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있는 세상
瓦也 정유순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셨는데, “전쟁터에서 자기가 살아 있다는 증거는 적이 쏘아 대는 총 소리가 들릴 때”라고 말씀 하시면서, 휴전 직전에 밀고 밀리는 긴박했던 전선(前線)의 상황을 실감나게 말씀하시었다. 적에게 포위되어 죽음을 직면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도 했다. 어린 나이에 이 땅에 전쟁이 영원히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굳건히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철원노동당사>
우리는 소리를 떠나서 살 수 없을 것 같다.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소리를 내고 있으며, 살아 있는 생물들은 그 소리들을 싫던 좋던 들어야 한다. 들리지 않으면 살아 있음을 의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활짝 핀 꽃을 보고 너무 감격하여 탄성을 질렀더니 갑자기 오므라드는 것을 보고 ‘식물도 소리를 듣는구나.’하고 또 한 번 놀랐다고 한다.
<한탄강 직탕폭포>
농부가 새벽에 농장에 나가 작물들과 아침 인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면 더 잘 자란다고도 한다. 좋은 것 들을 끌어 들이는 일도, 싫은 것들을 밀어 내 보내는 일도 소리가 그 역할을 주로 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연꽃 피는 여름이면 죽이 맞는 친구들과 새벽에 연지(蓮池)에 배를 띄워 ‘연꽃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피서를 즐겼다.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풍류계의 하나인 죽란시사(竹欄詩社)가 즐기던 청개화성(聽開花聲)이 대표적이다.
<왕송호수 백련>
우리나라 축구 대표 팀이 다른 나라 팀과 경기를 할 때, 우리 팀이 골을 넣는 소리에는 환호를 하지만, 반대로 우리 팀이 골을 먹는 소리가 나면 탄식을 한다. 같은 소리라도 입장에 따라 기뻐지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한다. 같은 노래 소리라 해도 어떤 사람은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지만, 어떤 사람은 시끄럽다고 소음공해(騷音公害)로 신고를 한다.
<구룡령 옛길 고냉지채소>
소음(騷音)은 일반적으로 원하지 않는 ‘시끄러운 소리’를 가리키는데 대부분 ‘떨림 현상’을 수반한다. 사람의 건강 상태나 기분 상태에 따라 듣는 사람의 주관적 가치에 따라 입장이 천차만별이다. 소음공해는 귀나 몸으로 느끼는 감각공해로서 피해 범위가 적은 국지적(局地的)이며, 시끄러운 소리가 발생할 때에만 느끼는 일과성인데, 느낌과 동시에 곧바로 심한 불쾌감이 오고 안면 방해와 정서 불안 등과 같이 일상생활을 방해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귀의 고막과 소화기 계통에 영향을 주어 건강을 방해하기도 한다.
<국회사랑재 대취타연주>
일선 행정기관의 민원실에는 각종 소음공해 민원이 전체의 절반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는 경제 형편이 점점 좋아지면서 ‘정온(靜穩)한 생활’을 바라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반사적으로 소음공해 민원은 늘어난다. 더욱이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층 간 소음으로 이웃 간의 분쟁도 다소 있다. 이웃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와 아이들이 쿵쿵거리며 뛰 노는 소리도 신고 된다. 조용히 생각을 다듬으며 쉬고 싶을 때, 벽을 타고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이웃 간의 분쟁이 되어 되돌릴 수 없는 대형 사고도 발발한다.
<삼부연폭포>
옛날에는 여러 세대가 전세 형식으로 한 건물에 모여 살아서 아이들이 있으면 시끄럽다고 셋방을 얻기가 무척 힘들었던 때도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소리는 정도에 따라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소리는 분명 마술 같은 힘이 있나 보다.
<수원화성 화홍문>
지금은 특별한 경우에만 겨우 볼 수 있지만, 옛날에는 농사일을 할 때 농악(農樂)놀이가 필수적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힘들게 일을 하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하는 줄만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농업에서는 빠져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임실필봉농악>
나팔이나 태평소, 꽹과리와 징 등의 금속 성 울림 소리가 해충(害蟲)을 퇴치한다는 것이다. 특히 징의 파장은 멀리 있는 해충들에게 고막을 파괴하는 힘을 가졌다고 한다. 또한 아름다운 음악 소리나 유명한 사람들의 좋은 이야기를 반복 적으로 태아(胎兒)에게 들려줌으로써 태교에 이용하기도 한다.
<도담삼봉>
시끄러운 소리를 내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우리는 살아 있는 한 어떠한 소리든 피할 방법은 없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어떤 소리라도 내기도 해야 하고, 들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살아 있는 세상은 소리가 있는 세상이다. 만약에 소리가 없는 세상은 무덤이 아닐지라도 공포 뿐일 것만 같다.
<담양 추월산>
https://blog.naver.com/waya555/222839023415