. 아버지께선 사천 평에 다 뽕나무를 심고 싶어 하셨지만 누에가 막잠을 자고나면 농번기라 일손이 턱없이 딸리고 잠실이 부족했다. 누에가 막잠을 자고나면 먹성이 좋아져서 온 식구가 매달려야 했다. 밭 전체에 뽕나무를 심지 않기를 잘한 일이었다. 주위에 사과밭이 생기면서 누에농사는 끝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가깝고 만만한 도회의 공업학교로 나갔으니 사과나무가 일손이 얼마나 가는지 몰랐다.
올 적마다 부모님은 사과밭에 나가시고 안 계셨다.
방학이나 주말에 오면 제법 자란 묘목에서 서너 개씩 달려 팔만큼은 안 되고 사과를 맛 볼 수가 있어서 좋았다. 부사란 품종은 풋사과는 국광이나 홍옥보다 맛이 덜하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누렇게 익으면 맛이 그만이라 비싼 값에 팔렸었다. 홍옥은 빨갛게 익지만 부사는 누렇게 익으며 과즙이 풍성하다.
사과나무에 손이 많이 간다는 건 주 기사가 사과나무가 좀 크고서야 알았다. 봄이 오기 전에 가지치기를 하고 초봄에 유황을 치면 그 때부터 온 식구가 매달려야 한다. 과일솎기를 하고 열흘마다 주기적으로 농약을 쳐야 했다.
중학시절에 심은 과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수입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겨우 농약 값이 될까 말까 하더니 그 다음해에는 수입이 곱절로 올랐고 그 이듬해는 또 곱절로 올랐다. 아버지는 신이 났다. 그 동안 농협에 진 빚을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사과밭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주 기사가 어린 나이에 보기에도 저렇게 하시다가 몸 상하지 싶을 정도로 두 분은 열성을 넘어 극성이었다.
주 기사의 예감은 불행하게도 적중했다.
일이 터졌다.
군에서 훈련을 마치고 자대로 배속되어 얼마 되지 않아 관보가 날아왔다. 관보는 면사무소에서 군으로 보내주는 전보였는데 대부분 비보였다. 파견 나가 있다가 비상전화를 받고 중대본부로 가니 중대장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면서 빨리 집으로 가라면서 준비한 휴가증을 내밀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실감이 나지 않았다. 거짓말 같았다. 어머니가 들일은 바쁘고 아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허위로 관보를 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야간 군용열차를 타고 집에 도착해서 보니 정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사과밭에 풀을 뽑다가 쓰러지신 것이다. 같은 사과밭에서 일하고 계셨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쓰러지는 걸 보지 못하셨고 뒤늦게 발견하고는 병원으로 옮겼지만 늦었다고 했다, 당시에 어머니 나이는 고작 마흔여섯, 사과를 위하여 요절하신 것이었다.
장례를 마치고 주 기사가 사과밭을 둘러보니 어머니의 신발만은 쓰러지셨다는 자리,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주 기사는 신발을 사과나무 둥치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사과밭을 돌아보며 씁쓸히 귀대했다.
그렇게 귀대했는데 아버지마저 팔 년 후 농약을 치다가 쓰러지셨다. 그 곳도 사과밭이었다. 만성 농약 중독이었다. 병원으로 옮겨져서 중독으로 인한 여러 가지 합병증이 있다는 진단을 받으셨다. 최종 진단은 췌장암이었지만 발병원인은 술이나 담배가 아닌 발암물질인 맹독성 농약이었다고 주치의는 말했다. 그 때 아버지 연세는 쉰여덟이었다. 지금은 백세 시대라고들 한다. 백세 시대에 두 분은 사과를 위하여 요절하신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동네 사람들은 서로 사과밭을 도지로 얻겠다고 나섰다. 주 기사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보였지만 사과나무로서 수입이 가장 짭짤한 시기라 서로 탐을 냈다. 주 기사는 농사를 모를뿐더러 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아 촌수를 고려해서 재종숙에게 사과밭과 사과저장고를 도지로 주었다.
재종숙은 술이라면 머리맡에 그냥 두고 자지 못하는 분이었다. 소주를 마시지 않으면 손을 떨고 소주를 하도 마셔서 펑퍼짐한 코끝이 벌겋게 변했다. 집에서 술을 못 마시게 하자 장에 나가면 경운기 뒤에 소주를 두세 박스씩 사다가 재종숙모의 눈을 피해 사과밭에 몰래 묻어놓고 사과밭에 나가면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소주를 잔으로 마시는 게 아니라 병나발을 불고 풋사과 한 조각 씹으면 끝이라고 했다. 그렇게 마시는 게 하루에 일고여덟 병이라고 했다. 그러니 위도 위지만 간이 견딜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재종숙의 간이 굳어가고 있었다. 얼굴이 거무튀튀하게 변했지만 사과밭에서 일하며 햇빛을 받아서 그렇다고 하며 술을 계속 마시곤 했다. 사과농사를 오 년 지은 재종숙은 또 사과밭에서 쓰러졌다. 사과가 익어가는 가을밭이었다. 사인은 간경화였다. 당시에 재종숙의 나이 마흔여덟. 백세시대에 사과를 위하여 또 한 명이 요절하신 것이다. 그해 가을 사과는 어찌나 풍성하던지 재종숙모가 남편을 잃은 슬픔도 감추고 일손이 딸린다고 전화가 와서 주 기사의 아내 손 말순 여사가 어린 아기를 데리고 매일 사과를 수확하러 다녔다. 그렇게 수확한 사과를 저장고로 들이지 않고 중간도매상에게 헐값에 처리했다. 손 말순 여사가 사과를 수확하러 다닐 적에 눈치도 없이 일을 마치면 매일 사과를 한 보따리씩 싸가지고 왔지만 주 기사는 사과에 입도 대지 않았다.
주 기사에게 있어서 그 밭에서 나오는 사과는 부모님의 살과 같은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 맛있다지만 감히 부모의 살점을 뜯어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사과의 과육은 살이요 과즙은 피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고 사과를 먹다가 여러 번 울컥했다. 그러고는 사과를 끊었다.
재종숙이 돌아가시니 더 이상 사과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었다. 재종숙모 혼자서 사람을 사서 사과농사를 짓겠다고 했으나 그건 말뿐이지 홀몸으로 지을 농사가 아니다. 시골 고향의 사람들도 더러는 죽고 더러는 도회로 빠져나가 줄었고 사과나무는 고목이 되었다. 그 해 수확을 끝내고 주 기사는 고민에 빠졌다. 사과밭을 그대로 유지하자면 사과나무 사이에 묘목을 심어 키워야할 때이다. 그렇게 하면서 농사를 지을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렇게 사과밭을 유지하자니 가장 가까운 사람 셋이나 사과를 위하여 희생되었다. 며칠 궁리를 하다가 주 기사는 손 말순 여사와 상의 한마디 없이 포클레인을 끌고 가서 사과나무를 작살내고 군데군데 밭을 깊숙이 파고 묻어버렸다. 그리고는 평탄작업을 했다. 십 몇 년 애써 키운 사과나무가 한나절 만에 깔끔하게 매장이 되어버렸다. 동네 노인들은 몇 년은 더 수확을 낼 수 있는 과목인데 아깝다고 하면서 혀를 찼다.
그 작업을 하다가 감정 조율이 안 되어 몇 번 울컥했고 그 서러운 작업을 마치고 돌아와 술을 마시고는 하염없이 울었다. 지금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주 기사가 우는 것을 본 다섯 살배기 큰 딸이 사과를 하나 들고 다가와 사과를 내밀며 말했다.
-아빠! 사과 줄게 울지 마.
-그래! 울지 말고 사과먹자.
주 기사는 딸에게 받은 사과를 눈물과 함께 우걱우걱 먹어치웠다. 그게 주 기사가 먹은 마지막 사과였다. 그 다음부터는 아버지 어머니 제사상에는 사과를 올리지 않을뿐더러 과일가게에 진열된 사과조차도 외면하며 지나다녔다.
지금은 그 밭은 대형 영농법인에 맡겨두었고 법인차원에서 들어와 우엉농사를 짓고 또 사과저장고에 기계를 갖추고 우엉의 즙을 생산하는 공장까지 차렸다. 강변의 사질토라 우엉이 잔뿌리를 내리지 않고 상품가치가 높도록 곧게 잘 자란다고 몇 년째 그 밭과 이웃한 밭을 빌려 우엉을 재배하고 있다. 우엉을 수확할 때면 소형 포클레인 바가지대신에 젓가락처럼 생긴 도구를 차고 자신의 밭에 주 기사가 임대를 나간다. 수직으로 우엉 사이를 찍어서 당기면 인부들이 수확을 한다. 그 밭에서 일을 하다가 새참을 먹으면 주 기사는 항상 마음이 여려진다.
주 기사는 시내를 통과하는 신호를 받고 있다.
좌회전 표시등을 켜고 일 차선에 서 있는데 직진 차선에 소형트럭이 와서 멈추었다. 적재함에는 바구니에 담긴 사과가 실려 있고 스피커가 장착된 차량이다. 바구니에는 종이 박스에 숫자를 적어두고 있었다. 아마도 골목을 다니며 사과를 파는 차량인 모양이다. 주 기사는 자신도 모르게 사과에 눈길이 갔다. 누가 지은 농사일까? 저 사과를 위하여 또 어떤 희생이 있었을까? 사과밭에서 농약을 치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인간은 무엇을 기다리며 살까? 아! 아버지....... 주 기사는 자신도 모르게 손빗을 만들어 이마의 머리를 쓸어 넘긴다.
뒤에 선 대형화물차가 신경질적으로 경적이 울린다.
화들짝 놀라 보니 언제 바뀌었는지 좌회전 신호가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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