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인과 개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잠언 26: 11)
성경 말씀에 개에 대하여 기록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잠언에 기록된 말씀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미련한 사람에 대하여 개가 그 토한 것을 핥아 먹는 것과도 같은 우매하고도 더러운 행동을 하는 자로 비유한 것이다.
내가 벨기에에 처음 도착했을 1989년 당시 벨기에 전체 국민은 약 900만 명이었는데 그들이 키우던 개가 1,100만 마리였다. 수많은 사람이 개를 데리고 다녔다. 개가 주인으로부터 받는 사랑과 대접은 때로 사람보다 더 나았다. 심지어 수백억 원의 재산을 자식들에겐 한 푼도 주지 않고 자신이 키우던 개에게 남기고 간 어느 할머니도 보았다.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들보다 주인의 품에 안겨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던 개 팔자가 더 나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도 애완견이나 고양이 등을 돌보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돌보는 개나 고양이를 자식같이 여기기까지 한다. 그리고 때로는 자식보다 더 소중히 여길 때도 있다. 개가 유치원에 가서 공부하고 아프면 고급동물병원에 가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물론 엄청난 비용을 주인이 낸다. 개 미용실, 개 호텔, 개 장례식장 등이 성황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서울의 어느 교회에선 교인이 키우던 개가 죽으면 부목사가 가서 장례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부산에도 그런 교회가 있을 수 있겠고 대구나 인천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다.
산책길에서 자주 만나는 유모차에는 예쁜 아기 대신에 개가 들어 있다.
자신이 키우는 개에게 고급 홍삼이 함유된 식사를 먹이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이나 이웃에게 된장찌개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은 많이 아까울수도 있겠다. 개에게 들어가는 돈은 하나도 안 아까우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금에는 인색할 수도 있겠고.
필리핀 사역지의 목사 한 달 사례비가 10만 원 안팎이다.
그런데 개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서 치료받게 하려면 때로는 천만 원에 가까운 돈이 들기도 한다. 필리핀 목사들 10년 사례비에 버금가는 큰돈이다. 또 굶주려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생명줄과도 같은 양식을 공급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만약 개나 고양이를 키우게 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혹시 하나님보다, 내 이웃보다 개를 더 섬기게 된다면 그 무슨 의미일까를 깊이 생각해 본다.
그런데 정말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들어온 말이 있다. 요즘 그 말을 곱씹어 보게 된다.
‘개 팔자가 상팔자다’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