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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92 회>
씬 금산사 견훤의 처소 외경 (낮)
엄청난 바람이 불고 있다. 군사들이 추운 듯 몸을 웅크리며 번을 서고 있다. 파달이 감시하며 지나친다.
파달 똑바로 서거라. 한눈을 팔아서는 아니 된다. 내가 명령하였듯이 폐하와 승평부인은 물론이고 그 상궁이든 나인이든 내관이든 누구도 이 담 밖을 나갈 수 없다.
부장 예, 장군.
파달 안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모든 음식과 의복과 주변 잡서들을 다 점검하고 늘 보고하라. 알겠느냐?
부장 예, 장군.
파달 아랫것들을 잘 단속하라는 이야기다.
부장 알고 있사옵니다, 장군.
파달은 끄덕이며 그곳을 지나친다. 승려 둘과 절의 노비들이 음식을 안으로 들여간다. 한쪽에서 군사들이 점고하고 있다. 그리고 들여보낸다. 파달이 그렇게 가고 담문이 닫힌다. 바람은 더욱 더 소리를 내며 황량하게 지나치고 있다.
씬 동 방안
내관 하나가 화롯불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나가면 견훤이 물끄러미 그 불씨를 보고 있다. 밖의 바람소리는 문살을 찢을 듯이 울부짖고 있다. 견훤은 멍하니 그 소리를 듣는다.
견훤 그 의원놈이 아주 등을 부수어뜨리려고 했어. 그 고통은... 예전에는 참기가 어려웠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좀 나았어. 금강이가 죽었을 정경을 떠올려보니... 등창은 아무 것도 아니었어.
고비 (눈물 흘리며) 폐하.... 이제 그만 잊으시오소서. 이미 다 지난 일이옵니다.
견훤 (벌컥) 지나다니....? 뭐가..? 뭐가 지났다는 것인가? 아니야.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어. 이 무너지는 가슴과 피눈물을 어찌하고 다 끝이 났다고 하는가? 아무 것도 끝난 것이 없어. 아무 것도 아니 끝났어. (발광처럼) 아니 끝났어... 아니 끝났어...
고비 폐하, 고정하시오소서.
견훤 (헉헉대며) 술.... 술을 가져오라고 하였어.. 왜 술은 아니 오는 겐가? 이놈들이 술마저 아니 준다던가....?
고비 곧 온다고 하였사옵니다. 고정하시오소서, 폐하....
견훤 고얀 놈들..... 찢어 죽일 놈들... 내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야. 결코... 결코..........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마마, 주안상대령이옵니다.
고비 어서 들여라.
최상궁이 나인과 함께 술상을 들여온다. 견훤이 허겁지겁 떨리는 손으로 주전자를 든다. 그리고 큰잔에 따라 벌컥벌컥 마신다.
고비 폐하, 독한 소주이옵니다. 천천히 드시오소서. 이러다가 큰일을 보시옵니다, 폐하.
견훤 (계속 따라 마시며) 이미 큰일은 다 보았네. 더 이상 무슨 일을 크다 하겠는가? 신검이 놈은 어찌하고 있다던가? 그 늙은 이찬 그 놈은 어찌하고 있다던가..? 이 죽일 놈들이 지금 어찌하고 있다던가...?
고비 주변에 백여 명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사옵니다. 소식을 알 길이 없사옵니다.
견훤 파달이 그놈이 아직도 지키고 있다던가..?
고비 예, 폐하..
견훤 신검이 이놈.... 신검이 이놈......
그런 견훤의 표정에서...
씬 백제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능환과 능애, 신덕, 영순과 박씨가 모여있다. 신검은 그저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 두 형제도 함께 해 있다.
박씨 황제의 자리가 시급하다고 하였습니다. 태자는 어찌하여 그토록 망설이시는 게요?
신검 ............ (한숨만)
박씨 이미 천하가 태자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여유가 있지 못합니다, 태자.
양검 사실이옵니다. 권력 서열에 누수가 생기면 나중에는 걷잡지 못하게 되옵니다.
용검 그러하옵니다, 형님. 그만 대위에 오르시오소서.
영순 모두의 뜻이 이러하옵니다. 허락하시오소서.
능애 하지만 태자마마께서는 세상의 이해를 구하고자 하시옵니다. 분명 일리가 있다고 사료되옵니다.
신검 그렇습니다. 지금 아버님이 요양 중이십니다. 그래서 그 아들인 제가 잠시 대권을 맡아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황제의 자리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하든 아버님의 마음을 움직여서 전교의 윤허를 받아내는 일입니다. 지극히 합법적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일 말입니다.
능애 그러하옵니다. 허면 지금부터라도 지극 정성으로 금산사에 사신을 보내도록 하시오소서. 정례적으로 인사를 계속 드리고 살펴 드리면서 그 마음을 움직이셔야 하옵니다.
박씨 허허, 이런... 능애장군,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장군의 친 형님이십니다. 그 분이 어떤 분인지 모르십니까?
능애 하지만 길은 그것뿐이옵니다. 백성들과 호족들이 이해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불안의 싹을 키우는 일이 될 것이옵니다.
능환 분명히 일리 있는 말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 이제 고려는 움직일 것이고 그러자면 한시도 대위를 비워둘 수 없는 일입니다.
신검 자자... 또 이야기가 원점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황제의 자리니 대위니 하는 것은 그만 하도록 하십시다. 어마마마께서도 그리 이해를 해 주시오소서. 급할 것 없사옵니다. 걱정할 것도 없사옵니다. 환후가 중하신 아버님을 요양 보내드린 자식이옵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사옵니까? 자, 조당에 신료들이 기다린다고 하니 가십시다. 가서 결속을 다지고 새로운 질서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박씨 이 어미의 말을 잘 기억하세요. 누가 뭐래도 황제의 자리는 비워두는 것이 아닙니다.
신검 아버님께서 지금 금산사에 계시옵니다. 소자는 그것만은 아니 된다고 생각하옵니다. 급할 것 없사옵니다. 기다려주시오소서. 아주 정당하고 만인이 옳다고 하는 방법을 찾아 보이겠사옵니다.
박씨 글쎄올습니다... 괜한 고집 같습니다, 태자.
신검 자자.. 어서 조당으로 가십시다. 일어들 나십시다.
능환들 예, 태자마마.
신검 아 그리고 숙부님...?
능애 예, 태자마마.
신검 숙부님의 말씀이 백 번 옳으십니다. 조회가 파하면 금산사로 한번 가 주십시오. 열 번이든 백 번이든 가셔서 아버님의 노여움을 가라앉히도록 해야 합니다. 열 번 찍어서 아니 넘어가는 나무 없다 하였습니다.
능애 예, 태자마마.
신검 허면 가십시다.
모두들 일어선다. 답답한 표정의 능환과 박씨, 그 한숨에서..
씬 동 조당
신검이 옥좌를 비워두고 그 앞에 앉아 있다. 왕관이 없는 황태자의 의장 그대로이다.
신검 대소신료들은 들으시오.
모두들 예, 태자마마.
신검 아버님께서는 지금 모 요양처에 도착하시어서 의원들의 충분한 진료를 받으시며 요양 중이십니다. 연세가 많으시니 쉽게 나으실 것 같지도 않소이다.
모두들 .......... (그 면면들 스쳐가고)
신검 이제야 아버님은 그렇다 하시고 남아 있는 우리들은 우리들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먼저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는 저 고려국을 경계하는 것이 제일의 목표가 될 것입니다. 아니 그렇소이까?
모두들 지당하시옵니다, 태자마마.
신검 그러자면 시급히 군부를 개편하고 전국에 있는 수령방백들에게 어려운 나라사정을 전하여 동참토록 유도해야 할 것이외다... 숙부님...?
능애 예, 태자마마.
신검 숙부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군부의 원로로서 헌신해 오셨습니다. 이제부터 나라의 병권을 맡아 신덕 장군 그리고 애술, 김총 장군들과 함께 국방을 맡아 주십시오.
능애 망극하옵니다, 태자마마. 미력하오나 신명을 다 바치겠사옵니다.
신검 상귀 장군은 여전히 해군장군으로서 바다를 맡아 주시오.
상귀 예, 태자마마.
신검 양검과 용검 두 아우는 이 황도의 수비와 전군의 감찰을 맡아 주어야 할 것이야.
두 형제 예, 태자마마.
신검 그리고 이 조정의 대소사와 문반에 관한 일은 여전히 이찬 어른께서 맡아주십시오.
능환 예, 태자마마.
신검 그리고 이번 혁명에 공이 많은 신료들을 표창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모두들 ..................
신검 먼저 이찬 능환과 대장군 능애에게 개국 1등공신을 봉하는 바이오.
그들 망극하옵니다, 태자마마.
신검 또한 중신 영순과 신덕 장군에게는 개국 2등공신을 봉하며 아울러 파진찬의 관등을 더하여 그 공을 기려주고 싶소이다.
그들 망극하옵니다, 태자마마.
신검 또한 상귀, 파달, 상애 장군등을 역시 개국 2등공신을 봉하며 아찬의 관등을 더하는 바이오. 모두 오늘의 일을 역사의 기록에 남기고 그 화상을 그려 공신전에 부칠 것이며 대대손손 영화를 받도록 하게 할 것이오.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태자마마.
신검 그렇소이다. 충성하는 자는 살고 역행하는 자는 죽는 것이 고금의 법이올시다. 우리 백제는 분명 삼한을 통일할 것이외다. 저 고려를 무너뜨리고 삼한을 통일할 것이외다.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태자마마.
끄덕이는 신검의 표정에서...
씬 승평 박영규의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박영규의 부인인 국대부인이 차를 따라주고 있다. 박영규는 한숨만 쉰다.
국대부인 차 드시오소서, 나으리.
박영규 되었소이다.
국대부인 아직도 노여움이 풀리지 않으셨사옵니까? 그래도 아우들이 이렇게나마 나으리의 목숨을 붙여주었사옵니다. 얼마나 다행이옵니까?
박영규 다행이라...? 비록 이복동생이지만 제 아우를 죽이고 아버님을 쫓아낸 역신들이올시다.
국대부인 아옵니다. 하오나 어찌하겠사옵니까? 그래도 소첩이 저들의 누이라 하여 사정을 많이 봐 주었사옵니다. 참으시오소서.
박영규 허허.. 지금 참지 않으면 어찌한다는 말이오? 이미 황도를 쫓겨나서 이곳 승평(지금의 순천)으로 내려와 있소이다.
국대부인 좋은 날이 올 것이옵니다. 참으시오소서, 나으리. 오히려 잘되었사옵니다. 소첩과 함께 이곳에서 편히 지내시오소서.
박영규 글쎄올시다. 마음이 편치 않은데 어찌 몸이 편할 수 있겠소이까? 우리 백제가 어쩌다가 이리 되어가는고...? 우리 백제가....
국대부인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옵니다, 나으리... 기다리시오소서.
해설 국대부인, 박영규의 부인이다. 견훤의 딸로서 훗날 왕건에게 자식을 바쳐 그 딸이 왕건의 비인 동산원부인이 된다. 지금까지 그녀는 박영규의 고향인 승평에 있었다. 그리고 이제 곧 견훤이 백제땅을 탈출한 이후 남편인 박영규를 권하여 왕건에게 내응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가히 여장부다운 일을 해내는 것이다. 또한 그녀의 큰딸이 왕건의 비가 된 외에도 다른 두 딸 또한 정종의 비가 되니 문공왕후, 문성왕후가 그녀들이다. 그리고 그녀는 훗날 국대부인에 책봉되는 것이다.
국대부인 도대체 금강아우야 죽었다고 한다지만 아버님께오선 어디로 가셨다는 말씀이옵니까?
박영규 그걸 모르니 더 답답합니다. 저들이 아직 아버님의 목숨을 해친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마는... 환후가 중하신데 대체 어디로 어떻게 뫼셨는지 그저 답답합니다. 저들은 옥좌에 욕심이 나서 일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고려를 상대하지 못합니다. 폐하께오서 금강 태자에게 대위를 전하려 한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그게 더 걱정입니다, 부인...
그런 박영규의 표정에서...
씬 고려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왕건과 유금필, 박술희, 홍유, 배현경, 복지겸들이 모여있다. 왕건이 눈을 크게 뜨며 묻고 있다.
왕건 오... 알아냈소이까? 백제의 왕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는 것입니까?
복지겸 예, 폐하. 정변이 났을 때부터 우리가 밖아 놓은 첩자들이 그 정황을 낱낱이 살펴본 것 같사옵니다.
유금필 오호... 복장군... 그렇다면 지금 백제왕이 어디 있다는 것입니까?
박술희 어딘가 가두어놓은 모양이지요.
홍유 하긴 아무리 정변을 일으켰다고는 하지만 자식이 아비를 죽일 리야 있겠소이까?
복지겸 그런 모양입니다. 후궁과 나인들과 의원을 따라 붙여 황도에서 한참 떨어진 김제 금산사에 가두었다 합니다.
배현경 김제의 금산사라....? 들어본 적이 있소이다. 오래된 고찰로서 아주 큰절이 아닙니까?
복지겸 그렇다고 합니다.
왕건 김제의 금산사라...? 절에 가두었단 말이지요...?
복지겸 예, 폐하. 특별히 선발된 군사들이 밤낮으로 엄히 지키고 있다 하옵니다.
왕건 그럴 테지... 사안이 아주 중하지 않소이까? 금산사라....? 백제왕의 나이도 어느덧 칠십인데 거기다가 등창까지 심하게 앓고 있다 들었는데... 참으로 서글프게 되었구먼... 허허, 그것 참...
유금필 중요한 것은 그토록 엄청난 난리가 있었음에도 백제의 사정이 무척 안정되어 보인다는 것이옵니다. 경계지역들의 군사적 조치도 다 끝나 있었고 백제 지방의 많은 호족들도 일체 별다른 움직임이 아니 보인다 하옵니다.
복지겸 그러하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백제왕의 안해인 황후가 자식인 신검의 편을 들었다는 것이옵니다.
왕건 허허 이런...
배현경 아무튼 우리 고려도 군사적인 조치는 사방으로 철저하게 취해놓았사옵니다. 백계산으로 간 시중어른이 돌아오신 뒤에 보다 세밀한 조치들을 취할 필요가 있을 것이옵니다.
왕건 (끄덕이며) 그렇겠지요....
씬 황후전
두 황후가 앉아 있다. 유씨가 크게 놀란다. 무가 함께 해 있다.
유씨 아니 황후마마. 백제에 변란이 난 것이 부자간의 싸움 때문이었다 하옵니까?
오씨 그렇다고 하네. 그 아비를 가두고 이복동생을 죽였다는구먼.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유씨 세상에.... 그것이 사실이옵니까?
무 예, 마마. 사실이라 하옵니다. 그 모든 과정을 우리 세작들이 다 전해왔다 하옵니다. 그 전말을 지금 내군장군이 폐하께 아뢰고 있사옵니다.
유씨 무섭기도 하지... 아무리 배가 달라도 한 어버이의 자식이 아니옵니까?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사옵니까?
오씨 그러게 말일세. 이보시오, 정윤..?
무 예, 어마마마.
오씨 그러길래 집안이 화목하지 못하면 나라도 무너지는 법입니다. 먼저 나를 다스리고 집안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린다 하였습니다. 정윤도 아우들이 좀 많습니까?
무 아, 예...
오씨 그 많은 아우들을 챙겨주는 것도 정윤의 무거운 책임 중 하나입니다. 명심하세요.
무 예, 어마마마. 이를 말이옵니까?
씬 다시 동 대전
여전히 왕건과 공신들이 모여 차를 마시고 있다.
왕건 헌데 말이오... 경보대사께서는 뭔가 할 일이 있다고 분명히 두 번씩이나 말씀을 하셨답니다. 대체 무슨 일을 도와줄꼬...?
유금필 신이 듣기로는 삼한통일에 관한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배현경 그야 물론 그럴 테지요. 헌데 무슨 일을 해주실 것인가가 궁금한 일이옵니다.
홍유 그러게 말입니다
복지겸 신이 생각하건데 지금 이때에 경보대사께서 가장 큰일을 해주실 것이 있다면...
왕건 있다면.....?
복지겸 그것은 바로 지금 금산사에 갇혀 있는 견훤왕을 움직이는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왕건 (크게 놀라며) 뭐라...? 누구를 움직여...? 견훤왕을 말이오..?
복지겸 그렇지 않사옵니까? 지금 백제의 견훤왕은 그 자식에게 버림받고 금산사에 갇혀 있사옵니다. 만약에 그 마음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우리 고려에 엄청난 도움이 될 수도 있사옵니다.
왕건은 크게 깨닫는다. 정말 그런 것이다. 모두들 놀란다.
왕건 맞는 말이오. 가능성은 적지만 그리만 된다면야...
복지겸 자신이 사랑하는 자식이 죽었사옵니다. 자신은 깊은 절에 유폐되었사옵니다. 지금 그 원한이 모르긴 몰라도 무척이나 깊을 것이옵니다.
왕건 그럴 테지... 충분히 그럴 테지... 허허, 그리만 된다면... 견훤왕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배현경 아 참, 박장군...? 그 어른은 어찌 되셨소이까? 견훤왕의 부친 말이올시다. 아, 뭐라고 하던가...?
박술희 아자개 상부 말입니까?
배현경 맞소이다. 그 아자개 어른 말이올시다.
홍유 아하... 정말 잊고 있었소이다. 철원에서 이곳 개경으로 환도를 할 때에 그냥 남아있지 않았소이까?
왕건 살아 계신 것은 아네마는.. 어찌 지내시던가..?
박술희 소신도 여가가 없어서 가 뵙지는 못하고 그저 매년 사람과 물건을 보내 문안인사만 드렸사옵니다.
홍유 허면 그 분의 연세가....?
박술희 족히 구십은 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백살이 다 되어갈 것이올시다.
왕건 그렇겠지. 충분히 그리 되었지. 지난 번 육종을 앓았을 때 많은 산삼을 드셨다네. 그 덕인가는 몰라도 아직 멀쩡하다고 나도 들었네.
홍유 허면 이번에 견훤왕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과 뭔가 연관을 시켜보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왕건 그러게 말이오. 나도 지금 뭔가가 그런 생각이 나기는 납니다마는... 아참, 그 부인은 어떠하신가? 금실이 아주 좋았는데...
박술희 그 분도 살아 계시옵니다. 그리고 지금도 금실이 아주 좋으시옵니다.
왕건 허허, 그래..?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너무 뵙지를 못하였구먼.. 누군가 한번 다녀왔으면 좋겠는데.... (하면서 박술희를 본다) 그래도 한때는 자네가 그 집의 사위가 될 뻔하지 않았는가?
박술희 물론 그렇사옵니다. 신이 한번 다녀오겠사옵니다.
유금필 그렇게 하게나. 기왕이면 가서 머리를 깎았다는 그 대주낭자 소식도 한번 들어보지 그러는가?
모두들 그러게 말입니다. (와 웃는다)
왕건 다녀오게. 기왕이면 빠른 게 좋겠구먼. 철원에 한번 다녀와.
박술희 예, 폐하. 그리 하겠사옵니다.
왕건 허허.. 그 아자개 어른이 살아있다...? 허허...
씬 철원 아자개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백살의 귀신같은 아자개와 파파 할멈이 된 부부가 군밤을 까먹고 있다. 부인인 계모가 밤을 어렵게 까서 넘겨준다. 아자개는 가는귀가 먹었다. 그리고 풍을 앓은 듯 턱을 떨고 있다.
계모 나으리... 드세요...
아자개 뭐요....?
계모 (큰 소리로) 이 밤 좀 드시라구요....
아자개 어어... 알았어요.... 고맙소, 부인... 그래도 아직도 눈이 참 좋구려... 이 밤을 다 까다니...
계모 머리까지 다시 검어지고 있습니다... 나으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아자개 히히히... 견훤이 놈 얼굴 안 보고 백제 소식을 못 듣고... 이렇게 편안히 묻혀 사니 신선이 따로 없지 않소이까? 가는 귀가 좀 먹어서 그렇지... 앞으로도 한 백년은 더 살 것 같소이다. 히히히.... 부인도 드시구려.
계모 먼저 드세요.
아자개 아, 드시구려...
계모 예, 반쪽만 주세요.
아자개 그래, 반쪽을 나누어 먹는 우리 부부의 금실이 더 중요하지. 이까짓 밤이 뭐 중요하겠소. 아니 그렇소이까, 부인..?
계모 왜 아니옵니까? 호호호....
두 부부는 그렇게 웃고 있다.
씬 고려 황궁 외경 (밤)
씬 다시 동 대전
공신들은 가고 왕건이 홀로 생각에 잠겨 있다.
왕건 (소리) 그래... 아자개 노인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은 뭔가 길조가 있을 것임을 예견한 것이다. 아자개 노인과 견훤왕이 만난다..? 있을 법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우리 고려로 오게 한다...? 우리 고려로...? (사이) 시도해 볼만한 일이다. 해서 나쁠 것이 없다. 그래... 허면 지금 시중은 어찌되었을꼬..?
씬 백계산 옥룡사 외경
씬 동 경보의 방
김행선과 왕충, 최지몽이 경보와 마주해 있다.
경보 지금 백제의 황제가 금산사에 있다는 이야기는 빈도도 들었소이다. 바로 얼마 전에 말이올시다.
김행선 허면 황제가 없는 나라가 아니옵니까? 그 아들인 신검이 아직도 황제에 오르지 않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앞으로 백제국이 어찌될 것 같사옵니까?
경보 허허허... 백제국이 앞으로 어찌 되느냐..? (최지몽을 본다) 눈매가 아주 총기가 있구먼 그래. 이름이 무엇이오?
최지몽 최지몽이라 하옵니다.
경보 허허허... 꿈풀이를 잘한다는 뜻이로구먼. 허면 천문 지리와 역술에도 밝겠소이다 그려.
최지몽 아직 어려서 잘 모르옵니다.
경보 하하하... 내 보니 신동은 신동이로구먼. 허면 이곳에 온 것도 나라 장래를 점쳐보기 위해서이겠소이다 그려.
최지몽 그저 법력이 높으신 도인 어른을 뵙고 인사를 드리고자 온 것이옵니다. 부디 고려국의 앞날과 작금의 처한 현실을 바로 보시고 알려주시오소서.
경보 어린 나이치고는 예의도 그럴 법하오이다 그려. 허허허.... 그쪽은 보아하니 장수의 기질이 있어 보이는구먼.
왕충 예, 고려국의 장수 왕충이라 하옵니다. 연세 많으신 시중 어른을 잘 뫼시라는 영을 받자와 함께 왔사옵니다.
경보 그러니까 급변하고 있는 백제국의 사정을 알고 싶고 앞으로 어찌될 것인가를 물어오라고 보냈다 그 말인데...
김행선 그렇사옵니다, 대사님. 밝은 혜안으로 읽어주시오소서.
경보 허허허.... 그래도 아직 한참 남았소이다. 백제가 당장 무너지는 것은 아니올시다. 흘릴 피는 더 흘려야 하고 인내의 세월은 아직도 그만큼 더 가야 합니다. (사이, 한숨) 금산사라....? 그곳의 주지는 내 한참 사제뻘이 됩니다. 그것도 그렇거니와 한때는 백제 황제의 왕사를 허락한 적이 있으니 곤궁할 때 한번 가볼 참이올시다.
김행선 오, 그리하실 것이옵니까?
경보 다시는 이런 수고로움을 하지 않도록들 하시구려. 백성들을 피 흘리게 하지 않는 것은 불제자의 당연한 소임이올시다. 한번 가볼 참이올시다, 금산사 말이오... 그 말밖에는 할 것이 없소이다.
김행선 하오면 대사님, 행여나 좋은 소식이 있을 경우 연통을 주실 것이옵니까?
경보 (한참 보다가) 그럴 일이 있을 것도 같구려.
김행선 아이구.. 고맙사옵니다, 대사님. 고맙사옵니다...
왕충,최지몽 (함께) 고맙사옵니다, 대사님...
경보 (시큰둥하다) 천지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인데 무엇이 고마울 것이 있다는 말이오. 밤이 늦었으니 가서 쉬고 내일 일찍 떠나시구려. 빈도도 눈을 좀 붙여야겠소이다.
김행선 예, 대사님. (합장하며) 참으로 고맙사옵니다. 고맙사옵니다....
그런 그들의 표정에서...
씬 금산사 외경
씬 동 견훤의 처소
삭풍소리는 여전하다. 술을 마시다가 술병이 비었다. 그대로 내려치면 그 병이 박살이 난다. 고비는 그저 떨며 보고만 있다.
견훤 고얀 놈... 제 놈이 그런다고 황제를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어림도 없지... 어느 시대나 강한 자가 살아남는 법이야. 제 놈은 왕건 아우를 못 당해.. 어림도 없지... 무엇 하느냐? 술을 더 가져오지 않고...?
고비 폐하, 이러하신다고 달라질 것이 없사옵니다. 옥체를 보전하시오소서. 이리하시는 것은 오히려 저 악독한 신검 태자를 도와주시는 일이 되옵니다. 폐하께서 환후가 더 깊어지시고 행여나 큰일을 당하신다면 저들이 더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견훤 그래... 그렇게 되겠지...
고비 그러니 제발 그 노여움을 다스리시오소서. 환후를 다스리시고 다시 우뚝 서시오소서. 그것이 죽은 금강이와 파진찬의 소원일 것이옵니다. (울며) 그리하자면 먼저 그 소주잔을 치우시오소서. 제발 환후를 다스리시오소서, 폐하.
견훤 그래... 그래... (소주 마시며) 하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일찍 죽지 않아. 나는 견훤이라는 사람이야. 대 백제국의 황제... 황제야... 황제....
그러다가 견훤은 열에 들뜬 사람처럼 뭔가를 생각하며 미소를 짓는다. 과거의 그 열정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가는 것이다. (제작진이 알아서 좋은 영상들을 뽑아주십시오) 대야성의 전투라든가 공산전투 같은 견훤이 승리하던 모습들이 특히 강조되어 지나쳐간다. 그리고 조물성에서 왕건을 다스리던 그 모습까지 영광, 그 영광의 순간들이 천지를 진동하는 함성들과 함께 지나쳐 간다. 떠블되는 견훤의 그 희열 같은 표정에서 함성소리는 여전히 살아남는다.
견훤 (그 소리들이 사라지면서) 그래... 영광의 세월이었어. 한때는 신라의 도성을 지키던 하급군관에 불과했었지. (사이) 하지만 나는 제국을 이루었어. 왕건 아우를 무릎 꿇리고 신라의 왕을 죽였어. 대 백제국의 황제로서 말이야.
고비 .................
견훤 그래, 그렇게 그 영광 속에서 백제는 오늘을 달려왔어. 아... 이제 신라는 다 되었고 고려와 백제만 남았는데 아하... 이 중요한 때에... 자식놈 하나가 일을 그르치고 있어. 다 망쳐버렸어.. 다... 다... 다............!
견훤은 미친 듯 상을 쓸어버린다. 그리고 절규한다.
견훤 신검이 놈이 다 가져가 버렸어.. 다......
그런 견훤의 모습에서...
씬 금산사 외경
능애가 종자 둘과 함께 물건을 들려 다가오고 있다. 파달이 부장들과 함께 달려와 예를 취한다. 주지도 승려 둘과 함께 나와 합장한다.
능애 허허허.. 파달 장군. 이 금산사까지 와서 고생이 많구려.
파달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오신다는 전갈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밤이 늦었사온데 고생이 많으시옵니다.
능애 고생은 무슨... 폐하께서는 어찌하고 계십니까?
파달 연일 술로 지새우고 계시옵니다. 가끔씩 방안에서 고함소리가 들려나오기도 하굽쇼.
능애 그러시겠지... 자, 들어가십시다. 주지스님이신가요..?
주지 예, 장군.
능애 폐하를 뵈러 왔소이다. 함께 가 주시겠소이까?
주지 예, 장군. 그리하시오소서. 허면 소승을 따르시오소서.
능애 가십시다.
그들이 움직여 간다. 견훤의 거소 쪽으로 가다가 파달이 말한다.
파달 장군께서는 괜한 걸음을 하신 것 같사옵니다. 별 소득이 있을 것 같지가 않사옵니다.
능애 소득이라...? 폐하와 이 사람은 형제올시다. 친형제 말이오. 동기간에 무슨 소득을 바라고 왔겠소이까? 다 황실의 안정을 위해서 온 것뿐이외다.
그들 안으로 간다. 암자 담을 지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씬 동 마당
내관 하나가 능애들을 보고 고한다. 파달과 군사들도 섰다.
내관 폐하... 황도에서 병부의 총사 능애 대장군께서 오셨사옵니다. 폐하.. 황도에서 병부의 능애 대장군께서 오셨사옵니다.
씬 동 거소 안
어느새 방안은 다 치워졌고 견훤은 앉아서 밖의 소리를 듣고 있다. 소리를 들으며 점점 더 격노하고 있다.
내관 (소리) 폐하, 다시 아뢰옵니다. 황도에서 병부의 능애 대장군께서 오셨사옵니다.
고비 (견훤의 반응이 없자) 황도에서 온 사람들이 무엇 하러 폐하를 뵙고자 한다는 말인가? 밤이 깊었으니 돌아가라 일러라.
능애 (소리) 폐하.. 신 능애이옵니다. 폐하...
고비 돌아가시라 하지 않았느냐?
씬 동 밖
고비 (소리) 가라 하는데 왜 그리 성가시단 말인고..? 돌아가시오.
능애 폐하... 먼길을 왔사옵니다. 알현을 허락하시오소서.
씬 다시 동 처소 안
고비 말하지 않았소이까? 돌아가시라고.. 대체 무슨 염치들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는 말이오?
능애 (소리) 황궁에 계시는 태자마마께오서 폐하의 환후를 염려하시어 보내신 것이옵니다. 아직 날도 차고 추운지라 술과 음식과 어의를 챙겨왔사옵니다.
견훤 허허허... 신검이가 나를 생각해서 먹을 것과 옷을 챙겨주었다고..? 들어오너라.
고비 폐하...?
그러나 견훤은 더 댓구가 없다. 문이 열리고 능애가 들어선다. 그리고 정중하게 예를 올린다.
능애 폐하... 지내시기 불편하시지는 않으시옵니까?
견훤 ...................
능애 여기 태자마마께서 전하랍시는 것들을 가지고 왔사옵니다.
견훤 그래... 고맙구나. 네 놈도 형편없는 조카놈에게 붙어서 잘들 하는구나. 능애 이놈... 이 역적놈들.....
능애 폐하... 많은 신료들이 그 날의 일을 걱정해 왔었사옵니다. 하오나 달라진 것이 없었고 결국 나라는 위태로워졌사옵니다. 하여 눈물을 머금고 행한 혁명이옵니다.
견훤 뭐라...? 무얼 먹고 해..? 눈물...?
능애 예, 폐하. 우국충정의 발로였사옵니다. 폐하께서 일으키신 제국을 지키기 위함이었사옵니다. 지금이라도 굽어살피시오소서. 신검 태자마마는 변함없이 폐하의 아드님이시고 폐하께 충성을 다하는 태자이시옵니다. 굽어살피시오소서.
견훤 그 말을 하려고 왔느냐?
능애 예, 폐하. 폐하께서 이루신 제국이 천년만년 보전 되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이제 그만 노여움을 푸시고 당면해 있는 현실을 보아주시오소서. 그리하여 통일의 대업을 지켜보시오소서. 백제국이 주도하는 삼한의 통일을 말이옵니다.
견훤 오냐, 그러면 얼마나 좋겠느냐? 허나 신검이 놈은 그릇이 아니 된다. 그래서 반대했던 일이다. (강한 노여움) 그 놈은 아니 돼... 그래서 금강이에게 주려고 했던 것이다. 이 미련한 놈들아... 헌데 반란을 해..? 금강이를 죽이고 파진찬도 죽였다지. 이 놈들....
능애 피치 못할 일이었사옵니다. 용서하시오소서. 어차피 그들은 죽었사옵니다. 남은 일은 백제의 제국을 지키는 일이옵니다. 폐하가 이루고 만드신 제국이옵니다. 지키게 하여 주시오소서.
견훤 지키게 해달라...?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능애 신검 태자마마를 용서하시오소서.
견훤 용서...? 결국 옥새를 달라는 말이냐?
능애 .............?
견훤 그런 것이냐?
능애 어차피 보위를 받을 분은 신검 태자마마 밖에 아니 계시옵니다. 허락하시오소서, 폐하.
견훤 네 이놈.......
견훤이 술병을 내던졌다. 이마가 찢겨 능애는 피를 흘린다. 그래도 능애는 끄떡도 않는다. 부복하며 다시 청한다.
능애 다 끝난 일이옵니다. 제국을 위해 허락하시오소서, 폐하.
견훤 그치지 못할까? 그 더러운 주둥이를 닫지 못할까..? 능애 이놈.. 닫지 못할까, 이놈...?
견훤은 능애가 가져온 것들을 마구 집어던진다.
견훤 어서 썩 꺼지거라. 이 옷은 네 놈이나 가져가 덕지덕지 입거라. 돼지 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욕심이 많아 혈육을 죽이고 나라를 강탈한 놈들이 말 한번 뻔지르르하구나. 누가 세운 제국이냐? 너희 같은 도적놈들이 제국을 보전하겠다고..?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썩 돌아가거라, 네 이놈... 돌아가..돌아가... 돌아가...!
능애 예, 폐하. 오늘은 그냥 가겠사옵니다. 하오나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오소서. 폐하께서 세우신 나라이옵니다. 폐하의 자식이 이어받고자 하옵니다. 깊이 통촉하여 주시오소서.
견훤 가라하지 않느냐, 이놈아...?
능애 예, 폐하. (예를 올린다) 다시 또 문후 여쭙겠사옵니다. 강령하시오소서.
능애는 그렇게 피를 흘리며 방문을 나선다. 견훤은 지쳤다. 그저 헐떡거리며 증오를 뱉을 뿐이다.
견훤 죽일 놈들... 죽일 놈들......
고비 폐하....
씬 그 밖
능애가 걸어나온다. 파달들이 놀라서 다가간다.
파달 피가 아니옵니까?
능애 괜찮소이다. 각오하고 온 일이외다. 허허허.... 자, 저 안에 객방이 있으면 들어가십시다. 어차피 오늘밤은 좀 쉬었다 가야겠소이다.
파달 예, 대장군. 소장을 따르시오소서. 어서 뫼시어라, 어서...
주지 (도리질하며) 어이구... 나무관세음보살...
주지는 그렇게 능애를 보다가 견훤의 방쪽을 본다. 견훤의 비명이 계속 들려온다.
견훤 (소리) 이놈들... 이 죽일 놈들.... 이놈들...........
씬 백제 황궁 외경
씬 동 신검의 처소
신검이 뒷짐을 지고 오락가락한다. 계속해 한숨을 터뜨린다. 두 동생이 함께 해 있다.
신검 너희는 모른다. 난들 왜 황제에 오르고 싶지 않겠느냐? 그러나 모든 것은 다 속여도 진실은 속일 수 없다고 하였다. 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는 것도 그런 뜻이다. 비록 아버님을 내치셨으나 그렇다고 황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는 아니 되는 것이야.
양검 혁명이 성공했사옵니다, 형님. 무얼 더 주저하시옵니까?
용검 형님 답지 않으시옵니다. 그냥 오르시오소서. 어차피 금강 아우가 죽었사옵니다. 무력으로 일으킨 혁명이옵니다.
신검 너희들은 기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막가자고 하는 모양인데... 나는 그럴 수 없다. 아직도 기회는 있다. 아버님의 허락을 어떻게 하든 받아 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 된다. 백성들은 따르지 않을 것이고 신료들도 따르지 않을 것이고 결국은 아무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조정은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다.
두 형제 하지만 형님....?
신검 이 형은 그래서 괴로운 것이다. 비록 힘으로 권력은 잡았지만 백성들의 마음만은 힘으로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바로 그것이니라. 민심을 잃어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것 말이다. 정도와 순리를 벗어나서는 결코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야. 정도와 순리 말이다. 나는 지금이라도 그것을 되찾고 싶은 것이다. 정도와 순리... 정도와 순리 말이다.... 모두가 믿어주는 그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