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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6일(주)
* 시작 기도
주님...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면서 사람을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던 바울인 사울이 빛으로 오신 주님을 만나서 그의 이성의 한계를 초월하여 위로부터 오신 주를 알게 되었습니다.
허나 이 죄인은 지식적으로는 이성의 한계를 초월한 것 같으나 나의 삶에서는 여전히 주님을 부인하는 삶을 살고 있사오니 자기를 부인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삶만 살고 있사오니 이 죄인을 주의 공의로 심판하여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가 되게 하시고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에 온전히 하나될 수 있게 나를 장악하여 주소서.
오늘은 거룩한 주의 날, 공동체로 모여 예배하오니 주께서 받으시고 영광을 나타내소서.
거룩한 불구자요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는 하루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삼상 28:1-14
제목 : 역시 사람으로는 안 되는 죽은 흙, 없음입니다.
1 그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2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그러면 당신의 종이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하니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러면 내가 너를 영원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3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슬피 울며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4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더니
5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6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7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8 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새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서는 사울이 이르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올리라 하니
9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사울이 행한 일 곧 그가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 땅에서 멸절시켰음을 아나니 네가 어찌하여 내 생명에 올무를 놓아 나를 죽게 하려느냐 하는지라.
10 사울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1 여인이 이르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올리랴 하니 사울이 이르되 사무엘을 불러올리라 하는지라.
12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13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하니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하는지라
14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더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 나의 묵상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 땅 가드로 망명을 하였다.
이에 가드 왕 아기스는 다윗이 유다 땅 여기저기를 침노하여 그들을 죽이고 노획물을 가지고 자기에게 온 것을 보고 그가 이스라엘에게 심한 미움을 받는 자가 되었으니 이제 영원히 자기의 부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가드 왕 아기스는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려고 군대를 모집하였다.
그러면서 다윗에게 너와 너의 부하들은 나와 함께 군대에 참가하자고 하였다.
이에 다윗은 물론이라고 하면서 당신의 종인 내가 나가서 어떤 일을 하는지 당신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하겠다고 하자 아기스는 그럼 나는 너를 영원히 나의 호위병으로 삼겠다고 하였다.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모든 이스라엘이 그를 위해 슬퍼하며 사무엘을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한 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사울은 이 때 이스라엘 땅에서 무당과 점쟁이를 쫓아내었다.
블레셋 군사들은 수넴에 진을 쳤고 사울은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을 쳤지만 블레셋 군대를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떨었다.
그래서 사울이 여호와 하나님께 물었으나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사울은 견디지 못하고 그의 신하들에게 명하여 무당을 찾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의 신하들이 엔돌에 무당이 있다고 하였다.
사울은 옷을 바꿔 입고 변장을 하여 두 사람과 함께 그 무당을 찾아갔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무당은 사울의 말을 듣고 바로 그 일을 행하지 않고 사울 왕이 내린 명령을 상기시켰다.
이에 사울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면서 그 일로는 네가 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확증을 받은 무당은 누구를 부를까요, 하고 묻자 사무엘을 불러달라고 하였다.
한편 무당은 사무엘의 혼을 보고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사울에게 당신이 왜 나를 속였느냐? 당신이 사울이 아니냐고 하자, 왕이 두려워하지 말아라, 다만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무당은 내가 한 영이 올라온 것을 보았다.
사울이 다시 묻기를 그가 어떻게 생겼느냐고 하자 무당이 대답하기를 겉옷을 입은 한 노인이었다.
이에 사울은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였다.
사울은 사무엘이 죽었을 때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려야지, 하고 아주 거룩한 다짐을 한 것 같다.
이 땅에 신접한 무당이나 박수 등이 판을 치고 있는데 그들을 다 쫓아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나라를 구현하고자 하는 거룩한 뜻이었다.
그런 신통한 마음을 먹은 사울이었지만 다윗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온갖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것에 평안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그는 그 다윗을 죽이려고 계속해서 쫓아다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당신의 품에 감추어두심으로 그를 찾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들어오자 그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 묻는다.
그러나 그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그리고 선지자로도 어떤 대답을 듣지 못하였다.
여기서 꿈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방법이다.
우림은 제사장이 우림과 둠밈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하나님의 계시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사장은 이미 사울이 다 죽였으며 아비아달이 한 명 남았지만, 그는 다윗에게로 가 있다.
선지자는 당시 갓이 있었지만 그는 사울이 아닌 다윗 편에 서 있었다.
그리고 선지자 사무엘은 이미 죽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그는 신접한 여인인 무당을 찾은 것이다.
사무엘이 죽었을 때 그는 꽤나 신통하며 거룩한 마음을 먹었지만 그가 다급한 일을 당했을 때 그는 어쩔 수 없이 그가 내쫓은 무당을 다시 찾은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울이 여호와께 물었지만 여호와께서 응답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지만 성경 역대상 10장에서는 이와 다른 설명을 한다.
(대상 10:13-14)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
사울이 죽은 이유는 신접한 여인에게 묻고 또 여호와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분명 사울이 여호와께 물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사울이 ‘물었다’는 히브리어 단어와 역대상에서의 묻지 않았다에서의 ‘묻다’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삼상 28:6)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대상 10:14)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기서 삼삼 28:6절의 ‘묻자오되’의 히브리어 ‘와이쉬알’의 원형 ‘솨알’은 ‘자기를 위하여 묻는다’는 말이고 역대상 10:14절의 묻다는 히브리어 ‘다라쉬’로서 ‘기도와 예배 가운데서 경건히 묻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전자는 ‘자기의 인생을 위하여’ 묻는 것이고 후자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묻는 것이다.
사울은 오직 자기의 인생을 얻는데 하나님께 물었을 뿐, 하나님의 뜻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계시의 매개체로서 존재하는 선지자까지도 자기의 인생을 구하기 위하여 신접한 여인인 무당을 통해서 부르려 한 것이다.
그런데 구약의 율법에서는 신접한 여인이나 박수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레 19:31)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 20:6) 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레 20:27)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치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어쩌면 사울은 사무엘이 죽을 때 이제는 그가 계시의 매개자인 사무엘도 없으니 정말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겠노라고 다짐에 또 다짐을 하면서 무당과 박수들을 다 쫓아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블레셋의 침략이라는 다급한 일이 생기자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그리고 선지자로도 더 이상 물을 수 없기에 그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를 이용하거나 하지 않으셨다.
아니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당신이 바로 말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죽음에 처하는 위기 상황에서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지 않고 당당히 그 죽음을 수용하셨다.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을 시험할 때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하셨다.
나 역시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삶을 살겠노라고 일신우일신(一新又一新)하였던 때가 참으로 많다.
이를 오늘날 신앙적 표현으로 ‘주님 안에서 결단’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결단은 나를 시험하는 일로 인하여 금방 깨지고 무너지고 만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결단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잘 살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귀가 우리에게 내미는 당근이다.
우리 사람은 사울과 같이 어떤 기회가 오면 나를 새롭게 해서 착하게 살아보려는 결단하기를 참 좋아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결단을 원하시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님 곧 ‘없음’이요 ‘무익한 종’이며 ‘죽은 흙’임을 인정하며 이런 나를 살려주신 은혜에 면목없음으로 담대히 그리고 뻔뻔하게 나아가는 것을 원하신다.
나의 결단은 곧 나를 드러내는 또 다른 ‘위장된 나의 의’에 다름 아니다.
내가 바로 오늘 사울과 같은 사람이었다.
무슨 위기 상황이나 매듭을 지을 기회가 오면 얼마나 많은 결단을 했던가?
내가 이전보다 새로워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겠노라는 결단 말이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군상으로서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이다.
일찍이 그런 나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내가 나를 새롭게 해서 나의 의로 하나님께 보탬이 되겠다는 것은 내가 부리는 호기(豪氣)일 뿐이다.
나는 무력한 자이고 없음이며 죽은 흙에 지나지 않는 존재이다.
이런 내가 존재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세워주시지 않으면 존재일 수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그 때이다.
내 안에 그런 사울이 있다.
어떤 기회를 잡으면 그 기회를 사용하여 나를 새롭게 하고자 하는 결단이 나를 새롭게 할 것이라는 호기로움.
하지만 그것은 나를 죽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도 주의 복음만이 나를 살리는 생명임을 믿기에 그 복음 안에 거한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신 우리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나도 함께 죽고 함께 무덤에 장사되는 삶을 살 때 그 자리에 아버지의 영광이 임하여 그 영광을 아버지께서 친히 챙기신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사울이 여호와께 물었다고 자신한 것은 ‘솨알’로서 그것은 자기 인생을 얻기 위하여 물은 것이지만, 여호와께 묻지 않아서 죽었다는 것은 ‘다라쉬’로서 그의 일생동안 진정으로 주와 복음을 위하여 물은 적이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오늘 나 자신 또한 그 물음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엎드립니다.
나의 인생을 위하여 엎드려 기도한 적은 있지만, 주와 복음을 위하여 진지하게 엎드린 적이 있는지 나를 돌아봅니다.
이런 나는 죽기에 합당한 자입니다.
하지만 나는 ‘없음’이며 ‘죽은 흙’에 불과한 자임을 인정하며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자이오니 나에게는 오직 주님의 은혜만이 답입니다, 하고 주님을 붙듭니다.
날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내가 그동안 수도 없이 행했던 결단은 쓰레기와 같은 것들이었음을 아오니 이제는 나의 의로 주님께 나아가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죄인과 창기와 같이 더 납작 엎드려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날 구원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