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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기도 전통: 베라크하 (Berakhah)
유대인들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친밀함을 유지하는지,
특히 '송축'이라는 기도를 통해 그분의 임재를 의식하는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송축은 **'바라크($\text{בָּרַך}$, Barak)'이 단어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실 때: "복을 주다" (Bless)
인간이 하나님께 하실 때: "송축하다" (Praise/Bless the Lord)그런데 이 '바라크'의 어원은 **'무릎을 꿇다'**입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송축이란 단순히 입술로 노래하는 것을 넘어, 왕이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그분의 주권과 위대함을 인정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1.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화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테비에가 딸들의 파격적인 결혼 문제로 하나님과 나누는 기도는 **"On the one hand(한편으로는...)"**와 **"On the other hand(또 다른 한편으로는...)"**를 반복하며 괴로워하죠.
세 딸과의 갈등 상황에서 그가 하늘을 보며 털어놓은 주요 기도 내용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첫째 딸 자이텔: "전통을 깨고 가난한 재단사를 선택했을 때"
전통에 따르면 아버지가 정해준 부유한 백정 '레이저 울프'와 결혼해야 하지만, 자이텔은 가난한 친구 '모틀'과 서로 사랑한다며 울먹입니다. 이때 테비에는 당황하며 하나님께 묻습니다.
테비에의 고뇌:
"하나님, 이건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자식들이 자기들끼리 결혼 약속을 하다니요? 이건 전통에 어긋납니다! 한편으로는 모틀은 아무것도 없는 가난뱅이 재단사일 뿐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제 딸을 정말 사랑하고 딸아이도 행복해하는군요.
게다가 모틀은 비록 가난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한 청년입니다. ..
.좋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들을 허락하겠습니다."
결과: 테비에는 전통(중매)보다 딸의 행복을 선택하며 처음으로 자신의 원칙을 굽힙니다.
2. 둘째 딸 호들: "혁명가와 함께 시베리아로 떠나겠다고 할 때"
둘째 딸은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페르칙'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번에는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라 통보를 하는 식이죠.
테비에의 고뇌:
"하나님, 세상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이제는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그저 '알리는' 수준이군요. 한편으로는 페르칙은 위험한 생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신념이 뚜렷하고 제 딸을 깊이 아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들이 그를 위해 시베리아 유배지까지 따라가겠다고 하는군요. 사랑이란 게 대체 무엇이길래 이토록 강한 걸까요?"
결과: 테비에는 슬픔을 억누르며 기차역에서 딸을 떠나보내고, 하나님께 딸의 안녕을 빌어줍니다.
3. 셋째 딸 하바: "유대인이 아닌 러시아 청년과 도망쳤을 때" (가장 비극적인 기도)
가장 사랑했던 셋째 딸 하바가 유대교 신자가 아닌 러시아 정교회 청년 '피에드카'와 몰래 결혼했을 때, 테비에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습니다.
테비에의 고뇌:
"하나님, 이번에는 다릅니다. 이건 단순히 가난한 사람을 선택한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과 민족을 배신하는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바는 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입니다. 그녀를 용서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니요, 이번에는 '다른 한편'이 없습니다! 제가 만약 이 전통의 선을 넘어버린다면, 저는 더 이상 제가 아니게 됩니다. 제 뿌리가 뽑혀버리는 것입니다!"
결과: 테비에는 결국 하바를 가족에서 파문하며 외면합니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 마을을 떠날 때 멀리서나마 딸에게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시길(God be with you)"이라고 속삭이며 부성애를 드러냅니다.
한 사람의 아주 사소한 투덜거림까지도 귀 기울여 들으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사랑....기도는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만 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주인공 테브예는 마치 오랜 친구와 대화하듯 하나님과 논쟁하고 조언을 구합니다.
상시적 가까움: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존재로 인식하며, 격식 없는 편안하고 스스럼없는 기도 생활을 누립니다.
2. '베라크하'의 기원과 목적
신명기 8장의 경고(배부르고 번성할 때 하나님을 잊지 말라)를 잊지 않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눈뜬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짧고 구체적인 기도를 드림으로써,
온종일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감사를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 베라크하(Berakhah): '송축' 또는 '찬미'를 뜻하며,
실질적으로는 감사 기도입니다.
바라크(Barakh): '무릎 꿇다'라는 뜻을 포함하며, 정신적으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겸손히 찬양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 시대: 초기에는 "그를 송축할지어다"와 같은 짧은 한 줄 형식이었습니다.
랍비들의 규정: 이후 200년이 지나지 않아,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우주의 왕'**으로 불러야 한다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대표적인 문구: > "오 여호와 우리 하나님, 우주의 왕이신 당신을 송축하나이다"
(히브리어: 바루크 아타 아도나이 엘로헤누, 멜레크 하올람)
기도에 젖어 사는 삶....유대인의 삶은 일상의 모든 순간(음식, 재봉틀 등 사소한 사물까지도)에 축복과 감사를 담는 '송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복의 근원임을 인정하며 그분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기도가 되는 법
1. 하루의 시작과 신체에 대한 감사
유대인들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생리적인 현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여깁니다.
기상 시: "살아계시며 영원하신 왕이시여, 영혼을 되돌려주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고백하며 하루를 엽니다.
신체의 신비: 수탉의 울음소리(시간의 구분), 시력(소경의 눈을 뜨게 하심), 그리고 화장실 사용 후 신체가 제대로 작동하는 일상적인 현상에 대해서도 짤막한 송축 기도를 드립니다.
2. 일상 속 '발견'의 기도
특별한 종교적 장소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거니는 것 자체가 송축의 기회가 됩니다.
자연: 봄에 튼 과실수의 첫 움, 멋진 나무와 창조물을 볼 때 찬양합니다.
감각: 오렌지 껍질의 상쾌한 향기를 맡을 때도 "좋은 향을 주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만남: 오랜만에 본 바다, 탁월하게 아름다운 사람, 존경하는 랍비, 혹은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를 만났을 때도 입술에서 찬양이 흘러나옵니다.
3. 고통과 슬픔 속에서의 송축
유대인의 기도는 단순히 기쁠 때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비극적인 소식: 누군가의 죽음이나 불운 앞에서도 **"참 재판관이신 그를 송축할지어다"**라고 기도합니다.
의미: 이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며, 결국 공의를 행하실 분임을 스스로에게 일깨우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4. 온 마음을 다하는 사랑 (쉐마의 실천)
왜 이렇게까지 사소한 일에 기도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답입니다.
쉐마(Shema):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행복할 때뿐만 아니라, 분노, 슬픔, 애통의 상태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함을 뜻합니다.
감정의 정직함: 필립 얀시의 일화처럼, 하나님께 화가 나 있을 때 그 분노를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쏟아내는 것(통곡의 벽에서의 통곡) 또한 깊은 기도의 한 형태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기도는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지속적인 의식'**입니다.
기분 좋은 향기부터 참담한 슬픔까지 모든 감정과 상황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에 흠뻑 젖은 삶'**의 실체입니다.
유대인의 송축 전통이 성경(복음서와 서신서)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태도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곳곳에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송축 기도 습관이 배어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마 14:19): 예수님께서 떡을 떼기 전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 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식사 전 드렸던 **"땅에서 빵을 내신 이를 송축할지어다"**라는 베라크하를 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적과 권능 (마 9:8): 중풍병자를 고치셨을 때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은, 기적을 베푸신 장소나 권능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전통적 송축문인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을 송축하나이다"**를 외친 것과 같습니다.
감사의 부재에 대한 탄식 (눅 17:12~19): 열 명의 나병환자 중 사마리아인 한 명만이 돌아와 하나님을 송축했을 때,
예수님은 나머지 아홉 명의 '감사 없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이는 당연히 드려야 할 송축의 의무를 저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
2. 바울의 권면: "범사에 감사하라"
사도 바울이 강조한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가르침은 유대인의 송축 전통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랍비의 주장: 당시 랍비들은 **"하루에 백 번 여호와를 송축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의 의도: 바울이 서신서(엡 5:20, 골 3:17 등)에서 끊임없이 감사를 강조한 것은, 문화 속에 깊이 배어 있는 이 '송축 기도 습관'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즉, 모호한 찬양이 아니라 매 순간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식사 전에 기도하는 이유는 음식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식을 공급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입니다. '음식 자체'를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를 송축하는 것이 본래의 의미입니다.
"송축은 [송(頌): 기릴 송 (공덕을 기리다, 찬양하다) 축(祝): 빌 축 (축하하다, 빌다)]
인간적인 탁월함이나 일상의 작은 기적조차 하나님의 성품이 나누어진 결과임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과 바울이 보여준 것처럼,
송축은 특별한 종교 의식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 하나님과 연결되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송축(베라크하)의 전통이 어떻게 구체적인 일상에서 실천되는지, 그리고 그 실천이 우리 내면과 삶의 태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결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송축: 일상을 기적으로 바꾸는 태도의 변화
1. 허세와 물질주의로부터의 자유 (의복의 송축)
옷을 입는 사소한 행위조차 송축의 기회가 됩니다.
송축문: "벌거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신 우주의 왕,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효과: 옷을 신분의 상징이나 허세로 이용하려는 얄팍한 태도를 벗겨내고, 신체를 보호하고 온기를 주는 옷의 본질적인 목적에 감사하게 합니다. 또한, 헐벗은 이웃의 필요에 더 민감해지게 돕습니다.
2. 불평을 감사로 바꾸는 시각 (기상과 환경의 송축)
날씨나 환경에 대해 투덜거리는 습관을 송축으로 교정할 수 있습니다.
날씨: 비가 오거나 구름 낀 날에도 "선하시며 좋은 것을 주시는 우주의 왕"을 송축합니다. 유대인들에게 비는 기쁨의 원천이며, 천둥과 번개 역시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는 경이로운 통로입니다.
태도의 변화: 작가 로이스는 햇볕이 없는 날 불평하던 습관을 버리고 송축을 시작했을 때, 인생의 전망이 쾌청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3. 특별한 순간의 기쁨: 쉐헤히야누(Shehehiyanu)
의미: "우리를 살게 하사 지키시고 이 날에 이르게 하신 우주의 왕..."으로 시작하는 이 기도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경사나 특별한 날에 드립니다.
예시: 유대인 혼인 잔치에서 신랑의 부모와 친구들이 이 기도를 암송하며, 고통의 시간을 지나 기쁨의 날을 맞이하게 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눈물로 찬양합니다.
4. 지속적인 송축이 주는 유익
나르시시즘 방지: 기도가 단순히 나의 감정과 필요(건강 염려, 돈 스트레스 등)를 되뇌는 수준에 머물지 않게 합니다.
송축은 시선을 '나'에게서 '하나님'으로 돌리게 합니다.
카바나(Kavanah)의 충만: 매 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의식하게 되어, 일상이 마치 '크리스마스 아침'에 선물을 하나씩 풀어보는 것 같은 설렘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관계의 회복: 영적 침체기에도 형식적으로나마 송축을 이어갈 때, 결국 하나님의 놀라운 선하심과 사랑에 대한 새로운 확신을 얻게 됩니다.
유대인의 송축 전통은 삶을 **'절반이 찬 유리잔'**으로 보게 하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사소한 일상(옷 입기, 날씨, 쇼핑 등)부터 인생의 큰 경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인정할 때, 우리는 삐딱함과 배은망덕을 피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 안에 거하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절기'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몸으로 기억하고 신앙을 대물림하는 강력한 교육적 장치입니다.
유대인의 절기 또한 **"우리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확인하게 합니다.
1. '기억'을 통한 신앙의 뿌리 내리기
유대인들에게 절기는 '자카르($\text{זָכַר}$, Zakhar)', 즉 **'기억하라'**는 명령의 실천입니다.
도움: 인간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은혜를 잊으면 불평이 나옵니다.
절기는 유월절(구원), 오순절(말씀), 초막절(보호) 등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행하신 구체적인 사건들을 매년 반복해서 기억하게 함으로써 신앙의 뿌리를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과거에 도우신 하나님이 오늘도 도우신다"**는 확신을 줍니다
.2. '몸'으로 배우는 살아있는 신앙 교육절기는 책으로 배우는 지식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먹고, 마시고, 텐트를 치며 몸으로 체험하는 축제입니다.초막절에는 일주일간 불편한 텐트에서 지내며 광야의 고생과 하나님의 돌보심을 직접 경험합니다.
이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보호자"임을 머리가 아닌 피부로 느끼게 합니다.
의미: 신앙이 '관념'이나 '이론'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삶'**이 되도록 돕습니다.
3. 절기가 되면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이거나, 흩어져 있어도 같은 예식을 행합니다.
도움: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합니다.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유대인들이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 절기를 통해 확인하는 영적 결속력에 있었습니다.
적용: 혼자 믿는 신앙이 아니라, 함께 울고 웃는 신앙 공동체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4. '미래의 소망'을 바라보게 함
유대인의 모든 절기는 장차 오실 메시아와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도움: 유월절 어린양을 보며 진정한 구원자를 기다리고, 초막절을 지키며 영원한 천국 잔치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바쁜 일상을 멈추고 절기를 지키는 이유는,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기 위해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