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두여자를 만났던 것은 지금부터 10년전 평동의 무허가 건물 교회의 2층 다락방이었다고 생각된다.
유독 얼굴에는 세상사 고생의 흔적들이 짙게 배어있어 한눈에 엇듯보아도 도회지의 세련된 이미지는 전혀없는 그저 평범하지도 못한 그여자들은 여름이면 천장이 낮아 무지하게 덥고 겨울이면 석유난로로 비록 미약한 온기를 나누었으나 우풍으로 아랫도리는 냉기가 심하게 느껴지는 교실로 저녁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야학를 찾아왔다.
박윤□ 59세, 설점□ 53세. 대졸. 이것이 현재의 두여자의 프로필이다.
두여자는 초등학교는 40여년 전에 정규학교에서 졸업하여 야학에서 중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여 1년만에 합격하고 어느 추운 겨울날 졸업식을 했다. 그러나 그때 야학에서는 고등반이 폐반되고 없어 더 이상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 없었다. 때마침 학교 내부로는 교사는 부족하고 학생수도 줄어들고 오랫동안 학교를 운영해오셨던 교장선생님 마저 병환으로 더 이상의 학교운영을 하실 수 없다고 통고하신 상태라 학교의 존폐가 논의되고 있을때 두여자는 고등반을 만들어 계속 공부를 할수 있게끔 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6명의 자원교사중 대학생 2명은 그만두어야할 상황에다 그나마 남은 4명의 교사가 초등반과 중등반을 나누어 일주일에 3일씩을 수업을 해야만하는 상황에서 쉽지않은 결정을 요구하였다. 연일 계속된 교사회의에서 고등반을 다시 만들고 신입생과 교사모집을 다시하기로 결정하면서 내가 교장을 맞기로 결정을 하였다.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지만 늘어나는 학생수와 신입교사로 인해 학교는 새로운 희망이 보였고 두여자의 고등반은 드디어 교회 사무실 공간에서 수업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교외에서 200마리의 돼지를 키우는 농장에서 일을 하고 또 한 사람은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1시간반 이상 차를 2번씩 바꾸어 타고 30분 남은 수업을 듣기위해 숨을 몰아쉬며 오는지를 모르고 있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생명을 담보로 할만큼 무서운 애착으로 닥아 오고 있었다. 어졌던 1년만에 고졸자격검시를 통과하고 눈물의 졸업식을 마치고는 학교를 떠났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해 겨울에 방통대에 나란히 입학하고 대학공부를 하면서 학교에서는 모두가 그녀들을 더 관심있게 바라다 볼 수밖에 없었다. 과에서 나이가 제일 많다고, 리포트가 힘들다고, 스타디가 있었다고, 공개강좌를 들었다고, 영어가 힘들다고,시험이 있다고, 장학금이 아슬아슬하다고, 실습을 나간다고, 졸업논문을 쓰야한다고 했고, 키우던 돼지가 화재로 모두 불타 어려움이 왔을때도, 남편이 갑자기 시부모와 어린자녀들을 두고 돌아가셔서 가장이 되셔야 했을때도 절망하지 않고 대학생활을 헤쳐가는 인간승리의 과정을 보면서 야학의 17명 교사는 한결같이 성원의 댓글을 올리고 혹시나 중간에서 좌절할까봐 마음조리다가 2006년 2월에 4년만에 학사모를 쓴 너무나 성스러운 졸업사진을 카페를 통해 봤을 때 마치 우리가 해낸 것 같은 자랑스러움으로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영어알파벳도 모르던 두여자가 화성시 봉답읍 두천리에서 50대 이후세대에서 최초의 대학을 졸업한 여성이 되셨고 시골에서 농사밖에 모르던 아낙도 6년만에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여성이 되셨다.
불가능에서 가능을 보았고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야학에서 가르치는 작은 봉사를 희생이라 말하지 않는다. 얼마나 가르침에 비해 큰 보답으로 되돌아 왔는가! 9월 2일 제42회 본교 졸업식에서 그 고마움을 공로패에 담아 큰 박수로 축하를 보냈다.
그리고 지금도 제2 제3의 여자 남자가 또 인간승리의 시도를 계속해 하고 있다.
주)제가 수원일보에서 1주일 마다 야학에 관한 기고를 청탁받고 제 1보로 두여자 얘기를 올립니다. 혹시 원고를 쓰실 분은 주저마시고 올려주세요. 내용은 자유형태로 원고지 7매내외.
우리학교를 소개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시고 평소 야학에 관한 소신이라던지 등등.....
첫댓글 선생님, 선생님들의 작은 봉사라니요 시간과 물질 마음 그어느것하나 희생아닌것이 어디있습니까? 낮동안 학생들과 수업하고 지친몸을 휴식의 편한함을 뒤로한채 야학에 오시는 선생님들 뵐때마다 무너지려는 의지가 다시 도전을 계속되게 하였지요그래서 대학에 들어와서도 선생님들께 조금이나마 보답을드리고 보람이라도 느끼실수있도록 정말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선생님들과 후배여러분 제일야학인들이 주신 공로패 생을 다하는날까지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 주시고 가슴 벅차게 하시는거 아시죠. 신문에서 읽어 보았답니다. 선생님들의 노고에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우리도 봉사할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공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