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정주영 회장이 남긴 16개의 어록
01. 운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운이 나빠지는 것이다.
02. 길을 모르면 길을 찾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된다.
03. 무슨 일이든 확신 90%와 자신감 10%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04. 사업은 망해도 괜찮아, 신용을 잃으면 그걸로 끝이다.
05. 나는 젊었을 때부터 새벽에 일어났어. 더 많이 일하려고...
06. 나는 그저 부유한 노동자에 불과하다.
07. 위대한 사회는 평등한 사회야, 노동자를 무시하면 안 된다.
08. 고정관념이 멍청이를 만드는 것이다.
09. 성패는 일하는 사람의 자세에 달린 것이다.
10. 아무라도 신념에 노력을 더하면 뭐든지 해낼 수 있는 것이다.
11. 내 이름으로 일하면 책임 전가를 못하는 것이다.
12. 잘 먹고 잘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좋은 일을 하려고 태어난 거다.
13. 더 바쁠수록, 더 일할수록 더 힘이 나는 것은 신이 내린 축복이다.
14. 열심히 아끼고 모으면 큰 부자는 몰라도 작은 부자는 될 수 있다.
15. 불가능하다고? 해보기는 했어?
16. 시련이지 실패가 아니야.
고(故) 정주영 회장에게는 유명한 일화(逸話)들이 많다.
그중에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세 가지 일화가 있다.
그의 체질이 어떠함을 보여주는 일화들이다.
■ 벼룩 이야기
그가 막노동 꾼으로 일하던 시절 허름한 노동자 숙소에서 지냈는데
벼룩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고민하다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었다.
침상의 4 다리에 물을 가득 채운 대야를 받쳐둔 것이다.
벼룩이 침상에 오르려면 물을 건너야 하는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여전히 벼룩이 괴롭혀서 불을 켰더니 세상에!
벼룩이 벽을 타고 올라 천장에서 몸을 날려 사람에게 뛰어내리고 있었다.
그는 벼룩의 목표를 향한 집념과 노력에서 큰 교훈을 받았다.
■ 폐 유조선을 사용한 정주영 공법
서산 간척지 방조제 공사를 할 때 큰 난관에 부딪혔다.
6킬로미터가 넘는 공사에서 마지막 270 미터 구간이 난제였다.
5 톤짜리 바위도 휩쓸어 가는 급류가 흘러 기초를 내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선진국 전문가들과 학계 모두에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 구간을 못 막아 전체 공정을 포기해야 하는 위기였다.
그는 결국 길이 322미터의 폐 유조선을 가라앉혀 방조제 틈을 메우도록 지시했다.
모두가 검증된 바가 없다고 반대를 했지만 밀어붙여서 성공했다.
공기를 1년 6개월 단축하고 공사비도 280억 원을 줄였다.
뉴욕 타임스에 정주영 공법으로 소개되기까지 했다.
■ 화투 대신 책
정주영 회장의 첫 직장은 쌀가게 부흥 상회였다.
부흥 상회에는 여섯 명의 쌀 배달 꾼이 있었다.
저녁 7시 쌀 가게 문을 닫고 나면 배달 꾼들은 장기를 두거나 화투를 쳤다.
그러나 정주영은 책을 읽었다.
부흥 상회 주인의 딸 이 문순 여사는 청년 정주영을 보며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일꾼들과는 사뭇 달랐다.
밤이 되면 항상 책을 붙들고 있었다"
한 시대를 이끌었던 그는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서 크게 말한다.
출처: 좋은 글과 좋은 음악이 있는 곳 글쓴이: 이베다이의선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