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범회장님의 카톡에서]
♡나는 지금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사법연수원 다니던 시절, 한쪽 다리가 불편한 여성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눈에서 푸른빛이 튀어 나올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했다.
그리고 판사가 됐다.
어느 날 판사실을 찾아 간 내게 그녀가 한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양다리만 성하다면 차라리 파출부나 창녀가 돼도 좋겠다'고~.
그들은 걸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다고 했다. 그들에게 걷는다는 것은 놀라운 기적의 영역이었으며 행복의 기본이었다.
뇌성마비로 육십 평생을 누워서 지낸 여성을 변론한 적이 있다. 몸은 마비됐지만 머리가 비상하고 정신도 또렷 했다. 그녀는 크로스비 여사 같이 전 기독교인의 사랑을 받는 찬송가를 만든 시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자각하고서부터 자살 하고 싶어도 혼자서 죽을 능력이 없어 살아왔다고 내게 고백했다.
약국으로 걸어갈 수도 없고 강물에 빠져 죽을 수도 없었다고 했다.
혼자 방안에서 일어나 목을 매달 수도 없었다. 그녀는 말도 못했다.
한마디 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한다. 그래도 말은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일어나 앉을 수만 있어도 더 큰 행복은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와서 그녀를 돌보던 여자는 “혼자 화장실을 가고 목욕할 수 있는 게 큰 복인 줄을 전에는 몰랐다” 고 내게 말했다.
내가 잘 아는 영화감독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소리가 사라졌다. 들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의사들은 귀의 기능에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게 됐다. 그를 만났을 때 공허한 웃음을 흘리면서 그는 내 입술을 보았다. 내가 말하는 의미를 알아채기 위해서였다.
옆에 있던 그의 부인은 내게 남편이 다시 들을 수만 있다면 더 큰 행복은 바라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고교 시절 혜성같이 나타난 맹인 가수가 있었다. 가요제에서 여러 번 수상 경력이 있는 타고난 뮤지션이었다. 나중에 그는 맹인이라 대중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고 방송 출연을 거부당했다.
세월이 흐르고 그는 바닷가 피아노가 놓인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늙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볼 수만 있다면 더 큰 행복은 바라지 않았을 것 같다.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죄수와 편지로 소통을 했던 적이 있다. 그는 암흑의 절벽에 매달려서라도 살 수만 했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했다.
살아있다는 것은 너무나 귀중한 것이다.
돈 많이 줄테니 내 대신 죽어 달라면 응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산 같은 재산도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도 사람의 생명보다 가치가 없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다고, 일자리가 없다고, 늙었다고, 외롭다고 불행해 하고있다. 보고 듣고 걸으면서 존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날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걷지 못하고, 곧 죽어가는 누군가의 애잔한 소원을 이루고 날마다 그들이 바라는 기적이 일어 나는 삶을 날마다 살고 있다.
누군가 간절히 기다리는 기적들이 내게는 날마다 일상으로 일어나고 있는것~. 그런데도 나는 그걸 모르고 있다.
젊음이 지나간 후에야 그걸 비로소 아는 것 같다.
한쪽 시력을 잃고 나서야 건강한 눈으로 책을 읽던 그 시절이 행복 이라는 걸 깨달았다. 놀랍게도 나는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들을 젊어서부터 다 이루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날마다 깨닫는다면 우리들의 하루는 기적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각자의 삶, 각자의 인생, 자신을 사랑 해야겠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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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이 있어,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두 귀가 있어,
감미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두 손이 있어,
부드러움을 만 질 수 있으며
두 발이 있어,
자유스럽게 가고픈 곳
어디든 갈 수 있고
가슴이 있어,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엄상익님의 글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매일매일의 일상이 기적임을 절감합니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산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것인가요!
-옮겨 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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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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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없이 살자
어느 절의 주지스님께서
마당 한 가운데에 큰 원을
그려놓고는 동자승을 불러서
“내가 마을을 다녀왔을 때,
네가 이 원 안에 있으면
오늘 하루 종일 굶을 것이다.
하지만 원 밖에 있으면
이 절에서 내쫓을 것이다.”
그러고는 마을로 나가셨슴다.
동자승은 난감했습니다.
원 안에 있자니 가뜩이나
배가 고픈데~
하루 종일 굶어야 할 것이고,
원 밖에 있으면
절에서 내쫓김을 당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하루 종일
굶는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절을 나가야 할까요?
한 시간 뒤에
드디어 주지스님이 돌아오셨슴다.
그런데 이 동자승은 하루 종일
굶을 필요도 없었고,
절에서 내쫓김도 당하지 않았슴다.
어떤 선택을 했었던 것일까요?
동자승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글쎄 마당 한구석에 놓인 빗자루를 가지고 와서는
스님이 그려 놓은 원을
쓱쓱 쓸어서 지워 버린 것입니다.
원이 없어졌으니
원 안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원 바깥에 머문 것도 아닌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원을 없애자 자유로울 수 있었슴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이러한 원을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질이라는 원,
명예라는 원,
욕심이라는 원,
미움이라는 원,
그밖에 여러가지 원으로 인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지요.
이 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그 원을 지우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라는 원!
이 원을 과감하게 지울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 지금 당장부터 원없이 사십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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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위로 바람이 지나가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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