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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복 한 삶 뒤 의 그 림 자.
장 태 순
윤 부사장은 진 사장과 잘 어울리는 러닝메이트다. S회사 창립 멤버로 단 한 번도 트러블 없이, 30여 년 일사천리로 번창시켜
화섬 업계 중견 기업으로 키웠다.
처음부터 영업 담당이었던 윤 부사장, 긍정적이며 원만한 성품이고, 외모도 준수해 상대방에 호감을 주는 멋쟁이 신사였기에,
누구든 아군으로 섭외했다. 공장에라도 들르게 되면 외국인 근로자들과도 자주 대화를 해서 거리감이 없었다. 식사도 구내식당
에서 하는데 요리 담당 안 여사와도 정겹게 대화했다.
그에게 담점이라면, 출장이 잦았던 젊은 시절, 가정에 소홀했다는 점, 외도는 잦았어도 불륜이 없었던 이유는 미모의 아내와
결혼 전부터 애틋한 연애로 깊은 사랑 속에 살아왔다는 것이다. 금수저 출신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대학 졸업한 것만도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자녀들도 큰 딸은 호주에서 회계사 분야 MBA를 2년 다녀와, 결혼하고서도 사업하는 남편 회사 경리를 봐주며, 부동산 재테크
에 성공, 생활공간 자가 아파트 말고도 20억대 아파트를 월세 받는다고, 윤 부사장은 주위에 자랑을 했었다. 큰아들도 K 대학을
나와 건설사에 취업하고, 막내아들이 독일로 유학 갔다고 했다. 주위에서 선망이 될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췄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천국 같은 삶에 그늘이 지우기 시작한 것은, 뜻 밖에도 아내의 희소암 진단을 받고부터다. 몸이
야위어 가자 병원을 찾았고, 담당의사 말로는 희소암으로 국내에서 치료가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주위에서 암 환자 소문은 많이
들었어도 그 끔찍한 질병이 아내에게 발생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더구나 희소암으로 국내 치료가 어렵다니 황당했다.
아들과 딸은 인터넷을 검색해서 미국, 일본 암 전문 사이트를 섭렵, 치료에 전념했다. 몇 천만 원씩 하는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
도 선뜻 회복 기미를 안 보였다. 더 악화 안 되는 것 만이라도 위안이었다.
전에부터 서울 생활과 아파트 생활에 싫증을 내는 아내를 위해 천안 외곽에 전원주택을 구입했다. 도시 생활에 적응한 윤
부사장은 외로워 보여 내키지 않았으나, 아내가 원하는 대로 입주했다. 출장을 안 가도 되니까 아내를 위해 노후를 같이 지내려
마음먹었다. 다섯 채 규모의 적은 전원주택인데 공기가 맑고 조용해서 좋았다. 대문 앞까지 포장도로라 교통도 편하고,
가로수는 천안 명물 호두나무가 심어져 있다. 작은 화단에는 여러 가지 꽃이 심어져 있고, 봄에는 뒷 쪽에 영산홍이 화사하다.
광덕사 계곡에서 내려오는 저 아래 보이는 냇물은 오염되지 않아 깨끗하고 맑았다. 윤 부사장은 아직은 일을 더하고 싶은데
발목을 잡는 것도 안타깝지만 야위어가는 아내 때문에 밤잠 설치기가 예사다. 독일로 유학 간 막내가 1년 휴학을 하고,
아내 병간호를 위해 귀국하고, 큰아들과 딸은 휴일마다 집에 와 온 식구가 아내를 위해 전념했다.
윤의 사위 천서방은 대기업 H에 다니는 영업사원으로 실적도 좋았다. 하청 업체 D회사 사장이 대학 동기였는데 중국 현지
공장에 납품을 하게 되어, 중국에 공장을 증설하게 되면서 자금 조달이 어렵게 되자, 천서방에게 동업을 제의했다. 사위 친구는
임금이 저렴한 간쑤 성에 공장을 세웠다. 딸 상희는 사위와 같이 중국 현지답사를 다녀와 동업에 합의하고, 살림하는 아파트와
월세 받는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아 동업 자금으로 출자했다. 회사는 잘 돌아가고 흑자를 냈다.
아내의 증세가 호전되면 식구들 모두, 중국 공장 답사 겸 여행 계획을 세우고 병간호를 전념하던 딸이, 10여 일이 지나도록
소식도 없고 통화를 시도해도 받을 수 없다는 응답이 오자, 윤 부사장은 불안해졌다.
윤이 마침 서울에 갈 일이 있어 점심 시간대에 아들 회사 앞 식당에 가서 전화를 했다.
"상규야 아버지다. 회사 뒤 돌봄 식당인데 식사나 같이 하자!"
"아니 아버지 웬일이세요? 바로 나갈게요."
깜짝 놀라고 당황하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아들이 식탁에 마주 안 자.
"누나가 전화했어요? 누나가 뭐라고 해요?"
"왜! 누나한테 무슨 일 생겼니?"
"전화받고 오신 게 아니었어요?"
"그동안 전화도 없고, 통화도 받을 수 없다고 해, 궁금해서 온 거야."
"큰일 났어요! 중국 간쑤 성 강진 난 거 뉴스로 나가서 아시죠?"
"그래, 알지 누나네 중국 공장이 그곳이었구나 지명이 익숙지 않아 무관심이었는데."
"그곳 직원 6명이 사망하고 공장도 다 망가졌대요. 누나와 매형 그곳에 가면서 어머니 편찮으시까 집에 비밀로 하라고 했어요."
"우현은 어떻게 하고!" 우현은 윤의 외손자로 고등학교 2학년이다.
"제가 누나네 집에 가서 우현이 학교 보내고 있어요. 누나 모레 귀국하면 집에 간다고 했어요."
"이거 낭패구나! 누나네 집에 가서 자세히 얘기하자."
청천벽력이다. 윤은 아들 차를 타고 딸네 집으로 오면서,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워 눈을 감으니, 가슴이 답답하고, 하늘이 노랗게
느껴지며, 어떤 상상도 되지 않았다.
"누나네 중국 간지 일주일 되도록 연락이 안 되어 미치겠는데 어제, 모레 온다고 연락이 왔어요. 일단 엄마한테는 아버지께서 둘러 변명하시고, 누나 오는 대로 천안 가라고 할게요."
"그래 알았다. 이게 웬 날벼락이라니! 엄마가 궁금해하니까 우선 집으로 바로 가서 중국에 가 연락이 안 된 거라고 해야겠다."
"어쩌겠어요, 건강 조심하세요."
창백한 얼굴이 걱정되는지 아들이 위로했다. 윤은 집에 와서 식사도 못하고 잠도 못 잤다. 작은아들이 왜 식사 안 하시느냐,
물으면 공장 구내식당에서 먹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윤 부사장 딸 상희 시부모는 안성시 북쪽 10여 호가 사는 작은 마을에 산다.
우현이 할머니는 지난밤 꿈속에서 아들이 냇물에 떠내려 가며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발이 안 떨어져 못 구해 줬다고
이건 흉몽이라 아들네를 가야 된다고 졸랐다. 20여 일 통화 안 되는 것도 신경 쓰여 둘이 버스를 타고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전철로 환승한 다음 서초동 우현네를 찾아갔다.
일요일인데 벨을 눌러도 응답이 없고 비밀 번호도 몰라 난감했다. 우현 할아버지기 핸드폰에서 우현이 전화번호를 가까스로
찾아 통화를 하니 학원에 있는데 20여 분 지나야 도착할 수 있단다. 두 노인은 비상구 층계에 앉아 기다렸다. 20여분 뒤 우현이
숨 헐떡이며 달려와 깜짝 놀라며
"할아버지 할머니 빨리 들어오세요. 어떻게 갑자기 연락도 없이 오셨어요?"
"네 아비가 전화도 없고 통화도 안 되어 왔지."
"소식 모르셨어요? 중국 공장 있는 지역에 대지진 일어나 아빠 엄마 중국에 갔어요."
"뭐 지진이라고! 피해는 얼마나 많이 보았다니? 내 꿈이 이상하더니 이 일을 어째! 아이고 가슴아!"
가슴을 움켜쥐고 눈을 감는다.
"할망구 왜 이래! 또 가슴이 아파. 가방에 가져온
청심원 빨리 먹어!" 할머니를 살짝 안고 우현이
한테 눈을 찡긋했다. 우현이 눈치채고
"할머니 많이 아프세요? 괜찮을 거예요. 내일 아빠 엄마 온다고 외삼촌이 말했으니까, 오는 대로 할머니한테 가라고
할게요 걱정 마세요."
"그래 정신 차리고 청심원 빨리 먹어! "
조그만 소리에도 놀라고 심장이 너무 약하다더니 부정맥 진단으로 입원 치료하고 평생 약을
먹어야 된단다. 뒤에서 기침만 크게 해도 놀래 할아버지는 걱정되어 청심원을 항상 준비했다.
"나 눕게 되면 큰일이니까 서둘러 집에 가야겠다."
청심원 먹고 조금 회복이 되는지 할머니 옷을 주섬주섬 입고 가자고 서두른다.
"우현아 내일 엄마 아빠 오면 우리 다녀 갔다고 전화하라고 해 우리 간다."
"네, 가라고 할게요. 할머니 괜찮아요? 가실 수 있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노인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우현 할머니는 이튿날 밤 가슴에 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남편이 병원
가자고 아무리 호소하고 달래도 막무가내였다. 그동안 가끔 잠 안 올 때 먹던 수면제라도 먹고 자라고 했지만 말도
안 듣고 구급차를 요청한다니까
"그래도 난 안 가요. 얘들이 실패했는데 입원해서 짐 될 수 없어요. 죽는 게 나요."
밤새껏 가슴을 움켜쥐고 실랑이하던, 우현 할머니 새벽에 조용해서 남편이 "할망구 괜찮아! " 아무 반응이 없어 옆으로
뉘니 힘없이 쓸어져 얼굴을 보니 눈은 뜨고 있었고, 입이 벌려 있는데 숨을 멈췄다. 너무 허망했다. 반듯하게 뉘고, 눈을
감기고, 입을 다물게 하고, 얇은 흰 시트를 어깨까지만 덮고 옆에 앉아 생각했다. 90년 살았으니 살만큼 살았고, 뒷바라지
하던 할망구도 없고, 자식한테 짐을 지우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아내한테 권한 수면제가 보였다. 남은 수면제를
그대로 몽땅 삼키고 아내 옆에 가지런히 누웠다.
삼일 뒤, 상규가 누나 내외와 같이 천안에 왔다. 집에 오기 전 가까운 카페에서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다. 오전이라 카페는
조용하다. 세 사람은 한결같이 초췌하고 참담한 얼굴들이다. 잠시 후 윤이 들어가자 셋은 모두 일어났고, 상희는 아버지에게
안겨 흐느껴 울었다.
"어쩌면 좋아요. 쫄딱 망했어요."
"그래, 마음이 얼마나 이프냐? 모두 앉자! 천서방도 마음고생 많았지! 중국에서 절망적인가?"
윤이 앉으며 말하자 모두 앉았다.
"너무 처참했습니다. 장인어른 말씀대로 투자를 안 했어야 했는데 실수였습니다. 어제 오후 부동산에 세논 아파트와 사는
아파트 급매로 부탁했습니다."
"살림을 어떻게 하려고?"
"아버지 우리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세논 아파트로 임시로 이사하면 안 될까요? "
난감한 일이다. 갑작스러운 재난에 딸네 세 식구를 길바닥에 나 안게 할 수도 없고, 이제 계약한 지 4개월이라 위약금을 내야 한다.
"누나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우선 그분들 한테 사정을 얘기하고. 바로 나가면 다행이지만 누나네가 먼저 팔리면 공간을 안성
우현 할머니네로 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하자고! 그렇게 되면 내 오피스텔에 우현이를 데리고 있을게."
상규가 많이 생각한 것 같았다. 천서방은 말이 없고 듣고만 있다.
"그게 옳은 말인데, 사고 수습을 하려면 안성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아빠 어쩌면 좋아요?"
"상희야 상규 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너희가 고통이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선 오늘은 엄마한테 가서
안심시키고, 내일 천서방은 안성 가서 부모님 상처 안 받도록 잘 말씀드려! 엄마 아직 모르니까 조심하고!"
이튿날 천서방은 안성 친가로 갔다. 변두리 10여 호 작은 마을, 제일 뒤에 자리한 마당에 주차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이 집은
천서방이 5년 전에 구옥을 현대식으로 모두 개량했다. 현관문이 안 잠겨있어 이상했다.
"어머니?" 불러도 대답이 없어 거실을 지나 안방문을 열고, 침대를 보는 순간 너무 놀랬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두 노인이
나란히 누워 있는데 침대로 가 "어머니!" 외마디 부르고, 그대로 놀라 쓸어져 버렸다. 이런 참담한 일이 또 있을까?
천서방이 바로 오려니 집에서 기다린 상희는 전화도 안 받는 남편이 야속했다. 저녁에 계속 시도해도 안 받자 이제는 불안해
졌다. 이튿날 아침 식사 후 바로 상규가 아버지 차를 운전하고 시집을 찾아갔다. 이런 날벼락 있을까! 참흑한 현장을 무어라
말할까. 상희는 철퍽 주저앉자 남편을 끌어안고 오열하다 의식을 잃었다. 상규는 겁이 나 물 한 컵을 떠다 상희 얼굴에 확
뿌리고 빰을 세게 때렸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정신 차려 누나마저 이러면 어떻게 해! 이 동네 가까운 친척 없어? 그 집에 가 있어! 나는 천안 가서 아버지 모시고 올 테니까! "
"알았다. 당숙네 있으니까 가서 알리고 있을 테니까, 아버지 빨리 모시고 와!"
당숙 내외가 기겁을 하고 상희와 같이 달려왔다.
"이런 참담한 일이 있나! 경찰에 먼저 알려야 돼! 경찰이 올 때까지 현장은 그대로 유지해야 될 것 같아!"
당숙이 경찰에 전화했다. 잠시 뒤 경찰이 도착하고 뒤이어 구급차도 왔다. 경찰이 현장조사 한다며 상희에게 질문을 했지만
아는 게 없었다. 경찰은 우선 00 장례식장으로 구급차가 세분을 모실 것이고, 조사와 부검이 끝나야 장례 치를 수 있다고
했다. 상규가 아버지를 모시고 왔다. 참담한 현장을 보고 아버지가 통곡했다
"도대체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상희가 아버지를 부여잡고 통곡하자, 상규마저 붙잡고 셋이 같이 통곡한다. 설상가상도 유분수지 세 사람을 한 번에 장례
치르다니, 이보다 더 참흑한 비극은 없을 것이다. 열명도 넘는 동네 노인들이 현관 앞에서 웅성거렸지만 구급대원들은
그들을 외면하고, 시신을 모두 비닐로 싸고 구급차에 실었다.
일주일간 윤과 상희, 상규 세 사람에게 평생 처음 당해보는 악몽이었다. 상희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다.
윤 부사장이 회사에 출근한 것은 1년 여 만이다. 공장 구내식당에 나타나자, 식당 책임자 안여사, 반색을 하고 손을 잡으며
"부사장님 회사 떠나 신 줄 알았어요. 어쩌면 1년도 넘는 것 같아요. 해외라도 다녀오셨어요?"
인사하고 바로 식탁에 캔맥주와 안주류를 먹음직스럽게 차리고 앞에 와 앉았다."
"저렇게 환하게 웃는 안여사는 평생 한 번도 불행을 모르고 살았을 것 같아요."
"부사장님 같으신 분이 불행 말씀 어울리지 않아요!"
"평생 처음으로 견딜 수 없는 처절하고 참흑한 비극을 체험했어요."
"저도 죽음의 문에 노크했는데 안 열어줘서 못 들어갔어요."
"그런데 어 쩜 그렇게 표정이 밝을 수가 있어요?"
"세월이 약이라잖아요. 시간은 눈치 없이 가는 거 같은데 불행을 훔쳐 가는 것 같아요."
윤도 이제 세월한테 문을 열고 불행과 걱정을 훔쳐 가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ㅡ 끝 ㅡ
ㅈ
첫댓글
환영합니다. 박경석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장태순 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