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3520]조선의 명기(名妓)(2)
- 성종임금이 사랑한 소춘풍(笑春風)
세치 혀로 대신들을 희롱한 시골 기생(鄕妓)
어전에서 임금님이 문무백관에게 연회를 베풉니다.
팔도에서 뽑혀 온 미색과 가무가 빼어난 기생들(選上妓)이 춤을 추고
노래하니 주연 분위는 한껏 고조되지요.
성종임금은 소춘풍(笑春風)을 불러 삼공육경(三公六卿)에게
대신 술을 따르게 합니다(行酒).
삼정승에게 술을 따른 소춘풍은 육조판서들의 자리로 옮기는데,
서열로 봐 예조판서 다음이 병조판서인데 자리를 바꿔 앉아 있습니다.
소춘풍은 병판을 건너뛰어 예판에게로 다가 가서 술잔을 올리면서
권주가로 시조 한 수를 읊지요.
唐虞*를 어제 본듯 漢唐宋을 오늘 본듯,
通古今 達事理하는 賢哲士를 어데 두고
제 설데 잘 모르는 武夫를 어이 좇으리.
(대부분 아시리라 생각되나 사전찾기 귀찮은 임들을 위에 부언하자면,
요순시대(*唐虞)나 한, 당, 송나라 고금에 통달하고
사리 밝은 문인(文人)을 놔두고
제자리도 찾지 못하는 무인을 어이 따르리오^^.)
병판 대감, 어전이라 어쩌지는 못하나
앙앙불락 얼굴색이 울그락불그락합니다. 이에 소춘풍은,
前言은 戱之耳라 내 말씀 허물 마소.
文武一體인 줄 나도 잠깐 아옵거니
두어라 赳赳武夫*를 아니 좇고 어이리.
(앞에 한 말은 웃자고 한 소리니 허물 마시오.
文과 武가 일체임을 나도 알기에,
씩씩하고 용맹스런 무사(*赳赳武夫)를 어찌 아니 좇으리오^^)
이렇게 분위기를 잠시 수습한 소춘풍은,
齊도 大國이요, 楚도 대국이라,
조그만 滕國이 間於齊楚*하였으니
두어라 何事非君이리오, 事齊事楚하리라.
(갑자기 춘추전국시대 맹자(孟子)를 등장시킵니다.
등(滕)나라 왕이 맹자에게 묻지요,
제나라도 대국이고 초나라도 대국인데 그 사이에 낀
쪼만한 우리 등나라*는 어찌하면 좋을지요.
맹자의 대답과는 다소 온도 차(?)가 있으나,
제와 초를 모두 섬기면 될 거 아니냐는 거지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소춘풍(笑春風)
얼마 후 소춘풍은 입궐하라는 명을 받고 들어갔으나,
연회는 열리지 않고 별전에서 성종대왕이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오늘 밤 너와 함께 하고 싶은데, 어떻냐?”
“황공하옵니다.”
“무엇이 황공하단 말이냐?”
“성상께옵선 一夜寵 百年恨이란 말을 아시는지요.”
사실 소춘풍도 성종을 사모하고 있었으나,
한번 궁녀로 들어가면 평생 독수공방을 각오해야 한다는 걸
알기에 목숨을 걸고 토해낸 말이지요.
한동안 말없이 술잔을 기울리던 성종도 쿨하게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어느 날 저녁, 소춘풍의 기방에 한 선비가 찾아옵니다.
“양주 사는 이 서방이 왔다고 전해라.”
안채로 안내된 사람은 미복잠행(微服潛行) 중인
성종인 걸 대뜸 알아 볼 수 있었지요.
“성상께게 어인 일이시옵니까?”
”어허, 이 사람아 나는 이 서방이래두 그러네.“
임금이 아닌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 중 한 사람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성종임금은 낮에는 성군 (晝堯舜),
밤에는 바람둥이(夜桀紂*)라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夏나라의 왕 桀과 殷나라 紂는 주지육림으로 나라를 망친 폭군)
봄바람(春風)같은 가벼운 세태를 한껏 비웃다(笑)
소춘풍은 함경도 영흥(永興, 원산 부근)의 기생인데 미모뿐만 아니라
詩文도 뛰어나, 근방은 물론 한양까지 妓名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궁중에서 여는 연회를 위해 팔도에서 뽑아 올린
기생(選上妓)의 일원으로 한양에 머물게 됩니다.
笑春風이란 기명은 누가 지어 준 건지 확실치는 않으나
파격적인 이름이지요. 봄바람처럼 웃는다(笑似春風)는
평범한 뜻보다 ‘봄바람을 비웃는다’는 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네요.
고려 말 무신으로 고려 왕조에서는 문하우시중(門下右侍中)을 지냈고
조선조에서는 개국 공신으로 좌시중(左侍中)을 지낸 배극렴(裵克廉)이
소춘풍을 찾아와,
”소문에 너는 이 집 저 집 떠돌며 東家食西家宿하는 지조없는
기생이라는데, 오늘 밤 나와 합방함이 어떠냐?“ 이에 소춘풍이,
”어제는 고려의 신하(昨夜王臣)요, 오늘은 조선의 신하(今朝李臣)인
대감을 소첩이 아니 모시면 누가 모시리오.“ 라고 한방 날렸다나..
위 설화는 그로부터 백년 후 송도 선비 五山 차천로(車天輅) 선생의
야담집 五山說林에 수록되어 있는 걸
과감(?)하게 줄이고 각색한 것입니다.
원문=용두열 칼럼.https://cafe.daum.net/yonggo20/j7sS/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