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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만 다니는 것이 나도 마음에 걸려
마을회관이 어딘지 여쭈었던 이웃집을 찾아갔다.
유일하게 안면이 있는 이웃집이라 찾아뵜는데,
주인 아저씨가 어제 과음하셔서 다음에 얘기하자신다.
관계도 미흡하고
때도 적절하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만큼만
어르신을 반찬으로 돕겠다 한 식당이 3곳 있었다.
# 개○식당
어르신 댁 골목을 따라 내려오면 제일 먼저 나오는 식당.
전단지를 드리며 설명드렸다.
"반찬을 필요로 하는 어르신이 이 골목에 계신데,
기력이 조금 안 좋아지셔서
혼자 반찬 만들거나 요리하시기 불편하시거든요.
기왕 만드시는 반찬이면 1인분만 더해서
예전에 이웃끼리 반찬 노나먹던 것처럼 나누면 어떨까 하고 찾아왔습니다."
(전단지 보시며)
"아.. 이런거군요.
우리집은 원래 반찬 많이 만들긴 하는데...
얼마나 자주 해야 합니까?"
"전단지 뒷면에 나와있듯이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만큼만 하시면 됩니다."
"아... 저녁에는 시간이 좀 나니까 그 때 하면 되겠네.
이 골목 어디 계신 분인데요?
반찬 만드면 센터에 전화하면 됩니까?
아니면 직접 갖다 드립니까?"
"아, 직접 가져다 주시면 더 좋지요.
사장님 여건이 만약 안 될 땐 센터로 연락주셔도 좋지만
직접 가져다 드리면 이웃끼리 나누는 거니 정도 있고
어르신도 받은 접시, 빈 접시로 안 돌려드리겠지요.
그렇다면 어르신께 다시 한 번 여쭤보고 연락드려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괜찮습니다."
김세진 선생님 기록이 생각났다.
선생님이 김치 나누면 어떨까 여쭌 중국집에서
뭐 그 정도 일 가지고 그러냐며,
어르신께 가끔 중국요리 먹고 싶으시면 전화달라고까지 하신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장면을 내가 직접 겪는 듯 했다.
식당에 사장님 어머니로 보이는 분도 계셨는데,
어르신과 친해지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다.
# 전○식당
센터에서 예전에 어르신 식사도 대접하곤 했던 식당,
배달 갔다온 여사장님이 오셨다.
아까처럼 여쭈었다.
호탕하게 웃으시며 대답하셨다.
월, 수에 반찬을 많이 만드니까
반찬은 문제도 아니라신다.
요즘 날이 더워 반찬 쉬어버리기 쉬운데
어르신 드리려면 그런 것도 신경써야 하지 않냐고 되물으신다.
어디 계신 어르신이냐 물으시기에
대강의 위치만 말씀드리니
월요일마다 그 근처 참을 배달하신단다.
가는 길에 들리면 되겠다신다.
어르신 모시며 살아봤고
노인이 미래의 자신이니까
(박시현 선생님이 하셨던 말이라 깜짝 놀랐다)
댁의 아이들도 보고 배울 겸
그렇게 하면 되겠다고 오히려 한 수 가르쳐주신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것,
굳이 드러내려고 하지 않은 것까지 언급하시며
기꺼이 하겠다 하신다.
결국 우리가 그리는 꿈이
특별하지 않고 당연한 이웃관계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단, 자기 혼자 찾아가기 어색하니
평소에 관계가 있는 김영옥 팀장님과
월요일 오후에 찾아가면 어떻겠냐신다.
그 말도 여쭈려 했는데,
사장님이 선수치셔서 성철이와 난 당황했다.
배달 왔다갔다 하면서
평소에 들려 안부도 여쭈어야겠다고 하시는 말에
또 한 번 멍해진다.
# 미○식당
어르신댁과 가장 가까운 식당,
찾아가니 음료수를 꺼내며 반겨주시며 물으신다.
"몇 분 정도 반찬을 나눠드려야 하나요?"
이제껏 말씀드렸던 것처럼
여러 분께 할 필요도 없고
가까이 골목에 계신 어르신 한 분께 이웃처럼 나눴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러 어르신께 해야하는 줄 알았다시면서
혹시나 멀면 힘들까봐 염려하셨단다.
한 분이고 바로 이 골목이라면
얼마든지 챙겨드릴 수 있다신다.
오히려 올해 안에
가게 앞 길 내는 공사가 예정되어 있어
그동안 어르신께 반찬 못 챙겨드리면 어떡하냐 걱정하셨다.
그러니까 사장님이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만큼만 하시면 되니 부담 가지지 않으셨음 한다고 거듭 말씀드렸다.
주로 아침에 장 보고 와서 반찬을 만드는데
그 때마다 종종 들리고 싶다셨다.
친정 어머니가 고제면 쪽에 사시는데
오전에 나물 다듬으러 자주 오신다며
가끔씩 나물 같이 다듬으면 어떻겠냐신다.
어르신이 가끔 오셔서 점심도 같이 하고
왕래하고 싶다 하셨다.
말을 듣는 내내,
더더욱 마땅하고 자연스런 나눔인데
단지 누구와 어떻게 관계 맺을지 몰라서
그냥 계셨던거구나 싶다.
여기서 식당한지 5년째인데
이 골목 할머니들 얼굴은 알아도 제대로 이웃할 일이 없었는데
잘 됐다시며 웃으신다.
거짓말처럼 흔쾌히 승낙하시기에
염려되는 점이 한 가지 있다며
어르신 불쌍한 사람 만드는 양 하지 않도록,
이웃처럼 만나주십사 부탁드리니
시어머니 모시며 수발도 들어봤고
자식들 보기에도 자신이 하는 것이
교육상 좋다며 어려울 것 하나 없다고 말씀하셨다.
꼭 유념하겠다며 오히려 안심시키셨다.
이어 제게 어르신 전화번호를 알려주거나
어느 집인지 알려달라시며
내일 아침에라도 뵙고 싶다 하신다.
어르신께 마지막으로 다시 여쭙고
연락드리겠다 말씀드렸다.
저녁에 돌아오며 어르신께 여쭈니
내일 아침에 와도 된다고 흔쾌히 허락하셨다.
곧이어 아주머니께도 연락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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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못했지만,
아주머니와 어르신의 첫 만남은 어떤 그림이었을까.
아주머니는 접시에 어떤 음식을 담아
미소 지으며 무슨 말로 첫 인사를 건넸을까.
두 분은 서로를 어떻게 소개했을까.
그리고 앞으로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보지 못해서 더 애틋하고
더 정답겠지.
생각만으로 마음이 뭉클해지는 상상이다.
# 도○ 카센터
생각지 못한 관계도 얻었다.
태안반도 봉사 가셨던 사진이 걸려있는 카센터라
혹시? 하며 약속을 잡았었다.
사장님이 대뜸 하시는 말,
" 이 동네 어르신 누가 힘든지를 먼저 알아야 돕든가 하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전단지보다 뭐가 우선인가" 라신다.
오히려 어떤 분이 계신지 알면,
명절 때도 어머니 챙기듯 챙기고픈데
몰라서 못 챙긴다고 훈수하신다.
(듣다보니 로타리클럽 사무국장 일도 하신단다)
일리있는 말씀이다.
이처럼 돕고자 하는 분이라면
잘 찾고 만나서 어르신 인격에 해 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알리고 잘 여쭙는 것도 필요하겠다 싶다.
사장님은 자신이 반찬으로 돕긴 어렵다며
자기는 이 골목 할머니들이 TV 고장나면 자기를 찾아온다 하셨다.
심지어 자기 팬도 있다고 농을 하시는데,
문득 드는 생각.
'어르신 댁에 전자제품으로 어려움이 생겼을 때,
간단히 손봐줄 이웃이 있다면
A/S 센터보다 더 듬직하겠다.'
사장님께 정중히 여쭸다.
"혹시 이 골목 어르신 중에 전자제품 고장나면
사장님께 가끔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지, 많이만 시키지 마~!"라며 씨익 웃으신다.
아, 이게 이웃의 강점으로 돕는 사회사업이구나.
어차피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당당한 이웃관계, 서로 주고 받는 이웃관계라면
굳이 반찬에 연연하지 않고서라도
다른 일로도 좋은 이웃관계의 구실이 되게끔
이후에도 충분히 공작할 수 있겠구나.
어르신의 든든한 이웃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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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이와 하루종일 다니며
배우고 느끼고 감동한 바가 넘친다.
귀한 경험을 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할 일인데,
만나뵌 분들의 이야기 속 '나눔'에 대한 생각이 내게 큰 배움이 됐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반찬나눔에 호의적이지 않더냐며
되려 되물으시는 사장님 말씀에
나눔을 당연스레 생각하는 선한 분들의 마음을
쉬이 지치지 않게끔 거들고 싶어졌다.
거창에서 관계의 '씨앗'을 찾았고
그 씨앗이 마냥 말라버리지 않도록
'파종'을 해보는 귀하디 귀한 경험을 했다.
감사드린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첫댓글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만큼만' 중요합니다. 선한 마음이 부담이 되지 않게, 선한 마음이 자연스러운 이웃의 관계로 소통되는 것이 핵심이지요. 외적인 가치는 반찬이지만 내적(핵심)인 가치는 노나먹는 반찬이 구실되어 이웃간의 인정과 나눔이겠지요.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노나먹는 반찬팀의 이야기를 듣고서 마음이 참 따뜻했습니다. 어르신을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이웃의 어르신으로서 반찬 나눔을 주선해준 점에 웃을 수 있었습니다.
참 신난다. 재미있다. 이렇게 사회사업하고 싶다. 인격과 공생성을 파종하는 사회사업가, 주상아 귀하다. 귀해.
잘했다 주상아~
그저 이웃, 당연스레 서로 도울 준비가 되어 있는 이웃.. 그저 톡 건드려 주면 파종할 수 있었던 잠재된 선하고 귀한 마음들.. 주상아 고맙다. 주상이가 이런 분들을 만났다는 것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