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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환난의 예언 원문보기 글쓴이: 천년지애
프리메이슨의 정보기관 NSA
NSA는 지구 위를 흘러다니는 모든 신호를 장악한다. 이른바 이 세상의 모든「소리」를 엿듣는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NSA를「공중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기념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한 뒤 중국 외교관들은 손님들을 대사관 구내로 안내했다. 호주 캔버라에 새 대사관 건물을 짓는 데에 중국정부는 1천3백만달러를 들였다. 파고다 스타일인 대사관 건물에 수영장, 테니스 코트, 온실과 넓은 잔디밭이 인상적인 건축물이었다. 때는 1990년 8월.
그러나 만약 중국 외교관들이 이 아름다운 건물에 얽힌 비밀을 눈치챘더라면, 이 날의 오프닝 파티는 한 순간에 망쳐버렸을 것이다. 미국 정보요원 30명이 지난 몇 달 간 이 건물의 모든 방에 광섬유를 이용한 도청장치를 설치하느라 비지땀을 흘렸던 것이다. 광섬유는 웬만한 보안검열에는 노출되지 않는다.
이로써 중국 외교관들이 자기들끼리 나누는 허심탄회한 대화와 컴퓨터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는 죄다 위성을 통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갈 것이다. 대만·중국관계에 대한 솔직한 대화들, 북경으로 보내는 무역관계 비밀전문, 중국군 최근 장비와 관련한 리포트들…. 이런 모든 정보들은 워싱턴과 볼티모어를 연결하는 파크웨이에서 몇 마일 떨어진 숲속, 무수한 접시 안테나가 세워진 밭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리고 미국 정보기관 중 최대 규모의, 그리고 가장 비밀스런 이 곳에서 「보석」으로 채굴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기관은 없다」(No Such Agency)
미국의 정보기관을 얘기할 때 흔히 대표주자로 거론되는 곳이 중앙정보국(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이다. CIA는 이제껏 무소불위의 권능을 지닌 기관으로 세계인들의 뇌리에 각인돼왔다. 그래서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 등 수십년이 지나도록 속시원히 풀리지 않는 모든 의문들은 CIA가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식의 「음모이론」(Conspiracy Theory)도 심심찮게 등장하곤 했다.
그러나 그런 CIA보다 더 막강한 정보력을 갖춘 곳이 있다는 것은 대다수 미국인들도 잘 알지 못한다. 바로 국가안보국(NSA·National Security Agency). 1952년 11월 트루먼대통령의 8쪽짜리 비밀 메모 한 장을 근거로 설립된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이다.
NSA는 미국의 13개 정보기관들 중에서도 가장 비밀스런 존재다. 미국 정보기관들 사이에서 NSA 사람들은 입이 무겁기로 유명하다. 심지어 「NSA」 의 의미가 「No Such Agency」(그런 기관은 없다), 혹은 「Never Say Anything」(아무 말도 하면 안된다)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미국 연방정부 산하에는 모두 13개 정보기관이 있다. 각 기관별로 담당 영역과 기능이 다름은 물론이다. CIA는 「인적(人的) 정보」 (Humint·Human Intelligence의 줄임말)를 주로 다루고, 법무부 산하 수사기관인 연방수사국(FBI·Federal Bureau of Investiga- tion)은 미국내 대공(Counter Intelli-gence) 업무, 재무부 산하 「시크릿 서비스」는 대통령 등 요인경호, 에너지부는 핵물질의 국제적 이동을 감시하는 식이다.
이중 NSA는 국방부 산하로 「신호정보」(SIGINT·Signal Intelligence의 줄임말)를 총괄 담당한다. 국방부 산하에는 이밖에도 국방정보국(DIA· Defence Intelligence Agency), 국가정찰국(NRO ·National Reconnaissance Office), 중앙영상국(CIO·Central Imagery Office), 그리고 육·해 ·공·해병 등 군단위별 정보부대가 있다. 이중 첩보·정찰 위성을 총괄 제작, 관리하는 NRO는 미정부가 그 존재를 지난 92년에야 비로소 인정했을 정도로 베일에 싸인 기관. 94년의 경우 약 70억달러의 예산을 사용해 정보기관들 중 가장 돈을 많이 쓰는 곳이기도 하다.
NSA는 94년의 경우 약 40억달러 예산으로 NRO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한 시간 동안 NSA를 운영하는 데 소요되는 경비가 1백만달러 이상이라는 얘기도 있다. 인력 면에서는 포트 미드에 있는 본부에만 2만~2만4천명이 근무, 미국 정보기관들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더욱이 이는 유럽에서 호주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수천개소에 달하는 통신감청시설 요원을 포함하지 않은 숫자다. 한편 CIA의 경우 94년 예산액은 약 30억달러, 인력은 1만5천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NRO가 위성제작이라는 임무의 성격상 많은 예산을 쓸 수밖에 없지만 규모는 작다는 점을 감안하면, NSA야말로 명실상부한 미국 최대 규모의 정보기관인 셈이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정보예산은 국방예산 등에 감춰져 있어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가 힘들지만, 미국 학자들은 이들 13개 정보기관이 한 해에 사용하는 예산을 3백억달러 정도로 추산한다. 정보예산은 90년대에 들어와 탈냉전의 여파로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3백억달러는 평균적인 미국 국방예산 3천억달러의 10%선. 형식적으로 미국 정보기관들의 총괄 책임자는 CIA 국장이지만, 13개 중 8개 정보기관이 국방부 소속으로 돼 있고, 정보예산의 절대액도 국방부가 사용하는 만큼 실질적 파워는 국방장관에게 있다는 게 통설이다.
「하늘의 진공청소기」
캔버라의 중국대사관에서 날아온 정보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다른 정보들과 뒤섞인다. 개중에는 세계 최대의 마약거래조직인 칼리 카르텔 소속 공작원이 건 전화 내용, 러시아 미사일과 탱크의 전자적 특징, 북한 핵개발 계획을 설명하는 컴퓨터 메시지,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한 항공기 납품계약 건으로 미국기업과 경쟁을 벌이는 유럽기업의 팩스 전문도 있다.
NSA가 「신호정보」(Sigint)를 담당한다는 말은 지구 위를 흘러 다니는 모든 신호를 장악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엿듣는다는 것이다. 전문적으로 말하면, 신호정보는 크게 통신정보(Comint·Communication Intelligence)와 전자정보(Elint·Electronics Intelligence)로 나뉘는데, 모든 유·무선 통신과 암호화된 외교전문은 물론 미사일 발사시험 때 방출되는 전자신호, 핵실험 때의 전자기 방사선 신호 등이 모두 이 범주에 포함된다. 이를 두고 NSA는 「공중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렇게 빨아들인 「전자적 소리」는 유리창으로 뒤덮인 NSA 본부건물 안에서 해독·번역·분석 과정을 거쳐 「정보」로 생산되고 외국 지도자, 무역협상 파트너, 테러리스트, 마약밀매조직의 일거수 일투족이 매시간 단위로 정책결정자들의 책상 위에 보고서로 올려진다. 『미국이 관심을 갖고 있는 외교정책이나 해외 군사문제들 중에서 NSA가 정책결정자들에게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은 사안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게 이들의 자부심이다.
NSA의 고객들, 즉 NSA의 정보보고서를 받아 보는 정책결정자들도 정보기관의 활동범위나 도덕적 기반에서는 의견차가 있을지언정, 그들의 유용성만은 대체로 인정한다. CIA가 외국에 침투시킨 스파이는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정찰위성이나 유·무인 항공기가 찍어보내는 사진자료는 단지 목표의 겉모습만을 보여줄 뿐이다. 오로지 통신감청만이 상대방의 속내를 온전히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군사·안보와 국제마약거래, 그리고 최근에는 경제문제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 일어나는 국제적 사건의 배후에 NSA가 개입돼 있지 않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미국대사관 위층 골방에 있는 비밀 감청시설에서 NSA 감청요원은 칼리카르텔의 마약거래 상황을 감시한다. 이를 통해 미 마약단속국(DEA)은 지난 91년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인 1만2천여kg의 코카인 밀수기도를 적발해내기도 했다.
보스니아 상공에는 각종 장비를 가득 실은 무인항공기가 비행하며 이 지역에 떠다니는 모든 신호를 가로채 NSA 본부로 보낸다. 그러면 NSA의 컴퓨터는 결과를 분석해 이 지역 상공을 패트롤하는 미공군 파일럿에게 정보를 보내준다. 무인항공기가 신호를 가로채 파일럿에게 분석결과를 보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단 11초.
러시아 극동지역에 맞춰져 있던 첩보위성의 안테나 방향을 조금만 틀어서 한반도 상공 22마일 지점으로 옮기면, 북한의 최근 속사정에 관한 NSA 보고서가 정책결정자들 책상 위로 올라간다.
그러나 NSA가 지금까지 벌여온 활동은 대부분 베일에 싸여 있다. 신호정보란 것이, 상대방이 암호체계를 바꾸거나 보안체계를 강화하면 대번에 파이프라인이 막혀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95년 초 「시드니 모닝 해럴드」 등 호주 언론들이 중국대사관 도청건을 보도하자 이 곳의 정보흐름이 완전히 말라버린 게 그 예이다. 요는, 상대방의 경각심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신호정보를 다루는 제1의 원칙이고, 그래서 나온 게 같은 정보세계 안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Never Say Anything」, 바깥 사람들에게는 「No Such Agency」라는 경구였다는 것이다.
NSA는 종종 CIA의 인적 정보 즉 스파이가 수집한 정보, 위성사진, 외국 신문이나 학술 논문 등을 활용해 자체 생산한 정보를 보완하기도 한다. 대통령까지 올라가는 긴급 보고서의 경우, 그 배후에는 최소한 10년 이상 축적된 자료가 있는 게 기본이다.
박동선사건 때 청와대도 도청
지난 1988년 크리스마스 직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미국의 팬암 여객기가 폭탄 테러로 폭파됐다. NSA는 재빨리 이 사건에 뛰어들었다. NSA 분석팀은 전세계에서 모아들인 엄청난 양의 컴퓨터 파일에서 팬암 여객기에 위해를 가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대화나 문장을 골라내는 데 투입됐다. 감청요원들은 팬암 폭발사고에 대한 세계 각 지역 테러리스트 집단의 반응을 알아내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전세계의 감청요원들이 이 일에 투입됐다. 결국 레바논에 파견된 팀이 「물건」을 낚았다. 두 명의 리비아 첩보원이 혐의자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들 두 명을 즉시 기소했다.
그러나 이는 NSA의 실패사례에 불과하다. 정보기관의 기본 임무는 사전에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보세계의 불문율 중 하나는 『성공한 작전은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팬암 폭발사건은 정보기관이 적절히 기능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고,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는 것. NSA는 미국에 위해를 가하려는 국제적 테러리스트들의 동향을 매년 수백수천건씩 수사당국에 제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NSA의 활동이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가 1960년 5월에 일어난 NSA의 첩보비행기 U-2기가 소련에 의해 격추된 사건. 이 사건의 여파로 NSA는 소련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기반의 상당 부분을 상실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같은 해 8월에 창설된 것이 첩보위성을 관리하는 NRO였다.
1968년 동해상에서 북한에 납치당한 푸에블로호 사건 역시 NSA에게는 아픈 기억이다. 당시 푸에블로호에는 NSA의 온갖 전자장비들이 가득 실려 있었고, 이것이 소련에 넘어갈 경우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상황이었다는 것.
전세계 총리와 대통령들 중 NSA가 목소리를 녹취하지 않은 이는 거의 없다는 게 정설이다. 그것이 집무실에서의 통화기록이건 미국방문 중 호텔방에서 보좌진과 나눈 대화이건 NSA는 거의 모든 지도자들의 음성기록과 신상명세를 파악하고 있다. 미국측 대표가 그들을 만날 때, NSA는 상대방의 최근 대화내용과 서면 지시내용을 제공해서 회담에 대비하도록 한다.
무기통제협상이나 무역협상에서 미국측 협상대표는 NSA의 도움을 받는 게 상례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요한 협상일 때에는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는 중에도 시간대별로 정보보고서가 전달되기도 한다. 그래서 협상 중 상대국 대표가 방금 받은 본국 지시를 미국측이 알고 있는 경우도 생긴다. 미국측 협상대표에게 NSA는 상대방 발언의 진위를 가늠하는 일종의 거짓말탐지기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 95년 미·일 자동차 무역협상에서 NSA가 일본측 대표들의 교신을 도청했다는 보도가 나가 미일간 외교문제로 비화된 적도 있었고, 미국 NBC방송은 94년 12월 마이애미에서 열린 미주(美洲) 정상회담에서 NSA가 각국 정상들의 교신내용을 도청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NSA는 한국 권력의 심장인 청와대에 대해서도 도청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70년대 후반 소위 「박동선사건」 당시, 박동선이 미국 의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입증하는 물증을 청와대 도청을 통해 포착했다는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도청비용
이렇게 세계를 상대로 도청활동을 하는 게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막대한 돈이 든다. NSA가 도청을 위해 동원하는 장비는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첩보위성들에서부터 외국기관의 벽에 붙은 평범한 전기 소켓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워싱턴의 외국 대사관이 밀집한 거리에 주차된 도청장비로 가득 찬 밴에서부터 일본 북단 미사와 공군기지의 지하벙커, 지중해 해상을 순항하는 미해군 소속 쾌속정, 보스니아 상공을 나르는 U-2 첩보기 조종석에다 NSA 요원을 앉혀 놓는 것도 결국은 다 예산문제와 직결된다.
NSA가 도청활동을 위해서 투입하는 전체 예산은 비밀 중에서도 비밀이다. 그러나 대충 추산은 가능하다. 미국과학자연맹의 정보전문가 존 파이크 (John Pike)의 계산법에 의하면, 먼저 35억~40억달러에 달하는 연간 예산이 있다. 여기에 NRO에 소속된 통신감청용 위성을 제작, 관리하는 데에 약 30억달러가 들어간다. 그리고 육·해·공군이 세계 각처의 통신감청시설 배치요원으로 지원하는 인력이 약 3만명에 소요경비 20억달러 정도. 최소로 잡아서 총 80억달러다. 그래서 NSA의 라이벌인 CIA 사람들의 불만도 대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NSA가 기술부문에 투입하는 액수에 비하면 자기네들이 현지 정보원을 고용하는 데에 지출하는 액수는 「껌값」에 불과하다는 것.
지난 1993년 8월 캘리포니아에서 발사 직후에 공중폭발한 타이탄 4호 사고로 NSA는 말 못할 손실을 입었다. 타이탄 4호에는 한 기에 2억7천5백만달러씩 하는 첩보위성이 3기 적재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과 몇 초 사이에 8억달러 이상이 날아가버린 것이다. 이런 첩보위성들은 성층권에 도달해 축구 경기장만한 크기의 은빛 안테나를 펼치고 목표지점 상공을 궤도 비행한다.
NSA는 또 웨스트 버지니아와 워싱턴주, 일본, 영국, 독일, 호주 등지의 지상에서 안테나를 하늘로 향해 펼쳐놓고 있다. 일반 상업용 통신위성을 통해서 전세계를 오고가는 전화, 팩스, 컴퓨터통신 등을 가로채기 위해서다. 상업용 위성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NSA의 접시 안테나도 늘어난다. 파이크는 이에 대해 『이를테면 통신위성에게 「모두 한부씩 복사 부탁해요」 하고 말하는 격』이라고 비유한다.
NSA는 또한 목표 건물 유리창에 레이저를 쏴서 안에서 나누는 대화내용을 도청하는 장비를 직접 생산하기도 한다. 말소리 때문에 발생하는 유리창의 미세한 흔들림으로 대화 내용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외국기관의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사용해도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컴퓨터에서 방출되는 미약한 신호를 건물 가까이에 몰래 설치한 전자박스를 통해서 포착하면, 목표물이 한 글자씩 컴퓨터에 입력하는 내용이 똑같이 떠오른다. 이밖에도 미세한 도청용 송신기를 화병 안이나 재떨이 등에 부착하는 방법 등 첩보영화에 나오는 고전적인 수법들도 동원된다.
NSA는 기발한 방식으로 난국을 타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신문에 테러리스트에게 공중 납치된 미국인 인질사진이 실렸다면, NSA 기술진은 그 사진에 나온 테러리스트의 워키토키에 주목한다. NSA 기술진은 외양만 보면 제품사양과 주파수 대역을 알 수 있다. 일단 실낱같은 단서라도 찾아내기만 하면, 단 몇 시간 안에 자체 제작한 도청장비를 현지로 보낼 수 있다.
NSA는 타국 암호체계를 깨뜨리는 일 뿐 아니라 자국의 암호체계를 만들고 보호하는 일도 한다. 예를 들어 NSA는 FBI 요원들이 사용하는 도청방지용 주파수변환 전화기에 매일 다른 코드를 제공한다. 또 대통령이 핵발사 버튼을 누를 때, 자기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로 입력하도록 돼 있는 암호코드의 개발도 NSA 몫이다.
예술수준의 암호해독 능력
미 정부가 사용하는 암호체계 뿐만 아니라 정부기관 사이의 모든 통신을 외부 침입으로부터 보호하는 임무는 세계적인 통신폭증과 기술발전 추세에 따라 갈수록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전문용어로는 이를 INFOSEC (Information Security)이라고 부르는데, 예전의 COMSEC(Communication Security)에서 보다 확장된 개념이다. 이와 관련해 NSA는 국무부, 국방부, CIA, FBI 등 연방 정부기관들이 사용하는 통신절차와 암호체계를 제작·검토·인가하고 미국 정보기관들 사이의 정보교환, 미군 데이터베이스와 컴퓨터 시스템 등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미니트맨 미사일 등 전략무기체계에 대한 보안업무도 포함된다.
NSA가 지상과 우주공간에 비치해놓은 수천개의 접시 안테나가 받아들이는 정보는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런 「전자파 쓰레기더미」 속에서 유용한 정보를 건져올리는 것은 순전히 「과학」의 몫이다. 예를 들어 어마어마한 양의 통신기록 중에서 사담 후세인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데에는 강력한 컴퓨터가 동원된다.
먼저, 컴퓨터는 특정 전화번호나 교환번호에 해당하는 통신기록들을 추려낸다. 백악관이 위치한 지역번호가 「202」라면 이 번호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식이다. 외국 정부가 사용하는 전화번호에는 대체로 특징적인 패턴이 있게 마련이다.
다음, 암호화된 통신일 경우에는 NSA의 암호해독가들이 동원된다. 암호체계가 낯선 것일 때에는 그것을 풀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컴퓨터에 대입시킨다. 일반적인 암호체계의 경우 그것을 풀기 위해서는 7경(京)번의 계산이 필요하다. 개인용 컴퓨터가 1초에 계산할 수 있는 횟수는 약 10만번. 하나의 암호체계를 풀려면 2만2천6백52년이 걸리는 속도다. 그러나 NSA의 수퍼 컴퓨터를 사용하면 불과 몇 초 사이에 외국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암호체계가 마법처럼 풀린다.
해독과정을 거치면 외교전문이나 상업용 팩스 등 문서화된 자료의 경우 컴퓨터 상에서 핵심 단어를 입력시켜 다시 한 번 추려내는 과정을 거친다. 핵심 단어는 화학무기 원료를 거래한 혐의가 짙은 회사 이름이 될 수도 있고, 마약 카르텔의 스위스 계좌번호, 아니면 단순히 「핵(核)」, 아니면 앞의 팬암 폭발사고에서처럼 「팬암」이라는 단어가 될 수도 있다.
음성통신은 이보다 좀 어렵다. 사람에 따라 발음이나 억양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음성 통신에서 핵심 단어를 가려낼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물론 NSA가 이 분야에서 선구자다. NSA는 언어를 인식하고 연설문을 베껴 쓰며, 요약까지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서 대학과 연구소에 막대한 지원을 해오고 있다.
NSA는 또 특정인의 음성을 인식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표가 된 인물이 전화선상에 떠오르면 바로 녹음기가 작동하는 식이다. 지난 1993년 콜롬비아에서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비롯한 마약사범에 대한 대규모 소탕령이 내렸을 때 NSA는 이런 유의 장비를 콜롬비아 당국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신기술은 기회와 함께 힘겨운 장벽도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광섬유가 실용화되면서 기존 도청기술이 상당 부분 힘을 쓰지 못하게 된 반면, NSA 내부적으로는 예전에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한 것으로 바꿔놓고 있다. 예를 들어 자료를 빠른 시간 안에 분류하는 자동화시스템,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정보를 전달하는 시스템 등은 전세계 통신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미국 국회도서관의 책, 정기간행물 등 모든 자료는 전산화할 경우 약 1천조(兆) 바이트 분량의 정보량이다. 이같은 양을 하나의 위성채널로 전송할 경우에는 약 9개월이 걸린다. 그러나 광섬유 케이블 한 가닥으로는 단 3주일이 소요된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NSA가 최근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기술로는 단 3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이는 NSA가 다루는 정보가 얼마나 엄청난 양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과학발전에 엄청나게 기여
정보기관의 생리상 외부세계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NSA가 창설된 이래 과학발전에 기여한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카세트 테이프는 NSA가 처음 만든 12인치 릴 테이프에서 개량을 거듭한 것이다. 장난감 상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하는 인형도 마찬가지. 인형에 내장된 마이크로 칩 속에는 사람의 음성과 가장 가까운 소리를 창조하기 위해서 NSA의 기술진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수학공식의 흔적이 남아 있다.
NSA 소속의 수학자, 컴퓨터 과학자, 오디오 전문가들은 오랜 세월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 정부의 핵심 컨설턴트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70년대 초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 조사단은 문제의 도청 테이프에서 녹음이 지워진 부분을 복원하기 위해서 맨 먼저 NSA를 찾아왔고, 이란 콘트라 사건의 주역 올리버 노스 해병 중령은 니카라과 반군에 지원할 무기를 입수하는 과정에서 NSA로부터 15대의 암호제작기계를 구해갔다. FBI나 CIA가 고성능 장비를 필요로 할 때면 제일 먼저 NSA를 찾는다.
NSA가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인 분야는 컴퓨터. NSA는 미국의 컴퓨터산업 유아기 시절 한 번에 수백만달러씩의 자금을 민간 기업에 제공했고, 컴퓨터 회사들이 만든 시제품을 가장 먼저 사들이기도 했다. 일각에선 『NSA가 없었더라면 컴퓨터산업이 지금보다 10~15년은 뒤처져 있을 것』 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일반에게는 컴퓨터라는 개념 자체가 까마득한 미래의 일로 여겨지던 50년대, NSA 기술진은 초보적인 컴퓨터 기계라도 인간의 두뇌보다는 일견 무작위로 배열된 것처럼 보이는 암호문의 패턴을 찾는 데에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50년대 후반에는 최초의 「데스크용 컴퓨터」인 보가트(Bogart)와 솔로(Solo)를 도입하기도 했다.
90년대에 들어와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에 파견된 NSA의 암호해독 전문가들은 지상 최고의 암호, 즉 생명체의 유전자지도를 그리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NSA의 엔지니어들은 또 캘리포니아대학의 천문학자들과 함께 외계의 생명체를 찾기 위해서 어떻게 라디오 분광분석기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NSA에서 일하는 요원들은 보통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스파이」와는 딴판이다. 「제임스 본드」 류의 전지전능하고 멋진 스파이를 상상했다가는 실망하기가 십상이다. 다루는 업무가 현장을 직접 누비는 일이 아니라 각종 신호정보를 수집·분석하는 일이기 때문에 평범한 회사원, 혹은 학자적인 풍모를 갖춘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
핵심부서는 공작국 A그룹
NSA 구성원 중 핵심은 암호해독가(Code-breaker)와 번역요원(Linguist). 이들은 냉전시절 NSA가 성취한 수많은 성공사례에서 내부적으로나마 영광을 독차지했던 주역들이다. 이들을 돕는 지원인력으로 분야별 과학자들이 포진해 있다.
과거 연방정부에서 정보관련 업무를 담당했다가 지금은 미국 남부지역의 대학에 몸담고 있는 한 인사는 『NSA 요원 중에는 희한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덥수룩한 머리에 호주머니에는 연필을 잔뜩 넣고, 알 수 없는 전문용어를 항상 중얼거리면서 구내를 돌아다니는 이들은 필경 과학자들이라는 것. 심지어 어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출근하는 40대 중반의 컴퓨터 전문가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NSA 주차장에 잠시만 서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괴짜들의 집합소가 바로 이 곳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NSA의 조직과 구성에 대해서는 제프리 리첼슨(Jeffrey T. Richelson)의 책 『미국의 정보기관들』(The U.S. Intelligence Community)에 개략적인 내용이 나와 있다(표 참조). 이 책에 의하면 NSA는 7개 조직으로 나뉘는데, 이중 핵심이 공작국(Directorate of Operations)이다.
공작국은 다시 담당 지역에 따라서 A그룹(구소련과 동유럽 국가들), B그룹(아시아 국가들), G그룹(제3세계를 비롯한 나머지 모든 국가들)으로 나뉘는데, 소련붕괴 이후 이런 체제는 유럽국가들을 담당하는 그룹과 그밖의 국가들을 담당하는 그룹 등 2개 그룹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냉전 시절에는 공작국 안에서도 A그룹이 핵심이었다. A그룹은 엘리트들의 집합소로 인식됐고, 새 장비도 무조건 A그룹에 먼저 보내지곤 했다는 것. 냉전시절 미국 정보기관들의 전체 업무에서 소련 및 공산진영 관련 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60%대에 달했다는 게 정설이다.
공작국 안에는 이밖에도 W그룹과 국가통신정보공작센터(NSOC·National SIGINT Operations Center)가 있다. W그룹의 임무는 외국이 발사하는 우주선과 미사일이 방출하는 모든 교신내용·신호를 가로채는 역할을 담당하고, NSOC는 어느 지역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 지역의 모든 신호정보를 담당, 감독하는 역할을 맡는다.
공작국과 함께 핵심을 이루는 부서로 정보시스템보안국(Directorate of Infor-mation Systems Security)와 기술시스템국(Directorate of Technology and Systems:과거 명칭은 Directorate of Research and Engineering)이 있다. 정보시스템보안국은 정보보안(INFOR-SEC)을 담당하고, 기술시스템국은 미국의 암호체계 보호를 위해서 필요한 기술장비 개발 등을 담당하는 부서.
이밖에 장거리통신 및 컴퓨터 서비스국(Directorate of Telecommunications and Computer Services)은 컴퓨터 지원, 컴퓨터 보안 및 NSA 내부의 통신 네트워크 기능을 담당하고, 지원서비스국(Direc- torate of Support Services)은 해외 시설물, 비밀문서의 폐기, 본부 시설물 건설 등을 담당한다.
보안 위해 사생활 통제
NSA의 조직과 문화를 거론할 때 빼놓을 없는 것이 유별난 보안의식이다. 무릇 정보기관이라면 하나같이 보안의식이 철저하다지만, NSA의 경우 미국 정보기관들 사이에서도 유명할 정도다. 외국 첩보원이 주변에서 통신을 감청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NSA 본부 건물(보통 「타워」라고 부른다) 외벽을 구리그물로 감싼 것도 이들의 보안의식이 얼마나 철저한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구리로 건물을 감싸면 건물 안의 컴퓨터 등 전자신호가 밖으로 방출되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구내 구석구석마다, 심지어 인근 볼티모어와 워싱턴을 잇는 간선도로 상에도 감시용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요원들은 건물 안에서 「푸른색 배지」를 부착한다. 이것은 연방정부의 보안등급에서 「1급비밀 취급인가」보다도 상위의 것. 외부로 누출될 경우 국제분쟁의 소지가 있는 정보를 다룰 수 있는 자격이다. 스파이 한 사람이 끼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자기 업무 이외에 다른 사람의 업무를 알려고 해서도 안된다. 「알 필요가 있는 것만 안다」(need-to-know)는 원칙이다.
만약에 어떤 요원이 금지구역에 잘못 들어가면, 부착한 보안 배지에서 경고음이 나오게 돼 있다고 한다. NSA에서는 금지구역이나 컴퓨터 파일에 대한 출입허가를 몇 가지나 갖고 있느냐가 곧 그 사람의 권위를 상징한다.
NSA는 직원들 사생활에까지 깊숙이 간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NSA 직원은 외국인과 사귈 수 없고, 외국인과 결혼하고자 하는 직원은 반드시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또 가까운 인척이 외국인과 결혼할 때에는 이 사실을 NSA에 통보해야 한다. 직원들은 또 외국 여행도 통제를 받으며, 정기적으로 거짓말탐지기 테스트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스트 중에는 비밀 암호나 특정한 작전 명칭을 들은 적이 있는지, 외국인이나 기자들과 만난 일이 있는지 등을 물어본다.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NSA 직원들에게 요구되는 보안등급은 직원들에게 어떤 질문이든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된다. 이를테면 혼외정사 경험이 있는지(있다면 이는 「판단력·분별력 결여」 사유가 될 수 있다), 이웃과 말싸움을 한 적이 있는지(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성격징후」의 근거다) 등 별의별 것을 다 물어본다.
보안규정을 어기면 푸른색 배지를 압수당하고 붉은 배지가 지급된다. 이렇게 되면 비밀자료에 접근하는 것이 금지되고, 전화를 받거나 케이블 설치 등 하찮은 일을 하는 자리로 옮겨진다.
새 위협, 사이버 정보전쟁
때는 2001년 1월17일. 미국이 이라크에 대해 공습을 감행한 지 10년째 되는 날이다.
개장된 지 한 시간이 지난 뉴욕 증권시장, 모든 컴퓨터 모니터가 갑자기 깜빡거리더니 일시에 꺼져버린다. 같은 시각 뉴욕 JFK 공항에서는 관제탑의 「거짓」 지시에 따라서 활주로에 착륙하던 제트여객기가 충돌사고를 일으킨다. 페르시아만에 떠 있는 미항공모함에서는 자기들 봉급 계좌가 텅 비어버린 것에 분노한 해군 병사들이 시위를 벌이고….
사상 처음으로 미국 본토가 적의 공격을 받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번의 공격은 병사나 미사일에 의한 「실제」 공격이 아니다. 적국은 사이버 스페이스 상에서, 소리없는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을 감행해온 것이다.
예전에는 펜타곤의 전략 연구가들이 미 본토에 대한 소련 핵 미사일의 공격 효과를 연구했다. 그러나 이제는 앞의 시나리오와 같은 상황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이른바 「정보전쟁」(IW·Information Warfare)이라는 개념이다. 국방부는 이런 새로운 위협에 대한 방어책 수립을 「전자공학의 천재집단」에 맡겼다. 바로 NSA.
지난 95년 6월 당시 NSA국장 존 「마이크」 맥코넬(John M. 「Mike」 McConnell) 제독은 정보장교들이 모인 자리에서 『미국은 지구상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취약하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은행시스템, 증권시장, 연방준비금, 항공관제 시스템 등등이 적의 사이버 공격 앞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말이었다.
NSA의 이런 재빠른 변신은 탈냉전 시대에도 정보에 관한 한 세계 최고수준을 지키겠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구소련 관련 정보업무가 대폭 감축되고, 인력 또한 90년대에 들어와 10% 이상 감축된 상황에서, NSA는 정책결정자들에게 유용한 존재로 남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그런 노력 중에는 (1) 수백명에 달했던 러시아어 전문가들을 다른 지역에서 위기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투입할 수 있도록 재교육하고 (2) 외국의 무역담당 관리들과 협상, 미국기업과 경쟁하는 외국기업이 뇌물을 제공하려는 것을 감시하거나 국제간 자금이동 등에 이르기까지 대상 영역을 확장시켰으며 (3) 테러리스트 국가들의 핵물질, 생화학무기 구입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슈퍼 컴퓨터를 활용해 매일 수백만에 달하는 국제거래 실적을 조사하는 등의 일들이 포함된다. 그 중에서도 NSA가 「정보전쟁」에 새로이 관심을 쏟는 것은 이 기관이 얼마나 재빨리 냉전시절과 결별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벌레, 트로이 목마, 논리폭탄 등의 이름을 가진 소프트웨어 무기로 무장한 테러리스트-해커가 가해오는 위협은 요즘 같은 예산절감의 시대에 의회쪽 사람들을 설득해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소재다.
「정보전쟁」이라는 새 분야는 NSA 내 정보보안 전문가들에게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전문분야는 과거 모든 영광이 도청·암호해독 요원들에게 돌아가던 시절에는 단조로운 업무로 인식되곤 했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연방정부 기관이나 민간기업들은 저마다 이들을 데려가려고 줄을 선다.
미국사회는 컴퓨터화 과정을 거치면서 외부의 전자적 공격으로부터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됐다. 은행간 네트워크와 전화 시스템에서부터 전기회사와 제철공장에 이르기까지 미국 경제는 촘촘한 컴퓨터 그물망 안에서 움직인다.
물론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을 놓고 의회에 수천만달러의 예산을 내놓으라고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이 분야 전문가들은 「21세기형(型)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고 말한다. 갈수록 늘어가는 컴퓨터 범죄가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지난 95년 초에는 영국의 한 10대 해커가 북한 핵사찰 자료가 들어 있는 미 공군 데이터베이스에 침투하기도 했다.
정보전쟁의 가공할 특징 중 한 가지는 비용이 매우 적게 든다는 점이다. 미래의 적국은 미사일 한 기보다 훨씬 싼 값으로 미국의 컴퓨터 네트워크에 공격을 가해올 수 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익명성. 만약 워싱턴 근교 앤드루스 공군기지의 컴퓨터 시스템이 침투당했다면, 그곳 요원들은 이것이 10대 해커의 짓인지 아니면 적국의 첫 공격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 한 전문가는 『이것이야말로 향후 15년간 정보기관들이 직면하게 될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옛 공산주의 국가들의 컴퓨터 전문가가 적국이나 테러리스트 집단에 고용되는 것도 문제. 1992년에는 한 전직 KGB 요원이 컴퓨터 바이러스를 무기로 미국의 모 컴퓨터 회사를 협박해 1백만달러를 갈취하려 했던 사례도 있었다.
몇몇 전문가들은 『국가 컴퓨터망에 대한 최악의 공격은 가장 은밀한 형태로 이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눈에 보이는 파괴나 컴퓨터가 작동을 멈추는 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프레드시트 상에서 무작위로 숫자를 바꾸는 바이러스가 자동차 제조회사에 침투했다면, 겉은 멀쩡한 데 사양은 전혀 다른 자동차가 나올 수도 있고, 이는 경제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새 시대, 새좌표 모색
국방부는 최근 전략계획 수립에서 정보전쟁에 대한 고려를 포함시켰고, NSA는 정보전쟁지원센터(IWSC)를 발족시켰다. 지난 95년 7월에는 고위 군사령관들과 NSA 기술진들이 함께 정보전쟁 시뮬레이션을 하기도 했다. 미 해군대학도 1887년 워게임을 실시한 이래 처음으로 지난 95년도의 연례 워게임에서 컴퓨터 공격을 상정한 훈련을 실시했다. 당시 시나리오는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는 동시에 이라크가 사우디 아라비아를 공격하고, 적국은 또 미국의 수송·보건체계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감행한다는 시나리오로서 군사 전략가들과 외교관, 심지어 의회 멤버들까지 이 훈련에 참가했다. 『인류 전쟁사에서 미국은 더 이상 성역이 아니다』라고 한 전문가는 말한다.
사실 이라크의 철도시스템을 혼란에 빠뜨리고, 북한의 컴퓨터를 망가뜨리는 것은 NSA에게는 일도 아니다. 다른 나라에 침투하려면 그 나라 통신시스템의 기술사양만 알면 된다. 이것만으로 사이버 공격 준비는 끝난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와 일어난 큰 변화는 NSA의 목표 자체가 크게 바뀌었다는 점이다. 냉전 시절에는 물론 러시아의 핵잠수함과 군장성들이 첫째 목표였다. 그러나 이제 NSA는 훨씬 광범위하고 까다로운 영역을 개척해가고 있다. 국제무역, 아랍 테러리스트 그룹, 국제적 마약거래, 핵확산 등이 그것이다. 한 전문가는 탈냉전 시대에 NSA가 감시해야 할 목표가 60% 증가했다고 말했다.
한때 목소리만으로 러시아 전투기 조종사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던 러시아어 전문가들은 이제 재교육을 거쳐 세르비아어, 아랍어, 일본어로 「전공 언어」를 바꾸고 있다. 10억달러에 달하는 장비들도 목표를 재조정했다. 소련 국경을 따라서 배치돼 있던 감청시설의 상당수는 문을 닫았고, 위성들도 궤도를 수정했다.
이런 재조정 작업이 원만하게 이뤄진 것만은 아니다. 「트럼펫」이라는 암호명의 10억달러짜리 도청용 위성은 발사되기 직전에 발이 묶여 몇 달 동안 방치되기도 했다. 원래 이 위성은 소련의 극동지역을 겨냥하도록 돼 있었다.
국무부는 어떤 지역에 긴급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NSA에 그 지역의 최신 정보를 요구한다. 90년대 이후로는 소말리아, 르완다, 하이티, 체첸, 보스니아 등이 그런 곳들이다. 이런 경우마다 NSA는 그 지역 언어에 능통한 전문가를 찾아내야 한다. 전 CIA국장인 스탠필드 터너제독은 이에 대해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마다 전문가들을 두명씩 확보해야 하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NSA는 일부 제3세계 국가들을 목표로 삼는 과정에서 과거 공산진영을 상대하던 때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태에 직면하기도 한다. 안테나와 위성이 포착하지 못하는 원시적 통신수단이 그것인데, 일례로 1993년 미군 수송기가 모가디슈 공항에 내렸을 때 소말리아 민병대는 암호화된 북소리로 이 소식을 대장에게 알렸다. 이 나라에는 전화기조차 없었던 것이다. 천하의 NSA도 북소리 암호는 도청할 수가 없었다.
「제2 팍스 아메리카나」의 첨병
90년대에 들어와 NSA가 새로 맡은 임무들 중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분야가 경제정보다. 이는 전통적 우방국의 합법적인 인물을 목표로 해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지난 50년간 영국을 비롯해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는 미국과 통신정보를 교환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90년대 이후 제각각 통신위성을 도청할 감청시설을 새로 마련했다. 엄청난 양의 경제정보가 통신위성을 통해 오고가는 상황에서 옛 동맹들은 이제 경쟁자가 됐고, 더 이상 정보공유를 원치 않게 됐다는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부터가 미국의 무역 경쟁자들에 대한 자료와 불공정 사례를 수집하라고 정보기관들을 채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몇 년 전 멕시코 페소화가 폭락했을 때 미국은 지원을 고려했다. 이 때 NSA는 정책결정자들에게 멕시코가 정확한 통화보유고를 숨기고 있다는 보고를 올렸다. 미국은 멕시코 당국에 정확한 정보를 요구했다.
NSA는 지금까지는 외국 기업의 상업비밀을 미국의 경쟁자들에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AT&T 전화기, 테네시주에서 제작된 혼다 승용차의 시대에, NSA도 누구를 위한 스파이가 될지, 누구를 감시할지 혼돈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탠필드 터너 전 CIA국장 같은 이는 정보기관들이 경제정보 수집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냉전 시절 우리는 군사적 안보를 위해서 정보를 수집했다. 그렇다면 탈냉전 시대에 들어와 우리가 경제안보를 위한 정보업무를 하지 못할 이유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봐도 전혀 없다. 물론 거기에는 몇몇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스꽝스러운 도덕원칙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원칙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기업에 손해를 끼치는 외국 기업의 불공정한 경쟁사례에 대해서는 당해 미국기업에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94년 미국 군수업체인 레이시온사는 브라질의 큰 계약건에서 프랑스의 톰슨사를 이겼다. NSA는 당시 톰슨사가 브라질 관리들을 매수하려 한다는 정보를 레이시온측에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