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군전쟁이 일어난 패수의 위치를 조작한 식민사학
(3부) 성훈의 고대사칼럼
2013.03.2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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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이 망명하며 건넌 강 패수(浿水) = 추수(溴水)
<북부여기> 기록에 따르면, “B.C 209년 진승이 군대를 일으키니 진(秦)나라 사람들이 크게 어지러웠
다. 연·제·조(燕.齊.趙)나라의 백성들이 도망해서 번조선에 귀순하는 자가 수만 명이나 되었다.
B.C 202년 연나라의 노관이 다시금 요동의 옛 성터를 수리하고 동쪽은 패수(浿水)로서 경계선을
삼으니 패수는 곧 오늘의 난하(灤河)이다.
B.C 195년 연나라의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망명하니 그의 무리인 위만은 우리에게
망명을 요구했으나 해모수 단제께서 이를 허락치 않으셨다. 번조선 왕 기준이 크게 실수하여
마침내 위만을 박사로 모시고 상·하 운장(雲障)을 떼어 위만에게 봉했다.
B.C 194년 번조선 왕 기준은 오랫동안 수유(須臾)에 있으면서 항상 많은 복을 심어 백성들이 매우
풍부하였다. 뒤에 떠돌이 도적떼들인 위만에게 패하여 망한 뒤 바다로 들어가더니(走入海, 入于海)
돌아오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위만이 망명하며 건넌 강이 구체적으로 명기되어 있지 않으나
연나라와 번조선의 국경인 패수(浿水)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수경주>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하는 지도 ©편집부
<수경주>에는 위만이 망명하며 건넌 강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번역) 패수는 낙랑 루방현에서 나와 동남으로 임패현을 지난다. (중략)
<13주지>에서 말하길, 패수현은 낙랑의 동북에 있고, 루방현은 낙랑군의 동쪽에 있다.
대개 그 현에서 나와 남쪽 루방을 지난다. 위수도 패수에서 나와 루방을 지난다.
옛 연나라 사람 위만이 패수 서쪽으로부터 조선까지 갔다. (주: 패수는 동류하는 강)
(원문) 水經: 浿水出乐浪镂方县,东南过临浿县,(중략) 《十三州志》曰:浿水县在乐浪东北,
镂方县在郡东 盖出其县南迳镂方也。谓出浿水迳镂方也。昔燕人卫满,自浿水西至朝鲜)”。
<삼국지 위지(魏志)- 위략>에는 위만이 망명할 때 건넌 강이 추수(溴水)라고 기록되어 있다.
(번역) 한(漢)에서 노관을 연왕으로 삼았다. 조선과 연(燕)은 추수(溴水)를 경계로 삼았다.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갔다. 연나라 사람 위만이 호복(胡服)을 입고 동쪽으로 추수(溴水)를
건너 망명을 하였다. (원문) 漢以盧燕王 朝鮮與燕界於溴水 及反入匈奴 燕人衛滿亡命胡服東渡水 )
위 <삼국지 위지 위략>의 내용은 <수경주>와 <북부여기>의 내용과 같은 것으로, <위략>에 언급된
추수(溴水)는 <수경주>와 <북부여기>에 언급된 패수(浿水)와 같은 강을 말하는 것이다.
여하튼 위 기록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번조선이 연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그 경계가 패수(浿水)=추수(溴水)라는 사실이다.
패수는 우리 역사에 숱하게 등장하는 아주 중요한 지명으로 조선(朝鮮)과 연(燕)나라의 경계였고,
한(漢)나라와의 한사군전쟁의 주 무대였으며, <신당서>에는 고구리(高句麗)의 남쪽 국경(南界)로
기록되어 있다.
▲ 지금까지 식민사학이나 재야사학 모두 연나라를 북경에 놓고 역사해석을 했다. 식민사학은
기준의 행적이 한반도로 향하고, 재야사학은 산동성으로 향하는 것이 다르나 모두 잘못된 것이다.
연나라는 하남성에 있어야 옳은 것이다.
추수(溴水) = 패수(浿水)는 과연 어디일까?
패수(浿水)가 기록되어 있는 사서는 <한서지리지>로 유주(幽州)에 속해 있는 7개 군 중 하나인 낙랑
군(樂浪郡)에 패수(浿水)현이라고 있다. 유주는 산서성 남부와 북부하남성에 걸쳐있는 행정구역이다.
그 결정적 근거로는 고죽국 백이.숙제의 묘가 있는 곳이 요서군이기 때문이다.
(乐浪郡 낙랑군) 武帝元封三年开。莽曰乐鲜。属幽州(유주에 속한다)。户六万二千八百一十二,口四十
万六千七百四十八。有云鄣(운장이 있다)。县二十五:朝鲜(조선),讑邯,浿水(패수),水西至增地入海。
莽曰乐鲜亭。含资,带水西至带方入海。黏蝉,遂成(수성),增地,莽曰增土。带方(대방),驷望,海冥,
莽曰海桓,列口,长岑,屯有(둔유),昭明,高部都尉治。镂方,提奚,浑弥,吞列,分黎山,列水所
出。西至黏蝉入海,行八百二十里。东暆,不而,东部都尉治。蚕台,华丽,邪头昧,前莫,夫租。
또 패수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서로는 <금사(金史)지리지 권5>을 들 수 있다.
(번역) “현이 4개 진이 6개 있다. 하내기. 태행 단층이 있고, 태행산, 황하, 심수, 패수가 있다.
무덕, 백향, 만선, 청화 등 4진을 두다. 수무현에 탁록성이 있다. 승은진이 있다.
흥정 4년 수무현 중천촌을 산양현으로 하여 휘주에 예속시켰다.
무척현에 태행산이 있고 천문산, 황하, 심수, 송곽진이 있다.”
(원문) 縣四、鎮六: 河內倚。有太行陘、太行山、黃河、沁水、浿水(패수)。鎮四 武德、柏鄉、萬善、
清化。修武有濁鹿城。鎮一承恩。山陽興定四年以修武縣重泉村為山陽縣,隸輝州。武陟有太行山、
天門山、黃河、沁水。鎮一宋郭。
위 <금사지리지>에서 말하는 지역은 바로 황하북부 하남성에 있는 지역들이다.
태행산, 심수, 수무, 무척, 천문산 등은 모두 황하북부 하남성에 있는 지명들이다.
따라서 패수(浿水)도 당연히 황하북부 하남성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대청광여도로 본 황하 북부 하남성 지역의 지명들이 모두 금사지리지에 들어 있다.
패수(浿水)는 황하와 심수와 같이 있다 했으니 심수 근방에서 찾아야 한다. 과연 패수는 어디일까?
© 편집부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서는 <명일통지>와 <중국고대지명대사전>의 기록을 보기로 한다.
<명일통지> (번역) 추수(溴水)는 제원현(하남)에 있다. 물의 근원이 세군데 있는데,
동남류해 롱수(瀧水)와 합해져 동남으로 흘러 온현에서 황하로 흘러 들어가는 강이다.
<明一統志> (원문) 溴水在濟源縣 其源有三 一出琮山俗呼白澗水春秋公諸侯于梁此
一出縣西二十里曲陽城西南山 一出陽城南溪俱東南流與瀧水合又東南至溫縣入于黃河
<중국고대지명대사전> (번역) 원산은 하남 제원현 서북 삼십리에 있다. 지금은 종산이라 부르는데
추수(溴水)가 나오는 곳이다. 상련자가 망산이라 한다. 롱수가 여기서 나온다.
(번역) 原山:在河南济源县西北三十里,今名琮山,溴水所出,相连者为莽山,泷水出焉。
즉 위만이 건넌 패수(=추수)는 바로 황하북부 하남성에 있는 제원현에서 세 물줄기가 만나 온현을
지나 황하로 흘러 들어가는 강으로 현재 망하(蟒河)라 불리는 강이며, 추수란 이름도 아직 현대지도
에 동류(東流)하는 강으로 그려져 있다. 즉 이곳이 연나라와 조선과의 국경이었으며, 한사군전쟁의
주 무대였고, 위대한 대제국 고구리의 남쪽 경계였던 것이다.
▲ 옛 조선현이었던 북부하남성 제원시에서 3개의 물줄기가 만난다. © 편집부
▲ 제원시 도심을 흐르는 추하(=추수=패수)는 위만이 망명하며 건넌 강, 한사군전쟁의 무대,
고구리의 남쪽 경계다.
패수는 동쪽으로 흘러가는 강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에 따르면, 패수는 동쪽으로 흘러가는 강으로 기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패수 서쪽을 지키는 패수서군(浿水西軍)과 패수 상류를 지키는 패수상군(浿水上軍)이란
표현이 있는데, 같은 내용을 서군과 상군으로 각각 다르게 기록했기 때문에
패수의 서쪽 = 상류로 읽혀진다.
또한 <수경(水經)>에 “浿水出乐浪镂方县,东南过临浿县,东入于海。(패수는 낙랑 루방현에서 나와
동남쪽 임패현을 지나 동쪽에서 바다로 들어간다)”는 기록이 있고, 허신의 <설문해자>에도
“浿水出镂方,东入海 (패수는 루방에서 나와 동쪽에서 바다로 들어간다)”는 기록이 있어,
패수는 동쪽으로 흐르는 강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역사적 기록이 이렇듯 분명함에도 강단사학계는 식민사학자 이병도의 이론을 추종해 한사군 전쟁의
주 무대인 패수를 청천강으로 비정하면서 식민지 한사군의 핵심인 낙랑군을 대동강 평양이라고
말하고 있다. 청천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강이기 때문에 물 흐르는 방향이 사서기록과
전혀 맞지 않는 강이다. 한반도에는 지형상 동류하는 강을 두만강 이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까지 재야사학에서 패수로 비정한 요하나 난하도 동류하지 않는 강이다.
우리 역사의 뜨거운 감자였던 식민지 한사군은 중국 역사학자들의 붓장난에 의해 왜곡된 것이었으
며, 설사 있었다 하더라도 패수(=추수)가 있는 지역인 황하북부 하남성 일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일제는 조선의 영원한 식민지배를 위해 단군신화라는 괴상한 용어를 만들어 찬란했던
조선의 역사를 지워버렸으며, 이민족인 위만이 고조선을 계승했고 그 땅을 한나라가 차지해
식민지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조작했던 것이다. 즉 (옛)조선은 예로부터 중국의 식민지였으니
지금의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였던 것이다.
▲ 황하북부 하남성에 있던 한사군을 식민사학은 대동강 평양으로 재야사학은 하북성 동쪽 끝
난하로 비정해 역사를 왜곡했다. © 편집부
[출처] 한사군전쟁이 일어난 패수의 위치를 조작한 식민사학 (3부) |작성자 성 훈
첫댓글 고대사를 다룰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 중의 하나가 <한사군> 위치이다.
짐작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료를 가져다가 비교하는 것이 좋고
특히 오늘 날의 명칭으로 고대사를 보는 것은 아주 잘못이다.
그 시절 사용하던 명칭을 추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고대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빙혼은 한자를 몰라 번역본만 가지고 공부를 하니 좀 답답하다.
대신 중국 북방 쪽 여행을 하였던 탓에 감은 좀 오기에
고대사를 읽는 것이 더더욱 즐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