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의무화? 자사주 보유 한도 제한?…당국 개편 움직임에 재계 반발
금융당국, 연내 자사주 제도 개선안 발표 예정
“주주평등 원칙” vs “경영권 방어 불가능” 팽팽
정부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관련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어 시장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연내 자사주 제도 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는 이 일환으로 지난 5일 ‘상장법인의 자기주식 제도 개선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자사주 보유 비율 제한, 자사주 처분 절차 강화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금융투자업계는 대체로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안이라고 반겼다. 이와 달리 재계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주요 수단이 사라질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자사주, 대주주 지배력 확대에 악용…강제 소각 의무화 목소리 커져
금융당국이 자사주 제도 개선에 나서는 이유가 있다. 기업들이 ‘주주가치 제고’를 명목으로 자사주를 매입해왔으나, 실제로는 대주주의 지배력을 확대하는 데 자사주를 많이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자사주 매입이 불가능했다. 2011년 상법을 개정하면서 배당 가능 이익이 있다면 자사주를 취득할 수 있고, 취득한 자사주를 자유롭게 처분토록 허용했다. 그러나 이런 상법 개정의 취지와 달리 대주주 등 특정 주주를 위해 자사주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제도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커진 것이다.
예컨대 OCI, 한화솔루션, 동국제강 등은 지주사 전환 때 인적분할로 자사주를 대주주 지분율 확대에 이용했다. 인적분할은 물적분할 때와 달리 지분율대로 신설법인 주식이 생긴다. 이때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도 의결권을 가진 주식으로 바뀐다. 이를 ‘자사주의 마법’이라고 부르다. 대주주 입장에서는 지주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개편하고, 신설법인에 대한 지배력도 확대할 수 있는 요긴한 수단이다. 대주주가 돈을 내고 지분을 취득하는 대신 배당 가능 이익인 자사주를 이용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런 ‘꼼수’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언급되는 것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다. 자사주는 해당 기업의 ‘모든 주주’에게 권리가 귀속된다. 그러나 자사주 활용 방식에 따라 주주 사이에 이해상충이 발생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위원은 "주주가 지분율에 따라 혜택이나 손실을 동일하게 나누면 문제될 게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라며 "자사주를 취득·처분할 때 주주 간 이해상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규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반발하고 있다. 법리적으로, 경영 실무상으로 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전경련 관계자는 "2011년 상법이 개정되면서 자사주 배당가능 이익이 있다면 (자사주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며 "이를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으로 변경하면 현행 상법 체제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자사주 조각을 의무화하면 지분 맞교환 등 유일하게 활용 가능한 기업의 방어 수단이 사라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자사주 비중 제한, 처분 강화도 가능
재계의 반발이 크다 보니 자사주를 일정 한도에서 보유토록 제한하는 의견에 무게가 쏠린다. 독일은 기업의 자사주 보유를 10%까지 허용한다. 1931년부터 이어진 제도다. 이사회 권한 남용을 방지하기보다 채권자 보호, 자본 충실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선택이다. 자사주 보유 한도 설정 역시 자사주 남용 방지를 위한 방안으로 언급된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전체 상장사의 81.5%가 자사주를 0~5%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사의 10.5%는 자사주 5~10%를 보유 중이다.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10곳 중 9곳은 자사주 보유 비중이 10% 이내라는 의미다.
또 자사주 처분을 강화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자사주 처분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내에서는 자사주 처분 때 별다른 절차나 통제가 없다. 이 때문에 ‘주주평등의 원칙’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미국 델라웨어주의 경우 자사주 처분도 당국의 깐깐한 규율에 따라 이뤄진다. 특히 자사주를 처분할 때 사실상 신주 발행과 비슷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미국·유럽은 (자사주를) 취득하면 자기자본을 내재화한 개념이라 발행되지 않은 주식으로 본다"며 "자사주를 처분할 때 기업공개(IPO) 때처럼 각종 서류를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사주 처분은 신주발행과 사실상 효과가 동일하기 때문에 경영권 방어수단이 필요해도 별도로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에 재계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사주 처분이 사실상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 후 지배주주에 우호적인 기업과 자사주를 맞교환해서 서로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다만 자사주 맞교환도 소액주주에게는 달갑지 않은 측면이 있다. 지분 교환으로 배당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맞교환한 자사주에 돌아가는 몫만큼 기존 주주의 배당금이 줄어든다.
금융투자업계는 자사주 보유 한도 제한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올해 금융당국의 국정과제 중 하나가 ‘투자자 보호’이고, 내년 총선까지 고려하면 개인주주 권익 개선책 마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보다 자사주 보유 비율을 제한하는 게 재계의 반발이 덜 하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난 5일 개최한 간담회는 업계의 의견을 듣기 위한 것으로 아직 정해진 바 없다"며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업계 의견을 청취한 후 세부 사항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경제] 2023.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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