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한일 군사협정-(上)] '부산적기(赤旗)론'
[정운현의 역사 에세이] 2011/01/07 07:02 정운현
긴 글을 시작하면서, 먼저 옛날 얘기부터 꺼내보려고 합니다.
혹 ‘부산적기론(釜山赤旗論)’ 을 아십니까?
이 말은 한국전쟁 당시 일본 우익들이 만들어낸 말로, 1960년대 한일회담 때와 1980년 5.18 민주화항쟁 당시 일본 정계에서 운위됐었습니다.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유독 일본에서만 거론됐을까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한국땅 부산에 ‘적기(赤旗)’, 즉 붉은 공산당 깃발이 나부끼면 일본도 위험하다는 얘깁니다. 부연해서 설명하자면, 한국이 공산화되면 일본도 공산화의 우려가 있으니 한국이 공산화되지 않도록 일본이 나서서 정치․경제적으로 도와야 한다, 그런 얘깁니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을 위해 일본이 한국을 돕는 게 아니라 일본을 위해 한국을 돕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1950년대 ‘부산적기론’부터 살펴볼까요?
‘부산적기론’의 원조는 한일회담 일본측 수석대표였던 사와다 겐조(澤田薕三)라는 자였습니다. 그는 1958년 6월 11일 열린 제4차 한일회담에 참석해서 이런 망언을 떠벌렸습니다.
"38선을 압록강까지 밀어 부치는 것이 한일회담 교섭의 목적이다. 38선이 부산까지 내려오면, 일본은 당장 위험하기 때문이다. 지하에 잠든 조선관계 선열들의 영을 생각해서라도, 이 일을 잊어선 안된다."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선생
근년에 사와다의 망언을 다시, 좀 더 자세하게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선생은 <한겨레>에 기고한 연재(2009. 7. 15)에서 일본 우익들의 망언을 소개하면서 그 끝에서 사와다의 망언에 대해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 그중에는 ‘현재의 일본이 일청전쟁과 일로전쟁의 뒤를 이어 삼세번째 다시 한번 일어나 38선을 압록강 저편으로 밀어내지 못한다면 저승에 가서라도 무슨 낯으로 조상들을 뵈올 수 있겠는가’라는 것도 있었소이다. 58년 제4차 한일회담 때 수석대표인 사와다의 이 발언은, 어느 때이고 일본은 메이지시대처럼 조선을 말굽으로 유린해 보겠다는 야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인데, 그러면 사와다의 발언을 아무 근거도 없이 내뱉은 허튼소리였나 하면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었소이다.
일본 자위대가 작성한 비밀문서 ‘미쓰야(三矢) 작전’이라는 방대한 문서가 있어요. 이것은 제1동(動)에서부터 제7동까지 조선에서의 군사행동을 상정한 면밀한 작전계획서인데, 제7동에 이르러, 미군이 원자폭탄을 북조선에 떨어뜨려 승리를 거두게 되면, 일본군은 유엔군의 일부로 조선에 주둔을 계속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소이다. 이것이 완성된 것은 한일조약(한일협정) 2년 전인 63년이었으니까 58년 사와다 발언의 시점에서 ‘미쓰야 작전’의 윤곽은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고 봐야 옳지 않겠소이까.…”
사와다의 발언은 조선땅은 자기(일본인) 선조들이 가꾼 땅이므로 그것을 제3자가 38선으로 분단시킨 것은 용납할 수 없으며, 선조의 공로를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하여 죄송스럽다는 뜻입니다. 한국땅을 일본의 고토(古土) 정도로 인식하는 사와다의 의식이 놀랍다 못해 기가 찰 노릇이지요. 정 선생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은 불과 패전 몇 년 뒤인 1950대부터 ‘한반도 재침탈’ 계획을 세워두었던 셈입니다. 후반부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일본의 한반도 침탈 의도는 2011년 현재도 ‘진행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1960년대 초중반에 다시 일본에서 거론됐던 ‘부산적기론’을 살펴보겠습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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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한일 군사협정-(中)] '미쓰야(三矢) 계획'
[정운현의 역사 에세이] 2011/01/07 07:03 정운현
앞에서 ‘부산적기론’ 얘기를 장황하게 한 것은 이제부터 시작할 본론을 위해서입니다. 조상 없이 후손이 있을 수 없고,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오늘의 일본의 행태는 ‘부산적기론’을 기조로 한 ‘한반도 재침략’ 정책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이 점을 우리 정책 당국자들은 물론 일반국민들도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2010. 11.23)이 발생한지 보름 뒤인 지난해 12월 11일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에 전쟁 등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피난시키기 위해 자위대를 한국에 파견할 수 있도록 한국과 협의를 시작할 뜻을 밝혔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발언의 당사자는 일본의 현직 총리입니다. 총리가 이런 정도의 얘기를 꺼낼 때는 그냥 아이디어 차원에서 던져본 애기가 아니라 이미 일본 정부 내에서 이런 논의가 상당히 진척됐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날 간 총리의 이같은 얘기는 평시도 아닌, 연평도 사건 뒤에 나온 것이어서 시기적으로 주목할 만할뿐더러 또 단순히 원론적인 얘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간 총리는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견에 걸림돌이 없도록 자위대법 개정을 검토할 뜻을 구체적으로 내비쳤습니다. 그의 발언을 뒷받침 하듯 일본의 주요언론들도 이를 앞다퉈 보도했습니다.

간 나오토 현 총리
간 총리의 발언 다음날인 12일 일본 <도쿄신문>은 “일본정부는 1999년 주변사태법 제정 때 자위대법을 고쳐 자위대의 외국 파견을 가능하게 했고, 방위성은 한반도 유사시 자위함 등을 한국에 파견해 일본인을 넘겨받는 계획도 세웠다”며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남에 따라 한국 거주 일본인의 피난을 둘러싼 협의를 서둘러 진척시킬 계획”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날 <요미우리신문>도 “일본정부는 1997년 작성한 ‘미-일 방위협력 지침’에 유사시 한국에 있는 일본인 구출계획의 협조를 명시했으며, 미-일 양국간에는 비전투원 철수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 작성이 진척돼 있다”며 “남아 있는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복잡한 얘기 같지만, 행간의 의미를 더듬어서 요약해 보자면 대충 이런 얘깁니다. 일본은 한반도에 유사시 자국민 안전(보호)을 위해 한반도에 자위대를 파견시킬 계획을 이미 수립해 두었고, 미국과는 얘기가 이미 끝났다. 다만 한국과는 껄끄러운 과거사도 있고 해서 아직 본격적으로 이 건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협상을 통해 관철시켜 나가겠다. 저는 이런 얘기로 읽힙니다만, 독자여러분들을 어떻습니까?
(중략)
간 총리도 숨기고자 했겠지만 어쩔 수 없이 속셈을 들키고(혹은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앞에서 정경모 선생의 글을 인용하면서 일본 자위대가 작성한 비밀문서인 ‘미쓰야(三矢) 작전’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만, 이에 대해 좀 더 언급할 필요를 느낍니다. 왜냐하면 ‘뿌리’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행 난민 규모가 10~15만명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2006년 12월부터 미국과 공동으로 유사사태 대응 ‘공동작전계획’을 구체화시켰는데, 이 가운데 난민대책도 포함돼 있습니다. ‘공동작전계획’이라는 것은 한반도와 일본에서 유사 사태가 동시에 병행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까지 상정한 2002년의 미·일 공동 ‘개념계획’인 ‘5055’를 ‘실전용’으로 격상시킨 것입니다.
그에 앞서 일본은, 한반도를 포함한 일본 주변사태 대응책으로 1997년 미일방위협력지침(신가이드라인), 1999년 주변사태관련법 제정하면서 일단락 지었습니다. 이는 미군이 출동하면 일본이 도로와 항구, 비행장 등 지자체와 민간의 시설과 인력을 동원해 ‘후방지원’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또 일본이 직접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자위대와 미군이 미사일방어(MD)를 가동하고 적 기지를 공격하는 것까지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일본 자위대와 미군은 ‘공동작전계획’이라는 명분 아래 ‘가상 적’ 가운데 하나인 북한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미·일 합동군의 북한 공격으로 한반도에서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한국군은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군이나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쥐고 있는 미군 지휘 아래 들어가게 됩니다. 또 미군 지원이란 미명 아래 자위대가 한반도에 상륙할 경우 한국군은 일본 자위대의 지휘를 받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내용은 현재(평시)로선 가상시나리오에 불과하지만 만에 하나 유사시가 되면 즉각 현실로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일 간에 합의돼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출병을 구체적으로 상정한 이른바 ‘공동작전계획’은 그 뿌리가 바로 ‘미쓰야 계획’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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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한일 군사협정-(下)] 자위대 한반도 출병
[정운현의 역사 에세이] 2011/01/07 07:04 정운현
미쓰야 계획’은 사토 에이사쿠 총리 때 방위청 장관을 지낸 고이즈미 준야(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부친) 등 방위청 간부들이 1963년 미국의 지원 속에 만든 것으로, 골자는 ‘미국이 동아시아 개입을 위해 일본을 군사적 대리자로 내세우고 한국과 대만을 거기에 묶어(미쓰야(三矢)=세개의 화살) 한반도와 만주 점령까지를 염두에 두고 짠 작전계획’입니다.
겉으로는 한일친선 운운하면서도 뒤로는 미국을 끌여 들여 ‘미·일 동맹’을 구실로 한반도 재출병 계획을 수립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내용은 1965년 2월 일본 사회당 소속 오카다(岡田春夫) 의원이 일본 의회에서 일본 방위청이 1963년(쇼와 38년) ‘한반도에서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출동한다는 극비 군사작전 계획을 완성했다고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일명 ‘삼시(三矢)작전계획’으로도 불리는 이 작전은 세부적으로 모두 일곱 단계·24개 연구 과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카다 의원의 폭로에 따르면, 이 계획의 ‘제1단계’는 한국군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 북한군이 개입하면서 한반도에서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이 때 주일미군이 1차적으로 전쟁에 출동한다는 내용입니다.
일본이 유엔군의 일원이 되어 자위대를 직접 한국에 파견하는 것은 ‘제4단계’ 상황이며, 이 비상 시나리오의 마지막 단계인 ‘제7 단계’ 상황에서는 미군이 원폭을 투하해 전쟁에서 최종 승리를 거두고,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주둔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의 입장에서 이 작전계획이 문제가 되는 대목은 ‘일본군 한반도 재출병’ 시나리오입니다. 물론 이 계획은 일본군의 단독 출병이 아니라, ‘유엔군 일원으로 한국 출병’을 상정하긴 했지만 그 내용 중에는 일본군의 전투행위까지 용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화살 세 개' 묶음은 부러뜨릴 수 없듯이 삼형제(한-미-일)가 힘을 합치면...
‘미쓰야 계획’이 결코 예사롭지만은 않은 것은 이 계획(원래 이름은 ‘쇼와 38년도 통합방위 도상연구’)이 세워진 시점과, 이 계획에 붙은 작전명 ‘삼시(三矢)’의 유래입니다.
원래 ‘삼시(일본어로 ‘미쓰야’)’란, 일본 에도 막부시대의 실존인물 모리 모도나리(毛利元就)가 죽기 전 아들 삼형제를 불러 놓고 다발로 된 화살 세 자루를 예로 들며 삼형제의 결속을 타일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 작전명에 담긴 진정한 뜻은 ‘한·미·일 3국의 군사결속’이라는 것이, 이 계획의 존재를 처음 한국인에게 알린 정경모 선생의 주장입니다. 일본정부는 이에 대해 ‘계획이 세워진 해(즉 쇼와[昭和] 38년)에서 딴 이름’이라고 해명했는데요, ‘쇼와 38년’ 중 ‘38’은 일본말로 ‘삼시(三矢)’와 발음이 같습니다. 그러나 이건 구차한 변명일 뿐 그 본질은 정 선생이 지적한 내용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목할 대목은 이 ‘미쓰야 계획’을 세운 시점입니다. 1963년이면 아직 한일 국교정상화도 되지 않았었고, 또 요즘처럼 북핵 위기가 발생하지도 않은 때입니다. 그런데 그 시점에 이미 한반도 출병계획을 세웠었고, 또 이를 40년 넘게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해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의 계획은 대략 이런 것이었겠죠. ‘큰형’이랄 수 있는 미국과 먼저 얼개를 짠 후 한국과의 협상문제는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에 압력을 넣어 손안대고 코풀 생각을 했겠죠. 한국인들의 감정 등을 감안할 때 직접 협상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일본도 이미 알고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의 정치지도자나 보수진영은 미국의 말이라면 깜빡 죽고 넘어가니 말입니다. 사태가 이런데도 우리 외교부 당국자들은 이 사안을 마치 강건너 불구경 하듯 하는군요.
첫댓글 그렇지 않아도 부산에는 남구 우암동 바닷가 부두 근처를 '적기'라고 불렀습니다.동네 이름을 아주 어릴 때 부터 적기라고 부르던데 특히 부산의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적기'라고 하면 다 알죠. 미군 전용 부두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