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본 리하르트 바그너
초연 1876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극장
배경 신화 시대의 숲 속, 바위산 기슭
<2012년 불가리아 소피아 오페라 / 270분 / 한글자막>
소피아 오페라 오케스트라 & 발레단 연주 / 파벨 발레프 지휘 / 플라멘 카르탈로프 연출
지그프리트.....지그문트와 지글린데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마르틴 일리에프(테너)
미메...................니벨룽족의 난쟁이로 알베리히의 동생. 대장장이.....크라시미르 디네프(테너)
방랑자..............보탄...............................................................................................마르틴 초네프(베이스바리톤)
알베리히.........니벨룽족의 우두머리..............................................................비저 게오르기에프(베이스바리톤)
파프너.............거인. 여기서는 구렁이로 변신.............................................페타르 부흐코프(베이스)
에르다.............운명과 지혜의 여신..................................................................루먀나 페트로바(콘트랄토)
브륀힐데.........발퀴레. 보탄과 에르다 사이의 딸......................................바야스갈란 다쉬니암(소프라노)
숲 속의 새..............................................................................................................류보프 메토디에바(소프라노)
---------------------------------------------------------------------------------------------------------------------
=== 프로덕션 노트 ===
바그너: 오페라 <지크프리트>, 2012년 불가리아 소피아 오페라 실황
동유럽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B급 무비 같은 '소피아 반지'의 세 번째 영상
바그너의 4부작 <니벨룽의 반지>는 모든 오페라단의 도전 목록 1호지만 실제로 성취하기란 만만치 않다. 워낙 대작이어서 캐스팅조차 쉽지 않고, 완성도를 보장할만한 지휘자와 연출가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런 가운데 일명 '소피아 오페라'로 더 잘 알려진 불가리아 국립오페라가 2010년부터 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큰 관심을 모았다. 게다가 모든 출연자와 제작진을 자국인들로 구성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그 세 번째 성과물인 2012년의 <지크프리트> 실황이다. 무대와 의상은 메이저 극장에 비하면 B급 반지처럼 보이지만 불가리아 성악가들과 극장 관계자들은 치열한 정신으로 한계에 도전했다. 불가리아를 대표하는 바그너 테너 마르틴 일리에프(지크프리트)는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
불가리아 국립 오페라는 이 극장이 속한 불가리아 수도의 이름을 따서 그냥 소피아 오페라라고도 불린다. 오페라단과 발레단이 함께 운영된다. 이 단체의 전신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오페라단의 직접적인 시작은 1908년이다. 20세기의 중요한 베이스인 니콜라이 갸우로프와 니콜라 기우셀레프, 소프라노 게다 디미트로바도 이 오페라단에서 커리어를 쌓은 것으로 유명하다.
<니벨룽의 반지>는 바그너가 창안한 '음악극'을 대표하는 4부작 오페라다. 바그너는 <니벨룽의 반지>에 대해 '무대축전극'이라는 거창한 명칭을 붙였다. 원래 신화에서 취재한 '지크프리트의 죽음'만을 만들 계획이었으나, 지크프리트를 설명하기 위한 '청년 지크프리트'가 필요해졌고, 그러다보니 '지크프리트의 탄생'을 설명하기 위한 '지크프리트 부모' 이야기, 나아가 모든 일의 시작인 '라인 강의 반지'까지 구상이 확대되었다. 즉 오페라의 순서는 원래 구상과 반대로 진행되었다.
<지크프리트>는 <니벨룽의 반지>의 세 번째 작품이다.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난쟁이 악당 알베리히의 동생인 대장장이 미메는 황금을 차지할 생각으로 부모(2부 <발퀴레>의 주인공 지크문트와 지클린데)를 잃은 어린 영웅 지크프리트를 거두어 기른다. 지크프리트는 부친의 부러진 보검 노퉁을 직접 녹여 새 칼을 만든다. 이제 지크프리트는 용으로 변신한 파프너를 찾아가 노퉁으로 죽여 버린다. 음흉한 미메도 죽이고 한동안 파프너가 차지했던 반지와 투구, 황금은 이제 지크프리트의 것이 된다. 그 과정에서 용의 피를 뒤집어쓰고 불사의 몸도 되었다. 두려울 것이 없는 영웅 지크프리트는 새의 목소리를 따라 불길이 둘러싼 바위산 주위를 뚫고 들어가 입맞춤으로 브륀힐데를 깨워 사랑을 맺는다. 이모 혹은 고모와 조카의 근친관계이지만!
=== 줄거리 ===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 / 안인희> 393 ~ 397쪽
제1막 숲 속 암벽의 동굴. 미메의 대장간
난쟁이 대장장이 미메는 지크프리트를 위해 칼을 만들고 있다. 지크프리트가 파프너(용)를 죽일 무기를 만드는 것. 지금까지 만들어준 무기는 전부 지크프리트의 강한 손안에서 부러지고 말았다. 지크프리트가 자신의 출생에 대해 묻자 미메는 어머니가 그를 낳다가 죽고 아버지는 싸우다 죽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그 증거로 죽은 지클린데에게서 받아 보관해 두었던 부러진 노퉁(칼) 조각을 내준다. 지크프리트는 미메에게 그 마법의 칼을 새로 만들어달라고 말하고는 숲으로 뛰쳐나간다.
나그네 한 사람(보탄)이 동굴로 들어온다, 미메가 달가워하지 않자, 나그네는 손님의 권리를 청한다. 그리고 세 개의 질문에 자신이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면 목을 내놓겠다고 제안한다. 미메는 땅속, 땅 위, 하늘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난쟁이, 거인(용), 신, 나그네는 답을 맞힌다. 이번에는 미메가 답변할 차례. 두 가지는 잘 맞혔으나 세 번째 질문, 노퉁을 누가 벼려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답은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다. 미메는 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바로 그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에게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고 나그네가 말한다. 미메는 고민에 빠진다.
나그네가 떠나고 지크프리트가 돌아과 칼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묻는다. 자기 목숨이 걱정된 미메는 파프너의 모습을 설명하며 그에게 두려움을 가르치려 한다. 하지만 지크프리트는 도리어 칼이 완성되기만 하면 용에게 도전을 하고 싶어 한다. 미메가 두 조각 난 칼을 다시붙이는 데 실패하자 지크프리트는 칼 조각을 갈아 불에 달군 후 새로 칼을 벼려 만든다. 그동안 미메는 지크프리트가 용과 싸우고 난 다음 마실 죽을 끓이면서 잠 오는 약을 섞어넣는다.
제2막 숲 속 용의 동굴 앞
파프너가 보물을 지키는 동굴 앞에서 난쟁이 알베리히와 나그네가 만난다. 알베리히는 나그네가 보탄임을 즉시 알아본다. 몸소 보물을 빼앗으러 왔느냐고 비난하는 알베리히에게 보탄은 자신은 그저 구경꾼으로 왔을 뿐이라고 대꾸한다. 그리고 형제 미메의 욕심이나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보탄이 파프너를 잠에서 깨우자, 알베리히는 용에게 자발적으로 반지를 내주면 목숨을 보전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파프너는 물론 거절하고 보탄은 웃으며 사라진다.
이윽고 지크프리트와 미메가 나타나자 알베리히도 모습을 감춘다. 미메는 파프나와 지크프리트가 서로 죽이기를 바란다. 홀로 남아 용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지크프리트는 문득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립고 궁금하다. 그러던 중 솦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듣는다. 그는 새의 말을 이해해 볼 생각으로 풀피리를 만들어 새소리를 흉내 내지만 잘 되지 않자 뿔 나팔을 불고 그 소리에 파프너가 깨어난다. 용과의 싸움이 시작되고, 마침내 지크프리트는 용의 심장에 칼을 찔러넣는다. 용은 죽으면서 그에게 이런 일을 시킨 자를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용의 몸에서 칼을 뽑다가 용의 피가 손에 묻자 그는 손을 입으로 가져간다. 그러자 갑자기 새소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새는 동굴에서 변신 투구와 반지를 가져오라고 일러준다. 지크프리트가 동굴로 들어간 사이 미메와 알베리히는 보물을 놓고 다툰다. 새소리를 들은 지크프리트는 미메의 속셈을 꿰뚫어본다. 난쟁이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난쟁이를 죽이고 시체를 동굴 속에 가져다둔다. 한 번 더 들려오는 새의 노랫소리는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만이 잠든 브륀힐데를 깨울 수 있다고 말한다. 지크프리트는 새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간다.
제3막
암벽아래
보탄은 근원적인 여신인 에르다를 깊은 잠에서 불러내 어떻게 하면 세계 역사의 흐름을 멈출 수 있는지 묻는다. 그러나 에르다는 알려주기를 거부하며, 신성한 세계 질서의 꿈이 "남자들의 행위" 때문에 부서졌다고 말한다. 보탄은 자신이 신들의 종말을 바라게 되었다고 말한다. 후손에게 세계를 물려줄 것이며 자신의 종말을 이미 보고 있다고.
브륀힐데를 찾아가던 지크프리트가 나그네를 만난다. 나그네는 질문을 퍼부으며 그의 길을 막아보려고 한다. 지크프리트가 물러서지 않고 나아가려 하자 나그네가 그의 창을 잡는다. 한 번 더 이 창이 노퉁을 부러뜨릴지 보자. 그 순간 지크프리트는 상대방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보탄)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의 칼에 맞아 나그네의 창이 부러진다.
발퀴레 암벽
지크프리트는 불꽃의 바다를 헤치고 브륀힐데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처음에는 잠든 이가 남자인 줄 알지만 갑옷을 벗기다 브륀힐데를 찾아냈음을 깨닫는다. 생전 처음으로 여자의 모습을 본 그는 한동안 두려움을 느끼다 잠자는 여인에게 키스를 해 그녀를 깨운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발퀴레는 낮의 빛을 보고 또 자신을 구해 준 남자를 보고 기뻐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제는 지상의 존재가 되어 신의 힘을 갖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녀는 한동안 저항하지만 지크프리트의 순진한 용감함에 점차 마음이 끌려 차츰 신의 특성을 잃는 것을 슬퍼하지 않게 된다. 마침내 브륀힐데는 접근할 수 없는 보탄의 딸에서 정열적으로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으로 변한 것이다. 그 순간 그녀는 신들의 황혼이 나타나는 것을, 절멸의 밤이 다가오는 것을 본다. <트리스탄>에서처럼 연인들은 사랑과 죽음을 노래하며 결합한다.
감상포인트
"순수한 바보" 지크프리트의 성장 과정이 한 편의 완결된 동화 방식으로 전개된다. 똑똑한 척하지만 어리석은 대장장이 미메와 혈기왕성하고 천지를 모르는 젊은이의 모습이 경쾌한 음악으로 표현된다. 밝고 명랑한 분위기속에서 젊음의 힘이 흘러넘친다. 지크프리트의 출생에 관한 어둡고 슬픈 이야기나, 부모의 죽음,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등의 서정적인 부분들은 넘쳐흐르는 지크프리트의 활력에 의해 가려진다.
이 작품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동화의 모티프들이 여러 개 나타나고 있다. 나그네로 변장한 보탄과 미메 사이에 벌어지는 수수께끼 놀이, 두려움을 배우려고 길을 떠난(두려움을 모르는) 젊은이 이야기, 또 타오르는 불길에 둘러싸여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왕자가 나타나 키스를 하면 그녀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이야기) 등은 그림 동화를 통해 잘 알려진 이야기들이다. 순수한 바보 모티프도 그림 동화에서 여러번 나타난다(바보 한스 등).
다음에 이어지는 마지막 밤 <신들의 황혼>이 신화적인 몰락의 장엄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전에 공연되는 <지크프리트>는 젊음의 힘으로 밝고 경쾌하다. 두려움을 배우기 위해 길을 떠난 젊은이가 용을 죽인 후 보물을 차지하고 새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며, 마지막에는 공주를 구하고 둘이 사랑에 빠진다는 행복한 결말이다. 이 동화적인 사건을 뒷날 지크프리트는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에 등장하는 지크프리트가 바로 과거를 까맣게 잊어버린 왕자지만, 그 작품에서는 이런 전사(前史)가 전혀 설명되지않는다. 다만 군터와 함께 브륀힐트에게 구혼하기 위해 아이슬란드로 가는 첫 장면에서 지크프리트가 이미 모든 사정을 잘 알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는 대체 어디서 그것을 알게 되었을까?
이 이야기들을 모두 바그너가 독창적으로 꾸매낸 것이 아니다. 그는 여러 문헌들을 참고하고 신화와 설화들을 자세히 탐구한 다음 그 이야기들을 하나로 짜맞추었다.
---------------------------------------------------------------------------------------------------------------------------------
=== 작품 해설 === <2011년 7월 11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명곡 명연주
바그너, 지크프리트
<니벨룽의 반지> 중 전야제와 1부를 잇는, 2부에 해당하는 작품
1871년 완성, 1876년 바이로이트에서 초연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어린 시절, 악몽을 꾸거나 환상을 보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혼자 잠들려고 하면 꼭 벽에서 귀신이 나오는 환영을 보게 되어 밤을 두려워했다고 하죠. 아마 남달리 동화적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던 모양입니다. 나흘에 걸쳐 공연되는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중 전야극(前夜劇) [라인의 황금]과 1부 [발퀴레]의 뒤를 잇는 것이 오늘 소개해드리는 2부 [지크프리트]인데요, 바로 이 [지크프리트]에는 무서운 용을 죽이는 용사 이야기나 키스로 공주를 깨우는 왕자 이야기 같은 동화적 모티프가 풍성하게 등장합니다.
바그너는 [지크프리트] 작곡을 1856년에 시작했지만 15년이나 지나 완성했고, 초연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극장에서 1876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지크프리트]를 작곡하는 동안 자신의 후원자였던 베젠동크의 아내 마틸데와 사랑에 빠지면서 이 작품의 작곡을 중단하고 자신의 사랑을 반영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먼저 작곡했기 때문입니다. 바그너의 음악을 열렬히 사랑했던 바이에른 군주 루트비히 2세의 재촉으로 바그너는 시작한 지 13년이 지나서야 [지크프리트] 3막의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1, 2막보다 3막이 더 음악적 깊이를 지니게 된 것은 아마도 [지크프리트]의 오랜 공백기 동안 바그너가 음악적으로 더욱 발전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니벨룽의 반지] 중 [지크프리트]와 [신들의 황혼]에는 독일 중세 서사시 [니벨룽엔의 노래] 내용 중 여러 부분이 바그너가 선택한 방식으로 새롭게 조합되어 있습니다. [니벨룽엔의 노래]는 4-6세기에 이루어진 유럽의 민족대이동 시기부터 구전(口傳) 형태로 전해져오다가, 1200년경에 이르러 현재 알려진 이야기의 형태로 정착되었습니다. 배신과 암살, 약탈과 방화, 협박과 사기가 난무하던 시대의 험악한 정치사회적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같은 시대의 다른 작품들이 대체로 기사계급의 품위와 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니벨룽엔의 노래]는 더욱 독보적이랍니다.
테너 주인공의 이름 ‘지크프리트’에서 지크(Sieg)는 승리, 프리트(Fried)는 평화를 뜻합니다. 승리를 통해 얻은 평화라는 뜻이죠. 이 이름만으로도 그가 게르만 신화 속 최고의 신 보탄(Wotan)의 손자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보탄이야말로 태초에 거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해 평화와 계약이 지배하는 세상을 실현했으니까요. [지크프리트]에는 [라인의 황금]이나 [발퀴레]에 등장했던 신들의 세계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건은 지상에서 이루어지고, 보탄조차 인간으로 변장을 한 채 ‘방랑자’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닙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용사, 신검을 제조하다
1막은 숲속에 사는 난쟁이 미메의 집. '뒤뚱거리며 걷는 미메의 모티프'로 시작됩니다. 미메는 전야극 [라인의 황금]에서 황금을 훔쳐다가 반지를 만든 난쟁이 알베리히의 동생으로, 직업은 대장장이죠. 그는 지클린데와 지크문트 사이에서 태어나 고아가 된 지크프리트를 데려다 키웁니다. 지크프리트가 외출한 사이 방랑자 차림의 보탄이 찾아와 미메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집에 돌아온 지크프리트는 보탄이 아들 지크문트에게 주었던 칼 노퉁, 동강난 채로 지니고 있다가 그 칼을 다시 온전한 신검으로 만들죠. 망치로 모루를 두드려 칼을 벼리는 이 장면은 지크프리트의 활기 넘치는 노동요 덕분에 생생한 실감을 느낄 수 있는 명장면이 되었습니다.
[지크프리트] 1막에는 “폭풍우가 몰아치듯 연주하라”는 바그너의 연주지시가 들어 있습니다. 보탄은 [라인의 황금]이나 [발퀴레]에서보다 좀더 중후하고 우수어린 목소리로 방랑자 역을 노래합니다. 수수께끼를 내는 장면에서는 바그너의 유머감각이 돋보입니다.
2막은 거인 파프너의 동굴이 배경입니다. 보물을 차지하려는 과정에서 형제간인 파졸트를 때려죽인 파프너는 난쟁이 알베리히가 만든 반지를 보탄에게서 얻은 뒤 그 반지와 보물들을 지키려고 용으로 변신해 동굴 속에서 자고 있습니다. 음산한 음악은 이제부터 벌어질 폭력적인 사건을 예고합니다.
알베리히는 반지 때문에 처하게 될 위험을 경고하며 용이 된 파프너를 설득해 반지를 되찾으려 하지만 파프너는 끄떡도 하지 않죠. 알베리히가 떠난 다음, 역시 보물과 반지를 차지하려는 미메가 지크프리트를 데리고 동굴 앞에 나타납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두려움을 느껴보지 못한 순박한 지크프리트는 “두려움이 뭔지 배우러 왔다”면서아주 간단하게 칼로 파프너를 해치웁니다. 단칼에 무너져 죽어가면서 파프너는, “너에게 이 일을 사주한 자가 너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라는 말로 지크프리트에게 미메를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용의 피를 묻힌 덕분에 새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신통력이 생긴 지크프리트는 자신을 해치고 보물을 빼앗으려는 미메의 의도를 알게 되고, 결국 칼로 미메를 찔러 죽여버립니다. 그런 다음, 말하는 새의 충고를 따라 지크프리트는 바위산에 잠들어 있는 브륀힐데를 깨우러 가죠.
동화 속 공주를 깨우는 왕자역, 지크프리트
3막의 배경은 브륀힐데가 불의 장벽에 갇혀 잠들어 있는 바위산입니다. 3막 전주곡은 방랑자 보탄의 모티프, 대지의 여신 에르다의 모티프, 신들의 황혼의 모티프 등 다양한 모티프들이 서로 맞물려 교향악적으로 발전해갑니다.
3막 1장은 보탄과 운명의 여신 에르다의 대화, 2장은 보탄과 지크프리트의 대화, 그리고 3장은 지크프리트와 브륀힐데의 만남으로 이루어집니다. 보탄은 잠들어 있는 대지의 여신 에르다를 깨워 앞일에 대한 예언을 들으려 하지만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합니다. 한편 자신의 할아버지인 보탄과 마주친 지크프리트는 말싸움을 하다가 보탄의 창을 부러뜨립니다. 신들의 멸망을 암시하는 대목이죠. 보탄은 이처럼 강한 힘을 지닌 손자 지크프리트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파멸을 예감하며 서글퍼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크프리트가 자신을 대신해 세계의 구원자가 될 것이라 믿고 기뻐합니다.
3막 3장에서 지크프리트는 마침내 불의 장벽을 뚫고 바위산 꼭대기에 올라가 브륀힐데를 발견합니다. 그 순간, 지크프리트는 용을 죽일 때도 몰랐던 두려움을 처음으로 알게 됩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지크프리트는 어머니를 부르다가, 조심스러운 키스로 브륀힐데를 깨웁니다. 잠에서 깨어난 브륀힐데는 지크프리트를 보고 기쁨에 차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가 태어나기도 전에 내 방패가 그대를 지켰어요. 그토록 오랫동안 그대를 사랑해왔어요, 지크프리트!” 두 사람은 타오르는 열정에 압도되어 서로를 뜨겁게 포옹하며 “빛나는 사랑, 웃음 속의 죽음! Leuchtende Liebe, lachender Tod!”이라고 외칩니다.
[지크프리트]의 핵심어는 ‘두려움을 배우지 못한 영웅’으로, 무지하고 순수한 존재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이러한 믿음은 후에 바그너 최후의 걸작 [파르지팔]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사는 문명사회가 아무리 이성적인 사고를 한다 해도 신화의 힘은 우리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가집니다. 황야 같은 막막함, 그리고 원시적인 폭력성이 여전히 우리 현실의 일부인 셈이죠.
추천 음반 및 영상물 (지크프리트-방랑자(보탄)-미메-알베리히-브륀힐데 순)
[음반] 볼프강 빈트가센, 한스 호터, 게르하르트 슈톨체, 구스타프 나이틀링어, 비르기트 닐손 등, 게오르그 숄티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62년 녹음, Decca
[음반] 제스 토머스, 토머스 스튜어트, 게르하르트 슈톨체, 졸탄 켈레멘, 헬가 데르네쉬 등,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69년 녹음, DG
[DVD] 만프레트 융, 도널드 매킨타이어, 하인츠 체드니크, 헤르만 베히트, 기네스 존스 등, 피에르 불레즈 지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파트리스 셰로 연출, 1980년 실황, DG
[DVD] 지크프리트 예루살렘, 존 톰린슨, 그레이엄 클라크, 귄터 폰 카넨, 앤 에반스 등,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하리 쿠퍼 연출, 1991년 실황, 워너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10.04 2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