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민주진보 교육’을 내세운 교육감이 13명 탄생했다. 민주진보 대 보수의 구분으로 보자면 13:4이다.
수도권에서는 서울 조희연, 경기 이재정, 인천 이청연 후보가 전승하고 충청권에서는 충북 김병우, 충남 김지철, 세종 최교진 후보가 승리하고 민주진보진영의 단일화가 안된 대전에서만 패배했다.
호남권에서는 전남 장남채 전북 김승환 광주 장휘국 후보가 이미 일치감치 당선 안정권이라는 평가에 맞게 낙승했다. 강원의 민병희 현 교육감의 낙승도 예상됐고 제주에도서 이석문 후보가 승리했다.
가장 의미 있는 결과 중 하나는 보수진영의 아성이라는 영남권에서 부산의 김석준 후보와 경남 박종훈 후보가 승리한 것이다. 부산시장과 대구시장 선거에서 야권의 오거돈, 김부겸 후보의 석패와 비교되는 장면이다.
결국 전국적으로 보수진영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대구 경북과 단일화가 안된 대전, 진보진영에 대한 애증이 남아있는 울산 4곳에서만 교육계의 권력교체가 이뤄지지 않았고 나머지 13곳에서는 민주진보진영이 교육감 선거에서 완승했다.
서울시의 경우 2012년 재보궐에서 보수 성향의 문용린 후보에게 자리를 내주었다가 이번 선거에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여론조사 꼴찌에서 출발해 큰 격차의 1위 당선으로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보여줬다.
경기도 역시 새정치민주연합의 경기지사 예비후보 출마로 사퇴한 김상곤 교육감의 빈 자리를 이재정 성공회대 전 총장이 당선되면서 무상급식과 혁신학교 등의 기존 교육정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2010년에는 보수성향의 교육감에게 자리를 내줬던 부산, 인천, 충북, 충남, 경남, 제주와 첫 교육감 선거를 치룬 세종시에서의 진보교육감 당선도 눈에 띈다.
부산의 경우 무려 7명의 후보가 난립한 선거에서도 김석준 부산대 교수가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경남에서도 박종훈 경남대 교수가 다른 보수 성향의 2명의 후보를 따돌리고 당선됐다.
다만 대구에서는 보수성향의 우동기 후보가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고, 경북은 당초 민주진보성향의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다. 영남에서 TK를 제외한 경남/부산에서 진보교육감이 등장한 것이다.
충청권에서는 진보교육감이 휩쓸었다. 충북의 김병우 후보가 압도적 1위, 충남의 김지철 후보가 보수 성향의 서만철 후보와 접전 끝에 당선됐다. 세종시의 최교진 후보도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제주시에서도 이석문 후보가 무난하게 당선됐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진보교육감의 압승은 광역단체장에서의 엇갈린 성적표와 비교해서 더욱 인상적이다. 경기 인천의 단체장은 접전 끝에 새누리당의 남경필 유정복 후보가 당선됐다. 부산, 대구도 야권 후보가 선전했지만 새누리당의 벽을 넘지 못했다.
교육감 선거에서 민주진보진영이 14곳에서 승리했지만,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새누리당과 야권의 성적표는 8:9로 나름의 균형을 유지했다.
선거 중 공동 정책공약을 발표하는 진보교육감 후보들(사진=교육희망)
광역단체장-교육감 결과의 엇갈림, 그 이유는
지난 2012년 대선 때 진행된 서울시 교육감 재보궐 선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한 서울시 유권자 1/3이, 당시 민주진보단일후보인 이수호 후보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서울시 유권자 320만명은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를 행사했지만, 민주진보 단일후보인 이수호 후보는 약 2백만표를 얻는 데 그쳤다.
지역별로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가장 많은 표를 던진 관악구에서 유권자 19만6천명이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지만, 이수호 교육감 후보에게는 12만1천여명만이 투표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가 가장 저조한 성적으로 득표한 강남구 역시 13만4천여명이 문 후보에게 투표했지만, 이 교육감 후보에게 투표한 수는 7만8천명에 그쳤다.
즉 지역과 상관없이 야권 성향의 유권자가 교육감 선거에서는 다소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교육감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전교조 출신은 안된다’는 민주당 내부의 인식과 당시 상대 후보인 문용린 후보의 ‘전교조 물고 늘어지기’, 당시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현 대통령이 TV토론에서 공개적으로 이수호 후보와 전교조에 대해 이념공세를 벌인 점이 한 몫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색깔론’이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앵그리맘’의 표심이 다른 선거 때보다 교육감 선거의 집중도를 높인 것으로 분석된다.
부산, 경남, 제주에서 광역단체장은 새누리당 후보가 압도적 당선됐으나 교육감 후보는 진보성향의 후보가 압승한 것 역시 오히려 유권자들이 정당 정치에서의 자기 판단과 교육에서 정치의 판단을 일정하게 구분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 성향 후보의 난립도 진보교육감 후보의 압승에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서울의 경우 보수 성향의 후보들이 문용린-고승덕-이상면 후보로 난립했지만, 서로 추악한 폭로전을 벌이는 와중에 조희연 후보가 SNS등을 통해 조용히 인지도를 높여왔다.
서울 교육감 선거가 반전을 거듭하는 폭로전이 이어지면서 다른 지역의 교육감 선거의 관심도 동시에 높아지기도 했다. 경북을 제외한 민주진보 교육감 단일후보가 확정되면서 이 명단이 SNS 등에 공유되면서 인지도를 톡톡히 높였다.
정당 선거에서는 여전히 새누리당의 이름값과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간판을 앞세우고 이를 득표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이 정권 비판의 민심을 일정하게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부산, 대구와 경기, 인천 지역의 야권 바람이 거셌던 지역에서는 새누리당과 박근혜라는 방패를 전면에 배치한 것이 일정하게 먹혀 든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교육감 선거에서는 나름의 보수, 진보 성향이 뚜렷이 드러나기는 했지만 ‘정당’이나 ‘정치인’을 앞세우기 힘든 상황이다. 즉 노골적인 지지 정당 줄 세우기나 진영 투표 논리로만 접근하기 어려운 선거였다. 오히려 자녀들의 미래가 걸린 교육정책 등에 대해서 유권자들이 냉정하게 평가를 내린 성격이 강한 것이다.
또한 교육문제에서 이념 공세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던 전교조가 항상 논란의 중심이었지만 창립 이후 근 30여년 가까이 진보적 교육의 마지막 버팀목으로 버텨왔던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시민사회에서의 진보적 교육운동 세력들도 정당정치의 정파적 갈등과 별개로 가능하면 단결을 모색해왔던 점도 나름의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