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원시림, 제주 ‘곶자왈’을 걸어야 하는 이유
베이비뉴스 기사 승인일 : 2021.08.24.
칼럼니스트 김재원
[육지사람 제주살이 이야기] 13. 태고의 속살을 간직한 제주의 허파 ‘곶자왈’
곶자왈이란 제주말로 ‘숲’을 뜻하는 ‘곶’과 암석들과 가시덤불이 뒤엉켜 있는 것을 뜻하는 ‘자왈’이 결합된 제주 방언입니다. 그러나 제주 안에서도 지역마다 ‘곶’, ‘고지’, ‘자왈’, ‘숨벌’과 같이 다양한 단어로 표현되고 있는데, 언제부터 ‘곶자왈’로 통일돼 불렸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진 내용은 없는데요.
곶자왈을 정의한 최근 기록들을 살펴보면, ‘제주도 정밀토양도(농업진흥청 1978)’에는 ‘용암이 풍화로 인해 돌이나 바위 조각이 중력에 의해 쌓여 있는 곳과 화산 분출 시 화산력이 비산에 의해 운반 퇴적된 지역으로서 부분적으로 관목 및 야생초가 자생하거나 농업적, 임업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지역’으로 정의했고, ‘제주어사전(1995)’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적고 있습니다. 또한 ‘곶자왈 보전 및 관리 조례(2014)’에서는 ‘제주도 화산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 지대로, 숲과 덤불 등 다양한 식생을 이루는 곳’이라고 규정해는데요. 정리된 사실관계를 요약해 보면, 곶자왈은 ‘화산 폭발로 분출된 용암 지질 지형 위에 나무와 돌 그리고 자연적인 식물들이 합쳐져 형성된 제주만의 독특한 숲’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돌과 바위 사이를 비집고 살아남은 나무들은 때론 구부러지고 휘어진 상태로 생명을 유지해 왔습니다.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곶자왈은 빗물이 지하로 흘러들면 지하수를 만들고,또 산소를 공급해주는 역할을 해 ‘제주의 허파’로 불리기도 합니다. 오늘은 제주에만 존재하는 영험하고 신비로운 원시숲 ‘곶자왈’에 대해 살펴보려 하는데요.
먼저 곶자왈은 동식물의 생태 보고입니다. 곶자왈 지대는 평균 10m 이상 용암류가 쌓여 있는 지대로 매우 독특한 기후를 만드는 곳입니다. 여름에는 약 21도 겨울에는 약 12도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습도는 적당한 상태를 유지하는 특성을 보입니다. 이런 이유로 어느 곶자왈을 탐방하시든 간에 걷다 보면 아열대 식물인 주름고사리와 개톱날고사리 등 남방계 식물들과 한라산 고지대에서나 자라는 좀고사리와 골고사리 등 북방계 식물이 함께 서식하는 매우 특이한 생식 환경을 발견하게 됩니다. 곶자왈 숲을 걷는 동안 만나게 될 식물 주변에는 친절한 설명도 함께 표기돼 있는 경우가 많으니, 꼭 한 번씩 읽어보면서 탐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곶자왈은 한라산의 추운 날씨 때문에 저지대이면서 따뜻해 야생동물들의 보금자리이자 안식처가 되기도 합니다. 도내 곶자왈의 희귀 동식물을 조사한 한라산연구소의 ‘곶자왈 환경자원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천연기념물 동물 12종과 멸종위기 동물 8종, 멸종위기 야생식물 8종, 멸종위기 곤충 4종, 제주 고유동물 19종 등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저 역시 지난번 교래자연휴양림 탐방길에 노루 몇 마리가 짖는 소리(개가 짖는 소리와 비슷하지만 훨씬더 크고 우렁차다)에 놀라 당황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던 적이 있었는데요. 곶자왈 탐방 중에는 노루와 사슴과 같은 야생동물들을 만날 수 있으니 절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이런 기후적 특별함 때문에 곶자왈은 사계절 모두 푸른 색깔의 울창한 원시림을 유지합니다. 그래서 곶자왈을 걷다 보면 산림욕(森林浴)과 함께 포레스트 테라피(Forest Theraphy)를 만끽 할 수 있는데요. 제주산림치유연구소 이사장이자 자연치유학 박사인 신방식 씨의 연구논문인 ‘건강을 위한 제주산림 치유의 효과’에 보면 ‘제주 곶자왈은 피톤치드와 음이온 함량이 매우 높아 탐방객들의 스트레스 감소와 혈관 건강 상태 증진과 건강 관리에 유익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곶자왈에서 나오는 피톤치드(Phytoncide)는 스트레스를 완화 시켜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개선해 주기고 하고, 아무런 부작용 없이 항생제처럼 균을 죽이고 자연스럽게 인간의 몸에 흡수되어 면역 기능을 강화시켜 준다고 하니,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피톤치드 가득한 곶자왈 숲길을 걸으며, 폐 속 깊숙한 곳까지 맑은 공기를 한가득 불어 넣어 준다면 코로나로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가벼워질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곶자왈에는 제주인들의 고단했던 삶의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화전(火田)조차 일구기 어려운 숲이지만 가시덤불을 태워 거름으로 활용하여 농작물을 생산했던 화전을 일구었습니다. 또 제주 사람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나무를 구워 숯을 만들고, 썩은 고목에 버섯을 재배해 억척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은 모두 과거의 흔적들만 남아 있지만, 숲을 탐방하다 보면 1940년대 산전(山田)을 일 구웠던 ‘산전터’와 함께 1970년대 이전까지 숯을 만들었던 ‘숯 가마터’와 같은 옛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이 밖에도 불모지를 개척하여 삶을 살아갔던 제주인의 강한 정신을 곶자왈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렇듯 곶자왈에는 숲에서 얻은 것들을 토대로 자녀들을 키우고 가정을 지켜온 제주인들의 모습들이 숲 곳곳에 온전히 남아있어, 인문학적인 가치와 생태 환경적인 가치가 높은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일제 강점기 군사시설인 숙영지 같은 일제 군사시설의 형태와 제주의 아픈 기억인 ‘4.3’ 당시 토벌대를 피해 숨어든 제주민들의 피난처 등 역사문화유적의 흔적들도 남아 있는데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마을이자 세계 최초 람사르 습지도시에 속하는 동백동산에 함께 자리 잡은 ‘선흘곶자왈’부터 서귀포 대정읍에 위치한 ‘제주곶자왈도립공원’과 ‘화순곶자왈’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로 곶자왈 지대에 조성된 ‘교래자연휴양림’까지 제주 곳곳에 산재해 있는 곶자왈은 지역에 따라 그 모습과 특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지역마다 곶자왈을 비교해 가면서 탐방하는 것도 좋습니다.
제주 자연의 특별함과 제주인들의 삶이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곶자왈.
어떠신가요? 이 정도면 곶자왈 숲에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야 할 이유로 충분하겠죠?
*칼럼니스트 김재원은 작가이자 자유기고가다. 대학시절 세계 100여 국을 배낭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사는 '이주민'이 되었다. 지금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제주인의 시선으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에세이 집필과 제주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제주도 곶자왈 분포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