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시대 이후로 지구상에 완전한 평등사회가 한곳이라도 있었을까.인류가 나타나 역사를 기록한 지가 벌써 3천여년이 지나고 있건만 아직까지 인간 갈등의 주제는 여전히 자유와 평등에 머물고 있다.
봉건시대에는 지배와 피지배의 문제로 투쟁과 반목의 기록들을 남겨놓았고,
산업시대 이후로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대립으로 점철되어 왔다.그 사이 이 문제를 사회 구조적으로 해결해보고자 사회주의가 등장했으나 역시 또다른 형태의 속박구조를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오늘날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기회균등이라는 법 앞의 평등을 체제의 대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계층간의 대립문제는 또다른 양상을 띠고 나타난다.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적 모순,깨달음,실천
‘임꺽정(林巨正)’의 전체 줄거리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 영웅화된 한 인물이 자신의 신분에 가해지는 압제를 견디다 못해 천민들을 이끌고 봉기하는 내용이라고만 한다면 이 작품은 그저 통속적인 소설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이 소설에서는 대립과 투쟁보다는 오히려 깨달음의 문제가 핵심이라 할 수 있다.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사회에서 모순을 깨닫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과정을 그리고,임꺽정의 좌절을 보여줌으로써 사회 변혁을 위해 한 개인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역사발전과 개인의 역할
홍명희는 임꺽정을 민중의 염원을 대변하는 인물로 설정하고 갖바치의 입을 빌려 임꺽정,즉 민중을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끈다.그러나 이글거리는 복수심으로 가득 찬 임꺽정을 달래기보다는 세상의 모순만을 일깨워주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마는데,임꺽정이 끝내는 좌절할 것을 알지만 혁명을 실현하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을 알려주기 위해 애쓰지는 않는다.여기에서 홍명희는 민중을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냉정한 눈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갖바치가 마지막 유서에서 임꺽정이 결국 혁명을 도모해보지도 못하고 죽을 것을 예상하고는 ‘천자정기재안중(天子旌旗在眼中)’이라는 글귀를 남기는데,이것은 ‘(마침내 임꺽정과 그 무리는 죽게 될 것이지만) 천자의 깃발이 눈 안에 있다’라고 하여 민중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세상의 모순을 없애보고자 큰뜻을 품었던 임꺽정은 결국 서림이라는 간교한 자를 만나 봉물이나 빼앗는 화적이 되고 말자 스스로도 만족해하지 못하다 나중에는 혁명에의 의지도 상실하고 만다.
임꺽정이 세상을 향해 품었던 혁명의지는 결국 청석골 부하였던 박련중의 말대로 ‘객기’에 그치고 만 것이다.본인도 자신의 행위가 세상에 대한 분풀이에 불과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데,이는 그 당시 민중의 좌절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작자는 한 개인의 의지나 힘만으로는 세상이 변화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으며,사회의 의지와 개인의 의지가 충돌했을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가에 대해서도 냉철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홍명희는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가진 ‘갖바치’를 통해 당시의 핍박받는 민중에 대해 한없는 연민으로 그들을 끌어안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며,결국 역사는 민중의 염원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희망을 암시해준다.
○다시 피지배 상태에 놓여
이 소설은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였던 1928년에 연재를 시작했다.그로부터 70년이 흘러 우리는 또다른 형태의 피지배 상태에 놓여 있다.그러나 우리는 외부의 지배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이 속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대립으로 여전히 갈등하고 있다.
우리가 임꺽정이 겪은 좌절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등장인물이 다 바뀌었다 하나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는 우리 모두 이 한편의 소설에 같이 등장하는 동시대의 인물들이며,이 속에서 자신의 배역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백성을 갈취하는 탐관오리로 나오든,남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사람으로 나오든 말이다.재물은 유한하나 정신은 무한하니,모두 복 받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