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누리 예술관>
: 승환님이 강북에서 공연을 하시면 난 신이난다.
: 승환님이 오시기엔 멀지만 어쩐지 공연 장소가 강북에 잡히면 난 기운도 난다.
: 1990년 12월 1일 아마도 토요일이었던것 같다.
: 명지대학교 근처 온누리 예술관에서 승환님이 콘서트를 하셨다.
: 나와 내 친구 맹구는 고등학생이었고 우리들의 집은 그 근처여서 우리는 칠
: 랠래 팔랠래 좋아했다.
: 그날은 눈도 많이 왔다. 그 눈이 하늘이 승환님의 공연을 축하해 주시는 것이
: 아닌가 싶게 소복히 복스럽게 왔다.
: 난 텅빈마음의 전주를 들어면 가슴이 무너지는것 같다.
: 다른 많은 노래들이 있지만 처음들은 그의 노래여서인지도 모른다.
: 그때의 편곡이나 승환님의 창법은 정말 발라드 가수의 그것과 비슷했다.
: 그때는 변해가는 그대의 (믿을께요)그런 음색은 상상도 못할때였는데.
: 환장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모여서 수다를 떨듯 노닥거리는 그런 분위기였다.
: 그저 까르르 웃으며....그의 노래을 따라 부르기보다는 그져 조용히 분위기에
: 빠져서 경청하는 분위기. 난 그때 환장하다라는 말은 나쁜뜻인줄 알았다.
: 무적전설에는 텅빈마음이 없어서 슬프다.
: 명지대 근처에 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동네는
: 언덕이 많고 경사가 급하며 눈이 올때는 자동차들이 피해가야 좋을 듯 싶은
: 길이 있다.
: 그 날도 승환님의 공연이 끝나고 내려오는 길에 미끄러 질까봐 엉금엉금 기어내려왔고
: 우리는 감기에 걸렸다.
: 공연장의 열기가 가시기 전에 밖으로 나온 탓에.......
: [한여름밤의 꿈]이나 [여자하나 남자하나]와 비슷한 내용의 공연이었는데
: 그 시절에는 보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었다.
:
: 여러분들 혹시 아시는지 탑텐(Top Ten)이란 잡지를...........
: 그 때는 잡지 표지 모델로 승환님이 나오시곤 했는데 (기회가 닿으면 여러분들께
: 보여드리지요. 한복을 입으신 사진도 있음) 인터x루 옷을 입으시고 한것 폼을
: 잡은 웃기는(?)사진도 있었고 맨발로 기둥에 기대신 사진도 있으며 공포의 사진
: (까만 구두안에 흰양말)도 있고 무엇보다도 악보가 들어있어서 너무 좋았던 그 잡지
: 별책부록으로 승환님의 부로마이드도 많이 주어서 저의 용돈을 사정없이 앗아갔던
: 그 잡지가 문득 생각나네요.
: 그리고 궁금합니다. 그 시절 승환님의 코러스를 해주셨던 그 분들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 꼼빠x아 cm부르셨던 분들인데....
: 다시 한번 정말 꼭 한번만이라도 작은 소극장에서 승환님의 파편을 맞으며 공연을
: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 죄송한 말씀이지만 지난 11월 서울공연때 저는 상당히 앞자리에서 승환님을
: 봤답니다. 어찌 어찌 줄을 서다 보니 앞에서 네번째 줄에 서게 되었어요.
: 새치기난 반칙을 하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저는 천우신조라 생각했답니다.
: 그래서 그날 뒤에서 힘드셨던 많은 분들께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답니다.
: 그런데 너무 기뻤어요. 제가 아무리 몸부림처도 아무리 열심히 다이얼을 돌려도
: 제 자리는 항상 뒷쪽에 가까웠거든요. 이번에 정말 승환님을 가까이서 보면서
: 행복했답니다.
: 앗 또 얘기가 삼천포로 갔다.
: 온누리예술관에서 승환님께 싸인을 받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 그 사진속에 나는 단발머리 여고생이었는데......
: 그리고 나는 그해 크리스마스에 환장과 기절을 동시에 했다.
: 우리기획에서 무엇인가가 날라온것이다. 승환님이 사진과 싸인이 담긴
: (비록 인쇄물이었지만) 크리스마스 카드가 왔다.
: 그때는 승환님과 그의 음악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으리라 생각을
: 못했다. 다만 그런 바램을 가지고 있었을뿐.
: 지금 나는 그가 자랑스럽다. 아직도 그 자리에 늘 항상 있으므로.
: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으리란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승환님은 항상 거기에 계신다 다만 팬들이 흔들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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