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창피한 세계 대문제-2
발트 3국과 폴란드 사이에 러시아 땅‘ 칼리닌그라드’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1946년까지는 ‘쾨니히스베르크’라는 독일 땅이었다. 당시 소련의 국가수반이었던 ‘칼리닌’의 이름을 따서 ‘칼리닌그라드라’ 명명하고 소련의 직할지로 삼았다. 소련이 붕괴하고 발트 3국이 독립하자 러시아 본토와 떨어진 역외 영토로 남게 된다. 러시아로서는 절대로 국토에서 놓고 싶지 않은 땅이다. 이 지역과 국경을 맞댄 리투아니아가 두려움을 떨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러시아계 국민이 5%인데 이 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러시아가 군사행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 러시아가 승인한 2개의 국가가 있다.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방에서 봉기한 러시아계 주민이 2개의 국가를 수립했다고 선언하였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이다. 이들은 러시아로 편입되기를 원하면서 우크라이나와 내전 상태에 돌입했는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무장 세력에 대항할 힘이 부족하여 ‘민스크 합의’를 체결하였다. 내용은 이들의 강력한 자치를 허용하면 러시아 세력이 물러난다는 것이다. 2014년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간헐적인 전쟁을 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병합하였으나, 크림반도와 러시아를 잇는 긴 다리를 건설하여 급한 대로 교통로를 확보하였다. 만약 우크라이나의 동부 지역을 러시아가 차지한다면 크림반도와 육지로 연결되기 때문‘젤렌스키’ 대통령은 크림반도를 되찾기 위해 2021년 10월 드론을 사용하여 동부 지방의 러시아계 무장 세력을 공격하였다. 러시아의 푸틴은 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한다고 발표하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일 전의 일이다.
‘민스크’ 합의는 우크라이나에 불리했다. 단순한 정전 협정이 아닌 ‘우크라이나 정부가 헌법을 개정하여 돈바스 지역의 강력한 자치권을 인정한다.’라는 정치적 결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시 우크라이나군은 5만 명밖에 되지 않았고, 그 후 8년에 걸쳐 병력 20만 명을 증강하였다. 우크라이나는 EU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데 반하여 같은 구소련 구성국이던 벨라루스는 러시아와 함께 국경 근처에서 러시아와 합동군사훈련을 했다. 러시아 제국의 백러시아란 나라로 어원은 ‘벨라’라는 ‘희다’의 의미다. 1918년 독립한 벨라루스는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독립했으나 ‘알렉산드로 루카셴코’ 대통령이 30년 가까이 통치하고 있다. 6선에 당선하였으나 선거 부정이 폭로되어 격분한 국민이 반정부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우크라이나를 지키기 위해서 NATO는 우크라이나가 가맹국이 아니므로 군사개입은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경제 제재뿐이다. 러시아를 SWIFT(국제 은행 간 통신협회가 운영하는 세계 최대의 국제 송금 네트워크)로부터 배제 시키는 것이다. 러시아는 수출하더라도 대금을 받을 수 없다. 이러한 금융 시스템으로부터 배제되면 러시아 루블을 달러로 바꿀 수 없게 되어 수출할 수 없게 되는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크나큰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에서 소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소련의 15개 공화국 중 하나며 소련 붕괴로 독립했다. 카자흐스탄에는 고려인이 많이 사는데 이는 1931년 스탈린이 고려인을 강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강제 이주민은 체첸인도 마찬가지다. 결과 카자흐스탄은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다. 카자흐는 독립 당시 대통령이던 ‘나자르바예프’가 그대로 독립국의 대통령으로 눌려 앉았다. 28년에 걸쳐 권력을 장악한 것이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가 주도하는 구소련권의 군사동맹인 ‘집단안전 보장조약기구(CSTO) 가맹국이다. 6개국으로 러시아,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이다.
CASTO와 유사한 조직이 중국이 주도하는 우즈베키스탄, 인도, 파키스탄의 상하이협력기구(SCO)이다. 여기에 이란이 정식으로 가입했다. 그런데 인도는 중국에 대항하기 위하여 만든 쿼드에도 가맹하였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인도다. 이란은 반미 국가다. 이란 대통령은 특수한 존재다. 이란 대통령 위에는 ’최고지도자‘가 존재한다. 올해 83세의 ’하메네이카‘가 최고지도자다. 이란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이슬람 공화국인데, 국민의 대부분은 이슬람교에서 소수파인 ’시아파‘이며 이슬람 혁명 이후 시아파의 법학자에 의한 통치가 계속되고 있다. 이란 대통령은 군에 대한 권한이 없고 국회나 사법과 같은 행정의 수반이다.
미군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은 주변에 많은 나라에 둘러싸인 다민족 국가다. 과거 몽골제국에 지배당한 적도 있는데 ’하자라‘인이 몽골계이며 일본인과 한국인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모습이 비슷하다. 1979년 소련이 침공하였다. 소련은 종교를 부정하는데 반발한 이슬람인이 무기를 들고 저항하는데 이를 ’무자히덴‘이라 불리는 성스러운 전사들이다, 결과 소련은 1989년에 철수한다. 아프가니스탄은 내전에 빠지고 탈레반이란 ’신학생’을 의미하는 ’탈리브‘의 복수형이다. 미국은 테러의 주모자 ’오사마 빈 라덴‘을 살해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아프간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린다는 목적은 달성치 못한다.
우크라이나와 중국은 의외로 긴밀한 관계다. 중국의 최초 항공 모함인 ’랴오닝‘호는 우크라이나로부터 사들인다. 원래는 소련의 ’바랴그‘호라는 항공 모함이었다.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 조선소에서 건조할 때 소련이 붕괴하자 항모는 우크라이나 것이 되었다. 1998년 홍콩의 사업자가 해상 카지노를 쓰겠다고 구매를 희망하자 항모의 장비를 제거하고 빈 선체로 매각하였다. 중국은 우크라이나의 기술자를 고임금으로 대량 고용하여 항공 모함을 완성해 중국의 ’랴오닝‘항모가 되고 우크라이나는 일대일로의 전략에 중요한 나라가 되어 현재 우크라이나의 무역 제1국은 중국이다.
중국은 마오쩌둥 덕분에 모두 평등하게 가난해졌다. 기근으로 3천만 명이 아사하자, 책임론으로 마오쩌둥을 추궁한다. 이에 국가주석직을 물러났다. 그렇지만 중국공산당의 주석직은 양보하지 않았다. 2명의 주석이 존재하자 상황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국가주석에게 보고만 하고 공산당 주석은 소홀하게 취급하자, 마오쩌둥은 새 주석 류사오치를 시기하여 권력을 되찾기 위해 일으킨 것이 문화대혁명이다. 마오쩌둥의 권력을 되찾기 위한 사상개혁 운동이다. 마오쩌둥은 중국은 혁명으로 성립했지만, 혁명은 한 번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부패해지므로 혁명은 계속되지 않으면 안된다. 부패한 집단을 타도하자. 라는 말로 청년들을 선동하였다. 전국의 중학생과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들은 ‘호위병’,을 자칭하며 혁명을 시작하였다. 호위병은 권력자를 끌어내려 자기비판을 강요하고 대중 앞에 끌고 다니며 모욕을 주고 옥상에서 떨어뜨리기로 하였다. 홍위병 그룹이 운동방침을 두고 대립하면서 서로 죽고 죽이는 사태가 계속 발생하였다. 마오쩌둥은 모두 평등하게 하는 정책을 내세웠지만, 대혼란만 일으켰고, 결과적으로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해졌다. 이것이 문화혁명의 실체다.
덩샤오핑에 의한 희한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이 나왔다. 즉 부유해질 수 있는 사람부터 부유해지는 것이 좋다‘라는 先富論을 제창하며 개혁 개방 정책을 추진하였다. 사회주의는 정부가 사전에 정한 방침대로 계획적인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체제이다, 반면에 시장경제란 경제활동을 시장에 맡긴다는 의미이다, 즉 시장경제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는 자본주의 체제이다.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란 물과 기름이 섞이는 듯한 느낌이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란 중국식으로 설명하면 ’중국공산당의 명령을 따르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돈을 벌어도 된다’라는 의미이다. 결과적으로 1990년 이후 매년 두 자릿수의 고도 경제 성장을 실현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풍요로워졌지만, 빈부 격차가 급격하게 퍼졌다. 시진핑의 슬로건은 共同富裕다. 지금의 시진핑은 제2의 마오쩌둥이 되려고 한다. 다만 지향하는 목표는 정반대다. 마오쩌둥이 주장한 평등은 중국인 모두가 가난했지만, 이제 중국인 모두 다 함께 부자가 되자는 것이다. 부호들은 공산당 통치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데, 크게 성공한 부자들은 기부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기부하지 않으면 신변이 불안하다. 부자를 압박하여 평등을 실현하려는 것이, 시진핑의 노림수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시진핑은 마오쩌둥이 달성하지 못한 ’타이완 통일’을 위해서는 경제보다는 공산당에 추종하는 것, 다시 말해 경제보다는 이데올로기를 중시하는 것이 시진핑의 논리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2023.04.20.
모르면 창피한 세계 대문제-2
이케가키 아키라 지음
이정용 옮김
종문화사 간행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