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아기를 밴 여인들
쌍아가 즉시 앞으로 달려와 위소보를 얼싸안고 나는 듯 옆으로 피했다. 풍제중은 깜짝 놀라 칼을 쳐들고 달려왔다. 쌍아의 무공은 뛰어났으나 역시 힘이 약했다. 그녀가 위소보를 껴안고 수 장 정도 달려갔을 때 풍 제중이 바짝 뒤쫓아오게 되었다. 위소보는 등의 혈도가 봉해져 있는 상 태라 사지를 움직일 수가 없어서 말했다.
[나를 내려놓아요. 암기를 쓰도록 해줘.]
그러나 풍제중은 너무나 재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쌍아가 위소보를 내려놓고 그로 하여금 함사사영의 암기를 발사하도록 하기에는 이미 때 가 늦었다. 다급한 김에 그녀는 힘껏 그의 몸뚱어리를 내던졌다. 풍제중은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달려가 손을 뻗쳐서 위소보를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등뒤에서 찰칵, 하는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마치 화도와 화석이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였다. 곧이어 꽝, 하는 커다란 소 리가 울려퍼졌고 풍제중의 몸뚱이가 펄쩍 튀어 올랐다. 그러더니 땅바 닥에 내동댕이쳐졌고 몇 번 꿈틀거리더니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위 소보는 몸을 일으켰다. 순간 그는 쌍아의 몸 앞에 한 무더기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과 그녀의 손에 한 자루의 단총, 즉 화창이 들려 있는 것 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오륙기가 그녀와 남매의 의를 맺었을 때 그녀에 게 선물한 예물이었다. 그것은 나찰국에서 교묘히 만든 화기인데 실로 무섭기 이를 데 없었다. 풍제중의 무공이 탁월하다고는 하나 피와 살로 이루어진 몸뚱이로는 도저히 총알을 막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쌍아 자신도 깜짝 놀란 것 같았다. 화창 소리가 터지자 그 충격으로 그 녀는 손과 팔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으며 손이 떨리는 바람에 단총마 저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바로 이때 소전이 달려와 위소보의 혈도를 재빨리 풀어 주었다. 위소보 는 간신히 일어나기는 했으나 풍제중이 아직도 죽지 않았을까 봐 서둘 러 몇 걸음 그에게 다가가 가슴팍을 풍제중 쪽으로 향하도록 내밀고 허 리에 차고 있던 기관장치를 눌렀다. 즉시 강철침이 쏘아지면서 모조리 풍제중의 몸에 박혔다. 풍제중은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는데 화통이 한 번 꽝, 하는 순간 죽어 버린 모양이었다. 여인네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지르며 달려왔다. 일곱 명의 여인들이 새들이 재잘거리는 듯 너 한마디 나 한마디 다투어 그 과정을 묻는 것 이었다. 위소보는 간단히 설명을 했다. 쌍아는 풍제중과 상당히 오랜 시일을 두고 이야기를 해왔으며 길을 오 는 동안 그가 성실하고 소박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뜰하 게 보살피는 것이 실로 본분을 지킬 줄 아는 늙은 호인으로 여겼다. 그 러나 누가 알았으랴? 그의 마음이 그토록 음침했다고 생각하니 생각할 수록 두려웠다. 그녀는 몸을 돌려 단총을 집어들었다. 별안간 오륙기가 자기와의 남매를 맺었던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다. 오륙기는 무림의 기인인 위소보가 그녀를 처로 맞아들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하녀의 신분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천지회 홍기 향주의 의누이가 된 이후에는 천지회 청목당의 향 주에게 얼마든지 시집을 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의오라버니의 호 의를 새삼 깨닫고 사람은 가고 없는데 총만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니 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위소보는 몸을 돌렸다. 정극상 등 네 사람은 해변가로 다가가서 소정에 오르려고 했다. 그는 생각했다. (그가 사부를 죽이도록 내버려두고도 태평스럽게 떠나보내는 것은 그에 게 너무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위소보는 즉시 비수를 들고 쫓아가며 부르짖었다.
[잠깐!]
정극상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는데 그 얼굴을 이미 흙빛이 되어 있었다.
[위.... 위 향주, 그대는 이미 나에게 응낙하지 않았소? 우리, 우리를 놔주겠다고.]
위소보는 냉소했다.
[나는 그대를 죽이지 않겠다고 응낙했소. 그러나 그대의 한쪽 다리를 잘라내지 않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소.]
풍석범은 크게 노해서 화를 터뜨리려고 했다. 그러나 손을 쳐들자 전신 이 시큰거리고 맥이 쭉 빠져 다시는 팔에 힘을 쑬 수 없었다. 정극상은 이미 간담이 서늘해져 두 무릎에 맥이 빠져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 다.
[위....위 향주, 그대가 나의 한 다리를 자른다면 나는....나는 살지 못할 것이오.]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살 수 있소. 그대는 나에게 아가를 저당잡히고 백만 냥의 은자를 빚졌 소. 그러나 그녀는 나와 천지신명께 절을 하고 정식으로 혼례를 올린 마누라요. 그녀의 뱃속에는 내 아이가 있어서 그녀 스스로도 나를 따르 기 원하고 있는데 그대는 나의 마누라를 이용하여 나에게 저당을 잡히 겠다는 것이오? 천하에 그런 도리가 어디 있소?]
그러자 소전, 방이, 증유, 공주 등이 일제히 웃으며 말했다.
[그건 말도 안 돼요. 안 돼!]
정극상은 머릿속이 이미 혼란스러웠으나 역시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생 각이 들었다.
[그럼....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소?]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그대의 한 팔을 자르고 한 다리를 잘라서 저당을 잡겠소. 그리고 장래에 나에게 만 냥의 은자를 갚으면 나는 그대의 잘라진 팔과 다리를 주겠소.]
정극상은 말했다.
[아가를 그대에게 팔면 만 냥....만 냥의 은자를 빚진 것은 이미 없었 던 것으로 하기로 했잖소?]
위소보는 크게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안 되오. 방금 나는 흐리멍텅해서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오. 아가는 나 의 마누라인데 그대는 어찌 내 마누라를 나에게 판다는 말이오? 좋소, 나는 그대의 어머니를 그대에게 파는 데 백만 냥에 팔겠소. 그리고 그 대의 부친을 그대에게 파는 데도 다시 백만 냥에 팔겠소. 그대 할머니 를 그대에게 파는 데 역시 백만 냥의 가격을 먹이겠으며, 또한 그대의 외할머니를 그대에게 파는 데 역시 백만 냥....]
정극상은 말했다.
[우리 외할머니는 이미 죽었소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죽은 사람도 팔 수 있소. 내가 외할머니의 시체를 그대에게 파는 데 죽은 사람이니 할인을 해서 팔십만 냥을 받도록 하겠소. 관값은 따로 받지 않겠소.]
정극상은 그가 말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람의 가격을 부르는 것을 알았고, 죽은 사람들까지도 팔겠다는데 자기의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 버지, 고조할머니, 증조할머니 등 모조리 자기에게 팔아 넘길 것이니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 죽은 사람은 할인해서 깎아준다 해도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그저 애걸했다.
[나는....나는 더 살 수 없소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좋아. 살 수 없다면 용서를 해주지. 그러나 이미 산 것은 물릴수 없 소. 그대는 나에게 삼백팔십만 냥의 은자를 빚졌는데 어떻게 갚을 작정 이오?]
공주는 웃었다.
[그래요. 삼백팔십만 냥의 은자를 빨리 되돌려줘요.]
정극상은 울상을 하고 말했다.
[나에게는 천 냥도 없소. 어디서 삼백팔십만 냥을 가져다 줄 수 있겠 소?]
위소보는 말했다. [좋아, 은자가 없다면 물건을 되돌려 받도록 하지. 그대는 빨리 그대의 부친, 모친, 할머니, 죽은 외할머니를 함께 나에게 넘겨주시오. 머리카 락 하나라도 적어서는 안 돼.]
정극상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나가다가는 끝내 아무런 해결을 보지 못 하리라 생각하고 아가를 쳐다보며 그녀가 나서서 사정을 해주기를 바랐 다. 그러나 그녀는 뜻밖에도 멀찌감치 서서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아 닌가? 그녀는 이 일에 관계하지 않겠다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속으로 크게 초조해졌다. 위소보의 이와 같은 행동을 볼 때 반드시 자기의 한 손과 한 다리를 자를 것이 분명한지라 그만 연신 큰절을 하며 말했다.
[위 향주, 내가.... 내가 진 군사를 해친 것은 정말 죽을죄를 지었소이 다. 그저 그대가 넓은 아량으로 소인의 목숨만 살려 주기 바라오. 그리 고 내가 그대 어르신에게 삼백팔십만 냥의 은자를 빛진 것으로 하고, 이후 나는 반드시.... 반드시 방법을 강구해서 모두 갚도록 하겠소이 다.]
위소보는 그를 그토록 곯려 주고 나니 분노와 한이 약간 가시는 것이었 다.
[그렇다면 그대는 차용증서를 써주시오.]
정극상은 크게 기뻐서 말했다.
[예, 예.]
그는 몸을 돌려 위사에게 말했다.
[종이와 붓을 가져오시오.]
그러나 이 황량한 섬 어디서 종이와 붓을 찾는단 말인가? 그 위사는 그 래도 기민한 편이라 즉시 자기의 옷 아랫자락을 찢더니 말했다.
[저쪽에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의 피를 묻혀서 쓰면 될 것입니다.]
그는 달려가 풍제중의 시체를 끌어오려고 했다. 위소보는 왼손을 뻗쳐 정극상의 오른쪽 손목을 잡았다. 하얀 광채가 번 쩍 하는 순간 비수를 내리쳐 그의 식지 한 토막을 잘라 냈다. 정극상은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피로 쓰도록 하시오.]
정극상은 아픔에 전신을 와들와들 떨며 잠시 손발을 어떻게 놀려야 할 지 몰랐다.
[천천히 쓰도록 하시오. 만약에 피가 말라 부족하다면 다시 그대의 다 른 손가락을 잘라 주지.]
정극상은 재빨리 말했다.
[예, 예!]
그는 감히 주저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머 아픔을 참고 반 토막이 잘려 져 나간 식지로 다음과 같이 썼다. '은자 삼백팔십만 냥을 차용함. 정극상 씀.'이 몇 자를 쓰고 나자 그는 거의 까무러칠 정도였다. 위소보는 냉소했다.
[당당한 왕부(王府)의 공자께서 평소 공부를 하지 않고 글자도 쓰지 않 아 한 장의 차용증서를 쓰는데 글씨가 삐뚤삐뚤한 것이 전혀 쓸모없는 글씨로군!]
그는 옷자락을 받아들더니 쌍아에게 내밀었다.
[그대가 거두시오. 숫자를 적게 쓰지 않았는지 살펴보시오. 이 사람은 간사하고 교활하니 몇 냥은 적게 쓸 수도 있을 것이오.]
쌍아는 웃었다.
[삼백팔십만 냥의 은자, 한푼도 적게 쓰지 않았군요.]
그녀는 혈서로 쓴 차용증서를 품속에 넣었다. 위소보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정극상의 턱을 걷어차고 호통을 내질렀다.
[죽은 외할머니한테로 꺼져.]
정극상은 곤두박질을 치며 저쪽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위사들이 재빨리 달려가 부축하고서 그의 손가락에 난 상처를 싸맸다. 두 명의 위사는 다투어 정극상과 풍석범을 부축해 한 척의 소정에 오르고 바다 쪽으로 저어가기 시작했다. 위소보는 끊임없이 웃다가 사부의 참담한 죽음을 생각하고 참을 수 없 어 대성통곡을 했다. 정극상은 소정이 수십 장 저어 나가자 그제서야 놀란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하고 말했다.
[우리들은 큰 배를 훔쳐서 떠나도록 합시다. 짐작하건대 천벌을 받아 죽을 저 남녀들은 쫓아오지 못할 것이오.]
커다란 배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배에는 키도 없었고, 항해할 때 사용 하는 기구들도 전혀 없었다. 풍석범은 이를 갈며 말했다.
[그 한 떼의 개 같은 남녀들이 물건을 걷어치웠군!]
바다는 망망하고 파도는 거셌다. 소정에는 양식도 물도 없는데 어찌 멀 리까지 항해를 할 수 있겠는가? 정극상은 말했다.
[돌아가서 다시 그 도적에게 배를 빌리도록 합시다. 기껏해야 삼백팔십 만 냥의 차용증서를 쓰는 것밖에 더 있겠소?]
풍석범은 말했다.
[그들도 한 척밖에 없는데 어찌 우리들에게 빌려 줄 수 있겠소? 나는 차라리 바다에 떨어져 고기밥이 되었으면 되었지, 돌아가서 그 도적에 게 애걸하고 싶지는 않소이다.]
정극상은 그의 말이 단호한지라 감히 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한숨을 내쉬며 세 명의 위사에게 소정을 바다 쪽으로 저어 나가도록 명령했다. 위소보는 정극상의 소정이 큰 배 있는 쪽으로 저어가더니 큰 배가 행해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다시 소정을 저어 멀리 떠나는 것을 보고는 참 을 수 없어 웃었다. 소전은 위소보가 울다가 웃다가 하는 것을 보고 사부님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위로해 줄 겸 말했다.
[저 정씨 집안의 둘째 공자는 간사하기 이를 데 없군. 분명히 우리 큰 배를 빼앗으려고 한 모양이에요. 소보, 그대가 가지고 있는 삼백팔십만 냥의 차용증서는 내가 보기에 나중에는 그가 아무래도 억지를 쓸 것 같 군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 녀석은 정말 못됐어.]
소전은 웃었다.
[그대는 어떤 점에서는 똑똑한 편인데, 조금 전 그 녀석이 그대의 마누 라를 그대에게 팔아넘기고서 만 냥의 빚을 갚는다고 하자 생각해 보지 도 않고 그저 응낙을 했지요. 이것은 그대가 아가 누이를 너무나 사랑 한 탓일 거예요. 그때 그가 그대에게 만 냥의 은자를 내놓으라고 했더 라도 그대는 역시 응낙했을 것 같아요.]
위소보는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닦으며 웃었다.
[상관할 것 없소. 응낙한 후에 다시 따지기로 하지. 천천히 그에게 빚 을 받으면 되지.]
방이는 물었다.
[나중에 어떻게 손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위소보는 머리를 긁적긁적하고 말했다.
[풍제중을 죽인 후에 나는 걱정할 일이 없어져서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 기 시작했소.]
그는 풍제중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을 품지 않았었다. 그러나 마음속 깊 숙한 곳에서는 신변에 커다란 화가 다가음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아무 까닭도 없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듯했는데 풍제중이 죽자 즉시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듯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저 도적을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그저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인지도 모른 다.) 사람들은 위기에서 벗어나고, 죽을 사람은 죽고 도망칠 사람은 도망쳐 서 섬이 태평스럽게 되자 모두들 온몸이 피곤해지는 것을 느꼈다. 외소보는 이때 두 발이 마치 천근처럼 무거운 것을 느끼고 견딜 수 없 어 그만 모래 바닥 위에 누워서 쉬었다. 소전은 풍제중에게 짚혔던 혈 도를 안마해 주었다. 석양 빛이 하늘을 뒤덮고 물결이 반짝거려 바다에 마치 금빛 뱀이 서로 다투어 뛰고 나는 듯해서 그 광경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여인들은 모두 주저앉았다. 얼마 후 위소보가 먼저 코를 골았고, 여인 네들도 차례로 잠이 들었다. 한 시진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방이가 먼 저 깨어났다. 그녀는 위소보가 옛날 중군장으로 사용하던 집으로 가서 밥과 음식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을 불러서 식사를 하도록 했다. 객당에는 소나무로 만든 횃불을 걸어놓아 온 집안을 훤하게 밝혀 놓았다. 여덟 명이 함께 식사를 한 후에 방이와 쌍아가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 다. 위소보는 소전으로부터 시작하여 방이, 공주, 증유, 목검병, 쌍아, 아 가 등 일곱 여인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어떤 여인은 간드러지도록 화사했으며, 어떤 여인은 온순했고, 어떤 여 인은 활발했으며, 또 어떤 여인은 단정하면서도 수려했다. 제각기 장점이 있는지라 위소보는 크게 흐뭇해서 한 여인에게 등을 기 대고 다리는 다른 여인에게 갖다 대었다. 마음은 평화롭기 이를데 없었 으며, 그날 여춘원에서 일곱 여인과 더불어 커다란 이부자리 안에서 천 둥 벌거숭이처럼 날뛰었던 때와 비교해 볼 때 또다른 평안하고 아늑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과거 모조리 먹어치운다는 뜻으로 이 작은 섬에 통흘도라는 이름을 붙 인 것은 선견지명이 있어서 그대들 누나와 누이들을 모조리 내 마누라 로 삼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소. 이것이야말로 모르는 가운데 하늘의 뜻이 있는 것처럼 그 누구도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 소? 이제부터 우리 여덟 사람은 이 통흘도에 살면서 수명이 하늘처럼 길게 되고 영원히 복을 누리도록 합시다.]
소전은 말했다.
[소보, 그 말은 불길하니 다시는 하지 않도록 해요.]
위소보는 그녀가 홍 교주와 관계 있는 일은 어떤 것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재빨리 말했다.
[맞았소, 맞았소. 내가 또 실수를 했구려.]
소전은 말했다. [시랑과 정극상이 돌아간 후에 십중팔구 군사를 데리고 원수를 갚으러 올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집에서 오랫동안 머무를 수는 없을 거예요.]
여인들은 일제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방이는 말했다.
[전 언니, 우리는 어디로 가면 좋지요?]
소전은 위소보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것은 역시 지존보(至尊寶)의 생각을 들어야겠지.]
위소보는 웃었다.
[그대는 나를 지존보라고 부른 것이오?] [만약에 지존보가 아니면 어떻게 통째로 다 먹어치울 수 있었겠어요?]
위소보는 껄껄 웃었다. [나의 이름에 있는 보 자가 조그마한 보물 보 자인 줄로 알았소. 그런 데 알고 보니 지존보였구려.]
그는 뭇여인이 일제히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느끼고 잠시 생각한 후 말 했다.
[중원에는 갈 수가 없소. 신룡도는 이곳에서 너무 가까우니 역시 좋지 않소. 어쨌든 쾌적하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할 것이오.]
그러나 사람이 없는 황량한 곳은 쾌적할 수 없으며, 쾌적한 곳이라면 반드시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위소보의 기준으로 쾌적하 다고 하는 것은 바로 도박을 할 수 있고, 연극을 볼 수 있고, 이야기꾼 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갖가지 잡다한 놀이를 즐길 수 있어야 했 다. 그리고 노래, 맛좋은 음식, 맛좋은 찬, 간식용 음식, 아름다운 소 저, 모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아름다운 소저들은 이미 곁에 적 지 않게 있었으나 나머지의 여러 가지들은 북경이나 양주와 같이 천하 에 으뜸가는 번화한 곳이 아니면 결코 흐뭇하게 누리기 어려울 것 같았 다. 그는 이와 같은 풍류적이고 흥청거리는 곳을 생각하자 갑자기 호기 심이 발동하여 말했다.
[우리가 이곳에 모여 사는 것도 퍽이나 재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소. 그러나 우리 어머님 혼자 외로운 삶을 보내고 있는데 어찌 지내시는지 모르겠구려.]
여인들은 그로부터 자기 어머니를 들먹이는 것을 한번도 듣지 못하다가 이 말을 듣자 그에게도 효성심이 있다고 생각하여 일제히 물었다.
[그대의 어머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어떤 여인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대의 어머니는 바로 나의 시어머니이니까 마땅히 방법을 강구해서 한자리에 모셔 시중을 들어야 할 것이다.)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어머니는 양주 여춘원에 계시오.]
여인들은 양주 여춘원이라는 소리를 듣자 공주 외에 나머지 여인들은 대뜸 얼굴이 빨개졌고, 어떤 사람은 얼굴을 돌렸으며, 어떤 사람은 고 개를 숙였다. 공주는 말했다.
[아, 양주 여춘원이라는 곳은 그대가 말한 적이 있어요. 그곳은 천하에 서 가장 놀기 좋은 곳이며, 그대는 나를 데리고 놀러가겠다고 약속했잖 아요?]
방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그대를 곯려주려는 말이니 그 말을 믿지 말아요. 그곳은 가장 점잖치 못한 곳이에요.]
공주는 말했다.
[어째서 점잖치 못한 곳이란 말이에요? 그대는 놀러가 본 적이 있나요? 어째서 그대들은 하나같이 이상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죠?]
방이는 우스운 것을 참고 대답하지 않았다. 공주는 목검병의 어깨를 얼 싸안고 말했다.
[누이, 그대가 나에게 들려줘.]
목검병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했다.
[그곳은....그곳은 기녀원이에요.]
공주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지 계속 물었다.
[그대의 어머니가 기녀원에서 무엇을 하지? 소문에 들으니까 그곳은 남 자들이 가는 곳이라고 하던데?]
방이는 웃었다.
[그는 언제나 터무니없는 말을 잘 해요. 그대가 그의 말을 한마디만 믿 어도 골치가 아플 거예요.]
그날 여춘원에서 위소보가 일곱 여인과 한 이불을 덮고 잠자리를 하였 을 때 지금 여기 와 있는 공주만 늙은 갈보 모동주와 바뀌어 있을 뿐, 나머지 사람들은 모조리 여기 있는 것이다. 공주의 거친 태도는 모동주 에 못지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처럼 음흉하고 악랄하지 못한 데 다가 젊고 아름다운 점에 있어서는 더욱 뛰어난 편이었다. 위소보는 이렇게 바뀌어진 것이 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지금쯤 자기를 모시고 있는 것이 공주가 아니고 그녀의 어머니였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어쩌면 나중에 자기 역시 노황야처럼 오대산으 로 출가하여서 화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약 화상이 되더라 도 반드시 일곱 명의 마누라는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여인들이 겸연쩍어하는 빛을 띠고 있는 것을 보고 모두들 그날 밤 의 광경을 떠올리는 것임을 알았다. (그날 밤 어둠 속에서 나는 마구 날뛰어서 누가 누구인지 분간도 하지 못했다. 아가와 전 누나의 뱃속에 나의 아기가 들어 있으니 두 사람은 드러난 셈인데 또 누구를 건드렸는지 확실히는 모르겠구나. 천천히 알 아내야지.)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전 누나, 공주, 아가, 그대들 세 사람의 뱃속에는 이미 나의 아기가 들어 있는데 또 누구의 뱃속에 나의 아기가 들어 있는지 모르겠구려.]
그 말이 떨어지자 방이 등 네 여인의 얼굴은 더욱더 붉어졌다. 목검병 은 재빨리 말했다.
[나는 없어요, 나는 없어요.]
증유는 위소보의 눈초리가 자기에게 돌아오자 눈을 곱게 흘기며 말했 다.
[없어요.]
위소보는 쌍아를 보며 말했다.
[쌍아, 우리는 반드시 대성공을 했겠지?]
쌍아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한 모퉁이로 몸을 숨기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위소보는 방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어떠시오? 그대가 여춘원에 왔을 때 뱃속에 베개를 넣어서 잔뜩 불려 놓은 것을 보면 반드시 선견지명이 있었을 것이오.]
방이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킥, 하고 웃으며 혀를 찼다.
[죽일 태감 같으니, 내 그대와....어찌 그런 짓을....]
목검병은 말했다.
[그래요. 사저, 증 언니, 쌍아 자매, 나, 우리 네 사람은 그대와 천지 신명에게 알리는 혼례식도 올리지 않았는데 어째서 애가 생기겠어요? 소보, 그대는 나빠요. 그대는 왜 전 언니와 공주, 그리고 아가 언니와 혼례를 올린 것을 나에게 말하지 않고, 나에게 국수도 먹여주지 않았느 냔 말이에요.]
목검병은 사람들이 혼례를 올려야 아기가 생기는 줄 알고 있는 듯했 다. 사람들은 그녀가 너무도 천진스럽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는 웃음소 리를 내었다. 방이는 팔을 뻗쳐 그녀의 허리를 얼싸안고 말했다.
[소 자매, 그렇다면 그대가 오늘 밤에 그와 천지신명에게 절을 하고 부 부가 되도록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