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
신원철
팽팽한 허벅지
페달 위에 펄럭이는 들숨과 날숨
안장 높이 올리고
한 줄 선에 몸을 던지는 나는
줄타기 광대
삼척과 서울 사이 30년
끈질기게 이어지던 300킬로의 긴 줄
가족은 서울에 두고
먼먼 동쪽 끝 혼자 떨어져 살며
끝없이 왕복하던 외줄 타기의 세월
끝날 무렵, 예순 넘어 재미 붙인 자전거 타기
두 바퀴 뒤로
긴 선이 또 이어지는데
그런 게 인생이라고, 자전거길 따라 잡초나 관목들
온몸을 흔들어대고
-------2023년 {시터} 동인 시집에서
어머니와 딸의 관계도 외줄타기와도 같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도 외줄타기와도 같다. 친구와 동료들의 관계도 외줄타기와도 같고, 타인들과 적들의 관계도 외줄타기와도 같다. 우리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탯줄’이라는 외줄에 묶여 태어나듯이, 이 탯줄이 끊어질 때부터 ‘이 세상의 삶’이라는 ‘외줄’을 탈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꿈과 낭만이 있고 젊고 건강할 때는 “팽팽한 허벅지/ 페달 위에 펄럭이는 들숨과 날숨/ 안장 높이 올리고/ 한 줄 선에 몸을 던지는 나는/ 줄타기 광대”라는 행복을 향유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꿈과 낭만은 커녕, 늙고 병 들면 이 외줄타기처럼 덧없고 허망한 일도 없을 것이다. 인생은 짧고 후회는 끝이 없고, 죽음의 공포는 다만 무섭고 두려울 뿐이다.
신원철 시인의 외줄타기는 “삼척과 서울 사이 30년/ 끈질기게 이어지던 300킬로의 긴 줄/ 가족은 서울에 두고/ 먼먼 동쪽 끝 혼자 떨어져 살며/ 끝없이 왕복하던 외줄 타기”이다. 학문연구와 인재양성, 끊임없이 언어를 갈고 닦아야만 했던 시 쓰기와 가족부양----, 이 양립하기 힘든 외줄타기는 그의 삶 자체를 ‘줄타기 광대’로 만들고,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의 고대의 오후같은 행복을 가져다가 주고 있는 것이다.
“예순 넘어 재미 붙인 자전거 타기/ 두 바퀴 뒤로/ 긴 선이 또 이어지는데/ 그런 게 인생이라고, 자전거길 따라 잡초나 관목들/ 온몸을 흔들어대고”----.
탯줄은 밥줄이고, 밥줄은 목숨줄이고, 이 외줄타기가 끝나면 이 세상의 삶도 끝난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 어느 누구도 나의 꿈과 희망, 나의 좌절과 실패, 그리고 나의 육체적 노쇠와 저승길을 동행해줄 수는 없다.
아내와 친구와 자식과 그리고 그 모든 동료와 친구들도 더욱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한 경쟁자들이었을 뿐, 내 목숨줄, 내 외줄타기를 도와주거나 그 추락을 막아줄 수는 없었다.
인간은 본디 외롭고 고독한 거미와도 같으며, 외줄타기의 명장이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