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증후군
이장희
내가 초등학교 다닐때 명절이 가까워오면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어가며 기다리곤 했다
1950년대 그땐 어려웠던 시절이라 명절이 되어야 새옷을 한벌 선물 받는 날이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렸던 명절일까 ?
명절 전날 밤이되면 내일이면 새옷을 입는다는 꿈에 부풀었다
밤이 왜 이리도 긴지 기다리다 새 옷을 끌어 안은채 깊은 잠속에 빠진다
꿈속 에서 새옷을 입고 제사를 지내고 맛잇는 음식을 먹는 꿈을 꾼다
명절 아침에는 정성들여 만든 음식으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린 제사상을 보면 제사도 지내기전에 군침이 돌고 제사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부엌에서는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차리느라 어머님을 비롯해 숙모님들이 분주함 속에 한편에서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연기에 눈을 뜨기 어려워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음 꽃이피고 모두가 기다리는 명절로 차례가 끝난 후에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음식을 나누고 즐거워 하시며 힘든 표정하나 짓지 않고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더 챙겨 주려고 하시던 어머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무래도 어려웟던 시절이 정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요즘 명절에는 명절 증후군이라는 마음의 병이 생겨 주부들은 명절만 지내면 후유증으로 고생을 한다
아마도 물질 문명이 발달되고 핵가족을 이루면서 조상숭배 사상이 점점 길을 잃어 가고 이웃과의 애듯한 정도 사라 지는듯하다.
하기야 제사를 지내고 가족 맞이를 하려면 대청소도하고 음식 장만도 하고 보통 힘든일이 아닐께다 그렇다고 가족들이 미리 찾아와 도우려는 사람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나의 경험으로 칭찬과 배려의 선물이 생각났다
마누라와는 재혼으로 나이 차이도 많이나 명절을 소화 하기엔 역부족으로 생각되어 제사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언제인가 아번님 제삿날 누님 한테서 전화가 왔다
올케를 바꾸라고 하여 바꾸었드니 얼굴도 보지뫁한 시댁 조상 제사를 지내주니 너무도 고맙다고 칭찬에 칭찬을 거듭하고 조그만 마음에 선물이라며 현금을 계좌이체 해준적이 있다
지금도 칭찬과 함께 조그만 선물이라도 하곤 한다 그후로는 기제사도 열심히 차리고 명절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솜씨 자랑이라도 할 듯 가지 각색의 음식을 만들어 시누이들이 올때를 기다린다 차사가 끈난뒤 치우고 나면 3시쯤 시누이들과 그의 자식들이 함께오고 사위와 딸들이 고맙다는 말을 앞세우며 포옹도하고 손을 만저 주기도하며 선물 보따리를 들고 들어온다
미리 정보를 얻어 평상시 아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준비해온다 아내는 푸짐한 상차림으로 모인 가족들을 대접하고 밤 10시쯤이면 친정으로 향한다 날개가 달린 듯 달려가는 뒷 모습을 보면 나또한 힘이 솟는다
친정에 가서는 자랑을 늘어놓고 친정 부모님께도 선물을 나누어 드리고 이튼날 집에오면 혹시 무리해 병이나 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피곤한 기색도없이 뒷일을 정리하는 모습에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쉰다
명절 제사를 지내려 방문하는 가족들이 음식을 장만하는 아내에게 칭찬을 하고 평소에 가지고 싶어하는 작은 선물이라도 하면 받는 기뿜 받는기뿜이 어우러저 명절이라는 큰 행사도 즐거운 마음으로 가족들과의 화기 애애한 장면이 연출되고 여자들끼리의 수다가 가족의 친목 도모에 한목을 할것으로 가족 친지간에 깊은 우애가 생기질 않을까 조심 스럽게 생각 해본다
언제인가 평생교육원 동료가 명절 증후군 으로 골치란다 명절만 지나면 부인이 몇날 몇일을 눕는다고 한다
명절에 차례를 지내러오는 가족들한테 고맙다는 말과 속에두고 표현을 안하는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고 평소 좋아하는 물건을 선물하라는 부탁을 하라고 조언을 해준적이 있다
명절 10여일후 조언 하여 준대로 했더니 지금까지 힘들다고 눕지를 않는다고 하기에 그렇타고 명절 증후군이 사라진 것이 아닐테니 외식이라도 하며 고맙다고 손이라도 한번 잡아 주라는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그후 식사라도 한번 하자고 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적중한 처방이 아니었나 생각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