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야기 / 임유영
사월의 한낮이었다. 벚꽃이 절정이라기에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가벼운 옷을 입고 나들이를 나가려니 기분이 좋았다. 걷다가 지름길을 두고 일부러 둘러 가기로 했다. 여학교를 지나 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감색 세일러복을 입고 달려가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을 시각인데 아이는 멀리 공원 쪽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나중에 보니 역시 교복을 입은 남자애가 자전거를 대고 기다리다가 여자아이를 뒤에 태우고 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사거리에서 그만 사고가 났다고 한다.
사고가 나서 여자아이는 죽어버렸다. 나는 그날 꽃을 못 보고 돌아가던 길에 교복집 하는 늙은 남자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죽을 징조를 벌써 보았다고 주장했다. 첫째로 그날따라 여자애의 그림자가 무척 옅어서 보이다가 안 보이다가 했고, 둘째, 하얀 토끼인지 개인지 작고 사람은 아닌 것이 날래고도 사납게 그 뒤를 쫓고 있었고, 셋째로 사람이 달리는데도 한 갈래로 땋이내린 머리카락만은 전혀 흔들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영감의 말을 곧이 믿지는 않았다. 무릇 꿈이란 뇌에서 배출된 찌꺼기에 불과한데, 그런 꿈을 해몽한다는 자들의 말 또한 사람을 현혹하는 얕은 수일 뿐이다. 그 증거로 나는 사월의 화창한 대낮에 꽤 오래 걸었음에도 전혀 땀을 흘리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붓을 들어 이 이야기를 종이에 옮겨 적었고,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벽에 붙여두었다. 후에 그것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있어 적당한 값을 받고 팔았다.
― 시집 『오믈렛』 (문학동네, 2023)
* 임유영 시인 1986년 경남 진주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졸업. 2020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 『오믈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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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나는 붓을 들어 이 이야기를 종이에 옮겨 적었고,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벽에 붙여두었다. 후에 그것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있어 적당한 값을 받고 팔았다.
2023년 10월 임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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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한 시다. 어디까지가 꿈인지도 모르겠고 왜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망연한 그 죽음을 너무 담담하게 그리다가 아예 꿈이었다고, 길몽이었다고 치환하는 것도 낯설다. 시는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도구다. 시인은 교묘한 은유와 비유와 상징 등을 다 섞어 단서를 여기 저기 깔아 놓고 우리를 해석의 세계로 이끈다. 나의 해석이 단어들과 구절들의 근거로 타당함을 획득할 때 시를 읽은 기쁨도 더욱 커진다. 그런데 이 시는.. 음..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뭔가 슬프고 뭔가 허망하고 그냥 이 모든 게 꿈이었기를 바라는 마음.. 혹은 누군가 사가버려서 내 기억에서 떠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시집을 같이 읽는 @낮은마음 선생님은 어찌 보실지 궁금한 새벽. - 블로그 / 시글 시끌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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