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미를 뜬다 사과를 뜬다 코바늘에 걸리는 손거스러미가 환기하고 가는 날씨 를 핑계로 미나리 전이나 부칠까
미나리를 썰 때 쫑쫑 썰어대는 말이 뒤섞인들 미나리 탕탕 오징어를 치며 바다가 보인대도 좋을
다행히 비 내리는 날이 많아 그 사이로 사람이 죽기도 한다 올리브 병에서 들기름이 나오면 핑계 삼아 한판 사과나무에서 다닥다닥 열린 복숭아를 다퉈도 되고 소금 한 주먹 넣으며 등짝도 한 대
단양과 충주 사이에 스페인을 끼워 넣는다 안 될 게 뭐 있어 비도 오는데 스페인보다 멀리 우린 가끔 떨어져도 좋을 텐데
철든 애가 그린 그림 속에선 닭 날개가 셔터를 내리고 오토바이를 탄 새가 매운 바다에서 속옷과 영양제를 건져 올렸다 첫 사랑의 정기구독은 해지했다
꽃 병에 심야버스를 꽂았다 팔다리가 습관적으로 생겨나는 월요일, 아플 때마다 키가 자라는 일은 선물이었다
불꽃이 튀어도 겁나지 않은 나이는 이벤트였지
단풍 들지 않는 우리를 단양이 부른다 스페인은 멀고 안전벨트를 매고 접힌 색종이처럼 사진을 찍는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누군가 멀리 떠난
출처: 세계일보(m.segye.com) ----------------------------------------------------------------- 죽는 사람들 사이로 날마다 비가 내린다 사과는 쓸모가 많은 형식이지 죽음에도 삶에도
비오는,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날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늘 그렇죠. 비도 오고 눈도 오고 햇빛도 비추는. 그중의 비오는 어느날이군요. '사과'는 '미안해요' 잖아요. 죽음에도 삶에도 우리는 미안한 일들이 많죠. 누군가의 죽음과 삶에 우리는 어쨌든 관계가 있잖아요. 영향을 주든 받든.
수세미를 뜬다 사과를 뜬다 코바늘에 걸리는 손거스러미가 환기하고 가는 날씨 를 핑계로 미나리 전이나 부칠까
비 오는 날은 뜨개질을 합니다. 사과 모양의 수세미를 뜨기도 하죠. 그냥 일상이죠. 왜, 있잖아요. 뜨개질을 하다 문득 생각이 납니다. 그일까요? 전일까요?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은 '전'이 생각나죠. 괜히 파전이나 구워서 한 잔 하면 좋겠다는 그런 날이죠. 그러면서 그를 생각할까요?
미나리를 썰 때 쫑쫑 썰어대는 말이 뒤섞인들 미나리 탕탕 오징어를 치며 바다가 보인대도 좋을
미나리를 썰며, 오징어를 탕탕 내리치며 지글지글 미나리전을 굽습니다. 미나리와 오징어를 섞어 해물미나리전을 굽나봐요. 미나리를 둥둥 썰고 오징어를 탕탕 눌러서 전을 굽습니다. 그런 가운데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하겠죠. 잊어야 돼, 잊어야 돼...하면서 말이죠.
다행히 비 내리는 날이 많아 그 사이로 사람이 죽기도 한다
다시 일상을 환기시킵니다. 별일 아니라는 거죠. 누구나 죽는 것은 필연이며 명제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시인의 주변에 누군가 죽은 사람이 있는 것 같죠. 누군갈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올리브 병에서 들기름이 나오면 핑계 삼아 한판 사과나무에서 다닥다닥 열린 복숭아를 다퉈도 되고 소금 한 주먹 넣으며 등짝도 한 대
미나리전을 한판 구웠습니다. 올리브 병에서 올리브유가 나오는게 아니라 들기름이 나왔군요. 그러면 어때요. 그런 것도 일상입니다. 그렇다면 들기름으로 미나리전을 또 한판 굽습니다. 사과나무에 열린 복숭아가 열려도, 아무려면 어때요, 소금을 넣으며 또 한판 미나리전을 구워요.
단양과 충주 사이에 스페인을 끼워 넣는다 안 될 게 뭐 있어 비도 오는데 스페인보다 멀리 우린 가끔 떨어져도 좋을 텐데
이상한 일들이 벌어져도 그것이 일상이듯, 단양과 충주 사이에 스페인을 끼워넣어도 괜찮아요. 사과나무에 복숭아가 열리기도 하는걸요, 뭐. 그러니 스페인을 슬쩍 끼워봐요. 안될 것도 없죠. 스페인 아니라 다른 걸 끼워넣어도 될거예요.
철든 애가 그린 그림 속에선 닭 날개가 셔터를 내리고 오토바이를 탄 새가 매운 바다에서 속옷과 영양제를 건져 올렸다 첫 사랑의 정기구독은 해지했다
자, 이제 더 이상한 일들이 있어요. 닭 날개가 셔터를 내리는 인상적인 그림, 오토바이를 탄 새가 바다에서 속옷과 영양제를 건져 올리는 그림.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가 떠 올라요. 시계가 늘어진 그림 있잖아요. 죽은 형의 이름을 물려받았다는 화가. 첫 사랑을 떠 올리던 일은 이제 그만 두었군요. 그래도 이렇게 비가 오는 날 전을 구우며 어쩌다가 불규칙적으로 떠 올리겠죠.
꽃 병에 심야버스를 꽂았다 팔다리가 습관적으로 생겨나는 월요일, 아플 때마다 키가 자라는 일은 선물이었다
첫 사랑의 아픔일까요? 꽃을 주고 심야버스를 타고 떠났던 사랑말이죠. 사람들은 그렇게 성장하죠. 아픔을 겪으면서 말이죠.
불꽃이 튀어도 겁나지 않은 나이는 이벤트였지
누구에게나 그런 나이가 있죠. 젊음의 시절, 세상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은 시절 말이예요. 그런 나이가 지났군요.
단풍 들지 않는 우리를 단양이 부른다 스페인은 멀고 안전벨트를 매고 접힌 색종이처럼 사진을 찍는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누군가 멀리 떠난
단양은 단풍이 절경을 이루나봐요. 단양으로 가면 누구든 단풍들겠죠. 단풍이 든다는 건 익어간다는 말이죠. 젊은 시절을 보낸 시인은 단양에 살고 있을까요? 비오는 스페인은 너무 멀어요. 이젠 잊어야겠지요. 비오는 스페인으로 떠난 그를...
비 내리는 날, 미나리 전을 굽는 시인이 보이시나요. 담담하게 소금을 치고 한 장 두장 미나리 전을 구운 시인은 비가 오는 밖을 내다보며 회상에 잠깁니다. 스페인으로 떠난 그가 그리울까요? 잊지 말자 다짐해도 그 다짐이 오히려 그를 더 그리워하게하죠. 충주와 단양 사이에 스페인이 있을리 없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스페인이나 단양이나 충주나 비 오는 날은 뭔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담담하게 시를 풀어갑니다. 전반부는 미나리전에 대해, 후반부는 떠나버린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누군가는 여러분들의 상상에 달려있겠지요. 우리와 같은 위도에 있는 나라 스페인, 그리고 과일도 비슷하다는 걸 떠 올릴 수 있어요. 비가 오려는지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었습니다. 일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