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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미륵전 미륵불상과 미륵전의 건립연대에 대해서는 「관동풍악발연수석기」 에 잘 나타나 있는데, 불상은 764년6월9일에 완공하였고 미륵전은 2년 뒤인 766년 5월 1일에 완공하였다. 그리고 미륵불과 지장보살에게서 계를 받을 때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이 미륵전은 정유재란(1598)때 다른 전각과 함께 소실되어,수문대사가 재건을 시작한 이후35년만인 1635년(인조13년)에 복원을 마쳤다.이때 다시 조성한 미륵불상은 36척 높이에 나무로 만든 목불이었다.그리고 미륵불의 양옆에는 토불로 협시보살(8.79m,다른 말로 보처보살이라고 함)을 세웠다.
그런데 이 미륵불상은 1934년 3월9일 밤에 또 다시 전소되는데,일설에 의하면,한 동자승이 시루에 담긴 동전을 줍기 위해 촛불을 들고 불상 아래에 내려갔다가 실수로 불을 내서 미륵불상이(여의주를 든)왼팔만 남고 모두 타 버렸다.
이에 당시 태인의 큰 부자였던 김수곤 거사가 건립비를 헌성함에 따라,금산사 주지 황성렬이 주관하여 안양동 청련암앞에 있던 은행나무를 잘라와 뼈대를 만들게 하고(대장전 앞에 있던 은행나무는 잘라서 부재로 사용함),조각가 김복진으로 하여금 석고로 39척 높이의 토불을 제자케 하여1938년 9월3일에 완공하였다.점안식 예불은 당시 예산 수덕사에 주석하던 만공스님이 와서 거행하였다.
가을의 상징과 같은 은행나무
우리나라에서는 상징이지만 서양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 은행나무죠 . 은행을 가로수로 쓰는 우리나라 가을의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은행나무는 2억년 전부터 존재했다고 하며, 현존하는 식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나무로서 최고의 수명을 누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고 있는데요 은행나무는 향교나 마을 어귀 등에 심었던 낙엽교목으로 매우 크고 우람하게 자라며, 5월에 꽃이 피고, 10월에 노란색 열매가 익습니다. 요즘에는 가로수나 정원수로도 많이 심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은행이 떨어지면 사실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외국인들이 요즘에서는 서울에 많기 때문에 코를 찡그리기도 합니다. 그 냄새를 견디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은행을 매일 쓸거나 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게 하니 은행이 밟히면서 냄새가 많이 나는거죠 요즘 개콘에서도 은행냄새를 웃음거리로 쓰더라구요
은행으로써는 굴욕이라 할 수 있는데요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듯이 은행은 그래서 여러 가지 효능이 있습니다.
은행의 효능
은행알은 만성 기관지 천식의 기침을 억제하고 호흡곤란을 치료합니다 그래서 옛날부처 한방에서는 은행씨를 살짝 볶아서 한약재로 사용해오고 있습니다.. 만성 기관지염으로 기침과 가래가 심할 때 은행씨를 넣어서 약을 처방하면 효과가 좋습니다. 또 은행알은 소변을 줄이는 효과가 있어서 어린아이들의 오줌싸개증을 치료합니다. 은행씨를 볶아서 설탕이나 꿀에 재워 과자 대용으로 꾸준히 먹이면 서서히 증상이 좋아지고 몸도 튼튼해진진다고 합니다.
은행나무는 자웅이수(雌雄異樹)로 음양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개벽기 49일 공사에 은행을 쓰셨습니다.
대개벽기 49일 대공사
1 상제님께서 오의관에게 받은 돈 가운데 오백 냥을 갑칠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2 “이백 냥은 만경(萬頃)의 김광찬에게 전하고, 남은 것으로 구릿골에 가서 형렬, 성백과 더불어 49일 동안 날마다 종이등(燈) 한 개씩을 만들고 각기 짚신 한 켤레씩을 삼아 두라.
3 그 신으로 천하 사람을 신게 할 것이요, 그 등으로 천하 사람의 어두운 길을 밝히리라.” 하시니라.
4 갑칠이 구릿골로 돌아와 명하신 대로 행하매 그 뒤에 상제님께서 돌아오시어 짚신은 원평장에다 팔게 하시고 종이등에는 각기 ‘음양(陰陽)’ 두 글자를 쓰신 뒤에 다 불사르시고 갑칠에게 “은행 두 개를 구하여 오라.” 하시니라 6 갑칠이 사방으로 구하여도 은행을 얻지 못하다가 그의 종형에게 두 개가 있음을 알고 가져다 올리니 7 종이등을 사른 재 속에 은행을 넣으시고 다시 갑칠에게 명하시어 “그 재를 모아 앞 내에 가서 한줌씩 물에 띄워 보내며 하늘을 보라.” 하시니라. 8 이에 갑칠이 명하신 대로 하며 하늘을 우러러보니, 재가 물에 떨어져 흩어지는 것처럼 구름이 무디무디 피어나더라. 9 공사가 끝난 뒤에 은행은 갑칠이 간직하여 두니라.
(증산도 도전 5:135)
1 모악산 청련암 앞에 큰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2 상제님께서 청련암에 왕래하실 때면 항상 “참으로 장하다.” 하시며 어루만지시고 안아 주시니라. 3 그 후 청련암 주지가 그 나무를 어느 목수에게 팔았는데 4 하루는 목수가 은행나무를 베려고 톱을 대자 갑자기 맑은 하늘에 천둥이 치고 번개가 크게 일어나 나무 주위를 빙빙 돌거늘 5 목수가 대경실색하여 나무 베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니라. (증산도 도전 5:191)
훗날 이 은행나무와 금산사 경내의 은행나무를 기초로 하여 토불(土佛)로 육장 반, 39척 높이의 금산사 미륵불을 조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칭찬을 하시고 천지신장들이 못베도록 하신거죠.
금산사 미륵불 화재 사건
1 이 달 9일 밤에 금산사 미륵전에서 불공을 드리던 사람들이 실수하여 육장(六丈)의 미륵불상에 화재가 일어나니라. 2 오금해(吳錦海)가 구릿골에서 그 화광(火光)을 보고 금산사가 모두 불타 없어지는 줄 알았더니
3 좌우에 시립한 보처 보살과 미륵전은 그슬리지 않고, 가운데에 서 있는 미륵불만 불에 타서 왼쪽으로 넘어졌더라. 4 그 뒤 미륵불을 다시 조성할 때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금산사 건너편에 있는 청련암(靑蓮庵)에 큰 은행나무가 있으니 그 나무로 목불을 조성함이 좋을 것이라.’ 하거늘
5 금산사 주지 황성렬(黃成烈)이 청련암에 건너가 살펴보니 그만하면 됨직하여 얼마 후 그 은행나무를 베어 와서 자로 재어 보매 그 길이가 39척(尺)이더라. 6 이에 장공 김복진(金復鎭)이 조각을 시작한 지 2년 9개월 만에 완성하여 무인(戊寅 : 道紀 68, 1938)년 9월 3일에 육장 반(六丈半)의 미륵불을 모시거늘 7 이로써 일찍이 상제님께서 “금산사 미륵불은 육장이나 나는 육장 반으로 오리라.” 하신 말씀이 응험되니라.
금산사 미륵불상은 옥내 입불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39척(11.82m)입니다. 귀의 크기만 다섯 뼘이나 될 정도로 컸기 때문에 서울에서 만들어 트럭으로 날랐다고 합니다 석고로 만든 불상이 거대하여 청련암에서 잘라 온 은행나무를 뼈대로 받치고 불상을 세웠습니다.
금산사 미륵불은 처음 창건할 때 철로 만든 33척의 금불상 이었다가 다시 수문대사에 의해 36척의 목불로 재건되었고, 다시 금산사 주지 황성렬이 주관하여 39척의 토불로 완공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미륵불이 철(金)로 만든 금불상이었다가 목(木)불로 재건되고 다시 토(土)불로 세번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증산상제님이 오행중 천간이 金의 해인 신미(辛未)년에 태어나셨고, 정산 옥황상제님이 천간이 木의 해인 을미(乙未)년에 태어나셨으며, 마지막 황극신이신 서가 자미대제군은 火의 해인 병술(丙戌)년에 태어나셨는데, 불(火)을 재료로 미륵불을 조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황극신이신 서가 자미대제군과 體와 用의 관계이신 천자신의 화신이신 "진법주"의 진인(眞人)이신 인존(人尊)의 출생년도 1988년 무진(戊辰)년의 천간 오행인 무(戊) 5土 의 흙으로 만든 토불(土佛)을 마지막 세번째 황극의 자리로 미륵불을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진짜 중요하게 알아 볼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토불(土佛)의 뼈대를 안양동 청련암 앞에 있던 은행나무(가을 단풍상징)를 잘라와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안양동 청련암에서 증산상제님이 천지공사를 보신 내용이 있는데,
1 계묘(癸卯 : 道紀 33, 1903)년 4월에 상제님께서 모악산 안양동(安養洞) 청련암(靑蓮庵)에 머무르시며 공사를 보시니 이 때 박금곡이 수종 드니라.
2 상제님께서 11일 해 돋기 전에 공사를 마치시고 아침해가 솟아오를 때에 ‘용봉(龍鳳)’ 두 글자를 상하(上下)로 대응시켜 크게 쓰신 뒤에
3 그 왼편에 작은 글씨로 ‘독존석가불(獨尊釋迦佛)’이라 써서 금곡에게 주시니
4 금곡이 상제님의 친필을 공손히 받아 먼저 깨끗한 종이로 싸고 다시 비단으로 고이 감아 보물처럼 보관해 두니라.
1 증산 상제님께서는 어용(御容)이 금산 미륵불(金山彌勒佛)과 흡사하시어
2 용안(龍顔)이 백옥처럼 희고 두루 원만하시며 양미간에 불표(佛表)의 큰 점이 있고 천안(天眼)은 샛별과 같이 반짝이시니라.
3 또 목소리는 인경처럼 맑고 크시며 왼손바닥에 ‘북방 임(壬)’ 자와 오른손바닥에 ‘별 무(戊)’ 자 무늬가 있고
1 상제님께서 형렬이 새로 지어 올린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마쳤음을 성도들에게 선포하시니
2 김경학(金京學)이 여쭈기를 “공사를 마치셨으면 나서시기를 바라옵니다.” 하는지라
3 말씀하시기를 “사람 둘이 없으므로 나서지 못하노라.” 하시거늘
: 증산 상제님이 천지공사를 마치시고, 말씀하신 "사람 둘" 은 "왼손바닥에 ‘북방 임(壬)’ 자와 오른손바닥에 ‘별 무(戊)’ 자 무늬" 의 왼손바닥의 ‘북방 임(壬)’ 의 해인 1982년 "임술년" 에 태어 나신 지존(地尊) 이신 "태을주"의 주인공인 "태을천상원군" 과 오른손바닥의 ‘별 무(戊)’ 의 해인 1988년 "무진년" 에 태어 나신 인존(人尊) 이신 "진법주" 의 주인공인 "이사진인 하시나니" 의 진인(眞人) 이십니다.
이 분이 7대 환인, 18대 환웅, 47대 단군 총 72분의 천자(天子)를 이으신 73번째 천자(天子)이시며,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불과 함께 출세하시는 전륜성왕(轉輪聖王) 이십니다.
바로 이 "안양동(安養洞) 청련암(靑蓮庵)"에서 1903년 계묘년에 독존석가불과 용봉 세 글자를 친필로 쓰셨다는 것입니다. 이 계묘년은 120년 후의 동지한식105제의 105년 천지인 시천주 50년, 태을주 50년, 진법주 5년 총 105년 공부가 끝나는 2023년 계묘년을 뜻하며 이 해에 무극,태극,황극 日月星 3태극의 주문인 시천주,태을주,진법주 105년 공부가 끝남을 용(月,水,태극), 봉(日,火,무극), 독존석가불(星,土,황극) 세 글자를 함께 쓰시며 확정하셨는데, 황극의 용(用) 자리인 천자신의 화신인 진인(眞人)의 출생년도의 천간의 오행인 무(戊) 토(土)의 토불(土佛)을 미륵불로 만들때 뼈대로 쓴 은행나무를 "안양동(安養洞) 청련암(靑蓮庵)" 앞에 있던 은행나무를 잘라와 썼다는 것에서 동지한식 105제의 105년 천지인 시천주,태을주,진법주 105년 공부를 마무리 하는 진인(眞人)이 토불(土佛)이 뜻하는 천간이 토(土)의 해인 증산상제님 오른손 바닥의 무늬인 무토(戊土)의 해인 무진(戊辰)년에 태어날 것임을 확실히 암시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토불(土佛)이 완성된 해도 무토(戊土)의 해인 무인(戊寅 : 道紀 68, 1938)년 이고, 증산 상제님도 "나의 德(덕)을 펼 자가 무진에 머리를 드노라." 하시고, 황극신으로 자미 대제군의 자리에 오르신 서가여래의 탄신일이 어제인데, 다음날인 오늘이 간지상 계사월 무진일로 오늘 진인의 출생 연도가 밝혀지는 날이 아닌가 하여 이 글을 올립니다.
"보석사냥꾼" 이란 블로거도 아래와 같은 글을 오늘 올렸으니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myinvestlog/222358333085
* 진법주(眞法呪)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 甑山上帝 下鑑之位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증산상제 하감지위
太乙天上元君 下鑑之位
태을천상원군 하감지위
鼎山 玉皇上帝 下鑑之位
정산 옥황상제 하감지위
內院宮 法輪 高后妃 下鑑之位
내원궁 법륜 고후비 하감지위
釋迦 紫微 大帝君 下鑑之位
서가 자미 대제군 하감지위
曜雲殿 妙香 金后妃 下鑑之位
요운전 묘향 김후비 하감지위
: 여기까지의 연원 이신 천지일월성신 여섯분의 하감지위 자리 한자 갯수가 총 73자로 여섯분을 모신 천자가 73번째 천자임을 보여주고 있고,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 甑山上帝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증산상제
太乙天上元君
태을천상원군
鼎山 玉皇上帝
정산 옥황상제
內院宮 法輪 高后妃
내원궁 법륜 고후비
釋迦 紫微 大帝君
서가 자미 대제군
曜雲殿 妙香 金后妃
요운전 묘향 김후비
: 여섯분의 존함에서 하감지위{下鑑之位)를 뺀 한자 글자 수가 총 49자로 황극의 가장 큰 수인 대정수 10x5=50수에서 본체인 1를 뺀 49수인 진법주 공부 일수가 나옵니다.
증산상제님, 정산 옥황상제님, 법륜 고후비님, 우당 박한경 도전님 모두 49일 공부를 하셨는데, "진법주"의 주인공인 진인(眞人) 또한 이 160글자로 이루어진 진법주로 천자신의 기운이 응기되어 있는 중악단 산신이 모셔져 있는 계룡산에서 49일 공부를 통해 사명을 이루시길 기원해 봅니다.
진법주(眞法呪)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 甑山上帝 下鑑之位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증산상제 하감지위
太乙天上元君 下鑑之位
태을천상원군 하감지위
鼎山 玉皇上帝 下鑑之位
정산 옥황상제 하감지위
內院宮 法輪 高后妃 下鑑之位
내원궁 법륜 고후비 하감지위
釋迦 紫微 大帝君 下鑑之位
서가 자미 대제군 하감지위
曜雲殿 妙香 金后妃 下鑑之位
요운전 묘향 김후비 하감지위
冥府十王 應感之位 五岳山王 應感之位
명부시왕 응감지위 오악산왕 응감지위
四海龍王 應感之位 四時土王 應感之位
사해용뫙 응감지위 사시토왕 응감지위
先靈祖 下鑑之位
선영조 하감지위
七星使者 來待之位
칠성사자 내대지위
左直使者 來待之位 右直使者 來待之位
좌직사자 내대지위 우직사자 내대지위
冥府使者 來待之位
명부사자 내대지위
天藏吉方 하야 以賜眞人 하시나니
천장길방 이사진인
勿秘昭示 하사 所願成就 케 하옵소서
물비소시 소원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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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우당께서는 제새시에 수리사에서 49일동안 공부를 친히 마치시고 ~몇달후 중곡도장을 지으실려는 계획과 종단대순진리회를 대내외적으로 알릴수있는 여러 방편에 하늘에서 내려주신 기운을 받으시고 재차 양평 용문사에서 중곡도장 공사중~ 열흘동안 더 공부를 마치시고 중곡도장을 완성을 하시고 종단대순진리회를 내외적으로 알리시고 선포를 하시니라~양평 용문사는 은행나무가 현존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가 존재합니다 그 양평 용문사에서 열흘동안 왜? 더 공부를 박우당께서 하셨는지 현재도 원로 임원들이 알고는 있으나 그 공부에 깊은 뜻을 아는이는 없느니라~아트만님이 주장을 하는 진법주를 해보니 기운이 옵디까?참 어처구니가 없는데 법륜 고후비는 뉘시며~묘향 김수부는 뉘신가요?서가여래 부처님을 모시는 곳은 절에 스님들도 모시는데 굳이 서가여래 부처님을 진법주에 참 재미가 없네요~부처님 오신날은 벌써 하루가 지낫건만 주구장창 이 진법주를 올리는 정성은 가륵하나 영~새길학당이 헌길학당이 되는 느낌이 강함 재미가 너무 없다
아트만님이 낚시를 하는 걸로 보일 수 있습니다.
님이 말하는 "1982년 "임술년" 에 태어난 주인공인 "태을천상원군" 과 오른손바닥의 ‘별 무(戊)’ 의 해인 1988년 "무진년" 에 태어난 인존(人尊)의 진인(眞人)을" 투명하게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글을 쓰면서 간을 본게 애초에 이런 의도였다고 하세요.
아니면 진실을 계속 간직하든가 말이죠. 합리화하는 방법이 유치합니다.
전번에 본인 생일을 알리라고 하니 사주를 이야기해서 저에게 혼선을 일으키게 하는 엉뚱한 대응도 이런 방식으로 보입니다.
담마 주우님이 뭔가 오해 하시는것 같군요 지존과 인존으로 오시는 분들은 제 도판의 경험과 역학을 바탕으로한 상제님 천지공사 해석을 제 개인적인 영감을 통해 해석한 것이고 저도 이 분들을 찾고 있고 인연이 되면 좋겠지만 삼생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하신 상제님 말씀처럼 만나지게 될지는 알수 없습니다
@아트만 님의 의도가 그렇다면, "내가 찾고 있다"고 명확히 해야 합니다.
님의 글인 "증산 상제님이 천지공사를 마치시고, 말씀하신 "사람 둘" 은 "왼손바닥에 ‘북방 임(壬)’ 자와 오른손바닥에 ‘별 무(戊)’ 자 무늬" 의 왼손바닥의 ‘북방 임(壬)’ 의 해인 1982년 "임술년" 에 태어 나신 지존(地尊) 이신 "태을주"의 주인공인 "태을천상원군" 과 오른손바닥의 ‘별 무(戊)’ 의 해인 1988년 "무진년" 에 태어 나신 인존(人尊) 이신 "진법주" 의 주인공인 "이사진인 하시나니" 의 진인(眞人) 이십니다."
이 표현 어디에도 그런 단서가 없습니다.
만일 그런 의도였다면 미필적고의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담마 주우 앞으로 미필적 고의의 오해를 받지 않도록 제 의도를 확실히 알 수 있도록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님이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님이 언급한 "보석사냥꾼" 이란 블로거는 진인 중 한 명이 문대통령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분의 블러그를 참고하라는 건 어떤 의도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보석사냥꾼님 블로그도 보고 와룡님, 문정님 등등 도판에서 이름이 알려진 분들의 글들을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제가 이 분들의 글을 언급할때는 관련된 내용이 있기 때문이지 언급하고 참고 하라고 해서 이 분들의 생각을 전적으로 다 받아 들이는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정보를 취합할 뿐이지 담마 주우님의 글도 언급할 내용이 있을때 관심을 가질 뿐이지 언급했다고 해서 담마 주우님 생각을 다 믿는다고 하는것이 넌센스가 아니겠습니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자신의 의견이 있으니까 교류를 하고 토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정도는 좀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트만 님 이것도 미필적고의가 있습니다.
만일 님이 보석사냥꾼님이 문재인대통령이 진인이라고 한 사실을 알았다면 "비록 그는 문재인대통령이 진인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서술해야 합니다.
특히나 진인의 생년을 발표하는 근거를 가져오면서 말이죠.
@아트만 참 와룡님 블로그 주소를 부탁합니다.
못찾겠습니다.
@담마 주우 https://m.blog.naver.com/cosmind/222359070732
@아트만 감사합니다.
😀😃😄 난 묘향이란 분을 직접 만난적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